백창욱 ㅣ 목사
디 브라운,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부제는 미국 인디언 멸망사이다. 내가 제목을 짓는다면, 미국 인디언 저항사로 하겠다. 전에도 몇 번 말했거니와 요즘 나의 최대관심사는 아메리카가 어떻게 시작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나를 아는 것이다. 그래서 오랜 세월 책장에 고이 잠들어 있던 책들을 하나하나 독파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드디어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도 읽고 말았다.
이 책의 명성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다 알다시피 어떤 책이 유명한 것과 그 책을 읽었는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대개는 책 제목만 들어 아는 정도이지, 그 책의 세계로 들어가 내용과 정신까지 흡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출판업자도 독자도 이런 사정을 익히 아는지라, 책은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열하는데 의의가 있다는 블랙개그를 말하지 않는가.
하여튼 2008년에 구입한 책을 이제야 읽었다. 미군에게 궤멸당한 수많은 인디언 부족들 이야기를 어떻게 다 풀어낼까. 인디언들에게는 하나하나가 다 한 맺힌 생생한 역사인데, 이것을 어떻게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의 필력이 모자람을 절실히 느낀다. 미국놈들이 저지른 인디언침략사에는 명백한 패턴이 있다. 이놈들은 자신들의 팽창정복을 명백한 운명이라는 궤변으로 정당화하고 있지만, 이 놈들의 정복과정이야말로 명백한 범죄이다. 이런 놈들에게 걸린 인디언이나 한국이나 명백한 운명에 빠진 것이 한탄스럽다.
인디언들은 원래부터 있던 땅에서 평화롭게 자유롭게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잘 살았다. 가고 싶은 대로 갔고 머물고 싶은데서 머물렀다. 그런데 어느 날 아메리카인들이 야금야금 자기들 사는 땅을 침범해 들어왔다. 회유와 협잡으로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아메리카인들에게 질려 버린 인디언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 준다. 생명의 땅을 내주고 더 멀리 그들도 모르는 땅으로 옮겨간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 아메리카인들이 또 찾아와서 그 땅도 자기들에게 달라고 한다. 금이 나온다고, 철도를 놓는다고, 허락도 안 받고 떼거지로 몰려와서 판을 벌린다. 그렇지만 인디언들도 이제는 순순히 물러날 수 없다. 그래서 싸움이 벌어진다. 그리고 싸움의 규모는 점점 커진다. 이판사판 전쟁으로 확대된다. 인디언들로서는 정말 죽을 지경이다. “나는 싸우는 데 지쳤소. 우리 부족의 추장들은 살해되었소.” 투항하는 조셉 추장이 토로하는 말이다. 그러나 아메리카인들은 이런 상황이 내심 반갑다. 자기들이 바라던 바이므로. 전쟁이 벌어지면 어차피 자기들이 이길 것이 분명하므로. 그런데 교활하고 음흉한 아메리카놈들은 겉으로는 그만 싸우자고, 조약을 맺자고 회유한다. 순수한 인디언들은 또 그 회유를 받아준다. 그래서 조약을 맺는다. 인디언들에게 조약은 자기 생명을 거는 일이다. 그러나 아메리카놈들에게 조약은 그저 손바닥 뒤집는 일이다. 인디언들은 동족들이 수없이 죽어나가고 자기네 땅이 완전히 졸아 드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조약이란게 아무 소용없는 것이었음을 뼈저리게 체감한다. 그렇게 아메리카놈들은 인디언들을 게토로 몰아넣고 땅을 완전히 독차지한다. 그 게토는 인디언들이 살수 없는 황무지다. 운디드니는 최후의 인디언들이 미군에게 살해당하는 장소이다.
책 전반에 걸쳐서 미국놈들의 침략과 살상폭력에 인디언들이 끊임없이 구석으로 몰리는 과정이 참으로 비통하다. 이스라엘 극우정권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들을 아예 그 땅에서 쫓아버리려는 속셈으로 무차별 살상을 하듯이, 미국놈들은 인디언들을 그 땅에서 궤멸시키려는 목적으로 끝없이 몰아붙였다. 도대체가 상생과 공존을 모르는 놈들이다. 아, 이런 사악한 나라의 종교를 복음이라고 받아들인 한국교회도 참으로 비루하기 그지없고, 이런 사악한 나라를 동맹이라고 떠받들며 아메리카 없으면 나라가 절단난다는 듯이 절절매는 사대가 참으로 한탄스럽다.
종교문제는 따로 언급해야 할 영역이지만 짧게 말하자면, 미국의 기독교는 미국의 패권을 뒷받침해주는 이데올로기다. 미국의 가치를 대중에게 널리 퍼뜨리는 기관 내지 세력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학교와 교회, 군대이다. 19-20세기 미국놈들이 선교에 그렇게 열을 올렸던 이유가 어차피 기독교가 미국의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해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기들의 침략정복역사에 은폐돼 있는 범죄를 선교가 덮어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구한말 한국교회도 그런 과정에서 기독교가 들어온 것이고. 그 와중에 미국의 전쟁부장관 태프트놈은 일제와 짜고 조선을 일제에 팔아넘기지 않았는가.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인 것이다. 선교도 그 거대한 패권시나리오에 들어 있는 것이고.
이 책은 비극으로 끝나지만 새로운 통찰로 안내한다. 책의 말미는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완전히 절멸당한 인디언들은 어떻게 그들의 정신을 유지했을까. 어느 날 살아있는 전설 앉은소에게 차는곰과 짤막소가 ‘망령의 춤(Ghost Dance) 교(敎)’ 소식을 가지고 온다. 차는곰과 처남 짤막소는 메시아를 찾아 오랜 순례를 마친 터였다. 살아있는 전설 앉은소는 망령의 춤을 설명하라고 차는곰을 부른 것이다. 차는곰은 자신과 수백 명의 인디언들이 재림한 그리스도를 만난 일을 전한다. 그의 말이다. “나는 늘 예수가 선교사들처럼 백인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 사람은 꼭 인디언처럼 보이더군요.” 예수가 토착인의 모습을 한다는 말이 이제는 더 이상 새삼스런 말이 아니지만 근본주의 기독교에 빠져 있을 때는 이런 소리는 다 헛소리로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들에게는 이 고백이 진정이다. 되레 그 당시 근본주의 교리가 기독교의 전부로 알고 있는 내가 덜 떨어진 것이었다.
재림한 그리스도는 춤을 추라고 지시했다. 죽은 자의 영의 춤이다. 그리스도의 설교다. “다음해 봄이 오면 땅은 새로운 흙으로 덮이리라. 새로운 땅이 옛 땅을 뒤덮는 동안 망령의 춤을 춘 인디언들은 하늘로 올라가 있구나. 이 새로운 땅에 죽은 사람들의 망령이 다시 살아 돌아오고 인디언들만이 이 땅에 살게 되리라.” 나는곰은 망령의 춤을 배운 후, 돌아와 앉은소에게 재림 그리스도를 만난 과정을 모두 말했다.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요한묵시록이 떠올랐다. 로마제국의 극심한 박해에서 어떡하든 생존해야 하는 기독교도들은 현실언어가 완전히 막힌 상태에서 초현실언어 즉 묵시로 돌파구를 열었다. 그처럼 미국놈들에게 완전히 궤멸당한 인디언들은 망령의 춤이라는 초현실적인 상황으로 자기들의 잃어버린 희망을 되살리는 것이다. 그래서 특히 과부들이 몰려들었다. 남편들이 미군에게 살해당했으니 얼마나 원통한가. 망령의 춤은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다. 현실에서 완전히 막혀버린 그들이 기댈 곳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인디언들은 구세주가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는 믿음으로 춤에 몰두했다. 망령의 춤은 인디언 지역을 휩쓸었다. 모든 활동이 중단되었다. 미군주재관은 망령의 춤을 소요로 판단하고 군대를 동원해서 저지했다. 인디언경찰들은 앉은소를 체포하러 들었고, 그 소용돌이 와중에 앉은소는 인디언경찰의 총에 머리를 맞고 말았다. 미국놈의 수중에 있는 인디언 경찰이 제 동족의 위대한 지도자를 죽인 것이다. 소성리에서 미제에 충성하느라 제 나라 시민들을 짓밟는 한국경찰들과 똑같은 상황이 이미 오래전에 인디언들에게서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운디드니에서 미군과 충돌이 벌어졌고 미군의 무차별 학살 속에 최후의 추장 큰 발이 눈 속에서 기괴한 모습으로 얼어버린 채로 죽었다.
역사는 강자의 폭력 속에 이렇게 무참히 끝나버리는가. 아니다. 성서 모든 곳에서 폭력쓰는 강자는 심판받는다고 말한다. 예언서는 말할 것도 없고, 시편도 박해받는 자들의 탄원이 절절하고, 하나님이 반드시 탄원을 신원해 준다고 노래한다. 뿐만 아니라 신약성서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조차도 최종적으로 박해당하는 자가 폭력에 죽임당한 어린양과 함께 살아나서 세상을 심판한다. 바벨론은 망한다. 바벨론은 모든 제국의 은유다.
소성리도 약자의 최종승리를 믿고 바벨론 미제와 맞붙어 저항한다. 우리의 승리를 떳떳이 맞이하려고 투쟁한다.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는 소성리에서 미제와 투쟁하는 우리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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