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권리를 권리답게 보장하는 「장애인권리보장법」우리의 힘으로 쟁취하자!!

정다운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어찌 이리도 지난 8월 2일, 김부겸 국무총리는‘제23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를 열고,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과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및 장애인복지법 전면개정 추진방안」을 의결하였다. 이로써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하고 국정과제로도 채택하였던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이 2021년 연 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장애계는 장애인 정책을 시혜적 관점에서 권리적 관점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법률 제정의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장애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만큼,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이 과연 장애인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룰 수 있을지, 장애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추진하는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및 장애인복지법 전면개정」 법률안의 내용은 무엇일까? 법률안의 형식은‘장애인권리보장법’이라는 기본법 제정과 ‘장애인복지법’을 개정하는, 1개 법안 제정, 1개 법안 개정의 형식이다. 아직 법안의 전문은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정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에 대해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내용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장애인 정책의 패러다임을 반영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하여, 첫째,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 정의하는 ‘장애’의 정의를 따라 사회적 장애 개념을 도입하여 장애인 복지에 대한 국가 책임 강화, 둘째, 장애영향평가를 도입하여 정부 주요 정책의 수립단계부터 장애인차별 요소를 평가 및 시정, 셋째, 지역사회 자립생활 보장 등 장애인의 기본권 명문화, 넷째, 권리 구현을 위한 차별금지, 선거권 보장 등 정책의 기본방향을 보다 구체화, 크게 4가지를 법안에 담았다고 한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이 기본법으로서 위상을 가지고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가치와 철학을 국내법에 반영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며, 정부가 밝힌 입법 기본 방향을 보면 장애계가 장애인권리보장법에 대하여 주장해왔던 내용과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법조문에 권리를 100개를 나열한다고 할지라도, 권리를 보장해야 할 의무 주체, 즉,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제대로 규정하지 않는다면, 단지 선언적인 수준에만 그칠 우려가 있다. 특히 장애인의 서비스가 권리로서 보장되고 장애인복지에 대한 국가책임이 강화되기 위해서는 서비스 재원 확보 방안이 반드시 명시되어야 하지만 정부의‘장애인권리보장법’에는 이러한 내용이 모두 빠져있는 상황이다.

정부 주도의 장애인권리보장법에서 빠져있는 가장 뜨거운 쟁점은 바로 ‘탈시설’을 법률적 용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장애인 정책이 거주시설 중심에서 탈시설 및 지역사회 자립생활 지원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함에 따라, 관련 법 전면 개정 및 새로운 법률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장애인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장애인복지법의 경우, 1989년에 전면 개정된 이후 32년 동안 유지되었고, 장애인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상황이다. 장애등급제의 ‘등급’이라는 표현이 법률적으로 사라지기는 했지만, ‘장애정도’라는 기준을 두고 여전히 ‘장애’를 장애인의 의학적 손상 정도로 정의하는 낙인적인 기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탈시설’의 법적 근거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롭게 제정되는 ‘장애인권리보장법’에는 ‘탈시설’의 법적 근거가 반드시 명시되어야 하지만, 정부는 ‘탈시설’에 반대하는 세력, 특히 기존의 장애인거주시설 전달체계를 존립하려는 사회복지법인의 저항 때문에 중립적인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탈시설’은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일반논평에서 사용하는 매우 공식적인 용어이며, 일반논평 전문을 통해 ‘탈시설 권리’,‘지역사회에 통합하여 살아갈 권리’를 천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탈시설’을 법률적 용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전장연은 장애인권리가 권리답게 보장되는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위하여 아래와 같은 핵심 의제를 요구하고자 한다.

1. 장애 개념 사회화 및 장애인 등록 제도 폐지

2.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따른 장애인의 제권리 규정 및 국가의 권리 보장 의무 범위 확대

3. 장애인의 완전한 참여를 위한 장애 정책 심의 체계 구축(대통령 직속 상설 기구로 국가장애인위원회 설치)

4. 장애인의 권리옹호 체계 강화(권리옹호기관에 조사권 및 시정요구권 등 권한 부여, 장애서비스 이의(조정) 신청 제도 마련 등)

5. 독립적인 장애서비스 전달체계 구축(국가장애서비스공단 및 지역장애서비스센터 설치 등)

6. 필요한 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지원할 수 있는 장애서비스 이용 권리 보장 및 장애서비스 판정 체계 강화

7. 맞춤형 복지 실현 및 실질적 권리 보장을 위한 장애인권리보장특별기금 설치 등 별도의 예산 확보 방안 마련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장애’의 정의는 의학적 기준에 의한 등급으로 매겨졌고, 등급에 따라 서비스 신청 자격을 일방적으로 판정함으로서, 개인이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얼마나 서비스가 필요한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새롭게 제안하는 장애인권리보장법에서는 ‘장애’의 정의를 유엔장애인권리협약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정의로 재규정하고, 사회 참여의 제약을 겪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자 한다. 이에 장애인등록을 하지 않고도, 장애서비스 또는 권리옹호가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에 맞추어 장애인의 모든 지원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장애인의 정책 참여 체계(국가장애인위원회), 장애서비스 복지 전달체계(장애서비스공단), 장애인 권리옹호 체계(장애인권익옹호기관) 및 장애 관련 연구개발 지원 체계(국가장애연구원) 등 장애인의 4대 주요 지원체계에 대하여 신설 또는 위상을 강화하고자 한다. 장애인 정책 참여 체계인 국가장애인위원회는 현재 장애인복지법상에 있는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의 한계를 개선하기 위하여, 비상설위원회가 아닌 상설위원회로서 사무국을 두도록 하고, 위상도 국무총리 산하에서 대통령 산하로 높이는 것이다. 이는 중앙뿐만 아니라 광역 및 기초수준으로도 시도장애인위원회, 시군구장애인위원회를 설치하여 지방자치단체의 장애인 정책도 장애인 당사자가 참여하여 심의하도록 하였다. 장애인 권리옹호 체계의 경우, 현재의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권한을 강화하여, 조사권 및 시정요구권 등 권한을 부여하고, 단체소송 절차를 마련하고자 한다.

서비스와 관련해서는 정해진 점수표(현행 서비스지원종합조사 등)에 따라 모든 급여량이 결정되고 사실상 당사자의 결정 권한이 전혀 없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국가가 미리 공적 서비스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 국가장애서비스공단(담당 공무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서비스 종류와 양을 직접 결정하고 이를 공적 서비스 제공기관과 연계하는 전달 체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또한 결정된 장애서비스에 대해 불복할 수 있는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였다. 장애 서비스 이용자는 지역장애인위원회(장애인 당사자의 참여가 보장되는 심의 체계)를 통하여 장애 관련 사회서비스 급여 결정 사항에 대하여 이의 신청을 할 수 있게 된다. 맞춤형 복지 실현 및 실질적 권리 보장을 위한 장애인권리보장특별기금 설치 등 별도의 예산 확보 방안도 마련하고자 한다.

2013년부터 시작된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운동이 어느덧 8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야 비로소 정부가 추진하는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및 장애인복지법 전면개정」 법률안이 21대 국회에 제출됨으로서, 법안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장애인권리보장법 입법 운동은 비록 법 제정까지 이루지 못했지만, 법 제정 운동과 연계해서 장애등급제 폐지 운동을 힘차게 전개하였고, 문재인 정부가 「장애등급제 폐지 및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공약하고 국정과제로 채택하는 동력을 만들어냈다. 이제 우리는 장애인권리보장법의 세부적인 내용들 하나, 하나, 꼼꼼하게 투쟁으로 쟁취해야 할 시기이다. 시혜와 동정의 시대를 끝장내고 권리의 들판으로 나아가기 위해, 지난 3월 16일부터 시작된 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 농성장이 이제 200일에 접어들고 있다. 지금까지 투쟁해왔듯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무늬만 장애인권리보장법’이 아닌, ‘장애인권리가 권리답게 보장되는 장애인권리보장법’을 반드시 우리의 힘으로 쟁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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