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자본주의 붕괴와 이행 문제

백철현 | 전국노동자정치협회 편집위원장

자본주의 공황은 자본주의 붕괴의 신호탄이다. 자본주의를 구출하는 마지막 보루인 국가 개입은 공황의 일시적인 해결책은 될지언정 자본주의 생산의 근본적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부채위기와 인플레이션을 낳기도 하면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자본주의 실업위기는 이제 만성적 실업의 양상을 보이고 있고, 소상공인들의 파산도 점점 더 빈번해지고 있다, 가난과 불평등, 실업은 청년들을 3포, 4포…7포까지 몰아넣고 있다. 노인들은 저임금 비정규직 노년 노동으로 내몰리거나 무위고에 시달리고, 고독사, 병사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자본주의는 발전한 생산력에도 불구하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지옥을 만들고 있다.

코로나19펜데믹은 자본주의 생산방식과 공적의료 체계, 생산과 생존권의 위기 등에 자본주의 사회는 속수무책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 줌도 안 되는 국가지원금은 새 발의 피로 인민들의 생존의 위기만 더 깊게 만들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회적 차원의 지원과 생산의 부분적 단절, 생산교류의 단절까지 각오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사실상 대량 감염 사태에 속수무책이다. 자본가들이 시장의 무계획성을 자율과 창의성을 가져온다고 찬양하며 획일적인 ‘통제경제’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중앙계획체제가 국가 간, 지역 간 사회적 생산과 교환,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공공보건 의료시설을 대대적으로 확장하며, 코로나 통제 동안 생존의 문제를 해결해줌으로써 펜데믹에도 훨씬 더 효과적인 체제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더 이상 빠져나갈 출구가 없는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자본주의가 인류 역사발전 단계에서 영원한, 최후의 생산양식이 아니라 과도적 생산양식이라는 점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 위기와 경제의 붕괴로부터 곧바로 자동적으로 사회주의 사회가 도래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잠자코 앉아서 자본주의 붕괴를 기다리면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자본주의의 실제적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으며, 실천적으로는 대기주의를 낳는다. 이럴 때 나타나는 대기주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따라서 있어도 크게 해를 끼치지 않거나, 없으면 아쉬운 그러한 종류의 대기주의가 아니라 혁명적 실천을 가로막고 심지어 계급의 실천적 행동, 즉 계급투쟁에 반대한다. 계급투쟁에 반대한다는 것은 결국 노동자를 압살하고 있는 자본주의와 국가권력에 맞서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부르주아와 부르주아 권력의 이해에 봉사하는 최대의 기회주의가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과도적 생산양식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사회, 더욱더 발전한 사회로 이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새로운 사회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먼저 이행의 객관적, 물질적 토대가 무르익어야 한다. 이행의 객관적 조건, 물질적 토대가 무르익지 않고 주관적 의지만으로, 주체의 노력만으로 새로운 사회로 이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을 수는 없다. 봉건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 사회로 이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1]물론 반식민지 혹은 식민지 국가의 반(半)봉건 사회에서 곧바로 사회주의로 이행한 것이 아니라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거쳐 사회주의로 이행한 많은 … Continue reading

1) 이행의 객관적, 물질적 조건

이행의 객관적, 물질적 조건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가? 그것은 첫째, 자본주의의 생산력 발전이다. 자본주의 생산력 발전은 사회주의를 위한 전면적인 물질적 토대를 제공한다.

“노동과정의 협업적 형태의 성장, 과학의 의식적 기술적 적용, 토지의 계획적 이용, 노동수단이 공동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전환되는 것, 모든 생산수단이 공동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전환되는 것, 모든 생산수단이 결합된 사회화된 노동의 생산수단으로만 사용됨으로써 절약되는 것, 각국의 국민들이 세계시장의 그물에 얽히게 되는 것, 따라서 또 자본주의 체제의 국제적 성격의 증대 등등이 더욱더 대규모로 일어난다.”
맑스 『자본론』 1 [하]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2008년, 1049쪽

맑스에 의하면, 토지가 작은 규모로 나누어져 있고 기타 생산수단이 분산적으로 존재하는 봉건제 생산방식은 생산수단의 집중을 막기 때문에 각 생산과정 내의 협업과 분업, 자연력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규제, 사회의 생산력의 자유로운 발전을 가로막는다. 이 생산방식은 생산 및 사회가 자연발생적인 좁은 범위 안에서만 운동할 때에 적합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낡은 생산 방식 내에서 점점 더 생산력이 발전하고 시장이 지역적, 세계적으로 넓어지고 상품교환이 늘어나게 된다.

이미 봉건제 내부에서 봉건제를 파괴하는 물질적 수단들이 만들어진다. 이 순간부터 이 낡은 봉건제 생산방식을 질곡으로 느끼는 새로운 세력과 정열이 태동한다. 맑스가 말한 이 “새로운 세력과 정열”의 중심에 서 있는 세력이 바로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떠오르는 부르주아 계급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들 부르좌지 출신의 역사가들은 … 부르좌지의 힘의 토대가 되는 생산수단이 바로 ‘봉건사회’ 내부에서 배태되고 발전되어 왔음을 밝히지 못했던 것이다. 18세기 말엽에 이르게 되자 소유제와 농업 및 수공업 조직은 한창 비약 중인 생산력에 더 상응하지 않게 되었으며 그만큼 생산에 질곡(품)이 되었으며 “그러한 질곡은 분쇄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분쇄되었다.”
알베르 소불, 『프랑스 大革命史』 최갑수 譯, 두레, 1984년, 3-4쪽

이러한 상황에서 봉건제의 낡은 생산방식은 더 높은 생산방식에 의해 철폐될 수밖에 없었다. 기존 봉건제 생산방식은 마침내 새로운 자본주의 생산방식에 의해 대체된다. 그리하여 새로운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변혁 과정은 단순하게 객관적, 물질적 조건의 형성만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봉건제 생산방식이 내부에서 생산력 발전을 가로막는 질곡이 될 때 기존 생산방식을 악착같이 유지하려고 하는 봉건제의 낡은 지배계급과 이 질곡을 깨뜨리려는 부르주아 계급이 격렬한 계급투쟁을 전개했다. 농민들도 봉건제의 억압과 착취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고 저항했다. 부르주아는 계몽사상이라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 무장하고 전체 국민의 대변자를 자처했다. 경제적 토대에서 기존의 생산방식과 새로운 생산방식과의 투쟁은 상부구조에서 격렬한 계급투쟁을 촉발하고 부르주아는 마침내 새로운 사회의 지배계급으로 우뚝 섰다.[2]이 계급투쟁이 가장 격렬하게 전개된 나라가 바로 프랑스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과 반동적 루이 16세의 처단, 혁명세력 내부의 분화, 급진파 자코뱅 … Continue reading

부르주아는 기존 수공업을 무너뜨리고, 공장제 수공업(매뉴팩처)을 거쳐 대공업을 발전시켰다. 이 과정에서 부르주아 계급 내부에서도 한 자본가가 다른 많은 자본가를 파멸시켰다. 이러한 대공업 생산이 바로 위에서 인용한 대로 생산의 사회화와 계획적 생산체제라는 사회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대규모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왜 자본주의의 대규모 생산방식은 또 다시 낡은 생산방식이 되는가?

자본주의 생산의 발전과정이 봉건제에 비해 진보적 발전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새로운 거대한 생산방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수많은 민중을 고통과 억압으로 빠뜨리는 참상의 과정이기도 했다. 특히 식민지배 및 노예노동은 한층 더 참혹했다. 자본주의로의 이행과정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지배적인 새로운 생산방식으로 자리 잡은 이후에도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통해 임금노예로 전락시키고 민중의 생존을 박탈하였다. 자본주의는 착취와 억압을 종식시킨 것이 아니라 봉건제와 다른 방식으로 노동자계급과 민중을 착취하고 수탈하고 억압했던 것이다.

“이 전환과정의 모든 이익을 가로채고 독점하는 대자본가(資本家)의 수는 끊임없이 줄어들지만, 빈곤 · 억압 · 예속 · 타락 · 착취(exploitation)의 정도는 더 증대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 수가 계속 증가하며 또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메커니즘 그 자체에 의해 훈련되고 통일되며 조직되는 계급인] 노동자 계급의 반항도 또한 증대한다. 자본의 독점(the monopole of capital)은 이 독점과 더불어 또 이 독점 일에서 번창해온 그 생산방식의 속박(tetter)으로 된다. 생산수단의 집중(中)과 노동의 사회화(化)는 마침내 그 자본주의적 외피外皮: integument)와 양립할 수 없는 점에 도달한다. 자본주의적 외피는 파열된다. 수탈자 (expropriators)가 수탈당한다.“
맑스, 『자본론』 1[하), 김수행 역, 비봉, 2008년, 1049-1050쪽

“사회의 물적 생산제력은 어떤 발전단계에 이르면 그들이 지금까지 그 안에서 움직였던 기존의 생산제관계, 또는 이것의 단지 법률적 표현일 뿐인 소유 제관계와 모순에 빠진다. 이들 관계는 생산제력의 발전형태들로부터 질곡으로 전환된다. 그러면 사회적 혁명기가 도래한다. 경제적 기초의 변화와 더불어 전체의 거대한 상부구조가 조만간 변혁된다. 그러한 변혁들을 고찰함에 있어서는 항상 물적인, 자연과학적으로 엄정하게 확인될 수 있는 경제적 생산제조건의 변혁과, 인간들이 그 안에서 갈등을 의식하게 되고 싸움으로 해결하게 되는 법률적, 정치적, 종교적, 예술적 또는 철학적, 간단히 말해 이데올로기적 제형태의 변혁을 구분해야 한다. 한 개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그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판단하지 않듯이 그러한 변혁기를 이 의식으로부터 판단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이 의식을 물적 생활의 제모순으로부터, 사회적 생산제력과 생산 제관계 사이의 주어진 갈등으로부터 설명해야 한다. 한 사회구성체는 그 내부에서 발전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생산제력이 발전하기 전에는 멸망하지 않으며, 새로운 보다 높은 생산제관계는 그들의 물적 존재조건들이 낡은 사회 자체의 품에서 부화되기 전에는 결코 대신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류는 그가 해결할 수 있는 과업만을 제기한다.“
칼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서문」, 김호균 역, 중원문화, 1988년, 7-8쪽

새로운 사회는 기존 낡은 사회 내부에서 태동된다. 자본주의의 거대한 생산력 발전과 과학기술의 발전, 대규모 생산에서의 협업적 노동은 그 자체로는 역사적 발전이지만 이 성과를 부르주아 계급이 전적으로 누리는 것이 문제다. 압도적 다수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참상 위에서 부르주아만이 물질적 풍요와 권력을 독점한다. 이처럼 생산이 점점 더 사회화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의 결과는 자본가계급이 독차지한다. 생산의 사회화와 사적 소유가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모순이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 생산력 발전은 한편에서는 무차별적으로 생산물을 만들어 내지만 전체 노동자 민중은 실업과 비정규직화, 파산 등으로 상대적, 절대적으로 빈곤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생산물을 구매할 수가 없어진다. 이로써 과잉생산 공황이 발생한다. 자본주의에서는 어처구니없게도 소비물품이 적게 생산돼서가 아니라 너무나 많이 생산된 결과로 노동자 민중이 고통받는다.

발전한 자본주의 생산력은 인류에게 해방을 선사하는 대신에 자본주의 공황을 만들어 내며 대중의 빈곤, 고통을 가중시킨다. 발전한 자본주의 생산력은 자본주의 생산관계 하에서 파괴적으로 작용하여 공황과 제국주의 전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최첨단 살상무기를 가지고 약소국을 침략하고 인류를 대량학살하도록 한다. 생산력 발전에도 불구하고 환경파괴, 심각한 주택난, 무계획적 도시계획 등으로 노동자 민중이 고통받는다. 사회적 기술발전의 성과를 독점자본이 로얄티, 상표권, 특허권, 지적재산권 등 명목으로 사적으로 독차지하면서 전체 인류가 이 발전결과를 향유하지 못한다. 획기적인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 논란처럼, 사회 전체가 다 같이 향유해야 할 기술적 성과는 의료 독점자본의 배를 불리는 탐욕의 수단이 되면서 돈 없는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현존의 관계들 아래서는 오직 재앙만을 낳을 뿐”(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독일이데올로기, 김대웅 역, 두레, 1989년, 122-123쪽)인 생산력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치 봉건제 생산방식과 이 생산방식을 유지하기 위한 지배방식에 대해 신흥 부르주아가 느꼈던 억압과 굴레를 이제는 자본주의에 대해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느낀다. 자본가계급과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불만과 원성이 쌓여가게 된다. 생산방식의 변화에 대한 갈망과 요구는 분배방식에 대한 불만으로 나아가고 생산과 분배를 둘러싼 격렬한 충돌은 정치영역에서도 격렬한 계급투쟁을 낳는다. 이로 인해 자본주의 체제 전체에 대한 저항과 반란이 증대한다. 부르주아가 봉건계급에게 겨누었던 칼날이 이제는 부메랑이 되어 노동자 민중에 의해 자신들에게 겨누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복수라면 복수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수요에 맞춰서, 인간의 필요에 따라 합리적이고 계획적인 생산을 할 수 없는 무정부적인 체제다. 인류의 풍요와 복지, 발전보다는 자본의 이윤만이 생산의 목적인 반동적 체제이다. 발전한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억압적, 착취적 성격을 제거해야 한다. 새로운 사회의 생산관계 하에서는 이윤이 생산의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전면적인 물질적, 정신적 발전과 풍요를 위한 사회 전체의 발전과 복리가 생산과 계획의 목적이 된다. 이 사회에서는 새로운 기계의 도입과 생산방식의 도입이 정리해고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의 전면적 단축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처럼 발전한 사회로의 이행의 물질적, 객관적 조건은 기존 체제 내부에서 잉태되고 자라난다. 자본주의 생산력은 이미 집단적, 계획적 생산이라는 새로운 생산방식을 낳을 정도로 고도로 발전하고 성숙했다. “인류는 그가 해결할 수 있는 과업만을 제기한다”는 맑스의 말대로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자본주의를 대신하는 새로운 사회로 이행할 수 있는 물질적, 객관적 토대를 충분하게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자동붕괴하여 새로운 사회로 이행하지 않는다면 이제 자본주의의 붕괴와 이행을 위한 주체적 조건은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 붕괴와 이행을 위한 주체적 조건

맑스주의 변증법은 생성, 변화, 발전과 소멸 및 재생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본다. 여기서 재생은 기존의 것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지양하는 것으로 더 높은 질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맑스주의에서 붕괴법칙은 붕괴의 객관적 필연성이지만 그러한 객관적 필연성이 저절로 자본주의 붕괴와 이행을 낳지는 않는다.

“자본주의가 그 존재를 정지한 뒤부터 사회주의가 시작된다고 하는 로자의 주장은 언뜻 보기에 자명한 것으로 보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기여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해서 사회주의로 이행하지 않으면 안되는가라는 문제에 대답할 수가 없다.
애초부터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었던가? 자본주의가 ‘불가능’해지고 따라서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때에 도대체 어디에서 사회주의가 나올 수 있을까? 확실히 자본주의가 객관적 역사적 한계에 직면해서 빠져나갈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 떨어지게 된다면(물론 그러한 한계나 막다른 골목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자본주의는 자동적으로 붕괴되고 존재하는 것을 중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그것만으로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의 필연성은 조금도 논증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붕괴된 뒤에는 이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있더라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변혁시킬 수가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이행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행’의 조건 즉 사회주의를 위한 물질적 전제가 사전에 자본주의의 태내에서 성숙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레닌이 말한 것처럼, ‘만일 사회주의 (문맥상 자본주의)가 경제적으로 성숙되어 있지 않다면 어떠한 봉기도 사회주의를 낳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의 필연성을 논증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내부에서 사회주의를 위한 경제적 기초가 어떻게 해서 성숙하는가 하는 발전법칙을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자본주의 그 자체 발전의 내적기구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회주의를 위한 물질적 전제는 로자가 생각한 것과 반대로 실제로, ‘무제한적인 축적’, ‘무제한적인 생산력의 증대, ‘무제한적인 경제적 진보’, 한마디로 말해서 자본주의 아래서의 물질적 생산력의 발전과 거기에 수반되는 생산의 사회화가 발전됨으로서 준비된다. 그 발전의 ‘한계’를 물을 필요는 없다. ‘붕괴’된 뒤에 ‘이행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행’의 과정이 ‘붕괴’의 과정인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는 ‘객관적 역사적 한계 · ‘빠져나갈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 ‘자본주의의 불가능’ 등을 어디에서도 논증하지는 않았다. 반대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가능성’과 ‘객관적 역사적 필연성’의 법칙을 밝히려는 데에 노력하고 그것에 의해서 처음으로 사회주의의 필연성을 과학적으로 기초짓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사회주의의 필연성은 자본주의의 필연성 그 자체 속에 포함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자본주의적 발전의 내적 모순, 그 적대적 성격이라는 의미이다. 로자의 ‘붕괴’이론이 ‘자동’붕괴론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녀가 ‘붕괴’를 ‘이행’으로부터 분리해서 제기했기 때문이다.
야마구치 마사유키(山口正之), 보론 : 로자 룩셈부르크의 자동붕괴론 비판, 자본주의 붕괴논쟁, 과학과 사상, 1989년, 283-284쪽

로자 룩셈부르크는 위대한 혁명가이지만 종종 조직문제와 이론문제에서 심각한 한계와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3]로자의 오류는 주로 레닌에 의해 비판됐는데 첫째, <유니우스 팜플렛> 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로자는 민족자결권 주장을 국제주의와 … Continue reading)

자본주의 “발전의 한계를 물을 필요는 없다. 붕괴된 뒤에 ‘이행’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행’의 과정이 ‘붕괴’의 과정인 것이다”라는 저자의 통찰력 있는 주장을 주의 깊게 검토해보아야 한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생산력 자체가 전반적으로 지체되고 일방적으로 ‘쇠퇴’하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자본주의의 고도로 발전한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모순에 빠지면서 계급적대가 심화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4]레닌이 제국주의론에서 독점이 부패와 정체를 낳고 기술진보를 고의적으로 늦출 수 있는 일시적인 ‘경제적 가능성’에 대해 말했는데, 이것은 … Continue reading

이러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빠진 자본주의에 맞서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시키는 혁명적 투쟁을 할 때 이행이 시작된다. 자본주의는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분쇄하고 프롤레타리아 대중국가를 세워서 새로운 생산관계를 조직할 때 마침내 붕괴되는 것이다.[5]물론 현실 사회주의의 역사를 보면 자본주의의 붕괴 이후에도 제국주의와 결탁한 반동 세력들이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복원시키기 위한 반동적 … Continue reading

이제 이 이행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살펴보자!

“자연 및 사회의 제현상이 복잡하고 다양한 합법칙적 연관형태 중의 하나는 가능성의 현실성으로의 전화이다. 다양한 현상과 과정에 나타나는 가능성은 물질적 세계의 객관적 법칙의 작용으로부터 생기는 것이고 일정한 제조건 하에서 현실성으로 되며, 현실성으로 전화한다. 현실성은 실현된 가능성이다…. 가능성과 현실성은 서로 다른 것으로 이행한다고는 말해도, 그것을 엄격히 구분하지 않으면 안된다. 가능성을 현실성으로 바꾸어 놓은 것은 커다란 잘못에 빠지는 것을 의미하고, 자신도 타인도 혼란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가능성이 모두 동시에 현실성이었다고 한다면, 자연 및 사회에는 어떠한 발전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가능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을 혼동하는 것은, 정치에 있어서 자기를 기만하고 그리고 중대한 잘못으로 인도하게 된다… 여러 가지 가능성 중에는, 필연적인 성격을 갖추고 있어 조만간에 실현될 것 같은 가능성도 있다. 과학은 자연 및 사회 중에 숨겨져 있는 가능성을 파헤쳐내고, 인간에 있어 부적합한 가능성을 제거하여 길을 제시하며, 바람직한 가능성이 현실성으로 전화하는 것을 조성한다.

가능성은 인간의 개입 없이도 현실성으로 전화할 수 있다. 자연에 있어서는 보통 그와 같이 행해지고 있는데, 거기에는 가능성의 실현에 있어서 필요한 조건이 저절로 쌓여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생활에 있어서는 가능성의 현실성으로의 전화는 사람들의 실천 활동을 통하여 실현된다. 가능성 아래에 존재하는 합법칙성을 인식하여, 인간은 자신의 실천활동에 의해 이 가능성을 현실성으로 전화하는 것을 재촉하고, 바람직한 길에 따라서 발전을 방향지울 수 있다. 제 사물의 현존하는 상태 속에 숨겨져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 그것들 속에서 사회의 선진적 세력의 객관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여러 가지 점에서 실천활동의 성공을 규정한다.”
『세계철학사』 II, 녹두, 1985년, 144-148쪽

자본주의 붕괴의 객관적 가능성 즉 필연성이 없이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사회로 이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인식된 가능성을 현실성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과학적 필연성을 인식한 주체에 의한 변혁의 과정이 필요하다. 자연과 사회의 발전법칙 자체를 인간이 개인적 의지로 거스를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과 사회의 법칙 앞에 인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는 순응주의와 대기주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와 정반대다. 자연의 법칙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역사발전 초기에 인류는 자연에 대한 물신숭배에 빠졌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법칙을 점점 더 많이 이해하면 할수록 인간은 자연법칙을 인간과 인간 사회의 발전에 유리하도록 활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적 인식과 이 인식에 바탕을 둔 인간의 집단적, 창조적 실천이다.

“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대량의 산출과 목적 자체의 관철을 위해서도 인간의 대폭적인 개조가 필요하며, 이것은 오직 실천적인 운동 속에서만, 즉 하나의 해법 속에서만 수행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혁명이 필요한 것은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지배계급은 타도되지 않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타도하는 Stuzende) 계급이 오직 혁명을 통해서만 모든 낡은 오물을 말끔히 버리고 새로운 사회의 기초를 세울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김대웅 역, 두레, 1989년, 122-123쪽

이처럼 사회발전과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은 더더욱 인간의 주체적 실천을 필요로 한다. 자본주의는 저절로 붕괴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주의가 붕괴될 수밖에 없는 경제적 위기가 명백해질수록 지배계급은 자본주의를 지키고 모순을 은폐하고 자신들의 위기를 노동자 민중한테 전가하여 위기를 돌파하려고 발버둥 친다. 지배계급은 점점 더 역사의 반동이 되어가고 있다. 역사의 반동이 되고 있는 자본주의를 새로운 사회로 이행시키기 위해서는 혁명적, 과학적 사실에 바탕을 둔 주체가 집단적으로 형성되어야 하고 이 주체가 전략과 전술을 제대로 구사해야 하는 것이다.

“때에 따라 혁명가들은 위기에는 절대로 활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쓴다. 이것은 잘못이다. 절대로 활로가 없는 정세라는 것은 없다. 부르주아지는 뻔뻔스러워지고 제 정신을 잃은 맹수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그들은 계속해서 어리석은 짓을 하고 정세를 격화시켜 자신의 파멸을 재촉하고 있다. 모두 그렇다. 그렇지만 부르조아지가 피착취자의 어느 소수의 것을 사소한 양보로 잠재운다든지, 억압되고 착취되고 있는 어느 부분의 어느 운동이나 봉기 등을 진압한다거나 할 가능성이 절대로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다. 절대로 활로가 없는 것을 사전에 증명하려고 하는 것은 공허한 현학이거나 아니면 개념과 언어를 가지고 노는 말장난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참된 증명이 될 수 있는 것은 실천뿐이다 … 혁명적 당은 이 위기를 이용해서 혁명을 성공시켜서 승리로 이끄는 자각, 조직, 피착취대중과의 결합, 결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지금이야말로 그 실천을 통해서 증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레닌,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제2차 대회>, 야마구치 마사유키 글에서 재인용.p.288-289

결국 이행의 문제에 있어서도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지도하는 혁명적 당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레닌의 말대로 전위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이 혁명적 당이 자본주의의 억압과 착취를 거부하고 투쟁에 떨쳐 일어서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압도적 다수를 지도하여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레닌은 이행형태의 특수성에 대해 주목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순수한 혁명을 기다리는 사람은 평생 혁명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사회의 이행의 특수성은 무엇인가? 한국사회는 발전한 독점자본주의 사회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한국사회의 역사적 모순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 한국사회는 반공의 전초기지로 분단모순이 존재하고 있고 제국주의 군대가 진주하고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에는 한미일 동맹이라는 제국주의 반공주의 신성동맹이 강력하게 구축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자간의 계급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동시에 이와 관련된 분단모순과 제국주의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

특히 민족문제 해결은 바로 남과 북의 통일의 문제인데, 이를 이행문제와 무관한 문제로 사고하는 편향들을 극복해야 한다. 이와 관련 통일을 주장하면서도 이행과 변혁의 사고를 도외시하는 우편향과 통일을 이행과정에서 배제하는 좌편향이 동시에 존재한다. 한국에서 변혁의 특수한 문제를 모색할 때, 러시아적 모델을 교조적으로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다. 우리는 러시아가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변혁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군대를 철수시킴으로써 남과 북이 민족적으로 단결할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을 마련하고, 남과 북의 통일을 성취함으로써 이행을 모색해야 한다. 이와 함께 자본주의 내부 모순을 끊임없이 폭로하고 노동자들의 노동3권 쟁취, 사활이 걸린 경제적 제 요구,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는 요구를 통해 혁명적 주체를 확고하게 형성하는 문제를 통일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자본주의 변혁을 위한 객관적, 물질적 조건은 무르익었다. 반면 이 조건을 현실화시킬 주체역량의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한국사회는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와 탄압이 지배적이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한국적 표현인 반공주의는 대중들 다수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이른바 ‘좌파’라고 하는 개량주의 세력과 트로츠키 정치세력들마저도 내면화된 반공주의에 물들어 있다. 이들은 정치노선이 서로 다르다 할지라도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혐오를 바탕으로 반쏘 반북 반공주의 노선을 공유하고 있다. 자본주의 이행의 문제가 결국 변혁의 문제라면 이행의 조건, 이행의 특수한 형태를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각종 기회주의와의 투쟁이 필수적이다.

(3) 평화적 이행노선과 이행의 부정은 쌍생아

이행의 필연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모두 변혁적인 정치세력인 것은 아니다. 유로코뮤니즘으로 타락한 전 세계 대다수 기존 공산당들은 이행의 필연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들은 강령에서 사회주의 생산관계로의 개조를 명시하고 있다. 이들이 사회민주주의자들과 형식적으로 다른 것은 이들이 이행노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행노선은 평화적 이행노선이다.

후르시초프에 의한 스탈린 개인숭배 비판, 격하운동이라고 알려진 쏘련공산당 제20차 당대회는 맑스레닌주의의 변혁 원칙 수정과 이를 통한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타락과 분열을 본질로 한다. 20차 당대회는 평화 이행노선의 출발점이었다.

“사회주의로의 이행 형태가 앞으로 점점 더 다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여전히 합법칙적인 것이다. 그때 사회주의로의 이행의 여러 형태가 어떠한 조건 하에서도 반드시 내전을 수반할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사회주의 이행형태론》 제1장에서 재인용, 김운영 편역, 아침, 1988년, 23쪽. 이 책 제1장에서 3장까지 원저자는 A.I. Sobolev다.

“제20차 당대회는 .… 노동자계급은 근로농민과 광범한 인텔리겐차충 모든 애국 세력을 자신의 주위로 결집하고 반민주적인 반동세력을 타도하고 의회 내에서 안정된 다수를 점하여, 의회를 부르조아지의 기관으로부터 진정 국민의 의지를 대표하는 도구로 변화시킬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회주의 이행형태론 제1장, 김운영 편역, 아침 1988년, P.23. 이 책 제1장에서 3장까지 원저자는 AI. Sobolev다.)

“1957년의 소련공산당(CPSU) 20회 당대회와 1960년의 국제회의에서 언급되었듯이, 오직 2차 대전 이후의 세계적 차원과 자본주의 나라들에서의 계급적 역관계의 근본적 변화만이 그러한 가능성을 열었다. 그들은 의회적 형태의 이용범위가 헤아릴 수 없이 확대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새로운 질적 내용을 가지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즉 그것은 민주주의 단계와 사회주의 권력투쟁 모두에 이용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 공산당들은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이행의 강령을 내놓았으며, 거기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조건에서 의회적 권력 획득 형태를 가장 개연성있는 형태로 간주하였다. 이들 나라의 공산당들은, 주어진 단계에서 노동계급은 대중적인 혁명운동에 의거하여 의회에서 튼튼한 다수를 획득할 수 있고, 의회를 부르조아 민주주의의 기관으로부터 진정한 인민권력의 무기로 전화시킬 수 있으며, 그 기초위에서 근본적인 사회변혁의 이행을 보장하는 조건들을 창출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같은 책 5장, 234-235쪽)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부르주아 국가가 아주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본질은 부르주아 독재라고 했다. 반면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은 풍부하고 아주 다양한 정치적 형태들을 창출한다고 하더라도 그 본질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맑스와 엥겔스는 프랑스 내전(파리코뮌)의 경험으로부터 기존 국가기구를 단순히 접수하여 사용할 수 없고 그것을 분쇄하고 완전히 새로운 대중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20차 당대회는 이러한 혁명적인 맑스-레닌주의 국가사상의 전면 부정한다. 20차 당대회로부터 출발한 유로 코뮤니즘 세력들은 기존 부르주아 국가 기구인 의회를 분쇄하는 것이 아니라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해서 의회를 개조할 수 있다는 망상을 가졌다. 이들의 평화이행노선은 각국 공산당들이 말로는 아직도 공산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강령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규정해 놓았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 국가권력과 생산관계와의 전면적 투쟁을 부정하는 개량주의로 변모하게 만들었다.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영국, 프랑스, 인도 공산당 등 각국 공산당의 우경화가 이에 대한 가장 생생한 사례다.

이들이 이행을 말하지만 평화이행노선으로 결국 자본주의와 타협하였다면 기존 사회민주당, 노동당, 사회당 등 다양한 명칭을 가진 개량주의 세력들은 이행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역사발전의 필연성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면 자본주의는 영원할 것이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자본주의 변호론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 변호론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다. 이는 인류의 역사를 발전시키려고 하는 집단적 실천을 가로막는 반동적 이해와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 이행의 필연성을 부정하면서 자본주의 내에서 자본주의를 변화시키겠다고 하는 사고와 실천 역시 결국은 자본주의를 최후의 생산양식이라고 간주하여 변화발전을 가로막고 억압하는 지배계급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개량주의 세력들이 수없이 많이 과거 역사에서 보여줬던, 그리고 지금도 보이고 있는 모습들이다.

개량주의자들에게는 이행을 위한 투쟁이 없다. 이행노선 자체가 없다. 이행노선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개량주의 유형은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변화시키지 않고 자본주의를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으로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또는 자본주의 모순 자체가 완화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본주의를 변호하는데 앞장서기도 한다.

맑스와 엥겔스는 이러한 라살레주의, 프루동주의와 투쟁했다. 맑스와 엥겔스 사후 베른슈타인과 카우츠키, 페이비언주의자들이 이행노선을 거부하고 자본의 내에서의 점진적 변화의 길을 선택했다. 이들 개량주의자들의 점진적 변화노선은 독일 혁명 과정에서 보듯, 혁명적 상황에서는 자본주의를 위기에서 구출하는 반동적 보루로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현대의 사민주의 정당들은 집권 이후에 일부 개량조치를 취하기도 했으나 자본주의 위기 앞에서는 제 손으로 노동자에 대한 공세를 취했다. 이른바 제3의 길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전도사가 되기도 했다. 그리스, 스페인 등에서는 이들 개량주의 세력들은 긴축정책으로 노동자 민중을 직접 공격하는 반동 정권이 되었다가 노동자 민중의 격렬한 투쟁으로 권력을 잃기도 했다.

과거 민주노동당은 강령에서 사회주의를 아예 삭제했다. 진보신당은 강령에서 다시 사회주의를 명시한다고 한 바가 있다. 그런데 최근 정의당은 말할 나위도 없고, 구 노동당이나 변혁당과 통합한 노동당이나 사회주의를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지만 사회주의 이행노선이 없다. 쏘련 사회주의와 조선과 같은 현실 사회주의를 전면 부정하면서 ‘민주적 사회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노동당의 행보를 보았듯이, 현실사회주의를 부정하고 이행노선 없이 선언적으로 ‘사회주의’를 언급한다고 해서 사회주의 변혁노선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현실 사회주의의 경험들을 부정하는 것은, 국가권력을 타파하고 제국주의와 사회주의 존립을 걸고 투쟁하고, 당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인민독재)를 통해 반혁명 분자들의 준동을 막고, 사회주의 문화혁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며, 국유화를 통해 중앙집중적 경제를 조직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를 부정하기 때문에 이행노선이 필요 없고, 이행노선 없는 ‘민주적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내에서 국가권력의 문제, 혁명의 문제를 회피하거나 사회주의 건설의 현실적 경험을 도외시하는 (범)무정부주의적 입장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평화이행노선과 이행의 부정은 개량주의 쌍생아에 불과한 것이다. 국가권력은 계급지배의 수단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가계급의 국가이다. 독점자본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에서 국가권력은 국내외 독점자본의 이해를 대변한다. 국가권력은 독점자본의 착취와 억압, 영속적인 지배를 위해 무장한 특수한 폭력집단이다. 자본주의 국가권력,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변혁이 없다면 자본주의에 투항하는 것이고 자본주의에 협조하는 개량주의 노선으로 귀결될 뿐이다.

“모든 것은 국가권력의 문제다.”[6]이와 관련 이미 오래 전인 2013년 5월 24일 한겨레신문에 “상생의 질서가 사회정의다”(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라는 특별기고가 … Continue reading

이 혁명적 원칙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빛나는 맑스-레닌주의의 핵심 사상이다. 이 사상을 부정하는 모든 세력은 어떤 현란한 말과 과장된 행동으로 자신을 변호하고 위장하든가에 상관없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직접적으로, 궁극적으로 배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 물론 반식민지 혹은 식민지 국가의 반(半)봉건 사회에서 곧바로 사회주의로 이행한 것이 아니라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거쳐 사회주의로 이행한 많은 역사적 사례들도 존재한다. 이러한 사례는 이행의 객관적, 물질적 토대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저하게 부합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국가들에서의 이행을 위한 물질적, 객관적 조건, 주체적 조건, 특수성을 무시하고 곧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이행해야 한다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주장이야말로 주관주의와 모험주의, 고립주의에 빠져 이행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식민지, 반식민지 혹은 파시즘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가는 이행의 특수성을 가지고 계급협조니 혁명의 포기니 하면서 매도하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인민전선’ 비판에 대한 반비판은 <노동자의 사상> 제2호(2011년) <유로꼬뮤니즘의 배반과 타락으로부터 노동자계급이 움켜쥘 정치적 결론은 무엇인가?>를 보기 바란다.
2

이 계급투쟁이 가장 격렬하게 전개된 나라가 바로 프랑스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과 반동적 루이 16세의 처단, 혁명세력 내부의 분화, 급진파 자코뱅 독재와 온건파 지롱드파에 의한 테르미도르 반동, 나폴레옹 쿠데타와 부르봉 왕정복고, 7월 혁명과 7월 왕정의 등장, 1848년 부르주아 혁명과 루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3세 쿠데타, 반동 왕정복고파의 재부상과 나폴레옹 3세의 프로이센과의 전쟁, 전쟁의 패배와 프랑스 항복과 루이 보나파르트의 황제 퇴위, 티에르 체제 하에서 프로이센의 프랑스침공, 외세와 결탁한 티에르 체제와 1871년 파리코뮌, 파리코뮌에 대한 유혈 학살… 이처럼 부르주아 지배체제의 완성은 전진과 후퇴, 반동이라는 격변을 거치면서 확립됐다.

부르주아 혁명의 지도권을 발휘한 것은 신흥 계급인 부르주아였지만 이 투쟁에 앞장선 것은 노동자와 소생산자 등 민중이었다. 프랑스 1848년 2월 혁명으로 부르주아가 권력을 잡은 뒤에 혁명에 앞장섰던 노동자계급은 혁명의 과실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탄압당했다. 이로 인해 1848년 6월 노동자계급에 의한 봉기가 일어났다. 부르주아 계급은 노동자계급 수천 명을 학살하는 것으로 악랄하게 보답했다. 1871년 파리코뮌에서 부르주아가 얼마나 악랄하고 파렴치한 계급인지 생생하게 폭로됐다. 17세기 계몽사상으로 무장했던 부르주아나 1789년 프랑스대혁명에서 자코뱅 같은 부르주아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었다.

물론 자코뱅은 그 진보성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부르주아 계급의 소유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계급적 조건 때문에 양면성을 지녔다. 마치 아담 스미스나 리카도 같은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가 확고하게 자리 잡기 이전, 노자간의 계급투쟁이 아직 전면에 떠오르기 이전에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학문적으로 과학을 추구하고 진보적 태도를 유지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부르주아 계급은 노동자계급과 농민, 소상공인 등 민중들에게 반동적인 계급이 되었다. 노동자 계급이 부르주아 계급과 자본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목격한 후발 자본주의 국가 독일의 부르주아 계급은 초장부터 프랑스 부르주아가 가졌던 진보적 성격을 상실하고 봉건세력과 야합하여 노동자계급을 탄압했다.

영국은 프랑스 혁명과 달리 무혈혁명인 명예혁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부르주아 혁명기 영국에서도 왕과 의회와의 전쟁, 농민 반란 같은 계급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왕의 폭정과 의회 부정, 거듭되는 대외 전쟁을 겪으면서 왕과 봉건세력에 대한 반란이 일어났다. 이 내전에서 왕이 패배했다. 민중은 피를 흘리면서 왕을 몰아내는데 앞장섰다. 왕의 처단과 혁명의 방향을 둘러싸고 공화파 내부에서도 커다란 분열이 발생했다. 의회 세력들은 1649년 1월 30일 영국 국왕 찰스1세를 처형했다. 찰스 1세 처형을 접한 지배계급은 극단적 공포에 빠져들었다. 봉건 지배계급이었던 왕당파 반동세력들은 의회내부에서 가장 보수적이었던 왕을 처형한 것을 비난하면서 왕당파 지배를 다시 확립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이것이 바로 당시 크롬웰이 지도자였던 청교도 혁명으로 알려진 공화정 수립 과정이었다.

청교도 혁명은 종교의 외피를 쓴 부르주아 혁명이었다. 크롬웰은 봉건 왕정에는 반대했지만 부르주아 공화파 내부에서 중간적 입장을 취하면서 부르주아와 신흥귀족의 이해를 적극 대변하고, 혁명에 앞장선 농민과 소생산자 같은 민중을 탄압하기조차 했다. 혁명에 앞장섰던 민중은 새로운 지배계급에 의해 배반을 당하고 크롬웰 지배에 환멸을 느끼게 있다. 민중이 새로운 부르주아 권력을 더 지지하지 않는 틈을 타서 복고 왕정 세력들이 부활을 노렸다.

크롬웰 사망 이후 다시 공화파 내부의 보수파와 왕당파가 손잡고 반동 복고 왕정(찰스 2세)을 확립했다. 반동복고 왕정은 이제는 크롬웰을 부관참시하고 찰스 1세를 처단하는 데 앞장선 공화파를 처형했다. 복고 왕정과 공화파와의 투쟁은 계속되었다. 찰스 2세 사망 이후에도 계속된 공화파와 왕당파의 투쟁은 제임스 2세의 프랑스 망명 이후에 윌리엄 3세가 결국 왕의 실질적인 권한을 제한하고 권리선언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것이 바로 명예혁명이라고 알려진 형식적 입헌군주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공화정의 확립이다.

이처럼 영국 역시 부르주아 지배체제로의 확고한 이행은 다사다난한 곡절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현대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들의 선조가 권력을 장악할 당시에 자본주의 모국인 영국에서 진행된 이행 과정의 격렬함을 은폐하고자 무혈혁명인 ‘명예혁명’이라고 이름 붙였다. 부르주아는 단지 추상적 가치인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역사왜곡을 했던 것이 아니다.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들이 봉건세력에게 겨눴던 칼끝이 노동자계급의 반란에 직면해서 다시 부르주아 계급지배 체제를 겨눌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랬다.

이러한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의 역사는 두 가지 교훈을 가져다준다.

첫째, 부르주아로부터 노동자계급이 철저하게 계급적 자주성과 독자성을 견지해야한다는 것이다. 맑스는 심지어 반봉건 부르주아 혁명과정에서 부르주아가 부분적으로 진보적인 계급이었을 때에도 부르주아가 권력을 잡게 되면 노동자계급을 억압하고 탄압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독자성을 명확하게 견지해서 부르주아와 투쟁하면서 노동자계급의 해방투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물며 악랄하고 반동적인 독점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계급의 자주성과 독자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일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정치적 생명과도 같은 노동자계급의 독자성과 자주성이 지속적으로 훼손당하고 있다. 현장에서 관료들에 의한 노사협조주의가 바로 그것이고, 정치영역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같은 부르주아 정당과 연합과 타협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와 정면 대결하지 않고 의회를 통해 자본주의를 개혁해보겠다는 ‘진보정당’의 의회주의 노선이야말로 자본주의 체제에 굴복, 야합하여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자주적 정치세력화를 훼손하는 폭거와 다르지 않다. 현장 내에서 계급타협 세력들과 의회주의 정치세력은 서로 다른 둘이 아니라 인적관계, 자금줄, 지지기반, 이념 등을 공유하는 하나의 세력이다.

둘째, 프랑스 혁명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나타났고 모든 역사발전 과정이 그렇듯이 부르주아가 지배체제를 확립하는 것은 일직선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었다. 부르주아 체제도 전진과 심각한 후퇴와 반동, 재전진을 통해 우연적, 필연적 사건들이 교차하고 수많은 곡절을 거치면서 확립됐다. 이러한 역사발전 법칙에서 볼 때, 러시아 혁명과 쏘련에서의 성공적인 사회주의 건설과 수정주의 발흥과 해체는 노동자계급의 거대한 전진인 동시에 심각한 후퇴이다. 그럼에도 부르주아에 의한 반동체제로의 복귀는 일시적인 역사 반동에 불과하다. 역사는 후퇴와 전진, 반동과 재전진을 거치면서 진보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그러했고 앞으로의 역사도 그럴 것이다. 문제는 역사로부터 어떠한 교훈을 이끌어낼 것인가에 있다. 이 점에서 과거 쏘련 사회주의나 현실 사회주의 경험을 단순화하거나 심지어 부르주아의 영향을 받아 심각하게 왜곡하거나 (국가)자본주의니 타도해야 하는 반동체제로 보는 신좌파 개량주의자들과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역사왜곡과 좌우익 청산주의에 대한 대대적인 이데올로기 투쟁이 절실한 것이다.

3

로자의 오류는 주로 레닌에 의해 비판됐는데 첫째, <유니우스 팜플렛> 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로자는 민족자결권 주장을 국제주의와 대립시킴으로써 식민지, 반식민지에서의 민족해방투쟁의 의의를 약화시켰다. 둘째, 조직 문제에서 레닌의 전위정당 사상에 대해 부정적이었고 대중의 자생성에 지나친 의의를 부여했다. 로자는 말년에 독일 공산당을 창설했으나 독일 혁명이 실패하고 사민당 일당에게 참살 당했다.

로자가 말년에 자신의 오류와 한계를 극복하고 투쟁하다가 타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대의 기회주의자들은 로자의 혁명정신과 실천은 부정하고 대신에 이 약점을 집중적으로 부각하여 받아들였다. 로자룩셈부르크주의자들은 로자 이론의 한계를 반공주의 신좌파 이론으로까지 극단적으로 부각시켰다. 평의회주의자들은 레닌주의 사상과 로자의 자생성 이론을 극단적으로 부추겨서 평의회를 주장하면서 레닌의 전위당 노선을 부정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레닌의 중앙집중제와 철의 규율이라는 당사상을 부정하면서 로자를 내세워 자유주의 사상을 부각시키고 쏘련을 레닌주의가 현실화된 ‘공포의 독재국가’로 묘사하면서 반공주의 사상에 경도되기도 한다. 야마구치 마사유키는 그것을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 그녀는 프롤레타리아트속에 부르조아지의 영향을 전달하기 위한 기회주의적 ‘조직’과, 프롤레타리아트를 부르조아지에 대한 투쟁으로 이끄는 혁명적 ‘조직’간의 일체의 구별을 없애버리는 길을 열었다. 여기에 이 위대한 공산주의자 ‘레닌의 이론이 ‘조직’으로부터의 ‘개인’의 자유, 또는 ‘스탈린이스트당’의 ‘관료주의’ 지배에 대한 타도를 요구하는 현대의 ‘신좌익’ 반공주의의 방패막이에 이용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녀 자신은 죽기 2주전에 독일 공산당의 창립에 지도적인 역할을 완수함으로써 완전하게 스스로의 잘못을 극복했음에도 불구하고.”(같은 책, 288쪽)

세 번째, 로자는 이론적으로는 ‘자본축적론’에서 맑스 자본론의 재생산 표식론에 대한 비판에서 오류를 범했다. 야무구치 마사유키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자본주의는 ‘비자본주의적인 환경’, 즉 국내에서의 독립소생산이나 반농노제적 농업, 그리고 국외에서의 ‘저개발국’ 등을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윽고 이 ‘비자본주의적인 환경’이라는 먹이를 다 먹어버리고 말 때가 온다. 즉 세계 전체가 자본가와 노동자의 두 계급으로 분리되어 버릴 때가 온다. 그 때에 세계는 순수한 자본주의 사회로 전화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로자는 말한다. ‘순수한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축적이 불가능하며 따라서 그것은 존재할 수가 없다. ‘비자본주의적 환경’이 ‘붕괴’ 되었을 때 자본주의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본주의는 또한 영원히 유산되는 것이다. … 이 로자의 변증법적 모순’은 우습기 짝이 없는 것이다. 변증법은 내적모순의 운동법칙이다. 로자는 자본주의를 그 내적 모순의 전개로 포착하려 하지 않고 ‘비자본주의적인 환경’ 요컨대, ‘제3자와의 외적 대립으로서만 포착하려 하고 있다. … 로자의 이론에서는 자본주의의 ‘객관적 역사적 한계’는 그 내적 모순의 전개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자본주의적인 환경’이라는 외부의 ‘제3자의 소멸속에서 구해진다. 그러므로 이 불순한 현실은 내적모순 즉, 계급투쟁의 전개를 거치지 않고 ‘외부’의 소멸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붕괴되는 것이다.(같은 책, 296-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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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이 제국주의론에서 독점이 부패와 정체를 낳고 기술진보를 고의적으로 늦출 수 있는 일시적인 ‘경제적 가능성’에 대해 말했는데, 이것은 말 그대로 일시적인 경제적 가능성이고, 독점자본주의의 한 측면과 경향을 말한 것이다. 특허권, 로얄티같은 소유권은 부르주아 체제가 사회적 생산력 발전을 가로막고 기술발전을 독점하는 한 요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레닌이 말한 것처럼, 독점자본주의 하에서도 독점적 차원에서 경쟁이 존재하기 때문에 부르주아는 특별잉여가치를 획득하기 위해 신기계와 신기술을 끊임없이 개발, 도입하면서 생산력을 발전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신기계와 신기술 도입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내에서는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조건의 개선이 아니라 심각한 정리해고와 고용 없는 성장 같은 실업문제, 비정규직화 같은 노동유연화를 낳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반동적인 체제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생산력 발전으로 인해 생산물은 쏟아져 나오는데 노동자 민중들의 삶은 상대적, 절대적으로 궁핍해지고 있기 때문에 과잉생산된 생산물에 대한 소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케인즈주의자들이나 소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임금과 복지가 늘어나서 수요를 진작시킨다고 해서 과잉생산 공황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생산력 발전은 기하급수적인데 비해 소비는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더욱 현실은 과잉생산 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자본과 자본가 국가가 자본에게는 부양책을, 노동자 민중에게는 심각한 긴축정책을 쓰기 때문에 소비는 공황시기에는 더욱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생산력의 일방적 후퇴와 정체가 자본주의 위기를 낳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의 고도의 발전과 생산관계와의 어긋남(부조응) 때문에 근본적인 위기의 가능성이 생기고 이것이 공황으로 현실화되고, 공황은 또한 날카로운 계급적대와 계급투쟁을 낳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국제적 차원에서는 독점자본 간 원료자원과 수송망, 상품시장, 영토를 둘러싼 투쟁을 격화시키고 독점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가들간의 대립과 경쟁, 패권다툼을 심화시키면서 제국주의 전쟁으로까지 격화된다. 노동자계급이 주도하여 제민중이 자본주의 위기인 공황과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 새로운 사회로 이행하는 투쟁이 없다면 자본은 노동자 민중을 제물로 바쳐서 위기에서 탈출구를 찾게 된다. 특정 독점자본은 공황을 거치면서 독점을 강화하여 지배력을 더 공고히 다지기도 한다. 붕괴 이후에 이행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행이 붕괴를 낳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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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실 사회주의의 역사를 보면 자본주의의 붕괴 이후에도 제국주의와 결탁한 반동 세력들이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복원시키기 위한 반동적 공세를 지속적으로 전개한다. 이는 비단 혁명 이후에 반동세력과 제국주의에 의한 내전과 제국주의 침공만을 염두에 둔 것만은 아니다. 러시아혁명의 경험을 볼 때, 내전과 제국주의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도 내부의 수정주의에 의해 끊임없이 사회주의를 전복시키기 위한 흐름이 존재했다. 제국주의는 군사적, 경제적 압박과 포위로 내부적 도순을 더 심화시켰다. 쏘련 사회주의를 전복시킨 내부 수정주의의 외적 기반은 제국주의의 포위와 직접적인 지원이었고, 내적 기반은 사회주의가 되었다 하더라도 단박에 사라지지 않는 소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로운 거래와 상품유통이었다. 수정주의자들은 상품-화폐 관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면서 사회주의 집단적 생산을 수십 년에 걸쳐 잠식해 왔다. 당 내부에서도 관료들이 더욱 더 당을 장악해 들어갔다. 이것의 경제적, 정치적 표현이 1980년대 중반 고르바초프 등장 이후부터 나타난 글라스노스트, 페레스트로이카 같은 극단적 수정주의였다. 그 기반 위에서 당과 산업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던 옐친에 의해 최종적으로 쏘련사회주의가 전복되었다.

동유럽과 쏘련 사회주의 해체 원인을 살펴보았을 때, 그리고 그러한 공산주의 진영의 해체와 제국주의의 고립말살책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발전시키고 있는 조선의 경험을 볼 때, 사회주의 생산의 조직화에 있어서 물질적 자극을 배제할 수 없지만, 사상적 자극과 고양을 통해 생산의 혁명적 주체를 부단히 강화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주의 건설 경험을 교훈으로 살펴보면서 조선의 경험을 도외시하고 심지어 이를 전면 부정하는 한국사회 진보진영의 태도는 국가보안법의 압력 때문에 형성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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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이미 오래 전인 2013년 5월 24일 한겨레신문에 “상생의 질서가 사회정의다”(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라는 특별기고가 실렸다. 여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

“인간은 무질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정치사회를 구성하게 되었다고 홉스는 말했는데 현대문맥(문명)에서 뼈아프게 성찰한 것은 홉스의 정치사회 기원론 그 자체가 아니라 그의 주장이 제기하는 역설적 질문이다. 늑대처럼 살아야 하는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정치사회를 조직했는데 그 결과가 ‘늑대사회’라면 애당초 정치사회는 왜 구성하고 국가는 왜 만들고 공동체는 왜 일구었는가? 민주주의의 용도는 무엇인가? 민주주의 정치질서가 사회의 밀림화를 막아내고 무질서의 공포를 다스리게 되었는가? …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확장함과 동시에 정치권력의 독단을 제어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질서다. 그러나 제어되어야 하는 것이 정치권력만이 아니다. 경제권력도 사회적으로 통제되고 제어되어야 한다. 경제권력의 횡포를 막아낼 유효한 사회적 통제 수단이 없을 때 사회는 밀림이 되고 국민 모두가 생존의 위협 앞에 덜덜 떨어야 하는 공포사회가 된다. 지금 한국인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그런 공포사회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나는 통제경제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권력의 폭력화’를 제어할 사회적 통제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경제활동의 자유와 경제권력의 폭력화는 완전히 별개 문제다.”

이 저자는 사회적 통제를 시민의 저항권으로 실현하는데 그 핵심수단은 경제민주화라고 주장한다. 경제민주화가 경제권력을 통제하는 핵심 수단이며 상생의 질서를 만들고 사회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핵심 방책이라는 것이다. 소부르주아 지식인이 사물을 인식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비단 몇몇 지식인뿐만 아니라 개량주의 정당은 물론이고 노동운동 내부까지 이런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때에는 당시 민주통합당과 심지어 박근혜 정권까지 ‘갑과 을의 횡포’ 운운하며 경제민주화를 부르짖고 있을 정도였다.

여기서 저자는 경제활동의 자유와 경제권력의 폭력화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 하고 있다. 이 말은 경제활동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소유 생산체제이기 때문에 경제권력이 폭력화되는 것이다. 이 체제는 부르주아의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권 보장으로부터 경제활동의 자유가 보장된다. 자본주의 사적소유 체제는 경제권력이 자유롭게 자본축적을 하도록 보장한다. 이것은 파견법과 정리해고법처럼 자본의 자유롭고 안정적인 활동을 보장하는 법률 제정으로, 자본활동에 저항하는 노동자 투쟁을 분쇄하기 위해 손배가압류 등 각종 민사, 형사상의 노동자 탄압법으로, 노동자의 집회와 결사의 권리를 억압하는 악법으로, 사적소유 사상과 체제를 보호하는 국가보안법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국가기구는 경찰, 검찰, 공안기구, 법원, 감옥, 군대 등 각종 국가의 폭력기구를 동원하는 물리적 힘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교육제도와 매스 미디어는 부르주아 사상을 유포하고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이밖에 국가는 교육을 통한 노동력 공급 정책으로 위기에 빠진 자본에게 규제완화, 공황구제, 재정적, 금융적 지원으로 자본활동의 안정성과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성을 사수해 낸다.

국가는 자본을 위한 폭력적인 집행기구다. 국가는 폭력적 계급지배 수단으로 자본을 위해 노동자 민중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특수하고 고도로 조직화된 집행기구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러한 공적 폭력뿐만 아니라 용역깡패 같은 사적폭력 집단도 자유롭게 활용한다. 사적폭력 집단은 국가를 대신해서 폭력을 사주하고 앞장서기도 한다. 국가가 직접 전면에 나서 폭력을 저지르면 국가에 대한 전면적 저항으로 자본주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는 폭력기구지만 항상 폭력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는 자본주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여 자본의 지배를 영속화하기 위한 수단도 활용한다. 국가는 겉으로는 중립적인 권력으로 자처한다. 이를 통해 국가는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원래 선한 목적을 위해 탄생했다는 환상을 유포하는 것이다.

현대 부르주아 국가는 독점자본의 국가다. 물론 국가는 전체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지만 독점자본의 이해에 일치하는 한에서 전체 자본을 대변한다. 중소 자본과 독점자본의 이해가 일치하지 않는다면 국가는 독점자본의 이해를 우선적으로 대변한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초과이익공유제처럼 중소자본의 이해에도 충실한 것처럼 행세한다. 경제민주화도 그렇다. 그러나 독점금지법이 독점자본의 독점 강화와 사회 전체에 대한 지배를 전혀 막지 못했듯이 초과이익공유제가 노동자를 초과착취해서 일부는 중소자본에게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독점자본의 이윤독점을 전혀 막지 못한다. 단지 막는 시늉을 국가가 보여줄 수 있을 따름이다. 마찬가지로 경제민주화는 독점자본의 독점화와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 지배를 전혀 막지 못한다. 마치 국가가 나서서 경제민주화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요란을 떠는 것이다.

국가뿐만 아니라 오늘날 요란스럽게 너나없이 나서서 경제민주화를 외치지만 그 소란에도 불구하고 경제민주화는 자본독점을 막지 못한다. 그 폐해도 통제하지 못한다. 경제민주화는 오히려 독점자본에 대한 사회적 분노를 가로막고 독점자본주의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복무할 따름이다. 설사 주관적 의지는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결국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변혁시켜서 노동자 계급이 중심이 되어 사회 전체를 합리적으로 통제하고 생산을 관리하지 않는 한 독점자본의 사회지배라는 현실과 노동자 민중 전체의 참상과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그럼에도 ‘통제경제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질적 문제를 회피한다. 이처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계획경제를 창의성과 대중참여를 말살시키는 지령경제, 명령경제라고 왜곡한다.

“모든 것이 국가권력의 문제”라는 것은 자본주의 생산관계와 독점자본의 체제를 폭력으로 유지하고 있는 자본주의 국가권력과 투쟁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모순을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다. 결국 이처럼 국가권력의 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이행을 거부하는 것이고 자본주의에 협조하고 투항하는 개량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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