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66호 6-3 노동자는 힘이 세다?

  • 이 기사는 노동자신문 18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한형식 ㅣ 교육활동가

노동자(계급)의 힘은 무엇인가?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정당이 얻은 득표, 사회 전체의 생산에 기여한 노동자의 몫, 노조 가입률, 복지 제도의 가입과 수혜자 수 혹은 혁명적 상황에서 분출되는 노동자 투쟁의 강렬함의 정도 등등. 어떤 하나로 환원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노동자의 정치적 영향력 그것도 제도 정치 내에서 치르는 선거에서 자칭 진보 정당이 합법적 조직 노동으로부터 얻는 지지의 정도가 높아질수록 노동자의 힘이 세진다는 생각이 만연했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이건 노동자를 특정 정치 세력이 동원하는 대상으로만 보는 관점에 불과하다. 노동자(계급)의 힘이 세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려 한다.

노동자는 위에서 열거한 것들처럼 추상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굳고 잘 다져진 대지 위에 서서 모든 자연적 힘들을 호흡하는 현실적이고 신체를 지닌 인간”이 노동자다. 자연의 힘들을 호흡하는 것이 노동자의 힘의 일차적 원천이다. “자연 생산물들이 식료품, 난방, 의복, 주거 등등의 어느 형식으로 나타나든 간에, 인간이 육체적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은 오직 이러한 자연 생산물들에 의해서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연에 의해 생활한다는 것은 다음을 의미한다 : 자연은, 인간이 죽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과의 지속적인 〔교호〕 과정에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의 몸이다.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생활이 자연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은 자연이 자기 자신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 이외에 어떠한 의미도 없는데, 왜냐하면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자연만이 아니다. “사회 자체가 인간을 인간으로서 생산하듯이 사회는 인간에 의해 생산된다. 활동과 향유는 그 내용뿐만 아니라 그 실존 방식에 비추어 보더라도 사회적 활동이며 사회적 향유이다. 자연의 인간적 본질은 사회적 인간에게 있어서 비로소 존재한다…. 사회는 인간과 자연의 완전한 삼위일체 Weseneinheit (또는 본질 일체성, 합일〕이다….‘사회’를 또다시 추상으로서 개인에 대립시켜 고정시키는 일을 무엇보다 더 삼가야 한다. 개인은 사회적 존재이다.”

마르크스가 1844년 《경제학 철학 초고》에서 말한 이런 생각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산업 혁명기에 등장한 엄청난 수의 노동자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자본가들이 필요로 한 노동자의 수가 몇 명이든, 노동자 남녀가 사랑 때문이든 경제적 계산에서든 낳았던 자녀의 수가 몇이든 간에 노동하고 재생산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가공된 자연의 재료가 있어야 한다. 근육과 뼈와 뇌를 만들 음식과 물과 공기와 햇빛이 충분하지 않았다면 노동자는 존재할 수 없었다. 영국의 자본가들이 곡물법을 폐지했더라도 수입할 곡물이 있어야 했다. 식민지의 자연을 황폐화시키고 수천만의 노예를 갈아 넣은 플랜테이션이 그 역할을 했다. 인도 식민지에서 재배한 싸구려 차에, 카리브해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아프리카에서 잡혀 온 노예들이 재배하고 가공한 설탕을 잔뜩 넣어. 북아프리카의 밀림을 밀어버리고 만든 밀밭에서 대규모로 재배한 밀로 만든 딱딱한 빵을 적셔 먹는 노동자 음식 즉 단시간에 에너지를 공급할 값싼 식재료가 없었다면 산업 혁명도 없었다. 노동자의 몸과 정신에는 단일 작물의 산업적 재배가 초래한 생태적 재앙과 식민주의가 저지른 아프리카 사람들의 비극이 직접 결부되어 있었다. 이처럼 노동자의 힘은 살아있는 인간인 노동자가 자연 및 사회와 상호 작용한 결과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결과가 노동자의 무력함일 수도 있다.

“노동자가 더 많이 창조하면 할수록 그는 더욱더 적게 소비해야만 한다는 것, 그가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면 할수록 그는 더욱더 무가치해지고 더욱더 값어치 없게 된다는 것, 그의 생산물이 더 정형화되면 될수록 노동자는 더욱더 기형화된다는 것, 그의 대상이 더 문명화될수록 그는 더욱더 야만화 된다는 것, 노동이 더 강력해질수록 노동자는 더욱더 무력해진다는 것, 노동이 더 똑똑해질수록 노동자는 더욱더 어리석어지고 자연의 노예로 된다는 것으로.” 즉 소외된 노동이 초래될 수도 있는데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대체로 이런 것이었다. 그래서 노동자는 몸, 마음, 경제, 정치 모두에서 힘을 잃어 갔다. 아팠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노동자가 노동하는 조건과 노동하지 않는 생활의 조건 두 측면에서 노동자의 힘 문제에 접근하려 한다. 먼저 노동자의 생활 조건을 특히 대도시에서의 삶을 중심으로 보려 한다. 구체적으로는 부동산(주거), 음식, 문화와 여가, 교육과 의료 그리고 돌봄 제도들, 생태적 조건 등을 차례로 공부해야 한다. 엥겔스가 19세기 중엽 영국 산업 대도시를 대상으로 연구하고 제기한 문제들을 되짚으면서 현재의 대도시 문제들을 이해하기 위해 참조하는 것이 다음 호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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