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국진 ㅣ 맑스사상연구소
<현상과 본질에 대한 철학적 인식>
현상이란 무엇이며 본질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현상과 본질을 혼동하곤 한다. 그러나 이 구분은 매우 중요하다.
현상 개념은 본질 개념과 변증법적으로 대립된다. 현상이란 감각, 직관, 직접적 경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사물, 과정 등의 외적인 성질의 총체이다. 따라서 본질과 반대로 현상은 개별적이고 우연적이며 가변적인 성격을 갖는다. 현상은 본질적인 징표뿐만 아니라 비본질적인 징표도 나타낸다.
직접적 경험을 통해서는 현상 이상의 것을 인식할 수 없으므로, 우리가 직접적 경험에만 머문다면 경험론에 고착되며, 주관적 관념론 및 불가지론의 결론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현상과 본질 사이에 나타나는 그때마다의 변증법적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과학의 주요 과제 중 하나이다. 이론적 사유는 현상에서 출발하여 사물의 본질을 해명한다. 그런데 이론적 사유에서 얻은 개념, 이론 등이 옳은지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은 다름아닌 ‘실천’(praxis)이다.
그러나 현상에만 국한되는 것은 실제 정치 및 인간의 사회적 행위에서 필연적으로 실천주의의 행위 방식을 초래한다. ‘실천주의’는 인간 행위의 직접적인 성과만을 문제삼고 이론의 상대적 독자성을 무시하며, 이론이 실천적 활동의 폭넓은 결과들을 예견하고 실천을 위한 방향 설정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무시한다.
즉 실천주의는 절실한 사회적 과제를 올바르게 해결하기 위해 원칙적이고 넓은 사용 범위를 지닌 이론을 선취해야 하는 사회과학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한다. 실천주의는 사실상 이론적인 방향 정립을 부정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무원칙한 입장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실천주의는 이론의 발전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실천의 발전에 대해서도 해를 미친다.
이렇듯 실천주의는 의식성보다 자연발생성에 우위를 두는 까닭에 현실적 실천이 이론을 매개로 하여 발전의 일반적인 합법칙성과 전망을 의식한 바탕 위에서 지도되어야 한다는 점을 부정한다. 그러나 “올바른 이론적 인식없이 올바른 실천없다.”
따라서 과학적으로 운영되는 정치는 사회적 과정의 현상으로부터 그 본질로 파고들어갈 것을 요구하며, 외적인 현상에서가 아니라 그 본질에서 출발할 것을 과제로 삼는다.
본질은 보편적인 것과 필연적인 것의 통일로서, 사물이나 과정들의 현상과 대립적인 통일을 이루며, 현상과는 반대로 감각에 의해 직접 인식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현상을 매개해서만 본질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변증법 철학은 대상의 본질 자체 속에 가능적으로 들어 있는 모순을 발견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고 있다.
본질과 현상은 불가분의 통일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현상은 본질보다 더 풍부하다. 왜냐하면 현상은 보편적인 것, 필연적인 것 이외에도 개별적인 것, 우연적인 것, 변형된 것을 풍부하게 포함하기 때문이다. 현상은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의 통일이다. 그러나 본질은 필연이 우연 속에서 관철되는 것과 유사하게 비본질적인 것 속에서 자신을 열어 보이는 것이다.
현상 속에 본질이 담겨 있으므로 우리는 사회과학의 잣대로 나날이 변화하고 있는 현상분석에 임하고 현상의 올바른 인식을 지향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