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올해로 탈시설한 지 만 13년 차인 임재원이라고 합니다. 저는 9살 때 절 홀로 키우셔야 했던 할머니에게서 떨어져 지내야 했습니다. 중증 장애가 있는 제가 남들과 같은 학령기에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선택지에는 시설에 맡겨지는 것이 가장 최선이었던 듯합니다. 그렇게 시설에서 초중고 12년을 포함 총 13년을 살아야 했습니다.
왜 가족과 떨어져야 하는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어린 시절에 저는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지냈던 터라 잔병치레도 많이 했습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나의 장애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틈도 없이 짜여진 식단과 짜여진 하루일과를 마치 공장에 기계가 돌아가듯 아무런 감흥 없이 그저 흘려보내는 수준이었습니다. 그곳은 ‘나’라는 인격이 어떤 존재인지 발견할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지요. 저는 왜 그렇게 지내야만 했을까요? 시설에서 살 때는 몰랐습니다. 답답하고 억눌린 그곳에서의 생활을 장애를 가진 몸인 사람이 받아들여야 할 운명처럼 여기며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평생을 지내며 삶과 죽음을 맞이하는 다른 장애인들을 보며 그것이 내가 살아갈 삶이라고 체념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가슴 깊숙이 이건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습니다. 아무리 봐도 제 삶이 보통의 삶과는 달라야 하는 것이 억울했습니다. 단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나의 자유가 빼앗기고 누군가의 선의만이 나의 생존을 결정짓는 그 삶은 저에게 마치 온 세상이 나를 거부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겪어야만 하는 삶처럼 느껴져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스스로 삶에 대한 의지를 포기해 버릴 것만 같은 위협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탈시설을 결심했고 시설 밖에서의 삶이 만만치 않겠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적어도 시설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참아야 하고 평생을 누군가의 허락에만 의존해야 하는 그 삶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 두려움을 앞서 결국에는 탈시설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꼬박 시설에서 지냈던 시간보다 시설 밖에서 지낸 시간을 넘기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이 사회 속에서 나의 지워진 흔적을 되찾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갔습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난 무엇을 할 때 기뻐하는지, 난 무엇을 원하는지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비로소 제게 자유가 주어졌을 때 가능했던 것들이었습니다. 단순한 선택조차 누군가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시설에서는 나의 의지나 뜻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그저 저는 누군가의 착한 장애인으로 살아가야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탈시설 후 지금까지 삶은 늘 의문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제야 조금 자유롭게 살아가는 듯하고 이제는 내 삶에 행복만이 가득할 줄 알았던 탈시설은 이따금 내가 과연 탈시설 한 것이 맞나라는 감정이 들게 했습니다. 몸은 시설 밖에 나와 있지만 여전히 나의 선택과 결정을 향해 의문을 품고 나를 통제하려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시설에서 산골짜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만 삶을 살아야 했는데 지역사회에서도 내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과 공간이 정해져 있는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나를 대하는 사람마다 나를 불쌍하고 불운한 존재로 여겨서 자신의 선의를 맘껏 선사하려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저는 이곳이 시설과 다름이 없음을 느낍니다. 결국 시설 밖에서도 저는 흐릿하고 불필요한 존재로 사람들에게 여겨지는 장애인일 뿐인 것입니다.
이 땅에 많은 장애인이 이런 삶을 강요받으며 살아갑니다. 특히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장애인은 생산성이 없는 무가치한 존재로 여겨지며 함께 공존하는 것을 오히려 방해로 간주하여 한 곳에 몰아넣고 눈앞에서 지워버리기에 시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본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한다면 우리는 그 어느누구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자본의 논리가 인간 삶을 결정한다면 우리는 인간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닌 자본의 세상에서 사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그렇기에 자본주의가 절대적 악이라고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본질의 문제이자 순서의 문제입니다. 이제는 빼앗겼던 우리의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특히 비장애인만이 인간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 세상에서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나아가 우리가 가진 어떤 외형적 조건과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동등한 가치가 있음을 전제로 한 세상이 결국 우리 모두를 지켜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결국 정치와 경제가 뜻을 합쳐야 합니다. 그래서 저 임재원은 2024년 총선을 맞아 탈시설장애인당 대구지역 후보자로 출마합니다. 저는 아래와 같은 공약을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 바른 사회, 대한민국 장애인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는 일을 위해 발표하는 바입니다.
하나, 대한민국 장애인 거주시설 즉각 폐쇄입니다. 하늘 아래 좋은 시설이란 없습니다. 장애인은 더 이상 보호와 돌봄의 객체가 아닌 권리를 가진 주체로서 자유롭게 내가 살 지역을 선택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해야 합니다. 시설이란 형태가 있는 한 장애인을 지역사회에서 살게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불가능합니다. 유엔이 발표한 탈시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제2조 8항, 시셜수용을 종식하기 위한 당사국의 의무에서 모든 형태의 시설수용을 폐지해야 함을 말하고 있기에 대한민국은 국제협약을 비준한 나라로서 이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 탈시설 장애인이 직접 참여하는 시설 거주 장애인 교육 및 조사 실시입니다. 시설을 폐쇄할 때 그 준비 과정에 있어 무엇보다 당사자성을 놓치지 말아야 하며 당사자의 요구와 필요가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시설수용은 그 자체만으로 상당한 기회와 권리가 박탈당해 왔기에 물리적 이동만 한다고 해서 모두가 지역사회에서 잘 적응해서 살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지역사회에 살기 위한 교육과 시설 거주 장애인의 필요와 욕구에 따른 지원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 일은 또한 탈시설 가이드라인 제 3항 20조에 따라 시설수용의 영향을 받은 이들을 비롯한 장애인이 주도해야 합니다.
하나, 시설수용 생존자 피해 배•보상 체계 구축입니다. 탈시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탈시설 장애인을 시설 생존자라고 명명합니다. 실세로 우리는 지난 코로나바이러스 펜데믹 발생 이후 시설이 장애인의 생명을 지키기에 얼마나 취약한가를 목도 했고 그 현실은 전쟁, 기근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 역사적으로도 더욱 극명히 드러났습니다. 시설에 거주한다는 것은 수많은 장애인이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감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이란 생물학적 특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설수용 기간동안 박탈당한 인간으로서의 다양한 권리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탈시설 가이드라인 9조 구제 및 배•보상에 관한 지침에 근거 당사국의 진정성 어린 공식적인 사과와 생존자의 사회 내 지위를 증진하기 위한 추가적 교육, 역사 및 기타 문화적 조치를 제공해야 합니다.
하나, 장애인 지역사회 주거 안정 지원제도 강화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삶의 요소 중 하나인 주거 공간은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과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안정감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은 매우 제한적이며 불안정합니다. 비장애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차별 당한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안정된 주거 공간을 마련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에 제도로서 보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탈시설 가이드라인 제 3조 접근 가능한 주거 항목에 있는 근거에 따라 관련 지원 법률 제도를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마지막입니다. 하나,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종합조사표 개편입니다. 장애인에게 있어 활동지원 제도는 생명과 다름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 많은 장애인들이 불합리한 기준과 근거에 의해 반쪽짜리 인생을 살고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중증장애인들에게는 더욱 절실한 것이 활동지원 시간인데 상당수 필요한 만큼 시간을 지원받지 못한 채 많은 활동을 여전히 제약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종합조사표에 의거 진행되는 활동 지원 등급 심사는 상당수 장애인에게 모욕감과 수치감을 안겨주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현장에서 그렇게 진행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공급자 중심의 서비스 행태로 변질 되어 버린 종합조사표를 수요자 중심의 서비스 제공을 위한 도구로서 전면 개편을 해야 합니다.
이상 저 탈시설장애인당 후보 임재원은 우리 모두가 나다운 세상을 살기 위하여 상기 5가지 공약을 발표하는 바입니다. 나다운 세상이 아름답습니다. 나의 결정이 존중 받는 세상을 꿈꿉니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바라는 분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