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장애운동, 여성운동 – 탈 시설 운동과 돌봄 노동을 중심으로

[1]이 글은 2020년 노동전선 대중강좌(10월 27일)에 발표한 글을 수정·보완한 것임을 밝힙니다.김지심 | 장애인자립지원센터 활동가

1. 탈시설 운동

(1) 아무개씨의 일상

〇 성명: 아무개(84년생)〇 시설 입소기간: 16년 3개월(아동요양원에서 전원) 〇 연고자: 없음 〇 건강 상태: 폐기흉수술 폐렴 히스토리, 가래 많음, 뇌전증, 위장장애, 간기능 지속적 관리 요함, 가려움증이 있는 것으로 판단함〇 일상활동 – 식사능력: L-Tube로 식이 – 의복착탈: 전적 지원 필요 – 개인위생: 전적 지원 필요 〇 사회생활 – 의사소통: 수용언어, 표현언어 모두 안 됨 – 일반활동: 24시간 침상생활 – 부적응행동: 항히스타민제 복용으로 낮에 졸고, 밤에 안 자기도 함

몇 달 전 장애인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한 장애인을 인터뷰한 자료의 일부이다. 아무개씨 삶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이 짧은 자료만으로도 충분히 드러난다. 아동요양원에는 언제 들어갔는지 알 수 없으나, 연고자가 없는 것으로 봐서는 오랫동안 아동요양원에서 지냈을 것이며, 아동요양원에 더는 머물 수 없는 20세가 되자 현재의 장애인 거주 시설로 옮겨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17년째 살고 있다. 폐렴과 폐기흉[2]폐에 구멍이 생겨 나타나는 질환으로 만성호흡기 질환이 있으며, 항히스타민제[3]항히스타민제는 알레르기 질환(알레르기 비염, 아토피피부염, 두드러기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히스타민 작용을 억제하여 알레르기 … Continue reading 복용으로 아무개 씨의 일상은 침대에 누워 자다가, 졸다가를 반복할 뿐이다. 음식물을 먹고 씹고 삼킬 수 없게 되자 L-Tube[4]코를 통해 식도를 거쳐 위 속으로 삽입하는 유연한 고무 또는 플라스틱 관으로, 입으로 음식을 섭취하기 어려운 환자에 대해 액체로 된 음식물을 … Continue reading 섭식해야만 하고, 튜브를 잡아떼지 못하게 팔 고정기를 착용해 놓아 차렷 자세로만 있어야 한다. 아무개 씨가 유일하게 반응하는 행위는 몸이 가려 울 때 가려움증을 못 견뎌 머리카락이 바스러질 정도로 머리를 흔들어대는 일 한 가지뿐이다.

(2) 탈시설, 장애인 운동의 시작과 미래

아무개씨는 앞으로 시설을 나와 ‘지원주택[5]서울시는 전국 최초로 2019년 12월에 ‘지원주택’을 제공하였다. 지원주택은 기존의 주택만 제공하던 ‘자립생활주택’에서 한발 더 나아가 … Continue reading’이라는 곳으로 옮겨 ‘혼자’살게 되었다. 아무개씨와 같은 중증장애인이‘혼자’산다고 하면 잘못된 말로 들릴 수 있는데, 방의 문도 없고 개인의 공간이란 전혀 없으며 여러 명이 늘 함께 있어야 했던 시설과 달리 자신만이 거주하는 곳은‘혼자’사는 게 맞다. 그녀의 일상생활을 돌보기 위해 지원주택 코디네이터가 같은 건물에 거주하고, 활동지원사가 거의 24시간을 돌보기 때문에 현상적으로 혼자만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아무개 씨와 같이 자신의 삶에 대한 어떠한 선택이나 반응이 필요하지 않은 시설에서 ‘탈출’[6]장애인이 지역에서 한 명의 주민으로 살아가고자, 시설에서 나오는 것은 그야말로 ‘탈출’에 가깝다. 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가족이 반대하고 가족이 … Continue reading하여 인간의 삶에 대한 존엄성을 인지하며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를 갖고자 많은 장애인이 목숨을 건 투쟁이 바로 탈 시설 운동이다. 탈시설 운동을 장애인 운동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몸이나 정신의 손상impairment을 가진 장애인disabled에 대한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하며, 동정과 시혜의 보호가 아닌 돌봄의 사회화를 숙의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시각장애인을 소경, 봉사, 장님 등으로 불렀었다. 이런 호칭이 시각장애인을 비하하는 말로 인식되어 이제는 금기시되고 있으나 실상 소경(少卿)은 고려 시대의 종4품, 봉사(奉事)는 조선 시대의 종8품 관직명이며, 장님은 ‘긴 장(長)’에 높임말인 ‘님’을 써서 부른 말이다. 맹인이 주로 경문을 읽거나, 축수하고 점복을 가르쳐 유사시 국가적 행사에 동원되기도 하여 벼슬을 받았던 것이며, 장님으로 높여 불렸다. 이처럼 장애·장애인은 초역사적이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사회현상이 아니며, 특정한 역사적 시점의 사회적 관계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장애·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은 언제나 사회적 맥락 안에서 규정된다는 점을 우선 이해해야 한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복지 철학으로 한다는 스웨덴의 경우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보조와 서비스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는데, 그 법의 이름은 「명확한 기능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한 보조와 서비스에 관한 법(Law of Support and Service for Person with Certain Functional, LSS)」이다. 그들에게‘능력 없음(disabled)’을 의미하는 장애인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 사회·역사적 맥락 속에서 장애·장애인을 바라볼 준비가 되었다면, 다음으로 그렇다면 ‘장애인이란 누구인가?’,‘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어떠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가?’,‘장애(혹은 정상)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하고 여기에 답을 해야 할 것이다.

빅터 핀켈스타인[7]빅터 핀켈스타인(Victor Finkelstein):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장애인 임상심리학자. 1968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에 의해 … Continue reading과 마이클 올리버(Michael Oliver)[8]마이클 올리버(Michael Oliver): 영국 그리니치대학교 사회과학스쿨의 세계 최초 장애학 교수는 장애·장애인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간의 관련성을 검토했다. 즉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배제되는 지금의 장애인은 산업사회의 노동세계로부터의 장애인 배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서 기원하였다고 보았다. 전(前)산업사회에서는 장애인을 개인적으로 불운을 지닌 사람으로 간주하기는 하였지만, 공동체에서 분리하지 않았으며 대다수 장애인 또한 부분적인 생산과정에 참여하며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국에서 18세기 말부터 임노동 관계가 점점 더 대규모 산업과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손상을 지닌 사람들은 경제 활동의 직접적인 참여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되기 시작했다. 공장 환경에서의 장시간 노동은 표준화된 숙련도·속도·강도를 요구했다. 손상을 지닌 사람들의 다수는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 없었다. 자본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경쟁자들과 비교해 가능한 한 적은 보수를 받고 가능한 한 오랫동안 열심히 일할 의향이 있는 노동자들을 찾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대판 경매시장에서 장애인들은 옆으로 밀쳐졌으며, 사회적으로 점점 더 의존적인 존재가 되어갔다. 19세기 동안 대규모 산업은 점점 더 소규모 매뉴팩처와 소상품생산을 잠식했고, 손상을 지닌 사람들의 의존성은 공고화되었으며 그러한 ‘사회 문제’에 대한 정책적 해법은 시설수용과 ‘재활rehabilitation치료’라는 이름의 의료시장 먹이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20세기의 장애인들은 ‘비생산적’ 존재의 범주에 놓여, 고용·교육·복지서비스·주거·교통·문화·여가 영역에서 사회로부터 배제하는 장벽 속에 놓이게 된 것이다.

1972년 영국의 체셔홈(Le Court Cheshire Home) 시설에서 살고 있던 폴 헌터(Paul Hunt)는 핀켈스타인, 켄, 데이비스 등과 함께 「분리에 반대하는 신체손상인 연합」 UPIAS(Union of The Physically Imparied Against Segergation)를 결성하였다. 이 조직은 장애에 대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개발하기 위해 토론과 논쟁을 벌여 1974년에 UPIAS 정책선언문을 발표하였다.

UPIAS의 목표는 우리가 사회에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신체의 손상을 가진 사람들을 분리하는 모든 시설을 바로잡는 데 있다. 이러한 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최대한의 가능한 독립을 하고, 이동성을 획득하고, 생산적인 일을 수행하고, 우리의 삶을 완전히 스스로 통제하며 어디서 살지, 어떻게 살지를 선택할 수 있는 재정적, 의료적, 기술적, 교육적 그리고 다른 도움을 국가로부터 제공받아야 함을 말한다.

이 사회에서 최후의 종착지 쓰레기장인 장애인 거주시설 … 오직 신체적으로 손상되었다는 죄 때문에 수천 명의 사람이 오랫동안 삶의 감옥에 갇히는 처벌을 받게 된다. 그곳은 거의 대다수 사람에게 다른 선택, 호소, 벌의 경감 등이 전혀 없으며 삶으로부터의 탈출 말고는 탈출할 수 없는 곳이다.

신체의 손상을 가진 사람들을 분리하는 시설들이 남아 있는 한,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시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의식과 편견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UPIAS는 더 나아가 1976년에 기본적인 권리에 초점을 둔 ‘기본원칙’을 작성하였고 다음과 같이 장애를 정의하였다.

우리가 보기에 신체적으로 손상을 입은 사람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은 사회다. 장애disability는 우리가 가진 손상impairments위에 부과되는 어떤 것으로, 그것은 우리가 아무런 필연적인 이유 없이 사회에 대한 완전 참여로부터 고립되고 배제됨으로써 초래된 것이다. 이렇게 장애인은 사회 안에서 억압받는 집단이 된다. … 장애는 현대사회 조직에서 기인하는 활동성의 불이익이나 제한으로 개념 규정한다.

신의 섭리로 살아가는 인간상과 초월적인 정신이 지배하는 역사관을 전면 부인하고, 인간의 실천과 관계의 사적 유물론을 밝힌 맑스와 엥겔스같이 장애운동가들 또한 개인에게 내려진 천형으로서의 장애 속에 숨어있던 억압체계를 밝혀내고 사회변혁을 통해 장애의 사슬을 끊어내고자 노력하게 된 것이다.

2. 돌봄 노동의 사회화

(1) 장애인 돌봄과 여성

이 글의 앞에 소개했던 아무개 씨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을 할 줄도 모르고, 생각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아무런 동기부여도 안 되고, 이제는 식사도 튜브를 통해 넣어줘야 하고, 누군가 생리 상태를 다 봐주어야 하는 아무개 씨도 탈시설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쉽게 이런 의문을 던지게 된다. 물론 아무개 씨와 같이 전적인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은 장애인 수의 14.4%[9]장애인의 46.9%는 거의 모든 일상생활을 타인의 도움 없이 혼자 수행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자폐성 장애인의 60.3%, 뇌병변장애인의 44.4%, … Continue reading로 생각보다 낮다.

장애인시설이 별도로 있고 중증의 장애인과 함께 생활해 본 경험이 없도록 구조화된 사회에서 관계를 맺어 온 우리는 중증장애인들이 지역사회로 나온다는 것 자체가 더 부담스럽고, 더 위험에 놓일 것 같으며, 더 비인간적일 수 있다고 쉽게 예단하게 된다. 무엇을 먹고 싶은지, 어떤 색깔의 옷을 좋아하는지, 어떤 교육을 어떻게 받고 싶은지 아무도 물어봐 주지 않고 조금이라도 걸을 수 있는 사람조차 아무도 돌봐주지 않아 그대로 퇴행하게 되는 시설에서의 삶이 안전할 리 없으며 인간적일 수는 없다. 그러나 염려하는 데로 중증장애인들이 시설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촘촘한 지원이 동시에 제공되어야 하며 이러한 지원체계가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예산도 확보되어야 한다. UPIAS의 장애인 활동가는 이 점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오늘날 영국은 신체적 손상이 있는 사람들을 삶의 중심에 서게 하고, 장애인을 사회에 기여하도록 하는 진보된 기술과 관련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의 자원이 장애인에게 기본적으로 집중되는 대신에, 정교하고 파괴적인 무기를 만드는데 그리고 초음속 제트여객기 콩코드나 센터 포인트 쇼핑몰과 같은 프로젝트 사업에 낭비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장애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엄청난 역량이 잘못된 방향에 있는 것은, 신체적 손상을 입은 사람들을 여전히 사회에 완전히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에서의 국가는 장애인을 ‘의존적인 사람’으로 규정하고 그 책임을 개인 또는 가정에 떠넘기고 있다.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사람은 배우자 39.4%, 부모 21.1%, 자녀 16.6%의 순으로 돌봄 제공이 대부분 가족구성원(81.9%)으로 나타났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다른 장애유형과 달리 부모의 돌봄이 매우 높아지는데 지적장애 72.8%, 자폐성장애 98.5%로, 이를 통해 발달장애인의 경우 성인이 되어도 결혼과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원 가정에 남아 부모의 돌봄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한 많은 연구 자료를 통해 부모 가운데서도 어머니에게 장애인/비장애인 자녀 돌봄에 대한 역할이 가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대규모 조사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여성은 17년 동안 아이들을 돌보고, 이에 더해 18년을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성인 가족(배우자 제외)을 보살피면서 보낸다고 한다.(수전 웬델, 2013).

여성학자 수전 웬델은 「거부당한 몸: 장애와 질병에 대한 여성주의 철학(The Rejected Body: Feminist Philosophical Reflections on Disability)」에서 중복장애 딸을 둔 바버라 힐리어의 사례를 들어 어머니의 돌봄이 사회에서 어떻게 저평가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장애아동을 돌보는 어머니의 경우 … 의료 전문가들과 기관들은 장애아동의 어머니가 아이를 보살피기 위해 자신을 완전히 희생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더욱이 아동이 장애가 있는 것에 대해, 치료 프로그램이 효과가 없는 것에 대해 또 아동이 ‘독립적’이 될 능력이 없는 것에 대해 부모(특히 어머니)를 비난하기도 한다. … 장애아와 어머니의 관계에서는 … 약을 억지로 먹여야 하기도 하고, 무섭고 아픈 치료를 받게 하면서 … 아이들은 학대받는 것처럼 느끼거나 사랑과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처럼 경험하고 기억할 수 있다. … 게다가 바람직하다고 여기질 만 만큼 자녀가 ‘독립적으로’ 크지 못한 경우, 자녀들과 장애 운동가들이 성인 장애인의 어머니를 비난하는 일이 흔하다고 힐리어는 말한다.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재우는 등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자녀양육은 가사노동에 속하며, 핵가족 형태의 자본주의에서는 주로 여성이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가사노동이 교환가치를 가지는 상품인가에 대한 논란[10]정성진(경상대 경제학과 교수)은 「가사노동 논쟁의 재발견: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과 페미니즘의 결합 발전을 위하여」(2013)에서 그동안의 … Continue reading이 있지만, 가사노동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전문성에서 저평가되고 있으며 무급노동으로 인해 자본의 잉여가치 증대에 봉사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인정하는 바이다. 그중에서도 중증장애인 특히 인지적 장애(지적장애, 정신장애)와 자폐성 장애의 양육을 위해 필요한 노동은 무지막지한 희생해야 하며, 개인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강도의 노동이 필요하다. 알아듣지 못할 말을 계속 반복하고, 소리 지르고, 몸을 흔들고,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고, 옆의 사람을 꼬집고 깨물고, 물건을 집어 던지고 떨어트리고, 끊임없이 집착하고, 신변처리가 안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고 또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장애 자녀를 죽을 때까지 개인·가정이 돌봐야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외면한다면, 가족의 특히 어머니인 여성의 시민권은 물론이거니와 사회구성원인 인간의 권리조차 박탈하고 있다.

(2) 돌봄 노동의 사회화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하는 것은 장애인들이 오랫동안 쟁취하고자 해 온 중요한 목표이다. 자립생활이라는 개념에는 오랜 역사 속에서 비주체적이며 수동적인 삶을 강요당했던 장애인의 삶의 방향성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많은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장애인에게 돌봄의 개념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자립생활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칫 의존적인 관계를 더욱 고착화시키고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인간의 삶을 더욱 해롭게 할 수 있다. 또한, 돌봄 대한 상호의존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독립성’만 강조될 경우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통해 비장애인처럼 생활하는 장애인을 기대하는 정체성의 새로운 오류를 가져올 수 있다.

일반적으로 돌봄을 생각하면, 돌봄을 행하는 사람(돌봄자)들의 헌신성 또는 무보수성 등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돌봄을 받는 사람(수혜자)은 무능력하고 의존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이를 ‘보호주의적 돌봄’이라고 한다(주현정 외, 2018). 그러다가 장애를 사회적인 제도·물리적 환경·편견 등으로 바라보는 ‘자립생활 모델(또는 사회적 모델)’이 확산하면서 돌봄에 대한 패러다임 또한 바뀌게 되었다. 패러다임의 전환에는 사적인 영역에 머물렀던 돌봄 노동이 복지서비스 시장화와 함께 시장의 영역으로 나오게 된 점 또한 영향을 미쳤다. 이는 상호의존성이 강조된 ‘소비자주의적 돌봄’이라고 한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는 수도에서 나오는 물을 받기 위해 (강에서 물을 길어 오는 우리 자신의 노력에 의존하기보다, 수도꼭지로 물을 내보내는 수도 기술과 그러한 기술을 다루는) 다른 이들에게 의존한다고 해서, 난방하고, 불 밝히고, 컴퓨터를 작동하고, 세탁하는 데 필요한 전기를 얻기 위해 다른 이들에게 의존한다고 해서, 음식과 옷을 직접 만들지 않고 시장에서 산다고 해서 나를 ‘의존적’이라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장애인인) 내가 정원에서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해서 정원사에게 의존해야 하고 집 청소를 하기 위해 청소서비스에 의존해야 하는 것 때문에 나를‘의존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서비스는 자신이 이런 것을 직접 하지 못해도 자신을 ‘독립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많이 이용하는 것이다. (모리스, 수전 웬델 재인용, 2013)

이처럼 돌봄자의 일방적인 시혜 또는 돌봄 수혜자의 일방적인 의존으로서의 돌봄으로 보지 않고 상호의존적인 사회관계로 확대하려면 돌봄을 영유아, 노인, 장애 등 특수한 욕구에 한정해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전 생애의 보편적 욕구로 이해하는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그동안 돌봄자와 수혜자 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로 인해 상호 간에 존재하는 학대의 가능성도 해소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가족구조의 변화, 여성 취업 확대, 고령화로 인한 돌봄 의존성이 증가함에 따른 여성의 무급 돌봄 노동에 무임승차하지 않으며 유급의 돌봄 노동 수요를 확대하는 공적인 사회화(마경희, 2020)의 공론을 가져올 것이다.

3. 코로나19의 장애인 그리고 돌봄 노동

코로나19의 팬데믹으로 전 세계의 위기 경보가 쉴 새 없이 울리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 확산으로 불거진 위기는 감염병의 대유행으로 나타난 새로운 위기가 아니라, 금융자본주의, 국제독점자본주의가 배태하고 있던 위기의 양상들이 조산(早産)한 것이며 코로나19의 위기가 기존의 위기들을 증폭하고 있다는데 이견이 없는 듯하다. 특히 돌봄 노동에서의 위기는 매우 심각하다. 돌봄 수혜자와 돌봄자의 관계가 권력적 위계질서에 놓여있으며, 돌봄자의 노동이 가치평가 절하되어 있는 ‘보호주의적 돌봄’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상호 간 노동, 안전, 건강, 생존권 등이 모두 위협받고 있으며 속수무책으로 죽어가고 있다.

지난 제21대 국회의 국정감사 첫날인 7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국회 앞에서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죽어간 발달장애인의 죽음을 추모하며 정부의 긴급대책을 요구하였다. 3월 제주도에서, 6월 광주에서, 8월, 9월, 10월 서울에서 발달장애인이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구멍 난 돌봄의 부재로 인해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에이블뉴스, 20.10.07.). 돌봄자 또한 같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 우리나라의 돌봄 노동자 중 여성의 비율은 보육교사 99.4%, 요양보호사 95%, 가사 및 육아도우미 99%로 전체 90% 이상이 여성 노동자이다. 월평균 임금은 152.8만 원으로 전체 취업자 대비 57.3%이며, 주당 노동시간은 30.2시간으로 전체 취업자(39.7시간) 대비 76.0%[11]한국여성노동자회는 매년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에 ‘3시 스탑(STOP) 조기퇴근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이 시위는 노동시장에서의 성별임금격차를 … Continue reading)이다. 그나마 코로나19에서는 감염에 노출되는 죽음과 노동을 넘나드는 사투를 해야 한다.

모든 인민의 보편적 돌봄 욕구에 국가는 응답하여야 한다. 보편적 지원체계를 마련하고 양질의 상호 돌봄 시스템이 구축되도록 하여야 한다. 그 속에서 돌봄 노동자의 정당한 임금지급과 고용안정이 이뤄져야 하며, 여성에게 편중된 돌봄 노동시장의 불균형을 공평하게 재구조화하여야 할 것이다.

코로나19는 거시경제정책의 재편에 기반한 장애운동, 여성운동 및 제반 운동의 새로운 분출과 진출을 요구한다. 그들은 서로가 연동되어 있고 연대를 통해서만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원론적이고 반복적인 이론투쟁에 매몰되어 바로 지금 우리가 함께하여야 할 투쟁을 방기해서는 안 될 일이다. 장애, 여성의 소외 없는 완전한 인간해방을 위해 투쟁!

< 참고문헌 >

에이블뉴스. 2020.10.7. 계속되는 발달장애인 죽음, “국가 무책임 탓”.

김성희 외. 2017.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 보건복지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마경희. 2020. 포스트-코로나 시대, 사회적 돌봄의 재조직화를 위한 정책방향과 과제. 한국여성노동자회 「여성노동 현실 진단과 대안마련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

수전 웬델(Susan Wendell). 강진영 외 역. 2013. 거부당한 몸-장애와 질병에 대한 여성주의 철학. 그린비

제니 모리스(Jenny Morris). 2014. Pride Against Prejudice: Transforming Attitudes to Disability. p140.

조한진 외. 2012. 시설거주인 거주 현황 및 자립생활 욕구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주현정, 김욕득. 2016. 공공성 담론으로 보는 돌봄서비스-상호의존의 조직화와 공동생산 제안을 중심으로-. 한국사회복지행정학 20권 제2호. pp. 233-262.

한국여성노동자회(kwwnet.org). 2019.3.14. [후기] 성차별 없는 노동이어야 임금격차 해소된다!-3.8세계여성의 날,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제3회 3시 STOP 조기퇴근시위.

1 이 글은 2020년 노동전선 대중강좌(10월 27일)에 발표한 글을 수정·보완한 것임을 밝힙니다.
2 폐에 구멍이 생겨 나타나는 질환
3 항히스타민제는 알레르기 질환(알레르기 비염, 아토피피부염, 두드러기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히스타민 작용을 억제하여 알레르기 염증반응의 저하를 유도한다.
4 코를 통해 식도를 거쳐 위 속으로 삽입하는 유연한 고무 또는 플라스틱 관으로, 입으로 음식을 섭취하기 어려운 환자에 대해 액체로 된 음식물을 주입하기 위해 이용한다.
5 서울시는 전국 최초로 2019년 12월에 ‘지원주택’을 제공하였다. 지원주택은 기존의 주택만 제공하던 ‘자립생활주택’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공공임대주택에 주거상담, 일상생활관리, 심리정서치료 등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주거 코디네이터’를 더한 장애인 주거모델이다.
6 장애인이 지역에서 한 명의 주민으로 살아가고자, 시설에서 나오는 것은 그야말로 ‘탈출’에 가깝다. 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가족이 반대하고 가족이 없는 경우에는 시설의 운영자와 종사자들이 반대한다. 정작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 당사자의 57~58%는 탈시설을 희망(조한진, 2012)하고 있는데도 당사자의 의견은 언제나 그랬듯이 묵살하기 때문이다.
7 빅터 핀켈스타인(Victor Finkelstein):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장애인 임상심리학자. 1968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에 의해 시민권 운동이 금지당하자 난민 자격으로 영국으로 건너왔다. 이후 남아프리카 흑인 자유운동과 장애인운동을 연결하였고 1972년에 UPIAS를 결성하였다.
8 마이클 올리버(Michael Oliver): 영국 그리니치대학교 사회과학스쿨의 세계 최초 장애학 교수
9 장애인의 46.9%는 거의 모든 일상생활을 타인의 도움 없이 혼자 수행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자폐성 장애인의 60.3%, 뇌병변장애인의 44.4%, 지적장애인의 37.3%의 경우에는 대부분 혹은 거의 남의 도옴을 전적으로 필요로 하였다(2017 장애인실태조사).
10 정성진(경상대 경제학과 교수)은 「가사노동 논쟁의 재발견: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과 페미니즘의 결합 발전을 위하여」(2013)에서 그동안의 가사노동 논쟁은 크게 두 가지 도식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보았다. ① 가사노동의 생산물을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갖는 노동력상품이라고 간주하고, 따라서 가사노동은 가치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생산노동이며,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여성은 착취당하고 있다”는 입장 ② “가사노동은 자본주의 임금노동과 달리 가정 구성원의 직접적 소비를 위한 사용가치만 생산하며, 노동자계급의 전반적 유지와 갱신에 기여하지만, 그 자체로는 생산적이지 않다고 보는” 입장이다. 정성진은 두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지만, 여성의 무급 가사노동이 자본의 잉여가치 증대에 봉사한다고 보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정성진은 맑스가 주목했던 것은 인간의 노동 일반이 아니라,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여 노동력을 구매한 자본에 의해 생산, 교환, 유통, 분배의 전 과정에 유기적으로 참여하는 노동 즉 추상적 노동에 주목하였던 것이며, 가족 내에서 이뤄질 필요에 의한 노동 즉 가사노동은 구체적 사용노동으로 비생산노동이며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장하였다.
11 한국여성노동자회는 매년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에 ‘3시 스탑(STOP) 조기퇴근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이 시위는 노동시장에서의 성별임금격차를 고발하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성평등 노동시장을 쟁취하기 위한 퍼포먼스이다. 2018년 하반기 기준 한국사회의 성별임금격차는 100:64로 1일 8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했을 때 여성의 경우 3시까지 노동하는 정도의 낮은 노동임금 수준이다. (한국여성노동자회, 2019.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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