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35호 10-3 민주주의마저 쓸모없는 세상을 향해

레닌의 국가와 혁명을 읽고

전우재 l 대경전선 회원

『국가와 혁명』은 단행본 분량의 발제문 같은 책이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공산당 선언』, 『프랑스 내전』을 상세히 해설하고, 당대 베른슈타인이나 카우츠키가 주장하던 개량주의 흐름을 비판한다. 책은 앞서 언급한 맑스와 엥겔스의 저서를 길게 인용한다.

“국가는 일정한 발전단계에 이른 사회의 산물”, “경제적으로 모순되는 이해단계를 지닌 계급들이 무익한 투쟁을 통해 자신과 사회를 파멸시키지 않게 하려면(…)” “갈등을 완화하고 ‘질서’의 한계 내에서 제어할 권력(…)” (p28-29) 이렇게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인용하며 국가가 영원불멸의 존재가 아님을,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억누르기 위한 기구임을 주장한다. 물론 사회주의 세계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저 말 또한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카우츠키와 베른슈타인, 그 밖의 “부르주아 독일 학자”들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이야기가 달랐다.

무장한 사람들의 특수한 조직체인 국가는 경쟁적으로 국방예산을 많이 편성하게 된다.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등 파국에 가까울 정도로 사회의 모든 힘을 집어삼킨다. (p35) 이런 상황에서 기존 국가기구를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된다. 레닌은 『공산당 선언』을 인용하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옹호하며, 『프랑스 내전』을 인용하며 기존 국가기구를 분쇄하고 파괴한 뒤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여러 구에서 보통선거를 통해 시의원을 선출하고 (p80) 경찰은 정치적 특성을 잃고 책임을 지며, 모든 공직자들은 노동자 임금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는다. (p81)

『국가와 혁명』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이한 부분은 민주주의에 관한 부분이다. 국가가 쓸모가 없어 사라진다면 민주주의 또한 쓸모가 없게 된다는 점이다. 민주주의가 사라진다는 말은 생경하게 들린다. 계급을 억누르는 기구가 국가이고, 국가를 운영하는 방식 중 하나가 민주주의라는 논리를 이해하면 그리 어렵지 않다. 계급이 사라지고, 계급을 억누르는 국가 기구가 없다면, 국가 기구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논할 필요도 없다. 자연스레 민주주의 또한 쓸모가 없어지게 된다.

민주주의는 사라지지만 민주주의가 가진 본디 의미인 평등과 참여는 강화된다. 계급이 사라지는 과도기를 거치며 주민 다수, 전체 주민에 의해 국가 기능이 수행되는 상태가 된다. 대량 생산, 공장과 같은 자본주의 문화를 통해 국가권력 기능 대부분이 기록과 부기 같은 단순한 조작으로 단순화된다. 누구나 나랏일을 할 수 있으며 보통 노동자 임금 수준으로 가능해진다. (p83) 특정한 누군가만 관리와 관료가 될 수 있다면 특권이 생긴다. 누구나 관리와 관료가 될 수 있다면 특권이 생겨나지 않는다. 인민 자체가 자기들의 억압자를 억압한다면, 전체 인민이 국가 권력을 수행하는 데 많은 부분을 담당하면 할수록 권력에 대한 필요는 줄어든다. (p82) 더 많은 사람이 국정 운영에 참여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국정 운영에 있어 평등하다면 국정 운영은 필요가 없어진다. 국정 운영이란 건 국가 기구를 운영하는 행위이고, 국가 기구는 다른 계급을 억누르기 위한 기구이다. 억누를 계급이 없는데 국가 기구는 무슨 소용이고, 국정 운영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민주주의는 두 가지 면이 있다. 국가의 형태고, 국가의 변종이고,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폭력을 말한다. 또한 시민들 사이의 평등이며, 국가구조를 결정하는 행위에 모든 사람의 평등한 권리를 인정하는 걸 말하기도 한다. 민주주의는 특정한 발전단계에 도달하면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혁명적 계급인 프롤레타리아를 결속시킨다. 국가기구이긴 하지만 더 민주적인, 무장한 인민이 포함된 민병대를 형성하는 등의 가능성을 존재케 한다. 모든 사람이 국가 관리에 참여한다면 자본주의는 지속될 수 없다. 자본주의 발전이 그런 전제조건을 만들어냄에도 말이다. (p166)

이런 폭력이 과연 필요한지, 발전된 형태가 아닌 원시적인 민주주의 형태가 아닌지에 대한 지적이 있다. 계급 간의 조화가 가능하고, 다수에게 소수를 복종시키고, 부르주아 정부라도 함께하면 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p55) 계급 간에 조화로울 수 있으면 싸울 필요가 없다. 한 계급이 다른 계급에 복종하면 그만이다.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 복종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임금을 보자. 임금이 늘어나면 이윤이 줄고 이윤이 늘어나면 임금이 준다. 이렇듯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은 서로 대립하는 이해득실을 가지고 있다. 같은 형태가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산업현장에 안전관리감독을 강화하는 일도, 많은 사람을 고용하는 일도, 산업재해 현장에서 오너에게 책임을 물어 강력하게 규제하는 일도 똑같다. 한쪽이 이익을 보면 다른 한쪽은 손해를 본다. 그래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좌초했다. 계급끼리는 조화로울 수 없고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 복종하기도 어렵다. 계급 자체를 없애지 않고서는 계급 대립을 없앨 수 없다.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계급 대립은 존재하지 않는다. 계급 대립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계급 대립을 억누르기 위해 존재하는 국가는 필요가 없다. 국가는 쓸모가 사라져 사라진다.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가 대립하는 부분이다. 국가를 폐지해야 하는지 사라지는 건지에 대해 차이가 있다.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나서는 ‘무기를 내려놓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자본가들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무기를 사용해야 할 것인가? 그런데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향해 무기를 체계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이 바로 국가의 ‘과도기적 형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p108-109) 맑스는 노동자들이 무기 사용을 포기하는 데에 반대하며, 노동자들이 체계적으로 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이 바로 국가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계급을 파괴해야 한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나누고 계급 간의 갈등을 억누르는 국가 기구를 파괴해야 한다. 프랑스 혁명은 국가기구를 완성하는 혁명이 되어 버렸다. 국가 기구를 파괴하는 게 아니라 보충하는 혁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브뤼메르 18일』에서 얻는 교훈이다. 국가기구를 파괴하고,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뒤엎어야 한다. 『국가와 혁명』은 당시 존재하던 기회주의적 반박을 앞선 명제를 통해 재반박한다.

책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이야기는 계급 폐지와 그를 위한 국가기구의 파괴, 궁극적인 국가기구 소멸이다. 여러 책을 인용해 당대 존재했던 카우츠키, 베른슈타인 류 주장을 반박하지만, 결론은 하나다. 계급을 폐지해야 한다. 계급을 폐지하기 위해 계급 대립을 억누르는 국가 기구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확히는, 국가 기구를 쓸모없게 만드는 방향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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