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노동자계급운동과 아나키즘

안상헌 |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1]이 글은 <노동전선>의 ‘2019년 9월 월례정책토론회(민주노총 13층 회의실, 2019. 9. 28.)에서 발제한 발표 요약문을 약간 수정‧보완한 것이다. 따라서 … Continue reading

들어가며

1. 아나키즘은 노동자계급운동의 태동기부터 노동자계급운동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해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많은 문제와 갈등을 야기해 왔다. 슈티르너, 프루동, 바쿠닌, 크로포트킨 등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아나키즘’은, 자본주의 체제의 구체적인 현실적 모순에서 출발해 자본가계급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와 억압의 문제를 실천적으로 해결하려는 변혁운동 안에서 결코 화해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론적, 실천적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변혁운동 내부에서 ‘종파주의’적 분열과 대립을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2. ‘현실로부터의 출발’이라는 마르크스의 ‘실천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보면, 아나키즘의 출발점은 ‘현실로부터의 출발’이 아니라, 청년헤겔학도들과 마찬가지로 ‘관념적, 이상적, 추상적 원리로부터 출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관념적 이상주의, 즉 도덕적 이상사회의 건설은 당대의 현실적 조건에서는 도출될 수 없는 ‘추상적, 관념적 공동체’이다. 마르크스에 있어 “공산주의란 만들어져야 할 어떤 상태나, 현실이 따라가야 할 어떤 이상이 아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상태를 지양하는 현실적인 운동을 공산주의라 부른다. 이 운동의 조건들은 현존하는 전제들로부터 나온다.”(독일 이데올로기). 마르크스는 이런 관점에서 당시에 ‘독단적 기치’를 내세우며 ‘진리가 여기에 있으니 여기에 무릎을 꿇어라’라는 식으로 공산주의를 주창하는 꺄베, 데자미, 바이틀링 같은 현존하는 ‘공산주의자들’에게 가차 없는 비판을 가했다.(루게에게 보낸 편지)

전통적 아나키즘

3. 전통적 아나키즘의 일관된 테제는,‘수직적 위계질서와 권위주의를 본질로 하는 국가의 폐지’와, 그 대안으로서‘자유로운 개인들의 자발적 의지에 근거한 수평적, 자율적 공동체, 즉 아래로부터의 자율적 공동체’의 건설을 주창했다는 것이다.

4. 전통적 아나키즘은 노동자계급의‘정치권력 장악’과‘프롤레타리아계급의 독재’를 극구 거부했다. 이들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와 억압 도구인 자본주의 국가 형태의 변혁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새로운 형태의 과도기적인 국가 형태, 즉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을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정치혁명’과 구별하기 위해 ‘사회혁명’이라는 용어를 선호했다. ‘국가의 폐지’를 주장하는 아나키즘의 입장에서 보면, ‘국가 사회주의’ 체제인 소비에트 국가와 정부에서의 ‘민주 집중제’(레닌), ‘당내 민주주의’(트로츠키)와 같은 주장은 처음부터 언어도단으로 여겨졌다. 아나키즘의 일관된 입장은 한 마디로 말하면 ‘국가 없는 사회주의 공동체’의 건설이었다.

5. 아나키즘의 ‘국가 없는 자율적 사회 공동체’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역사적 과정의 과감한 생략 혹은 철저한 무시’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의 ‘실천적 유물론’과 ‘유물론적 역사 이해’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미래’는 ‘현재 안에서, 현실의 모순을 실천적으로 극복하는 부단한 현실운동의 지난한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만 실현 가능하다. 즉 역사적 미래는 현재의 자궁 안에서 잉태되어 태어난다. 역사에 대한 변증법적 이해의 요체는 역사적 현실은 모두 ‘부정의 부정’, ‘양적 변화를 통한 질적 전화’라는 ‘지양’ 과정의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국가

6. 마르크스의 관점에 비추어 보자면, ‘하룻밤 사이에 국가를 폐지할 수 있다’거나, ‘기존 국가 체제가 폐지되면 — 다른 형태의 ‘국가’가 아니라 — 곧바로 ‘국가 없는 자율적 공동체 사회’로 대체될 수 있다’는 아나키즘의 주장은 ’현실적 전제‘를 무시한 비현실적인 몽상일 수밖에 없다. 급진적 혁명을 통해 기존의 국가 체제를 일거에 제거할 수 있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자율적 공동체가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역사적 투쟁 과정을 거쳐 ‘자율적 공동체 건설’의 현실적 전제조건인 물질적, 의식적, 도덕적, 문화적 토대가 구축되어야만 비로소 ‘국가’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자율적 공동체’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기본 입장이다. 이는 아나키즘의 ‘국가의 폐지’와는 구별되는 ‘국가의 소멸’이다.

7. 아나키즘은 기존 국가 체제의 폐지 이후에 ‘왜 굳이 위계적이고, 억압적이고, 다수에 대한 소수의 지배 도구일 수밖에 없는 국가 체제가 꼭 필요한가?’ 라는 안티테제를 제시했다. 이는 전적으로 ‘모든 국가는 곧 악’이라는 ‘국가’에 대한 아나키즘의 근원적인 불신에 따른 것이다. 즉 “인류 역사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국가’ 체제가 피지배계급에게 억압적이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지금까지의 모든 ‘국가’가 그랬다 하더라도,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피지배계급이 국가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현실적 단초가 마련되었으며, 이를 통해 ‘억압적 기구인 국가’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공동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대응했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

8. 어쨌든 불행하게도, 러시아 혁명 이후 70여 년간 존속해 온 소비에트 사회주의 국가는‘국가 없는 자율적 공동체 사회’,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 즉 ‘자유의 왕국’으로 발전하기는커녕, 아나키즘이 그토록 우려했던 ‘국가’ 체제의 부정적 측면이 점차 노골화되었으며, 현실 사회주의 체제는 사실상 몰락해 버렸다. 소비에트공화국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공산당 일당 독재’로, 나아가 ‘노멘클라투라(특권 계급)가 주도하는 관료주의 체제’로 변질되어 갔으며, 기층 민중을 착취하는 ‘국가자본주의’에 지나지 않았다는 ‘오명’까지 쓰게 되었다.

9. 소비에트공화국의 성격에 대한 역사 유물론적 분석과 비판은 차치하더라도,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은, 오랫동안 노동자계급운동의 주축이었던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 변혁운동에서 완전히 밀려나 있던 아나키즘이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실패의‘역사적 경험’을 앞세워 다시 역사의 전면에 화려하게 부활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화 자본주의 체제

10.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몰락하면서 ‘외부의 적’이 사라지자, 자본주의 진영은 ‘자본주의 체제의 완전 승리’와 ‘역사의 종말’을 선언하면서 범지구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현실 사회주의 진영과 대치하고 있을 때는 체제 방어를 위해 ‘사회적 복지’, ‘중산층 확대’, ‘자유’, ‘민주주의’, ‘보편적 인권’ 개념 등으로 계급적 모순을 은폐해 왔지만, 외부의 적이 사라지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자본주의 정책을 통해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전 세계의 주변부 국가와 기층 민중들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자본주의 정책의 핵심은 1) 상품과 서비스의 자유무역, 2) 자본 유통의 자유, 3) 투자의 자유 4) 개인, 기업, 자본의 무한경쟁, 5) 국가 개입의 최소화로 요약된다.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 정책은 자본주의 체제의 생명인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유일무이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세계화 자본주의’ 체제의 구축을 위해 WTO, IMF, WB, WEF, OECD, G7-G20과 같은 세계화 자본주의 통치기구가 만들어졌고, 이러한 기구를 통해 강압적으로 FTA를 강제함으로써 명실상부한 하나의 단일한 자본주의 시장, 즉 마르크스가 예견했던 ‘세계 시장’이 구축되었다.

11. 자본주의 체제는 ‘달리는 자전거’와 같아서 M-C-M’ 혹은 M-M’의 확대재생산을 멈추면 쓰러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이자 근본모순이다. 지금까지의 자본주의 역사가 말해 주듯이, 자본주의 체제는 확대재생산의 구조적 위기(1870s, 1930s, 1970s)에 봉착할 때마다 제국주의적 침탈, 전쟁, 신자유주의적 시장개방과 확장과 같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위기를 모면해 왔다. 특히 자본은 과잉 축적된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위해 ‘비시장적 가치’ 영역으로 남아있던 교육, 의료, 주택, 복지 영역을 상품화하여 대거 시장에 편입시켰으며, 금융 상품을 개발하여 금융 시장을 대폭 확대했다.

12. 세계화 자본주의 체제는 등장과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기층 민중들의 삶에 엄청난 재앙을 초래했으며, 그 결과 범지구적인 반-세계화 투쟁이 본격화되었다. 1994년 NAFTA 체결과 농산물시장 개방 반대운동, 1999년 WTO각료회의 저지를 위한 시애틀 시위(11.30), 2001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열린 WSF(세계사회포럼, 1.25-30), 2001년 9.11테러를 빙자한 2001년 아프칸 전쟁(10.7) 반대, 2003년 이라크 전쟁(3.21) 반대 운동을 거치며 반-세계화 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현대의 아나키즘

13. 아나키즘이 반-세계화운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하나의 계기는 글로벌 기업들이 후원하는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포럼)에 대응하여 매 해 열리는 WSF인 것으로 보인다. 이 포럼은 한 때 전 세계 120여 국가에서 12,000여 각종 시민사회단체, 15만 명 이상이 모여 600여개의 강연회와 수십 개의 토론회가 열린 적이 있는 세계 최대의 반세계화 모임이었다. 반전 운동과 WSF는 빨-주-노-초-파-남-보-흑-백 등의 다양한 색깔이 상징하듯 다양한 단체와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차이와 연대’라는 기치 아래 수평적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다원주의적 ‘운동들의 운동’을 표방함으로써, 수직적 위계질서와 권위주의를 혐오하는 아나키즘과 잘 어울렸으며, 반-세계화를 넘어서 새로운 ‘대안 사회’를 모색한다는 점에서도 아나키즘의 ‘아래로부터의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이념과 잘 맞아 떨어졌다. 이에 힘입어 아나키즘 운동은 전통적 아나키즘을 벗어나 ‘새로운 아나키즘’, ‘궁핍 이후의 아나키즘’, ‘포스트-아나키즘’, ‘신세대 아나키즘’ 등으로 변주를 거듭하고 있다. 아나키즘의 이러한 변주는 20세기와 21세기의 각종 ‘포스트-주의’ 철학 담론과 밀접하게 얽혀 공존하고 있다.

세계화 자본주의 시대의 철학담론

14. 20세기 후반과 21세기의 지배적인 철학담론인 각종 포스트-주의 —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포스트-민주주의, 포스트-휴머니티, 포스트-진실 등 –, 다문화주의, 타자와 차이의 철학(레비나스, 데리다), 생명-권력와 생명-정치(푸코, 아감벤), 욕망과 주체(라강, 지젝), ‘유목Nomad’(들뢰즈), ‘제국’과 ‘다중multitude’(네그리), 그리고 ‘니체, 스피노자, 아나키즘, 유토피아, 레닌’의 르네상스의 등장 등은 모두 20세기 후반의 세계화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전개과정의 변화들이 다양하게 반영된 철학적 편린들이다.

15. 예컨대, 포스트-모더니즘은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문화논리’[2]Fredric Jameson,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Duke UP, 1991.이며, ‘다문화주의’는 ‘다국적 세계화 자본주의 시대의 문화논리’[3]Slavoj Žižek, ‘Multiculturalism, Or, the Cultural Logic of Multinational Capitalism’, New Left Review 225 (Sept.-Oct. 1997)이다. 그리고 포스트-마르크스주의는 경제적 궁핍이 상대적으로 완화된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좌파 정치이데올로기[4]Ernesto Laclau and Chantal Mouffe, 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 Verso, 1985.이며, 포스트-민주주의[5]Colin Crouch, Post-democracy, Polity, 2004.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세계화와 함께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선거민주주의 제도가, 금권, 미디어, 이미지, 여론, 정치공학, 가짜뉴스 등으로 말미암아 ‘엘리트주의’와 ‘포퓰리즘’이 지배하는 ‘포스트-진리’의 정치현실을 반영한다. 그리고 포스트-휴머니티, 생명-권력, 생명-정치 등은 정보공학, 생명공학, 유전공학 등을 통해 인간의 의식은 물론 신체에 대한 정밀한 통제가 가능한 새로운 현실을 반영한다.

16. 21세기 철학담론의 최대 화두는 ‘욕망desire’이다. 자연존재인 인간의 ‘기본욕구needs’의 유한성과는 달리, ‘욕망’의 무한성 테제는 자본의 확대재생산과 잉여자본의 무한축적과 ‘탐욕greed’을 정당화하는 대표적인 세계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이다. 여기에는 자본주의체제가 만들어낸 무한욕망(소유 욕망, 소비 욕망, 성 욕망)의 환상을 쫓는 ‘욕망의 노예’(현대인)들의 절망적이고 비극적 삶이 투영되어 있다. 또한 ‘타자’와 ‘차이’의 철학은 ‘타자’라는 거울 또는 ‘상징’ 그리고 ‘판타지’를 통해 끊임없이 다른 존재로 생성, 변용되어가는 자기분열적인 ‘주체의 죽음’(호명, 오인, 이데올로기)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들뢰즈의 ‘유목nomad’ 담론과 이를 사회변혁이론에 접목한 네그리의 ‘다중(지성)’ 담론은 세계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살아가는, 뿌리가 거덜난 유랑민들의 단면적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17. 정치경제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최근의 이러한 철학담론들은 그것이 자라난 토양인 세계화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적 성찰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다양한 변용태들을 수동적으로 반영하는 문화이데올로기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이러한 철학담론들은 ‘물질적 생산과 재생산’에 현실적 토대를 두고 있으면서도 ‘비물질적 생산과 재생산’에 의존해 자기-재생산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세계화 자본주의의 역사적 과정에 전적으로 의거하고 있다. 즉, 한 편으로는 물질적 생산과 재생산에 의존해 살아가는 ‘자연적 (노동) 존재’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점차 비물질적 생산과 재생산에 의존해 살아가는 ‘비물질적 (노동 혹은 문화) 존재로 전화해 가는 자본주의적 생존방식 및 생활양식[6]산업노동에서 지식노동, 서비스노동, 문화노동으로의 전화로 인한 삶의 방식의 변화도 이에 포함된다.이 이러한 담론 형성에 깊이 투영되어 있다.

18. 21세기 철학담론의 특징은 비실재론적이고, 비실증적이며, 비물질적인 경향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21세기 철학담론은 20세기 현대철학의 ‘언어적 전회the linguistic turn’와 ‘문화적 전회the cultural turn’의 연장선상에 놓여있으며, 21세기에 들어서는 ‘사변적 전회the speculative turn’, ‘존재론적 전회the ontological turn’의 경향성을 띠면서 ‘철학적 사유의 관념화’를 주도하고 있다.

19. 21세기 철학담론은 물질적인 산업자본주의로부터 비물질적인 문화, 지식, 금융 자본주의로의 역사적 변화와 조응한다. 20세기 초반의 서구마르크스주의의 패배와 ‘계몽의 변증법’의 등장 이래로 (적어도 서구자본주의사회에서는) 점차 현실변혁에 대한 실천이론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자본주의체제 안에서의 ‘(좌절된) 욕망과 해방’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이 전면에 부상했다. 이와 함께 21세기 철학은 역사적 미래에 대한 거시적인 실천적 전망prospective보다는, 담론에 대한 고고학적, 계보학적, 미시적, 회고적 탐색retrospective에 역점을 두고 있다. 철학이론이 ‘해체’되고 ‘거세’되는 역사적 과정은 물질적 생산과 재생산 메커니즘이 비물질적 생산과 재생산, 더 나아가 비생산적 생산과 재생산 메커니즘으로 옮아가는 20세기 자본주의의 역사적 전개과정과 대체로 상응한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히 서구마르크스주의의 ‘패배의 변증법’[7]Russell Jacoby, Dialectic of Defeat: Contours of Western Marxism, Cambridge, 1981; Perry Anderson, Considerations on Western Marxism, Verso, 1976.이 아니라, 20세기 자본주의의 실질적인 변화에 대한 증언들이자 반영물이다.

20. 21세기에 들어 비물질적, 비생산적 생산과 재생산의 본질적 한계와 모순에 직면한 세계화 자본주의 체제는 또 다시 구체적 현실에서 출발하는 이론과 실천을 요청하고 있다. 최근에 등장한 대부분의 거시적인 철학담론들은 현존 자본주의체제와는 질적으로 다른 대안사회로의 ‘혁명’(네그리, 지젝)을 꿈꾸고, ‘현실적 유토피아’의 도래[8]Chris Spannos (ed,) Real Utopia: Participatory Society for the 21st Century, AK Press, 2008; Erik Olin Wright, Envisioning Real Utopias, Verso, 2009.를 기다리며, 현재와는 완전히 단절된 ‘도래할 민주주의’(데리다)[9]데리다는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Messiah without Messianism)’와 비유해 설명하고 있다, (Jacques Derrida, Spectre de Marx: l’état de la dette, le travail du deuil et … Continue reading)를 갈망한다는 점에서 모두 ‘근본주의(radicalism)’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한결같이 ‘절망’ 속에서 ‘희망’이 싹트기를 기다린다. 이는 세계화 자본주의와 대의제 민주주의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는 ‘위기의식’과 ‘절박성’ 그리고 ‘절망감’을 드러내는 ‘최후의 인간(Der Letzte Mensch)’들의 처절한 몸짓들이다. 이처럼 최근의 철학담론에서는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를 발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21. 21세기의 새로운 현실적 철학담론은 20세기 후반의 미시담론을 지양하지 않고서는 성립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 ‘19세기 거시담론과 20세기 미시담론의 변증법적 지양’을 요청한다. 현실변증법은 ‘세계화 자본주의’라는 ‘구체적인 현실로부터 출발’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철학은 구체적인 현실의 토양을 떠나서는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 아나키즘의 한계

22. 이러한 21세기 철학 담론과 뒤얽혀 있는 ‘새로운 아나키즘’의 변혁운동 방식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미국 금융자본의 보너스 잔치에 항거한 99%의 월스트리트 점거운동(Occupy Wall Street), 최근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프랑스의 노랑 조끼(gilets jaunes) 운동, 홍콩의 ‘범죄인 인도법’ 반대 운동뿐만 아니라, 한국의 다양한 문제 해결을 위한 ‘촛불 시위’에서도 발견된다. 이러한 운동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한 것은 물론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한 SNS 활동이다. SNS의 활용은 한 편으로는 수평적 네트워크를 통한 다중들의 ‘차이와 연대’ 활동을 원활하게 만들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페이크(가짜) 뉴스’를 양산함으로써 다중 활동을 왜곡하고 악용하는 이른바 ‘포스트-진실’ 시대를 초래했다. 더구나 최근에는 SNS를 통한 ‘개인방송’ 시대가 열리면서 다중 운동의 개인주의적 ‘파편화’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또한 SNS를 통한 개인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주로 의지하는 ‘지도부도, 조직도 없는’ 다원주의적 아나키즘 운동방식은, 앞에서 열거한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이, 지속성의 측면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21세기의 ‘포스트-아나키즘’, ‘신세대 아나키즘’ 운동방식은 ‘구체적인 현실과 현장’에서 출발해야 하는 노동자계급운동과는 거리가 멀다.

노동자계급운동

23. 노동자계급운동은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당면 과제들의 단발적 해결을 위한 다중적 ‘연대 투쟁’과는 달리, 자본주의 체제가 존속하는 한 지속될 수밖에 없는 장기적인 역사적 계급투쟁이기 때문에 아무런 조직도, 전망도 없이 변혁운동을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구체적인 현실은 자본주의 체제의 1) 과잉 생산, 2) 과잉소비, 3) 과잉축적으로부터 비롯된 근본적인 문제들이 중첩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정치경제학적인 비판적 분석 없이 노동자계급운동을 견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4. 뿐만 아니라, ‘현실 사회주의 체제’의 성립과 몰락의 역사적 과정에서 안팎에서 제기된 내재적인 모순과 몰락의 원인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분석과 성찰도 불가피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나키즘이 끈덕지게 제기해온 ‘국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당내 민주주의’. ‘수직적 위계질서’, ‘관료주의’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비판적 분석과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현실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이 21세기 노동자계급운동에 끼치는 악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25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 사회(Another World)’에 대한 근래의 논의에 있어서도 ‘사회주의적 담론’은 아예 배제되어 있으며, 그 자리를 ‘참여경제par-econ’[10]Michael Albert, Parecon: Life After Capitalism, Verso, 2003., ‘참여정치par-polity’[11]Stephen Shalom, ‘ParPolity: Political Vision for a Good Society’, Zmag, 2005., ‘민주경제demo-econ’[12]David Schweickart, After Capitalism. Rowman & Littlefield. 2002.; J.W.Smith, Economic Democracy: The Political Struggle for the 21st century. Institute for Economic Democracy Press, 2005., ‘자율사회’[13](ed.) Sylvere Lotringer & Christian Marazzi. Autonomia: Post-Political Politics, Semiotext(e), 2007., ‘무권력사회(Holloway)’[14]John Holloway, Change the World Without Taking Power: The Meaning of Revolution Today, Pluto, 2002.과 같은 아나키즘적인 대안사회 담론이 대신하고 있으며, 변혁운동의 방법론 또한 반위계적인 ‘새로운 사회주의운동’(Callinicos)[15]Alex Callinicos, An anti-Capitalist manifesto, Polity Press. 2003., ‘다중운동’(Negri & Hardt)[16]Michael Hardt and Antonio Negri, Multitude: War and Democracy in the Age of Empire, Penguin Press, 2004; Commonwealth, Belknap(Harvard University Press), 2009., ‘틈새혁명interstitial revolution’(Holloway) 등이 대신하고 있다. 근래 슬라보예 지젝과 알랭 바디우가 중심이 되어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재사유와 ‘실패한 레닌주의’에 대한 재-사유를 주장하고 있으나, 이들의 영향력은 거의 없다.

제언

26. 노동자계급운동은 자본주의 현실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문제를 실천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는 마르크스의 ‘실천적 유물론’과, 자본주의 현실에서 철저하게 관철되고 있는 ‘자본의 운동법칙’을 명료하게 해명해 낸 정치경제학 비판(‘자본’)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 출발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마르크스는 “나의 연구로부터 국가형태는 물론 법적 관계는 그 자체로 이해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인간정신의 보편적 발전에 의해 설명될 수 없으며, 헤겔에 의해 ‘시민사회’라는 이름으로 요약된 삶의 물질적 조건에 뿌리박고 있다는 결론과, 시민사회의 해부는 정치경제학에서 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정치경제학 비판 서문(57), 43년 회고)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관점은 ‘국가 형태’와 ‘법적 관계’에 대한 비판적 인식만이 아니라, 현존하는 현실 사회의 문화, 철학, 종교, 예술과 같은 의식형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27. 마르크스의 ‘실천적 유물론’에 입각한 노동자계급운동이라면, 아나키즘에 대한 단순한 ‘원색적 비난’과 과학적인 ‘비판적 분석’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나키즘 현상’은 청년헤겔학도들의 ‘비판에 대한 비판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마르크스의 ‘실천적 유물론’에 입각한 ‘현실적 전제’로부터 출발해야만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즉 오늘날의 ‘아나키즘 르네상스’ 현상은 단순한 비난이나 배제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적 유물론’과 ‘유물론적 역사 이해’의 관점에서 ‘아나키즘의 대유행’을 초래한 21세기의 구체적인 역사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분석의 과제이다. 전통적 아나키즘, 새로운 아나키즘, 포스트-아나키즘, 신세대 아나키즘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단순히 주창자들의 주관적, 관념적 소산이 아니라, 그러한 관념을 가능케 한 당대의 현실적 토양에서 자라난 풀 같은 것이다.

28. 노동자계급운동의 이론적, 실천적 무기인 마르크스 철학에 대한 나의 지론은 “마르크스 이후의 모든 철학담론은 마르크스 이전의 철학담론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르크스 이후의 모든 철학담론들은 ‘당대의 구체적인 현실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철학자들이 임의로 상정하거나 상상해낸 모종의 기이한 ‘추상적 원리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1 이 글은 <노동전선>의 ‘2019년 9월 월례정책토론회(민주노총 13층 회의실, 2019. 9. 28.)에서 발제한 발표 요약문을 약간 수정‧보완한 것이다. 따라서 학술적 성격의 글이 아니다.
2 Fredric Jameson,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Duke UP, 1991.
3 Slavoj Žižek, ‘Multiculturalism, Or, the Cultural Logic of Multinational Capitalism’, New Left Review 225 (Sept.-Oct. 1997
4 Ernesto Laclau and Chantal Mouffe, 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 Verso, 1985.
5 Colin Crouch, Post-democracy, Polity, 2004.
6 산업노동에서 지식노동, 서비스노동, 문화노동으로의 전화로 인한 삶의 방식의 변화도 이에 포함된다.
7 Russell Jacoby, Dialectic of Defeat: Contours of Western Marxism, Cambridge, 1981; Perry Anderson, Considerations on Western Marxism, Verso, 1976.
8 Chris Spannos (ed,) Real Utopia: Participatory Society for the 21st Century, AK Press, 2008; Erik Olin Wright, Envisioning Real Utopias, Verso, 2009.
9 데리다는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Messiah without Messianism)’와 비유해 설명하고 있다, (Jacques Derrida, Spectre de Marx: l’état de la dette, le travail du deuil et la nouvelle Internationale, Éditions Galilée, 1993.
10 Michael Albert, Parecon: Life After Capitalism, Verso, 2003.
11 Stephen Shalom, ‘ParPolity: Political Vision for a Good Society’, Zmag, 2005.
12 David Schweickart, After Capitalism. Rowman & Littlefield. 2002.; J.W.Smith, Economic Democracy: The Political Struggle for the 21st century. Institute for Economic Democracy Press, 2005.
13 (ed.) Sylvere Lotringer & Christian Marazzi. Autonomia: Post-Political Politics, Semiotext(e), 2007.
14 John Holloway, Change the World Without Taking Power: The Meaning of Revolution Today, Pluto, 2002.
15 Alex Callinicos, An anti-Capitalist manifesto, Polity Press. 2003.
16 Michael Hardt and Antonio Negri, Multitude: War and Democracy in the Age of Empire, Penguin Press, 2004; Commonwealth, Belknap(Harvard University Press), 2009.

노동전선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이전 글

<과학> 과학과 기술의 정치화를 위한 이론적 주제들 (2)

다음 글

<연구> 풍요로운 평등사회를 위하여 −사회주의 대중화와 노동자국가−

댓글을 입력하세요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