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62호 2-2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백창욱 ㅣ 목사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시대의창. 활동가들과의 간담회, 토론회에서 오간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촘스키를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누구와 비교하면 단박에 이해할까. 나는 리영희교수가 떠올랐다. 대안언론 <뉴스타파>에서 맨 마지막에 등장하여 클로징멘트 하는 분. “내가 종교처럼 숭앙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야, 소위 애국 이런 게 아니야. 진실이야.”

리영희의 이 말은, 완전 통제된 언론환경 아래에서 굴하지 않고 진실을 증언하여 불의한 권력으로부터 갖은 탄압을 받았던 분이 일생 마지막에 토로하는 말씀이어서 강한 울림을 준다. 촘스키는 리영희같은 사람이다. 그가 알고 경험한 미국에 대한 진실을 양심적으로 증언하는 사람이다. 연배도 거의 같다. 리영희는 29년생, 촘스키는 28년생이다. 리영희는 2010년 향년 81세로 세상을 떠나셨고, 촘스키는 올해 96세이다.

모두 3권짜리 이 책은 각 권마다 부제가 있다.1권 ‘권력이 여론을 조작하는 방식에 관하여’ 2권 ‘권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방식에 관하여’3권 ‘민중이 권력에 저항하는 방식에 관하여’ 이다. 책의 성격이 미국 시민단체 활동가들과의 대화인지라 각 권의 제목을 보다시피 문제의식이 뚜렷하다. 책이 줄곧 말하는 핵심적 결론을 말하자면, 여기서 권력은 미국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부유한 소수들을 말한다. “미국이 원래 계획했던 시스템이란 바로 부유한 소수의 국가지배였고 그 후 200년 동안 그 근본적 계획은 달라지지 않았다. 뚜렷한 계급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부유한 소수“는 의회와 행정부 양쪽을 통제하는 반면, 민중은 뿔뿔이 분산되고 산산조각났기 때문에 단결하여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추진할 수 없게 돼 있다. 나라를 소유한 사람들이 나라를 통치해야 한다. 누가 나라를 소유했는가? 기업들이다. 즉 미국적 민주주의의 원칙은 이런 기업 소유자들이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국내외 민중을 희생시키는 일이 있어도 자신들의 권력을 극대화하려고 한다.(3권 125쪽) 미국식 민주주의의 실체는 기업이고 이들이 국가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 결론이 세 권짜리 긴 이야기를 압축하고 또 압축한 말이다. 전 세계를 상대로 깡패짓을 일삼는 펜타곤도 이들의 하수인인 것이다.

일전에 나는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를 미국의 범죄적 역사서라고 불렀는데 이 책 역시 미국의 범죄에 대한 구체적인 보고서라고 말할 수 있다. 덕분에 매우 세부적인 사실까지 접했다. 예를 들면, 1962년 쿠바 핵미사일배치로 인해 소련과 미국간 일촉즉발의 긴장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호시탐탐 쿠바침공을 노리던 미국이 행동 개시에 돌입하는 상황이었다. 부득이 쿠바는 동맹국 소련에 지원을 요청하여 은밀히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한다. 그런데 쿠바 미사일 사태가 전혀 엉뚱하게 전개되어 쿠바와 소련 간에 교전 직전까지 갔었다는 건 이번에 알았다.내용은 이렇다. 흐루시쵸프와 케네디는 위기를 끝내기로 합의를 했다. 그 중 하나는 쿠바에 배치한 핵미사일의 통제권을 소련이 회수하는 것이었다. 즉 그동안은 비록 소련미사일이지만 쿠바가 통제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핵미사일 통제권을 고수하려는 쿠바와 회수하려는 소련 간에 교전직전까지 갈 정도로 감정이 격앙했던 것이다. 소성리에 배치한 사드기지는 전적으로 미군이 통제운영하고 한국군은 고작 경비나 서는 현실에서 쿠바의 미사일 자주권행사는 놀랍고 부러운 일이었다. 이 때 정치공작의 명수 미국은 몽구스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쿠바에 테러를 일으켜 무려 400여명의 사상자를 낸다. 이유는 쿠바의 보복을 유도하여 더 큰 침공(핵전쟁)을 노리는 것이다.그러나 쿠바는 참고 지나간다. 그렇게 3차 핵전쟁은 일촉즉발의 위기를 벗어난다. 쿠바의 미사일 위기 역시 미국의 본모습이 얼마나 호전적인지를 보여주는 한 사례일 뿐이다.

또 하나. 미국의 정치변동사건중에는 워터게이트도 있다. 나는 단지 그 사건이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워터게이트가 폭로될 즈음에 그 사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범죄인 코인텔프로그램(Counterintelligence Program)도 공개됐다. 1972년 그 당시 정보공개법에 따라 코인텔로 부르는 FBI의 대규모 비밀작전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그것은 미국 행정부가 노골적으로 행한 엄청난 범죄사건이었다. FBI가 흑인지도자를 암살하고 흑인저항운동을 분쇄하기 위해 인종 폭동을 조직하고 무엇보다 미국 사회노동자당에 몰래 들어가서 당원리스트를 훔쳐서 당원들을 협박하고 회사에 찾아가서 당원들을 해고하라고 압력을 넣는 등의 악행을 무려 15년이나 자행했다. 즉 공화당 요원 몇 명이 민주당사에 침입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중대범죄이다. 그런데 권력에 대해 온순하고 순종적인 언론은 워터게이트는 대서특필하면서 코인텔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했다. 이 사례는 미국의 소수부자들이 대통령까지 갈아치우고 언론을 지배하는 막강한 권력 지배방식을 증명한다.

사실 이 책에서 촘스키는 미국이 자행한 무수한 불법성 사례들을 증언한다. 내가 예를 든 두 사건, 즉 미국이 쿠바에 자행한 작전명 몽구스 테러, 코인텔프로그램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 많은 사건을 어떻게 일일이 말하랴.

촘스키와 활동가들은 시종일관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미국이 저지르는 더러운 공작, 폭력, 불법 등 허튼 짓들을 이야기하자니 대화 분위기는 무거웠다. 현재도 비관적이고 미래도 역시 비관적이었다. 그 속에서 그들은 어떤 대안을 찾았을까.

촘스키는 로자 파크스 이야기를 했다. 로자는 1955년 몽고메리 버스보이콧을 일으킨 흑인여성이다. 역사는 로자 개인의 용감성, 남다른 신념을 말하지만 사실 로자는 잘 조직된 공동체 출신이었다. 공산당 뿌리를 갖고 있는 이 공동체는 흑백 분리 시스템을 철폐시키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고, 로자는 그 계획을 실천한 행동가였다. 즉 로자가 속한 공동체 사람들은 오랫동안 변화를 이루어내기 위해 함께 일해오고 있었다. 그런 뒷심이 있어야 변화가 일어나는 법이라고 촘스키는 강조한다.

소성리 사드철회투쟁이야말로 바로 그렇다. 어느 한 개인이 이끄는 투쟁이 아니라 한반도의 참 평화를 소망하는 무수한 민중들의 결의가 한 데 모아져서 이 나라의 신주단지였던 미군에 대해 이제는 그만 사드 가지고 이 땅을 떠나라고 외치는 것이다.

또 한 사례. 1965-66년 초창기 월남전 반전운동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촘스키 개인은 절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100% 확신할 정도였다. 보스턴에서 반전시위를 하려면 우선 광범위한 주제를 내세우고 그 마지막에 가서야 조심스럽게 베트남전쟁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그랬는데도 청중은 반전 활동가 숫자보다 겨우 몇 명 많은 정도였다. 그런데 1968년 1월 30일 베트남 뗏공세 이후 미 전역에서 갑자기 변화의 폭풍이 불었다. 닉슨은 시민들의 거대한 반전시위에 굴복하였고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에서 활동가들이 촘스키에게 던진 마지막 질문이다.당신은 매일 자기 전에 절망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렇게 전망이 밝지 않은 현실에서 계속 이런 일을 하도록 시키는 힘은 무엇인가? 우리 앞에는 두 가지 선택이 놓여 있다. 하나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것이라고 장담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선택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면 양심적인 사람은 후자의 선택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촘스키의 고민이 어찌 그 한 사람만의 고민이겠는가. 이 책이 미국 활동가들과 지성인의 대화이긴 하지만 무대를 한국으로 옮겨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우리한테도 절실한 내용들이다. 물론 미국처럼 전 세계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지만 부유한 소수가 미국내 사정을 요리하듯이 한국도 한 줌의 대자본가들과 그들의 카르텔이 좌지우지하는 현실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은 매우 비관적이라는 것, 그러나 우리는 희망을 놓을 수 없다는 것, 양심적인 사람은 비록 비관적인 현실이지만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 너무 평범해서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 정답없는 인생사 세상사에서 이처럼 솔직한 진단이 어디 있는가. 무슨 대단한 비방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 않는 촘스키의 담백함 때문에 더 고개가 끄떡여진다. 촘스키는 마지막 처방으로 개인의 양심적인 실천을 말했지만 만악의 근원인 미국이, 특히 실제 미국을 독점한 부유한 소수들이 양심을 찾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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