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45호 8-1 민족주의는 애국주의인가? 한반도 평화 문제는 단순한 민족 문제가 아닌 계급 문제

전우재 l 대구경북 노동전선

1. 민족주의는 애국주의인가?

한반도가 위험하다. 전쟁 위험에 사로잡혀 있다.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가져야 할까? 한반도는 일촉즉발 상황이다. 실제 군사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전쟁 대비 기구가 설치돼 있다. 국방 예산도 어마어마하다. 전쟁 위험에서 벗어나는 해결책은 무엇일까.

여러 해결책이 주장된다. 강력한 무장을 통해 힘의 균형을 이루어, 전쟁을 꿈도 꾸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북한이 붕괴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북한이라는 위협이 사라져야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는 논리다. 북미 수교, 평화협정과 같은 해결책을 모색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한반도 평화 문제가 왜 발생하는지는 그 원인도 이해에 따라 다르게 분석되고, 해결 방법도 다르게 제시된다.

한반도 평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미군사훈련 문제, 통일 문제 등이 다각도로 조명되어 탐구되어야 한다. 문제는 위 담론이 가진 심각성에 비해, 활동가들이 가지는 관심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모든 활동가들이 한반도 평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고 있다. 한반도 평화라는 담론이 우리 민족, 우리끼리 등 민족주의적으로 이뤄지는 까닭으로, 사회주의적이지 않다거나 부적절하다고 인식하기도 한다. 그런 인식은 민족주의가 곧 애국주의라는 사고에 근거한다. 민족주의가 무엇이고, 왜 애국으로 이어지게 되는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설명을 살펴 보자.

“민족을 구성하고 통합하며 민족 단위의 국가 형성을 위한 정치사상.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신분을 대신해서 계급·계층으로 구분된 사회였고 자유와 평등을 내세웠지만 현실적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었다. 이러한 내적 균열을 봉합하고 국가적 통합을 위해서 민족주의라는 통합 이데올로기가 절실해진 것이다. 또한 이러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전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주민집단에게 수용되기 위해서는 군대, 교육, 언론, 문화, 스포츠 등의 역할이 중요했다. 징병제에 기반한 국민군은 대다수의 성인 남성을 단일한 운명 공동체로 규율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진덕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민족주의」 1995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0272

위 기사는 민족이라는 집단을 구성하고, 통합하며, 민족 단위의 국가 형성을 위한 정치사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봉건, 노예제 사회에서 변화한다. 시민 자본가 계급이 봉건 귀족 계급을 몰아내고 지배계급 자리를 꿰찬 상태이다. 봉건 계급을 공격하는 논리는 자유와 평등이었다. 자본주의 사회가 약속한 자유는 두 가지였다. 신분제로부터의 자유와, 생산 수단으로부터의 자유가 그 둘이었다. 전자는 소작제에서 농민을 끌어내 노동자로 고용하기 위함이었고, 후자는 토지라는 생산 수단을 박탈하여 노동력 판매만을 강제하기 위함이었다. 부와 빈곤이 확대재생산되니 당연히 불평등 문제가 심각해진다. 위 기사는 자본가 계급은 계급으로 분열된 공동체를 하나로 묶을 필요성을 느꼈다고 서술한다. 자본가 계급은 민족주의라는 사상을 이용해 분열된 두 계급을 하나로 묶기 시작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진행하는 설명에서 민족주의는 애국주의와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민족주의는 대립할 수밖에 없는 두 계급인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을 통합으로 묶어 지배를 영속화하는 데 쓰이는 이론으로 보인다. 다른 사건에 적용하더라도, 단순히 민족주의적으로만 접근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겠다. 대립하는 두 계급을 묶기 위해 주로 사용된 이론을, 세상을 해석하는 틀로 사용한다면, 당연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모든 민족주의 담론이 문제가 되고, 민족주의 담론처럼 보이는 사태와 그 사태가 가진 본질이, 정말 자본가계급적인 성격을 가진 무언가로만 이루어져 있을까? 한미군사훈련과 한반도 평화 문제, 민족통일 문제가 정말 민족주의, 애국주의 담론에 국한하는 문제인지 정확히 탐구할 필요가 있다.

2. 모든 민족 담론은 자본주의적인 담론인가?

1번 문단에서는 민족주의가 주로 자본가 계급을 통해 나타나고, 자본가 계급이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사용된다는 점을 알아보았다. 본 문단에서는 모든 민족주의 담론이 자본가 계급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레닌이 쓴 『맑시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를 살펴보자. 이 글은 당시 제1차대전을 제국주의 전쟁이라고 비판하고, 민족 전쟁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에 관한 반박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과장하여 마르크스주의자에게 요구되는 구체성으로부터 벗어나서는 안 된다. 지금의 전쟁에 대한 규정을 제국주의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전쟁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하여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민족운동을 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민족 전쟁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테제를 내세우면서 유니우스가 제시하는 논거는 단 하나뿐인데 그것은 세계가 한 줌의 제국주의 ‘대’국들 사이에 분할되어 있고 따라서 어떠한 전쟁도 비록 그것이 민족 전쟁으로 출발했다 하더라도 제국주의 전쟁으로 전화되어 제국주의 양대 연합 중 한쪽의 이익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논거의 오류는 명백하다. 자연 및 사회에서 모든 경계선은 관습적이고 유동적이라는 것 특정 조건에서 그 대립물로 전화될 수 없는 현상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적 변증법의 기본 명제다. 민족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으로 전화될 수 있고 그 역도 가능하다.”
레닌, 『맑시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 아고라, 2018, p. 17

먼저 유니우스가 주장한 바를 살펴보자. 전쟁이 어떤 이유로 출발하든, 현재는 강대국들이 경제영토를 서로 장악한 제국주의 단계이므로, 강대국에 봉사하는 내용의 전쟁이 될 수밖에 없다. 레닌은 위 주장이 충분히 변증법적이지 않음을 지적한다.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민족운동은 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으며, 그 때문에 전쟁이 가진 성격이 변화할 수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국주의 전쟁은 민족해방 전쟁이 될 수 있고, 민족해방 전쟁 또한 제국주의 전쟁이 될 수 있다. 지금 시대가 제국주의 시대이기 때문에 민족 전쟁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사태를 명확히 보지 않았다는 지적일 수 있다.

레닌이 강조하는 지점은 사태 자체를 정확하게 보라는 점이다. 민족 문제는 자본가계급이 주로 주장한 개념이다. 하지만 자본가계급이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오개념이라는 판단은 정확하지 못하다. 사태가 어떤 연관에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어떤 의도로 발생했는지, 이 사태가 어느 집단에게 물질적 이익을 가져다주는지가 쟁점이 된다. 파악 자체를 거부하거나 올바로 판단하지 않는다면 정세를 잘못 분석하게 된다.

3. 그래서 민족 담론은 왜 사회주의적인 담론이 되는가?

2번 문단에서는 민족주의적이거나 민족주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자본가 계급에게 이익이 된다는 식으로 넘겨짚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제기를 확인해 보았다. 그렇다면 본 문단에서는 실제로 민족주의 문제, 민족 문제가 사회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자. 공산당 선언, 그리고 쿠겔만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를 보며 민족 문제가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인민들의 국민적 분리와 대립들은 부르주아지의 발전과 더불어, 즉 상업의 자유, 세계시장, 공업생산의 획일성 및 그에 상응하는 생활상태의 획일성과 더불어 이미 점점 사라지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는 그것들을 더욱더 사라지게 할 것이다. 최소한의 문명국들의 단결된 행동은 프롤레타리아트 해방의 제1의 조건들 가운데 하나다. 한 개인의, 다른 개인에 의한 착취가 폐지되는 정도로, 한 국민이, 다른 국민에 의한 착취도 폐지된다. 국민 내부에서의 계급들의 대립이 없어지면, 국민들 상호 간의 적대적인 자세도 사라진다.”
칼 맑스ㆍ프리드리히 엥엘스 『공산당 선언』, 노사과연, 2022, p. 79-80

“게다가 이것은 아일랜드에 대한 동정의 일환으로서가 아니라 잉글랜드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에 기초한 요구로서 추진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잉글랜드 인민은 지배계급의 의도에 계속해서 끌려다니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배계급과 공동으로 아일랜드에 대항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잉글랜드 자체 내의 모든 인민 운동은, 잉글랜드 자체 내에서 노동자계급의 상당 부분을 점하고 있는 아일랜드인들과의 알력으로 인해 계속 마비되어 있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해방의 제1조건−잉글랜드의 토지 과두정치의 전복−은 계속 불가능한 상태로 있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곳의 진지들은, 아일랜드에 있는 강력한 전초 진지들이 유지되는 한 공략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칼 맑스, 「맑스가 하노버의 루드비히 쿠겔만에게」, 『칼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3, 박종철출판사, 1997, p. 211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억압하고 지배하며 경제적 이익을 얻는다. 이에 그치지 않는다. 자국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막기 위해 노동계급을 매수한다. 정상적인 상황이면 노동계급이 분통이 터져야 하는데 터지질 않는다. 타국에서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해 잉여가치를 보전하고, 그 일부를 자국 노동자계급에게 일부 던져준다. 노동계급은 살만하다고 느낀다. 이러는 중에 자본은 확대재생산되고 빈곤 또한 확대재생산된다. 맑스는 쿠겔만에게 보낸 편지에서 영국 노동자계급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아일랜드가 먼저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일랜드에서 착취한 몫을 영국 노동자계급에게 일부 분배하여 영국 노동자계급을 매수한다면, 영국에서 노동자계급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 아일랜드가 해방된다면 영국 자본가계급은 더 이상 영국 노동자계급을 매수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취약해진다.

타국을 경제적으로 지배하는 제국주의국가와, 경제적으로 종속된 피지배, 식민지 국가가 존재한다. 여기서 제국주의국가가 해방되기 위해서는 식민지, 피지배국가가 먼저 해방되어야 한다. 레닌은 맑스주의 희화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에서 더욱 쉽게 위 사안을 해설한다.

“경제적으로 억압 민족 노동자계급의 일부는 억압 민족 부르주아지가 피억압 민족 노동자들을 극도로 착취해서 얻은 초과이윤으로부터 빵 부스러기를 받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게다가 경제 통계는 억압 민족 중에서는 피억압 민족의 경우 보다 더 높은 비율의 노동자가‘공장감독’이 되고,더 높은 비율의 노동자가 노동귀족으로 상승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것은 사실이다. 어느 정도는 억압 민족 노동자는 피억압 민족 노동자(그리고 주민 대중)를 약탈하는 데서 자국 부르주아지의 동반자다.”
레닌, 『맑시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 아고라, 2018, p. 193

쿠겔만 서한이나 공산당 선언에서 언급된 계급 간 대립, 민족 간 대립을 왜 사회주의자들이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지 잘 설명돼 있다. 위 세 문건이 말하는 바는 동일하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지배하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라는 점이다. 제국주의국가는 타국을 경제적으로 지배한다. 지배로 얻은 이익은 자국 노동자계급 상층부를 매수하는 데 쓰인다. 노동자계급을 매수하여 자본주의모순이 심화돼 일어날 혁명을 막는다. 자국 노동자계급을 무탈히 지배할 수 있게 된다.

모든 민족간 대립이 사회주의적인 성격을 띠지는 않는다. 제1차대전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지적한 적 있듯 자본가 계급, 제국주의국가들이 서로 민족주의를 내걸며 대립한 전쟁이었다. 로자는 다음과 같이 논한다.

“세르비아의 뒤에는, 동양에서 자신의 제국주의 강령 전체를 포기하지 않는 한 발칸에 대한 영향력과 ‘보호자’역할을 내줄 수가 없었던 러시아가 있었다. 러시아의 정책은 당연히 발칸국가들을 러시아의 보호령 아래 결합시키는 것이었는데, 이는 오스트리아의 정책에 직접적으로 대립되었다. 1912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터키의 유럽부분을 거의 완전히 없애버린 발칸연맹은 러시아의 작품이었고, 그 러시아의 의도에 따라 오스트리아를 자신의 적으로 삼아야 했다.”
로자 룩셈부르크, 「제4장 전쟁의 뿌리: 제국주의 이해관계의 대립」 『사회민주당의 위기』, 국제공산주의흐름

https://ko.internationalism.org/node/108

자본가 계급이 민족주의를 내걸어 제국주의전쟁을 진행했다면 이유만으로, 모든 전쟁, 모든 민족 담론이 관계된 전쟁이 제국주의전쟁이거나 민족주의전쟁, 사회주의와는 상관없는 전쟁이라는 판단을 내릴 순 없다. 전쟁이 가진 성격에 따라서 민족 전쟁이 될 수 있다. 그 근거는 제국주의시대가 되면서 제국주의국가와 피지배 식민국가간에 경제적 예속이 발생하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제국주의국가가 가하는 예속에서 피지배 식민국가가 벗어나야만 제국주의국가 노동자계급이 해방될 수 있다. 따라서 민족주의와 깊게 관련한 담론과, 민족주의를 내건 운동이 모두 자본가 계급적인 성격을 띤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우에 따라서는 충분히 사회주의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4. 한국의 민족 문제 또한 외면할 수 없다

두 번째 문단과 세 번째 문단을 이용하여 민족 개념을 내건 전쟁 문제가 자본가 계급적인 성격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이 사례가 한반도를 둘러싼 대립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남북 두 국가의 자본가계급이 서로 민족을 내걸며 대립하거나, 한반도와 미국에 존재하는 두 자본가계급이 서로 민족을 내걸며 대립한다면 로자 룩셈부르크가 지적한 적이 있는 제국주의전쟁, 자본가 계급 간 대립이 될 수 있겠다. 과연 현재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대립에서 저런 부문을 찾아볼 수 있을까?

북에는 먼저 자본가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남북에 존재하는 자본가계급이 서로 민족주의를 내걸며 대립하고 있다는 가정은 성립하지 않는다. 미국과 한반도에 존재하는 국가의 자본가계급이 민족이란 가치로 대립하고 있는가? 일부는 맞다. 민족주의를 내걸며 대립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전형적인 대립은 아니다.자본가계급이 지배하는 국가가 민족주의를 내걸며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 제국주의국가와 피지배국가가 민족주의를 내걸며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분석이 좀 더 타당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피지배 식민지국가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문제는 복잡한 문제다. 이를 본 기사에서 주요하게 다루지는 않겠다. 식민지국가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과정은 역사적인 분석을 통해 가능하다. 대한민국이 식민지국가라는 판단은 다음 세 가지 근거를 통해 가능하다. 첫째로 대한민국의 지배계급인 재벌독점자본이 일제강점기와 미군정을 거쳐 일제와 미제에 적극 협조하여 성장했다. 둘째로 대한민국 경제는 서방권 주요 국가들에게 종속돼 있다. 셋째로 미국과 같은 제국주의국가가 전략적으로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얼마든지 기지와 병력을 대한민국에 배치할 수도 있다.

군사훈련과 군사동맹을 체결하고 있다는 사실도 평화가 목적이라는 자본가 계급이 하는 주장과 모순적이다. 유엔은 회원국이 공격받거나 하는 극한 상황이 다가오면 군사력을 활용할 수 있는 기구이다. 대한민국은 유엔 가입국이다. 유엔에 가입했음에도 동시에 미국과 군사 동맹을 맺고 있다. 회원국이 공격받으면 서로 돕는다는 유엔에 속해 있으면서, 유엔 회원국인 북을 상대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전쟁을 준비한다는 말을 의례로 하지 않는다. 실제 전쟁을 준비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해나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실시되는 하반기 한미 연합훈련의 새 명칭으로 UFS(을지프리덤실드)가 유력하게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KR(키리졸브)·FE(독수리훈련)와 함께 3대 연합훈련으로 꼽히는 UFG(을지프리덤가디언)를 이름을 바꿔 5년 만에 부활시키는 것. UFG는 문재인 정부 출범 뒤인 2018년 폐지됐다. 한미는 또 이번 연합훈련에서 야외 기동훈련까지 병행하기로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규진 윤상호, 「[단독]한미, 文정부서 사라진 야외 기동훈련 부활… 연합훈련 정상화」, 동아일보, 2021.7.21.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220721/114558520/1?ref=main ,

미국은 필요하다면 대한민국에서 어떤 전략적, 군사적 행동도 진행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미국에 예속되어 있다는 알기 쉬운 증거가 된다. 리비아의 전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는 대한민국과 미국이 가진 관계를 다음과 같이 논했다.

“카다피는 “(한국에 미군이 남아있으니) 일본 식민통치가 미국 식민통치로 바뀐 것 뿐이다. 당신은 식민주의를 옹호하느냐. 미국 군사기지가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그게 자유인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선닷컴, 「20년 전 카다피, “한국은 미국을 싫어하지 않느냐”」, 조선일보, 2011.03.29.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3/29/2011032902484.html

김성구 교수는 대한민국 경제가 내수가 허약한 외부 종속적 경제라고 분석한다. 해외 경제에 크게 의존하는 예속형 경제는 개발 도상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분석한다.

“선진국 경제는 내수 경제가 기반인 자립 경제예요. 언론 등에서 우리나라가 일본 경제를 따라 수출 주도 공업화를 수행한 것처럼 말하는데, 객관적인 관계를 보면 터무니없는 주장이죠. 일본의 공업화는 선진 자본주의의 자립 경제의 길이고 한국의 공업화는 개발 도상국의 해외 종속적인 길이에요. (…)해외 경제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은 세계 경제의 침체 경향 속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이에요.”
김성구, 『경제무식자 불온한 경제학을 만나다』 ,워커스, 2016, p. 166-167

5. 마치며

한반도에 전쟁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이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동맹은 친교와 우애를 상징하는 기구가 아니다. 전쟁을 대비하는 기구이다. 동맹이 전쟁을 대비하는 기구라는 사실만으로 전쟁 위험을 설명할 수는 없다. 훈련은 진행되고 있다. 유엔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전쟁 연습이 이뤄지고 있다.

한미동맹과 군사훈련 문제가 심각하다는 주장은 숭고한 우리 민족이 살던 땅에 외국인 침략자들이 처들어왔기 때문에 심각하다는 맥락이 아니다. 물론 그런 의도로 주장하는 활동가도 있을 수 있겠다. 한미동맹과 군사훈련 문제가 가지는 본질은, 타국 향한 경제적 지배로 정리할 수 있다.

제국주의국가는 타국을 지배하려 한다. 경제적 이득을 얻고, 자국 노동자계급을 회유하여 지배를 영속화하기 위해서이다. 제국주의국가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세계 어느 곳에도 영향력을 투사한다. 한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군사활동은, 거칠게 말해 “자본가계급”이 착취를 위해 진행한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행동이다. 위대한 아메리카국이 미개한 배달민족을 정벌하겠다는 “민족주의적”의도에서 나온다고 해석한다면 그것은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본 셈이 된다.

“도덕은 언제나 계급적 도덕이었다 ; 도덕은 지배 계급의 지배와 이해를 정당화하는 것이든가, 아니면 피억압 계급이 충분히 강력해졌을 때부터는 이 지배에 대한 반란과 피억압자들의 미래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엥겔스, 「반듀링론」, 『칼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5, 박종철출판사, 1997, p. 105-106

한국의 민족 문제는 외면할 수 없다. 한미동맹과 합동군사훈련도 외면할 수 없다. 이 문제가 가진 본질이 경제 문제, 즉 사회주의와 가장 밀접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제국주의는 타국 노동자를 착취하여 자국 노동자를 매수하여 혁명을 억제하고서, 부와 빈곤을 확대재생산하려는 자본주의의 가장 발전된 단계이다.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는 속류적일 수 있다. 실제로 애국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민족 사이에 발생한 대립이라고 해서 모두 속류적인 대립이 된다는 뜻은 아니다.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대립이 아닐 것이라고 섣불리 예단해서는 안 된다. 사태를 정확히 봐야 한다.

참고자료

진덕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민족주의」 1995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0272
레닌, 『맑시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아고라, 2018
칼 맑스ㆍ프리드리히 엥엘스 『공산당 선언』, 노사과연, 2022
로자 룩셈부르크, 「제4장 전쟁의 뿌리: 제국주의 이해관계의 대립」 『사회민주당의 위기』, 국제공산주의흐름
https://ko.internationalism.org/node/108 ,
신규진 윤상호, 「[단독]한미, 文정부서 사라진 야외 기동훈련 부활… 연합훈련 정상화」, 동아일보, 2021.7.21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220721/114558520/1?ref=main ,
조선닷컴, 「20년 전 카다피, “한국은 미국을 싫어하지 않느냐”」, 조선일보, 2011.3.29.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3/29/2011032902484.html ,
김성구, 『경제무식자 불온한 경제학을 만나다』 ,워커스, 2016
엥겔스, 「반듀링론」, 『칼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5, 박종철출판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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