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과 풍요의 변증법(14): 직접성과 매개의 변증법
홍 승 용(현대사상연구소)
1.
우리가 구매하여 편리하게 소비하는 상품들은 모두 완전범죄의 현장들이라고 할 만하다. 그것들이 우리 손에 들어오기까지 누구의 피와 땀과 눈물을 흡수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폭력과 착취가 자행되었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가성비가 좋은 상품일수록 그런 의문에서 더 멀어질 것이다. 또 그것들이 얼마만큼의 잉여노동을 담고 있는지 물어보지 않는다고 해서 누가 시비를 거는 일은 없다. 그 속에 노동과 자본 간의 투쟁이 어떻게 녹아들어가 있는지 또 그것이 생태계를 얼마나 파괴했는지 시시콜콜 따지지 않는다고 해서, 검찰이 그 흔한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찾아올 일도 없다. 상품들은 우리의 구매 욕구를 향해 달콤한 말을 속삭이고 우리의 구매력을 살필 뿐, 그 험악한 이력은 모두 자신의 말끔한 피부 아래 감쪽같이 감춰놓는다. 아무리 뛰어난 직관력을 가진 천재도 그 피부 속에 쌓여 있는 투쟁과 희생의 역사를 직접 꿰뚫어 볼 수는 없다. 충분한 인식을 위해서는 직관만 아니라 개념적 추상과 추론을 통한 인식과정, 즉 개념의 노동이 필요하다. 이 점은 어떤 대상에 대한 인식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상품 속에 들어있는 피와 땀의 역사 따위는 알 필요 없다고 가르친다.
평등한 인간관계를 내심 두려워하는 반민주적 위계 사회에서는 누구나 어느 위치에 올라서도 불안과 불행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불행의 직접적 원인들은 각자에게 명백할 수 있다. 물가가 올라서, 경기가 나빠져서, 이자율이 치솟아서, 노동강도가 높아져서, 건강이 악화되어서, 원래 능력이 없어서 등등. 그런데 그 직접적 원인들은 그것들을 야기한 다른 조건들 없이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그 뿌리를 찾아 무한히 거슬러 올라가며 원인 모두 밝히는 것은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 하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에 꼭 필요한 만큼 그 원인들을 밝히고 그에 합당한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수시로 대증적 임시처방을 반복하거나 그마저 체념하고 불행을 자연스러운 숙명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오늘의 자본독재 하에서 대다수 노동자민중 각자가 겪는 불행을 사회적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국주의단계 자본의 작동방식에 대한 구체적 인식에까지 도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는 결코 직관에만 의지해 직접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념들을 통한 체계적 인식의 확대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자본독재는 이러한 개념적 체계적 인식의 발전을 어떻게든 막으려 든다.
레닌은 이상적 사회민주주의자는 조합의 서기가 아니라 인민의 호민관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호민관이라는 표현은 거북할 수 있지만, 그 논지는 주목할 만하다. 즉 사회민주주의자는 ‘전횡과 억압이 어디서 발생하건, 어떤 계급과 계층에 관계된 것이건’, 그러한 현상들에 대응하여 그것들을 ‘경찰의 폭력과 자본주의적 착취라는 전체상으로 종합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프롤레타리아트 해방투쟁의 전세계적 역사적 의의를 설명하기 위해 어떤 사소한 사건이라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1]V. I.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최호정 역, 박종철출판사 2001, 105쪽 참조. 여기서 ‘경찰의 폭력’은 국가권력이 휘두르는 폭력을 통칭한다고 … Continue reading 이때 ‘사소한 사건’을 활용해 ‘해방투쟁의 전세계적 역사적 의의’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어떤 ‘전횡과 억압’ 현상이든 ‘자본주의적 착취’와 관련짓기 위해서는, ‘모든 문제는 자본주의 탓이야’라는 식의 주관적 예단이 아니라 사소한 사건이나 현상들과 자본주의적 착취 메커니즘 사이의 실제 관계들을 치밀히 관련지어 파악하고 개념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경우 어떤 대상이든 직접 나타나는 대로만 아니라 제반 관계 속에서 형성되어온 과정의 산물, 곧 ‘매개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개념으로 파악해 가는 변증법적 사유방식이 전제된다. 변증법적 사유는 대상에 대한 직접적 직관적 경험에 머물지 않고 대상을 매개된 것으로 보고 그 매개 과정을 개념적으로 파악하고자 노력한다. 헤겔은 매개를 ‘단순한 형성’이라고 규정하기도 하는데,(현상학25) 이처럼 매개를 ‘어떤 존재 속에나 필연적으로 정립되어 있는 형성의 계기’라는 관점에서 변증법을 ‘보편적 매개의 철학’이라고 볼 수도 있다.(입문45)[2]이와 달리 알튀세르는 ‘매개’나 ‘형성’ 등의 개념을 버리라고 선동한다.(읽기78-79) 이는 경험주의를 혐오하는 그의 반유물론적 편향에 … Continue reading
2.
매개 개념은 직접적 직관에 머물지 않고 대상의 형성과정을 따라잡는 개념의 노동을 강조하는 데에 유용하지만, 직접적 경험을 직관적 인식에 국한할 필요는 없다. 직접적 경험은 자생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경우 직접성은 개념적 인식 내지 사고방식과도 관련된다고 보아야 한다. 루카치는 표현주의자들을 비롯한 제국주의시대의 예술가들이 사상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자본주의 생활에 대한 직접적 체험에 머문다고 비판한다. 즉 그들은 ‘자신의 체험과 현실적 사회생활의 실제 연관관계나, 그 체험을 객관적으로 유발하는 원인들, 또 이 체험을 객관적 사회현실과 결합시키는 제반 매개과정 등을 파헤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직접성으로부터 자연발생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예술 양식을 만들어내는데, 이로써 그들은 제국주의시대의 반동적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루카치는 이 반동적 영향들을 발견하고 비판적으로 넘어서려면 ‘직접적인 체험을 극복해야 하며, 모든 주관적 체험을 사회현실에 비추어 측정하고 평가해야 할 뿐 아니라, 현실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3]G. Lukács: Es geht um den Realismus, in: Probleme des Realismus I, Neuwied/ Berlin 1971, 322쪽 참조. 이하 ‘리얼리즘’으로 약칭. 이러한 연구는 단순히 직관적 인식을 넘어서는 것이라기보다, 자신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온 개념적 인식들을 비판하고 새로운 개념적 인식들과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될 것이다.
루카치의 조언은 예술가들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독재에 의식적으로 적극 맞서려는 노동자민중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다. 물론 우리의 사고방식⋅감각⋅욕구 등을 압도하는 제국주의적 자본독재의 영향들을 일일이 밝혀내고 극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경제성장과 함께 자본헤게모니가 강고해지는 국면에서, 이데올로그들을 중심으로 한 상층부 노동자들에 대한 매수효과가 적절히 먹혀들고 자본의 분할통치 전략이 주효하는 동안에는, 자신의 직접적 체험방식을 사회현실에 비추어 비판적으로 극복하려는 사람들은 지배조류에 맞서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군분투의 요체는 제국주의적 자본독재의 물적 토대가 자신의 체험방식에 끼치는 영향들, 혹은 현재의 의식을 형성해 놓은 매개과정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공존⋅공영을 구현하는 노동자민주주의와 평등사회 건설에 적합한 내용과 형식으로 바꿔가는 자기혁신과정이며, 또한 이러한 과정 속에서 얻어낸 새로운 인식과 체험방식을 가능한 한 널리 공유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자본증식의 한계와 위기로 인해 자본헤게모니가 흔들리는 국면에서는 주체 변화에 어느 정도 가속도가 붙으리라 기대할 수도 있다. 이러한 기회를 최대한 살리는 것은 노동자정치운동의 주요 당면과제다. 과거의 실패에 대한 반성도 주체변화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때 운동 실패의 원인을 패권주의나 의회주의라는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에 머문다면 직접성의 범위를 별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패권주의와 의회주의에 빠지게 된 물적 토대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우선 현실사회주의 붕괴로 인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재편을 생각할 수 있다. 이 변화가 노동자정치운동의 이념 지형에 초래한 부정적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양극화를 비롯한 온갖 모순들을 뒤편으로 미뤄버린 경제성장과 제국주의적 초과이윤을 통한 매수효과 및 분할통치 전략에 노동운동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점도 자각해야 할 것이다. 물론 반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동자국가 건설을 목표로 주체의 변화를 대중화할 조직적 실천이다. 그 물적 토대가 오늘날 세계경제 차원에서 심각한 위기로 치닫고 있는 국면에서는 곳곳의 갈등상황을 주체변화의 도화선으로 삼을 수 있다. 레닌이 역설한 ‘호민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선거전술이나 연합전술 혹은 당건설 문제 등을 이러한 실천의 일환으로서 다룰 때, 과거의 실패를 그대로 반복할 이유는 없다.
3.
지금까지 직접성에 대한 비판과 매개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그 두 가지를 기계적으로 분리해 놓을 수는 없다. 헤겔에 따르면 매개는 곧 ‘생성되는 직접성’이자 ‘직접적인 것 자체’이기도 하다.(현상25) 맑스가 ‘세계사 전체의 산물’이라고 표현한 우리의 오감을 우리는 자명하고 직접적인 것으로 사용한다. 물론 그와 반대로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오감은 세계사 전체의 산물로서 장구한 매개의 결과인 것도 사실이다. 데카르트가 부인할 수 없는 존재로서 명석판명한 인식의 출발점으로 삼는 ‘사유하는 나’라는 관념은 직접 자명한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나 자신의 실존에 대한 나의 지식은 나를 자의식적 존재로 만드는 교육과, ‘너’와 ‘그’ 등으로부터 ‘나’를 구별할 수 있게 해 주는 타자와 나의 관계들이나 나의 순수한 자아에 초점을 맞추도록 나를 이끄는 철학 전통에 의해 매개되어 있다.”[4]M. J. Inwood: A Hegel Dictionary, Blackwell Publishers 1992, 185쪽. 어떤 대상이든 ‘필연적으로 형성과정 속에 있다’는 점에서 매개된 것이지만, 우리는 모든 대상을 그 매개과정 전체 속에서 파악할 수는 없으며, 대개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모든 대상의 본질이 직접적으로 드러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본질을 인식하려면 일단 직접성을 벗어나 개념적 추상과 추론을 통해 매개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로써 확장된 인식은 다시 직접적인 것으로서 다른 인식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 인식의 전개과정에서 매번 처음부터 매개과정을 다시 되풀이하여 드러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잉여가치의 본질을 밝히기 위해서는 상품⋅교환⋅가치⋅노동력상품 등등의 개념들로 이루어지는 매개과정을 치밀하게 따라잡아야 한다. 그러나 일단 그 본질이 밝혀지면, 그것을 기초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불가피한 몰락에 대한 인식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 이때 논의의 전개과정에서 매번 잉여가치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는 않으며, 잉여가치 개념은 이제 자명한 것으로 활용된다.
이처럼 매개를 거친 직접성과 관련해 루카치는 리얼리스트들에게 이중의 과제를 제기한다. 하나는 일상적 현실에서는 감추어져 있어서 직접 지각할 수 없는 사회현실의 제반 연관관계에 도달하기 위해 추상기법을 써서라도 자신의 체험내용을 가공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추상을 통해 파악된 연관관계들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추상을 지양하는 것이다. “이 이중의 작업을 통해, 형상화작업에 의해 매개된 새로운 직접성, 형상화된 삶의 표면구조가 나타난다. 이 표면구조는 일상의 직접적인 상태와 달리 언제나 본질을 명백히 드러내준다.”(리얼리즘324) 사회주의 리얼리스트인 제거스는 작가의 직접적 체험을 강조하면서 루카치가 제시하는 방식으로 글쓰기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5]A. Seghers: Ein Briefwechsel zwischen Anna Seghers und Georg Lukács, in: Probleme des Realismus I, Neuwied/ Berlin 1971, 347쪽 이하 참조. 그러나 사회현실의 본질을 명백히 드러내주는 ‘매개된 직접성’에 대한 루카치의 요구를 소홀히 할 수 있는 리얼리스트는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매개된 직접성을 산출해내는 일은 리얼리스트만의 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누구보다 노동자정치운동에 사활을 걸고 주체적 조건의 변화에 적극 나서는 사람들, 거북한 용어를 다시 쓰자면 ‘호민관’들의 주요 과제이기도 하다. 자본독재 문제의 본질을 폭로하고 노동자국가와 풍요로운 평등사회의 구체적 청사진을 만들기 위해 복잡다단한 매개과정을 거쳐야 하는 이론 생산은 일차로 중요하다. 하지만 이 매개과정을 함축하면서 사태의 본질을 명쾌하게 드러내주는 선전의 언어들을 능숙하게 발명하고 구사할 줄 아는 활동가들의 조직적 체계적 실천 역시 대중적 주체 변화와 운동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이 역량이 자본독재에 맞서는 전쟁 속에서만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2023. 6. 12.)
주
↑1 | V. I.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최호정 역, 박종철출판사 2001, 105쪽 참조. 여기서 ‘경찰의 폭력’은 국가권력이 휘두르는 폭력을 통칭한다고 일반화해도 좋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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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이와 달리 알튀세르는 ‘매개’나 ‘형성’ 등의 개념을 버리라고 선동한다.(읽기78-79) 이는 경험주의를 혐오하는 그의 반유물론적 편향에 기인한다고 여겨진다. 알튀세르의 반유물론적 편향에 대해서는 추후에 논하기로 한다. |
↑3 | G. Lukács: Es geht um den Realismus, in: Probleme des Realismus I, Neuwied/ Berlin 1971, 322쪽 참조. 이하 ‘리얼리즘’으로 약칭. |
↑4 | M. J. Inwood: A Hegel Dictionary, Blackwell Publishers 1992, 185쪽. |
↑5 | A. Seghers: Ein Briefwechsel zwischen Anna Seghers und Georg Lukács, in: Probleme des Realismus I, Neuwied/ Berlin 1971, 347쪽 이하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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