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수 ㅣ 현장과광장 구독 회원
‘잘 썼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본질을 파헤쳤다.’ 그다음 이어진 생각이다.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실천해야 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든 생각이다.
이 책은 2018년 맑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한국 사회에서 맑스주의가 어떻게 왜곡되고 변질되어 있는지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출판한 것으로 보인다. 2018년과 그 이전 한국사회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투쟁에 대한 계급적 관점, 그리고 반맑스적 철학과 이론을 사회적 담론으로 양산하는 사례들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일관되게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은 맑스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며 오늘날 우리 운동가들과 소위 이론가, 지식인의 자세, 관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는 책이다.
『21세기 혁명적 맑스엥겔스주의』라는 제목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왜 21세기 맑스엥겔스주의라 하지 않고 <혁명적>이라는 수사를 달았을까? 필자는 바로 거기에 이 책을 발간한 이유와 목적이 담겨 있다고 본다. 20세기 말. 1990년대 소련 사회주의 패배와 더불어 한국사회의 맑스주의는 맑스의 기치를 들지만 개량과 수정이라는 질곡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련 사회주의 패배 원인을 맑스주의에서 찾고, 어떻게든 왜곡·변질시킴으로써 오늘 자본주의를 해석하고자 하는 악의적 노력이 맑스주의의 혁명적 정수를 오염시켰다.
맑스주의에 대한 개량과 수정. 이 둘의 명칭은 다르지만, 이 둘의 공통점은 맑스주의의 혁명성을 제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맑스주의의 개량과 수정의 사상이론적 종착역은 자본과 정치권력이 설파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복종이며,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자각과 진출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변혁운동에 대한 그것의 악영향은 심각하며 그것에 대한 가차없는 사상투쟁이 필요하다. 오늘날 맑스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이들에게서 21세기 가장 중차대한 임무와 역할은 맑스주의에 대한 올바른 계승과 발전이며, 그 출발은 맑스주의에 대한 혁명성의 복원이라 하겠다.
맑스주의의 창시와 건설의 과정 자체가 그것의 계승과 발전의 역사였다. 이 책은 말한다. 맑스주의는 독일의 고전철학, 영국의 고전경제학, 프랑스의 사회주의 원천을 분석, 연구하며 치열한 사상이론 투쟁과 계급 투쟁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이것이 맑스주의가 태생적으로 내포한 변증법적 계승 발전이라 하겠다. 19세기, 20세기의 과정에서 우리는 맑스주의로 무장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진출을 보았고,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경험했으며, 오늘날까지 온갖 음해, 왜곡, 비방, 탄압, 봉쇄를 뚫고 현실 사회주의를 지켜가는 국가들과 식민지, 반식민지에서 반제국주의 민족해방투쟁을 보았다.
반면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 소련의 패배와 연이은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문제는 이런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몰락을 통해 전체 사회주의를 부정하고, 맑스주의의 몰락으로 단정지으며 노동계급운동의 변혁성을 제거하려는 시도가 너무 심각하고, 지속적이며, 장기간 걸쳐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말한다. 맑스주의의 정수는 자본주의 사적소유 폐지와 이를 위한 노동자계급의 국가권력 쟁취의 문제다. 이것을 말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자는 맑스주의자라 부를수 없다. 소위 맑스주의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복지국가니, 재벌개혁이니, 기본소득이니, 점진적인 불평등 해소와 공정한 분배를 이야기하지만, 국가권력 쟁취와 자본의 사적소유 철폐를 이야기 하지 않는 이상 개량과 수정, 또는 공상으로 귀결될 뿐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사회적 생산은 고도화되었고, 그것의 생산력은 충분히 발전된 상태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자본이 착취하는 사회다. 사적 소유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국가는 이를 안정적으로 보장해 준다. 법과 제도, 폭력을 동원하여 말이다. 사적 소유 폐지, 노동계급의 국가권력 쟁취 없이 노동이 주인인 사회는 있을 수 없다. 행복한 노동은 있을 수 없다. 평등하고 풍요로운 삶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맑스주의의 혁명적 정수를 명확히 하고 현실을 분석하고 실천과제를 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권과 언론은 한국의 실업률이 2%대라며 완전고용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나팔을 불어댄다. 그러나 그 이면에 담긴 진실은 은폐한다. 청년들의 실업률은 보수적으로 잡아도 5% 이상이다. 고령자와 30대 후반과 40대 여성 노동자의 취업이 대폭 늘었다. 극단적 비정규직이 그만큼 대폭 늘었음을 의미한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40%가 최저임금 또는 최저임금 미만이다.빈곤과 궁핍 속에서 가족 구성원 모두가 노동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든 사회라는 것을 반증한다. 늙어서도 마찬가지다. 고령자와 경력단절 3,40대 여성의 노동은 대부분 간접고용, 비정규직, 최저임금 노동이다. 이러한 노동이 행복하겠는가. 이러한 삶이 행복하겠는가.
이 반대편에 있는 자본은 수백, 수천억을 배당금으로 가져가고, 쥐꼬리만 한 지분을 가지고 전체 기업과 계열사를 지배하며, 별도로 수십억의 연봉을 책정하여 가져가는 현실이다. 이 사회에서 빈곤과 실업은 자본축적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맑스의 폭로는 오늘날 한국사회에 그대로 적용된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내팽개치고 산입범위까지 확대하여 개악시킨 문재인 정권을 규탄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인사와 고용노동부 관료가 필자에게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그래도 최저임금을 한 달에 190만원 가까이 해줬는데 맞벌이하거나 자식들까지 벌면 먹고 살 수있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국가권력이 노동자와 임금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러하다. 최저임금은 자본과 정권이 배려하는 시혜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노동자들은 단지 먹고 살기만 하면 되는 존재인 것이다. 개, 돼지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노동자·민중이 국가권력을 쟁취하고 사적소유 체제를 바꾸지 않는 이상 노동자들의 삶은 바뀌지 않는다.
맑스주의는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무기가 되어야지, 자본과 이를 비호하는 정치권력의 무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사회주의 혁명의 역사를 부정하거나, 단편적 취사 선택을 통해 스탈린, 레닌, 엥겔스, 맑스를 죽여나가는 시도는 노동자계급에게 녹이 슨 검을, 자본과 국가권력에겐 날이 선 검을 주는 행위와 같다.
맑스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며 이 책에서 우리 운동가들의 과제로 제시한 글을 옮기며 간략한 서평을 마무리할까 한다.
맑스레닌주의 기치의 부활!
맑스레닌주의의 과학적 정신으로 현실 분석!
맑스레닌주의의 혁명적 사상을 특수하고 구체적인 역사적, 정치적 조건 속에서 구현!
특히, 제국주의와 부르주와에 맞서는 투쟁의 무기가 되도록 하는 것!
이를 통해 한국사회 변혁을 일구는 것!
이것이 맑스 탄생 200주년을 맞는 우리의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