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개> 소리 내면 죽는다 –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하영진 l 노동전선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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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죽여 보게 되는 것이,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이 바짝 긴장하여 숨 죽여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공포영화라고 한다면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A Quiet Place)는 공포영화로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리 내면’ 공격 받는다는, 괴생물체로부터 공격받아 죽는다는, ‘소리 내면 죽는다’는 설정 자체만으로도 성공적으로 보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옆 사람의 소리에 민감해졌고 나 스스로도 소리를 내지 않으려 숨죽여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숨소리조차 괴생물체에게 들릴까 조심스러운 상황에서 소리를 내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일상의 행동들 속에서 무의식중에 내는 소리들이 있다. 실수로 물건을 떨어트렸을 때 나는 소리, 기쁨과 고통의 감정에 따라 몸이 반응함으로써 몸에서 나는 탄성이나 신음소리, 그런 소리까지 통제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이 있는 경우에는 ‘소리 내면 죽는’ 위험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거기다 출산을 해야 하는 산모와 갓 태어난 아기까지. 언제 울지 모르는 아기의 울음소리는 죽음을 부르는 소리다.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 상황에 처한 이들의 공포감이 오롯이 전해져 지켜보는 이들의 긴장감도 고조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둘러 봐도 상황 설정만으로도 죽음의 공포 분위기를 만드는 데 성공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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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2018년 개봉했다. 위 글은 당시 영화를 보고 남긴 기록 중 일부다. 최근에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가 다시 생각난 것은 두 가지 사정 때문인 듯싶다. 하나는 한국의 대선정국과 관련이 있고, 다른 하나는 전 세계적인 전염병 바이러스와 관련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 후보는 박정희의 ‘경제사회혁명’을 배우겠다고 하고, ‘검찰왕국’을 건설하겠다고 한다. 만일 윤석열 후보의 생각이 박정희의 경제사회혁명을 배워서 검찰왕국을 건설하려는 것이라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박정희 군사 쿠데다 정부는 노동자민중의 피와 땀으로 이룬 경제성장을 재벌과 군부가 독점한 재벌왕국,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노동자민중을 언론을 통해 ‘간첩’이나 ‘빨갱이’로 조작하고 검찰을 통해 고문하고 살해한 검찰왕국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후보의 생각에서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가 겹쳤던 이유는 영화가 보여주는 현실이 ‘소리 내면 죽는’ 곳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박정희 시대는 말 한마디 잘못하면 잡혀가서 죽을 수도 있는 숨죽여 살아야 했던 곳이었다.

영화 속 현실이 박정희 시대보다 더 공포스러워 보이지만 그렇지만도 않다고 여겨진다. 영화 속 공포는 가상이지만 박정희 시대는 실재했던 공포이고 지금도 노동자민중은 차별과 배제 속에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고 그들의 목소리는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 되어 묻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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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전염병 바이러스의 시대를 3년 넘게 겪고 있어서인지 영화가 궁금증을 일으키기도 했다. 영화에서 ‘소리 내면 죽는’ 공포를 불러오는 것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존재’인데 감독이 미래에 등장할 ‘바이러스’를 상상하여 영화를 제작한 것은 아닌가라는 것이었다.

감독은 괴생명체의 제작을 위해 몸 전체가 청각 기관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앵무조개’ 껍질에서 디자인 영감을 얻었으며, “작은 소리에도 몸 전체로 급격한 고통을 느껴 소리의 근원을 파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상상 이상의 튼튼한 구조로 된” 두려움과 무력감을 심어주는 생명체를 창조해 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단 한 번의 일상적인 소음이 바로 죽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세상”, “한 가족이 불안에 떨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처절한 상황”에서 “저들을 파괴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물음과 함께 “소리 내지 않고 일상을 보내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연구했다”고 감독은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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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던 숨 막히는 공포상황을 애버트 가족은 이겨낸다. 감독은 “소음 그 자체가 곧 위험인 세상”에서, “1년 365일, 24시간 내내 소리가 나기만을 기다리는 존재의 위협에 맞서 가족이 살아남을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했다”고 밝힌다.

감독은 “발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모랫길을 만들고, 집 마룻바닥에 페인트칠을 해서 나무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했으며, 첫째 딸 ‘레건’이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족 모두 수화를 사용했다고 말한다. 소리 없이 소통할 수 있는 “수화의 설정”만으로도 생존에 필요한 능력을 이미 갖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감독은 가족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세우는 데 공을 들였다고 한다. 시시각각 생겨나는 긴급한 상황에서 서로 소통하기 위해 “특별한 조명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붉은 색의 불빛은 반드시 도망가야만 하는 위급한 상황을 알려주는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색깔의 조명을 사용해서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낸 것이다.

전 지구를 휩쓴 대재난 속에서 이 가족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애버트는 농장주로서의 노하우를 이용해 정체불명의 존재의 위협보다 한 발짝 앞서 생존 전략을 강구했던 것이다.

애버트 가족이 주로 생활하는 농장의 헛간에는 물이 있고 태양열 발전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애버트는 집의 지하실을 작업실로 개조해 그곳에서 전기를 발전시키기도 하고 CCTV를 통해 정체불명의 존재를 감시하며 가족을 지켜낼 방법을 연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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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대재난 이후의 인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가상이지만 이미 시작된 미래로 보이기도 한다. 환경재앙과 바이러스로 인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생물체가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영화 속 애버트처럼 재난에 대처할 준비를 해나가는 수밖에 없겠다.

경제 양극화, 환경재앙, 전쟁을 야기하며 인류를 대재난의 위기와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자본 독재적 국가들을 문제 삼는 일은 더욱 중요 해지고 있다. 자본 독재적 국가를 넘어서기 위한 전 세계 노동자들의 단결과 준비가 더욱 시급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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