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친미주의자들이 외면하는 미국 현대사

김남기 l 학생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국의 이미지는 과연 어떠한 것일까? 아마 부정적인 시각보다는 긍정적인 시각이 앞설 것이다. 친미주의적인 시각은 지금 당장 서울 광화문 광장을 가보면 알 수 있다. 광화문에는 지금도 “건국 대통령 이승만·산업화의 아버지 박정희·한미동맹 강화”를 주장하며, 미국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를 보여준다. 박근혜 탄핵으로 시작된 촛불시위 당시, 이에 맞서는 맞불 집회로 태극기 집회가 열렸었다. 당연하게도 이 태극기 집회에는 어김없이 성조기가 등장했다. 태극기 집회를 통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한국 사회는 절대적으로 친미주의를 유지하고 있는 사회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회는 미국에 대해 비판적으로 인식하고자 하는 노력이 대중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국내 언론들도 미국을 비판하기 보다는 미국 정부의 입맛에 맞는 보도를 추구한다. 올해 1월 말 동아일보에는 “美 경제 제재 위력… 이란 “매일 더 가난해져” 식품값 60% 폭등”이라는 미국의 대 이란 경제제재를 옹호하는 기사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보도했을 정도고, 이러한 기사에 대한 비판은 사회적으로 찾기 힘들다.[1]황성호, 「美 경제 제재 위력… 이란 “매일 더 가난해져” 식품값 60% 폭등」, 『동아일보』, 2022.01.27.

지난 202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종결을 예로 들어보자. 9.11테러 20주년이 되던 202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탈레반의 승리로 종결됐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대규모 미군 철군 이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거점들을 차례대로 접수하자, 대규모 난민이 발생했다. 대규모 난민이 발생함에 따라,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의 잔혹성과 전근대적인 여성관을 보여주는 보도들이 연이어 나왔다.[2]관련 기사로는 이종윤, 「아프가니스탄 출신 모델 “탈레반, 12살 여아 결혼시켜…도와주시길”」, 『브릿지경제』, 2021.08.17. 김영헌, … Continue reading 그러나 이러한 보도들에는 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2001년 미국의 침략으로 시작이 됐고, 무수히 많은 인명이 미군에 의해서 죽었다는 사실은 의도적으로 은폐됐다. 심지어 2019년 유엔 보고서만 보더라도 탈레반 보다 미군과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민간인을 더 살해했음에도, 오로지 탈레반의 잔혹성만 부각됐다.[3]권영미, 「”탈레반보다 미군·아프간군이 민간인 더 살해”…UN보고서」, 『뉴스1』, 2019.04.25. 그 외에도 패망한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수감자들에게 “구타, 전기충격, 성기 비틀기, 발톱 뽑기 등 여러 가지 고문을 자행했던 역사적 사실”도 탈레반이 전쟁에서 승리함과 동시에 서방과 국내 언론에 의해 의도적으로 은폐됐다.[4]조흥민, 「유엔 “아프간 정부, 조직적 고문”」, 『경향신문』, 2011.10.11.

이러한 사실관계 속에서 우리 사회는 미국에게 유리한 관점들에 보다 주목할 뿐, 미국에 대한 비판을 다룬 관점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일은 거의 없다. 따라서 미국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을 내놓으면, 항상 색깔몰이를 당한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비판은 매우 중요하며, 필요하다. 그 이유는 바로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무수히 많은 폭력을 휘두르고 있고, 대량의 인명 살상을 자행했으며, 그러한 행위들을 통해 자본의 이윤을 축적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인권’이라는 기준에 있어서도 비판이 필요한 부분이다.

COVID-19 사태도 한번 생각해보자. 2019년 말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이 질병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고, 현재도 우리 사회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있다. 전염병 초기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 대한 비판과 비난의 화살를 높였지만, 정작 2020년 4월 29일 기준으로 미국이 COVID-19 사망자가 베트남 전쟁 당시 전사했던 미군 숫자를 능가하자 많은 이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거나 침묵했다. 2020년 12월 12일에는 미국의 코로나 확진 사망자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전사자를 초월했고, 2021년 6월에는 60만 명을 돌파했다. 경제력과 의료 기술 그 외에 미국에 갖춰진 사회적인 체계를 고려해 보았을 때 이런 대참사를 초기에 막을 기회도 있었지만, 미국 정부는 상황을 하나도 진정시키지 못하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5]김남기, 『반공주의가 외면하는 미국 역사의 진실』, (어깨걸고, 2021), p.4~5. 그렇지만, 이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은 국내에 잘 나오지 않았으며, 현재(2022년 3월 23일 기준) 미국의 누적 확진자는 8,100만을 넘어섰고,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도 100만 명에 달한다.

누군가는 현재 대한민국도 대량의 확진자가 나오고 있고, 사망자도 1만 명을 넘겼다며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초기 중국에 대한 보도 및 태도와 미국에 대한 보도 및 태도가 180도 다르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으며, 한국 사회가 친미 친서방의 입장에서 사회를 바라본다는 사실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미국에 대한 비판은 필요하며,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역사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는 것 역시 필요하다.

미국을 비판하기 위해선 우선 미국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알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올리버 스톤과 피터 커즈닉이 집필한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1,2권은 많은 부분에서 학습이 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는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현재까지 배워온 미국 역사의 기본적인 서술들에 반한다. 소위 1776년 미국 건국 정신으로 내세우는 자유와 정의에 대한 소명과 헌신 같은 미국인들이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 교육에서 더욱 강조되는 가치에 비판적으로 도전한 것이다.

올리버 스톤과 피터 커즈닉이 공동으로 집필한 이 책은 주로 미국의 현대사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따라서 책의 시작은 ‘제1차 세계대전, 윌슨 vs 레닌’이고, 끝은 ‘오바마, 상처 입은 제국을 끌고 가다’이다. 책의 첫 챕터인 ‘윌슨 vs 레닌’에서는 흥미로운 내용이 나온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참이던 1915년 워싱턴 백악관에 모인 각료들이 D.W 그리피스가 만든 영화 <국가의 탄생(Birth of a Nation)>을 보았다는 사실을 얘기한다. 영화는 “영웅적인 KKK단 단원이 아슬아슬한 순간에 말을 타고 달려와 남부의 백인들, 특히 힘없는 여성들을 야만적이고 음탕한 노예 출신 흑인들의 마수에서 구해낸다.”는 조작되고 왜곡된 영화다. 미국의 악명높은 인종주의 집단인 KKK단에 대한 찬양과 헌사로 넘치는 이 영화를 본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한 마디 했다. “촌철살인으로 역사를 썼구먼. 딱 하나 유감인 건 저게 다 그야말로 진실이라는 거야.”[6]올리버 스톤·피터 커즈닉, 이광일(역),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I』, (들녘, 2015), p.43.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지도교수였던 우드로 윌슨은 바로 이러한 사고관을 가진 인물이었고, 따라서 당시 미국의 사고관은 이런 인종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시각이었다. 그런 인물이 나중에 이른바 ‘민족자결주의’를 겉치레로 내세웠던 것이고, 역으로 인종평등과 진정한 민족자결을 주장하는 레닌과 볼셰비키들을 미국과 러시아에서 제거하고자 했다. 이런 점에서 반공주의와 인종주의 그리고 제국주의는 역사적으로 상관관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1919년 조선의 3.1운동과 중국의 마오쩌둥 베트남의 호치민 등에게 영감을 줬지만, 그 성질이 제국주의에 있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식민지 민중과 혁명가들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당시 식민지 민중이 어떤 배신감을 느꼈는지, 책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호찌민은 서양식 턱시도와 중산모를 빌려 착용한 채 베트남 독립 청원서를 가지고 회의장으로 윌슨과 미국 대표단을 찾아갔다. 파리평화회의에 참가한 대부분의 비서구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호찌민도 해방은 식민통치세력의 선심이 아니라 무장투쟁을 통해 얻는 것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당시 베이징대학교 도서관 사서보조로 일하고 있던 마오쩌둥도 비슷한 좌절감을 토로했다. “민족자결은 이제 됐다 그래, 정말 후안무치한 놈들이야!””[7]올리버 스톤·피터 커즈닉, 이광일(역),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I』, (들녘, 2015), p.88~89.

책은 미국의 학살과 만행 그리고 제국주의적 폭력성을 고발하는 데 과감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칠의 이른바 ‘철의장막(Iron Curtain)’ 발언으로 냉전이 시작됐는데, 미국은 그리스 내전에 개입했다. 그리스 내전은 과거 나치에 협력하던 우파세력인 왕당파와 대중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던 사회주의 세력들 간의 내전이었으며, 당연히 여기서 미국은 과거 나치에 협력했던 세력들에게 물자와 무기를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네이팜 폭탄 투하와 소개작전을 통한 폭력과 학살이 존재했다. 1949년 내전은 우파의 승리로 끝났다. 대략 10만 명 이상의 그리스인이 미국이 지원하는 세력들에 의해 학살당했다. 이는 마치 해방 후 한반도의 상황과 유사했다. 책에 나오는 내용을 보도록 하자.

“그리스 내전은 점점 치열해졌다. 미국 고문단은 1947년 6월부터 교전지역에 도착했다. 이들은 그리스를 전술 시험 장소로 활용했다. 여기서 시험된 노조파괴, 고문, 민간인 마을에 대한 네이팜 폭탄 투하, 주민 대량 소개 후 재판 또는 기소 없이 강제수용소에 구금, 위험인물의 아내와 자녀에 대한 대량 투옥, 군사재판에 의한 대량 처형, 언론 검열 같은 전술들은 후일 베트남에서 그대로 활용된다. 그리스는 이렇게 해서 군주정 지지 세력과 부유한 실업가들 수중에 들어갔다. 이들 중 다수는 나치 협력자들이었다. 반면에 희생자는 주로 나치와 싸웠던 노동자와 농민이었다.”[8]올리버 스톤·피터 커즈닉, 이광일(역),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I』, (들녘, 2015), p.354.

책의 본문에 나온 바와 같이 놀랍게도 이러한 전략은 이후 미국이 일으킨 베트남 전쟁에서도 사용됐다. 그리스 내전 이후에는 1948년 제주도 4.3 항쟁에서 미군정과 우익 세력들이 사용했던 방법이기도 했다. 트루먼 정부가 그리스 내전에서 실행한 이런 학살과 인권유린식 정책은 이후 존 F. 케네디가 남베트남의 부패한 응오딘지엠 정권을 지원하면서 그대로 반복됐고, 미군의 북폭과 지상군 상륙 이후에도 이런 학살은 더욱 광범위하게 남베트남에서 벌어졌다.

미국은 프랑스에 맞서 독립전쟁을 벌이던 호치민을 공산주의자로 인식하고, 식민지 전쟁을 벌였던 프랑스를 지원했으며, 1954년 호치민과 보 응우옌 잡 그리고 수많은 베트민과 인민들이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승리할 기미를 보이자, ‘핵폭탄 투하’라는 천인공노할 만행까지 생각했었다. 다행히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가 빨리 패배하면서 이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미국은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 이후 제네바 회담에서 베트남을 남북으로 분단시키고, 남베트남에 자신들의 꼭두각시 정부인 응오딘지엠 정부를 세웠으며, 제네바 회담에서 약속했던 “2년 이내 통일을 위한 남북베트남의 총선거 치른다.”는 조항을 일방적으로 파기해버렸다. 책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미국의 후원을 등에 업은 지엠은 제네바 협정의 가장 중요한 조항을 파기해버렸다. 1956년으로 예정된 총선거를 취소한 것이다. 총선거를 했더라면 베트남 전체에 대한 통제권은 공산주의자들에게 넘어갔을 것이다. 아이젠하워는 후일 이렇게 말했다. “인도차이나 문제 전문가들과 대화나 편지로 의견을 나눠보면 의견이 거의 일치했다. 양측이 싸우는 상황에서 총선을 치르면 남베트남 인구의 80%가 국가수반인 바오다이가 아니라 공산주의자 호찌민을 지도자로 선출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반정부 무장투쟁은 곧 다시 시작됐다.”[9]올리버 스톤·피터 커즈닉, 이광일(역),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I』, (들녘, 2015), p.448.

베트남 전쟁 또한 그리스 내전과 같이 미국이 지원하는 세력은 과거 일본과 프랑스 식민지 지배에 협력했던 이들이 대다수를 이루었다. 따라서 이 전쟁은 호치민을 중심으로 뭉친 베트남 민중의 반미항전이자 민족해방전쟁이었던 것이다. 1964년 미국은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서, 베트남 전쟁을 일으켰다. 남북 베트남을 B-52 폭격으로 초토화시켰으며, 최신식 무기와 병력 그리고 기술과 잔혹한 남베트남 통치체제를 통해 무수히 많은 베트남 민중을 학살했다. 1968년 3월에는 미군 30명이 베트남 민간인 504명을 4시간 동안 학살하는 미라이 학살을 자행했으며, 피닉스 작전을 통해 27,000~41,000명이나 되는 민간인을 베트콩으로 몰아 학살했다. 책은 미국이 베트남 민중을 어떻게 학살하고, 국토를 어떻게 초토화시켰으며, 어떤 협박을 했는지 다음과 같이 아주 잘 보여준다.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이 사이공을 접수했다.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이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국이 그 작은 나라 베트남에 투하한 폭탄의 양은 인류사의 모든 전쟁에서 모든 전쟁당사국들이 투하한 것보다 많았고, 2차 대전 때 모든 전쟁당사국이 투하한 폭탄의 3배나 됐다. 시골 지역에는 불발탄이 지천이었다. 약 7,200만 리터의 고엽제가 살포돼 환경을 오염시켰다. 남베트남에서 미국은 전체 1만5,000개 촌락 가운데 9,000개를 파괴했다. 북베트남에서는 산업도시 6곳 모두가 완전히 파괴됐다. 지방 중소도시 30개 가운데 28곳, 소도시 116개 가운데 96곳이 초토화됐다. 1969년 호찌민 사망 후 북베트남 최고지도자가 된 레주언은 한 외국 기자에게 미국이 핵무기 사용 협박을 한 것은 모두 13차례나 된다고 말했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사상자 규모는 충격적이었다. 미군은 5만8,000여 명이 전사했다. 그러나 이는 베트남인 사상자 수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로버트 맥나마라는 후일 아메리칸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연하는 자리에서 베트남인 380만 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10]올리버 스톤·피터 커즈닉, 이광일(역),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II』, (들녘, 2015), p.101~102.

미국은 자신의 나라에선 ‘민주주의 국가’임을 선전하지만, 대외정책에 있어서 민주주의를 지원한다는 말은 허황된 이야기였다. 당장 대한민국의 이승만 정권이나 남베트남의 응오딘지엠 정권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1954년에는 과테말라의 좌파 지도자 아르벤스를 쿠데타로 축출했는데, 이러한 비극은 1973년 칠레에서도 반복됐다. 1970년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집권한 사회주의자 아옌데는 집권 초기부터 미국의 살인적인 경제제재에 시달렸고, 대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자 1973년 미국이 일으킨 쿠데타로 목숨을 잃었다. 미국은 칠레에서 아옌데 정권을 축출하고, 군사 독재자 피노체트를 내세워 학살 통치를 이어나갔다. 피노체트 정권 기간 동안 대략 3만 명에서 6만 명이 처형과 구금 그리고 고문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미국의 이런 학살 정책은 단순히 칠레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앞에서 언급한 과테말라는 아르벤스가 정권에서 물러난 이후 너무나도 끔찍한 학살들이 자행됐다. 과테말라에서만 친미 정부에 의해 20만 명 이상이 학살당했다. 니카라과와 엘살바도르 등에서도 미국의 지원을 받은 세력들이 무수히 많은 학살을 자행했다. 1980년 대통령에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이러한 학살적인 정책을 중남미에서 유지했으며, 학살자들을 ‘자유투사’로 미화했다. 이는 마치, 제주 4.3 항쟁을 진압한 우익세력의 지도부를 미군정이 보상하고 훈장까지 줬던 역사가 오버랩이 될 정도다. 과테말라의 학살이 얼마나 살인적이고 끔찍했는지를 책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986년 국무부는 비밀 보고서에서 농촌 원주민들에 대한 다수의 학살사건이 “과테말라 보안군과 우익 준군사조직들”에 의한 조직적인 작전이었음을 인정했다. 그들은 농촌에서 사회복지사나 의료 인력으로 활동할 수 있는 사람들과 농업 노동자들을 1966년부터 납치하고 살해하기 시작했다. 이런 잔학 행위는 1984년에 절정에 달했다. 과테말라 정부 공식기관인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Histrorical Charification Commision)’는 1999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과테말라 정부군이 다수의 마야 원주민 마을에서 저지른 626건의 대량학살사건을 상세히 설명하고, 이를 “제노사이드”로 규정했다. 보고서는 CIA를 비롯한 미국 정부기관들이 정부군의 학살행위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으며, 학살행위로 인한 전체 사망자는 20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11]올리버 스톤·피터 커즈닉, 이광일(역),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II』, (들녘, 2015), p.168~169.

이처럼 미국의 현대사는 제국주의의 현대사다. 이들의 역사는 타국의 주권과 자주권을 무시하는 행위들로 가득 차 있으며, 제노사이드도 동반된다. 이것이 바로 미국 역사다. 그리고 미국은 이러한 역사를 반성하지 않고, 지금도 되풀이하고 있다. 차베스가 건설한 진보적인 나라 베네수엘라만 하더라도, 차베스가 집권한 시점부터 2022년 현재까지 미국의 살인적인 경제제재에 시달리고 있고, 경제정책연구센터(Centre for Economic and Policy Research)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8월부터 베네수엘라에서 트럼프의 제재로 인해 4만 명 이상이 사망했을 정도로 극심하다.[12]비자이 프라샤드, 심태은(역), 『워싱턴 불렛』, (두번째테제, 2022), p.191~19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이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여전히 부재하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미국은 무수히 많은 폭력을 수행해왔고, 그 폭력은 지금도 여러 나라들을 겨냥하고 있다. 이는 노엄 촘스키의 말대로, 불량국가는 북한이나 리비아, 시리아, 베네수엘라, 이라크, 이란이 아니라 미국 그 자신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간 침략전쟁을 벌이다 패배했다. 그리고 지금은 러시아의 침공을 빌미로 아조프 부대와 같은 네오나치 세력들을 우크라이나에서 지원하며, 러시아를 대상으로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다. 20세기와 21세기 모든 분쟁에는 항상 미국이 있으며, 미국 그 자신이 가장 많은 폭력을 휘둘러왔다는 사실을 이제는 똑바로 알아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올리버 스톤과 피터 커즈닉이 공저로 내놓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1,2권은 많은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이 일독을 권하는 바이며, 더 나아가 이 서평과 책에 각성을 받아 국내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행동을 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1 황성호, 「美 경제 제재 위력… 이란 “매일 더 가난해져” 식품값 60% 폭등」, 『동아일보』, 2022.01.27.
2 관련 기사로는 이종윤, 「아프가니스탄 출신 모델 “탈레반, 12살 여아 결혼시켜…도와주시길”」, 『브릿지경제』, 2021.08.17. 김영헌, 「거세지는 反탈레반 외침…탈레반 잔혹행위도 속속 공개(종합)」, 『연합뉴스』, 2021.08.20.등을 들 수 있으며,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다.
3 권영미, 「”탈레반보다 미군·아프간군이 민간인 더 살해”…UN보고서」, 『뉴스1』, 2019.04.25.
4 조흥민, 「유엔 “아프간 정부, 조직적 고문”」, 『경향신문』, 2011.10.11.
5 김남기, 『반공주의가 외면하는 미국 역사의 진실』, (어깨걸고, 2021), p.4~5.
6 올리버 스톤·피터 커즈닉, 이광일(역),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I』, (들녘, 2015), p.43.
7 올리버 스톤·피터 커즈닉, 이광일(역),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I』, (들녘, 2015), p.88~89.
8 올리버 스톤·피터 커즈닉, 이광일(역),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I』, (들녘, 2015), p.354.
9 올리버 스톤·피터 커즈닉, 이광일(역),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I』, (들녘, 2015), p.448.
10 올리버 스톤·피터 커즈닉, 이광일(역),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II』, (들녘, 2015), p.101~102.
11 올리버 스톤·피터 커즈닉, 이광일(역),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II』, (들녘, 2015), p.168~169.
12 비자이 프라샤드, 심태은(역), 『워싱턴 불렛』, (두번째테제, 2022), p.191~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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