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56호 7.8-6 자본주의를 통렬하게 풍자한 찰리 채플린의 명작 – 모던 타임즈(Modern Times)- 1936년

권종술 – 민중의 소리 기자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찰리 채플린의 대표작으로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온인 지 벌써 87년이 됐다. <모던 타임즈>가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웃음을 통해 자본주의의 한계와 모순을 통렬하게 풍자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담아낸 ‘자본주의’에 대한 풍자와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본주의는 무섭다. ‘자본(돈)’이 ‘주의(이데올로기)’가 된 사회는 피도 눈물도 없다. 자본주의는 이제 이를 부정하고선 살아남기조차 힘든 종교적 신념처럼 자리 잡고 있다. 돈을 위해, 보다 많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렇게 사람은 체제에 종속되고, 노동자들은 소외됐다. 자본주의가 가진 이런 모순을 채플린은 일찌감치 간파했다.

<모던 타임즈>에 등장하는 공장 사장은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신문을 읽으면서도 CCTV로 공장 곳곳을 감시한다. 그의 지시로 콘베어 벨트는 쉼 없이 움직이고, 노동자가 견디기 힘든 극한까지 속도를 올린다. 잠시 화장실에서 휴식을 취하던 공장 노동자 떠돌이(The Tramp)에게 “다시 돌아가 일해”라는 사장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공장 사장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다. 심지어 밥 먹는 시간마저 줄이겠다며 자동급식기를 개발한다. 노동자들은 마치 기계의 부속처럼 움직인다.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고 주인공은 종일 나사만 조인다. 나사만 조이던 주인공은 단추만 봐도 조이려 한다. 그렇게 단순 노동으로 인해 주인공은 미쳐버린다.

나사만 조이다 미쳐버린 공장 노동자 떠돌이의 이야기는 20세기 초반 도입된 컨베이어 시스템에 대한 풍자다. 1913년 포드 자동차는 세계 최초로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했다. 노동자들은 움직이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주어진 단순한 일만 하면 됐다. 효과는 대단했다. 자동차 1대 당 생산 시간은 630분에서 93분으로 단축됐다. 생산성 향상은 자동차 대량생산으로 이어졌고, 경제는 호황을 맞았다.

하지만 모순은 싹트고 있었다.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한계도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전의 노동자들은 생산의 모든 단계를 책임지는 ‘장인’이었지만 대량생산 시스템에서 노동자는 ‘장인’이 아닌 ‘도구’로 전락했다. 로봇과 다름없이 일하던 주인공은 강박증에 시달리다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영화 도입부에서 공장으로 출근하는 노동자들을 채플린은 목장으로 끌려가는 양에 비유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생산은 늘어났지만, 노동자들의 소득은 제자리걸음이었다. 결국, 소비가 생산을 따라가지 못해 재고가 늘어났다. 하지만, 주식은 여전히 상승했다. 그렇게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던 자본주의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대공황이 닥친 것이다. 채플린은 이런 자본주의와 대량생산 시스템이 가진 한계를 <모던 타임즈>에서 신랄하게 풍자한 것이다.

<모던 타임즈>는 한동안 우리나라에선 상영이 금지된 영화였다.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 이후에도 오래도록 국내에서 개봉되지 못했다. 그러다 1988년 제작 52년 만에 극장에서 개봉했다. 지각 개봉이었지만, 27만 명이 관람해 당시 개봉영화 가운데 6위를 차지했다. <모던타임즈>가 개봉될 수 있었던 건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국민이 이룩한 민주화 덕분이었다. 그리고 <모던타임즈>의 흥행이 가능했던 건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겪으며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이란 인식을 키워가던 당시의 노동자들에게 채플린의 메시지가 여전히 유효했기 때문이다.

노동전선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이전 글

[강좌] 역사 유물론 _ 한형식

다음 글

[전선] 156호 7.8-7 부르주아 국가가 품은 씨앗, 파씨즘에 대항하며

댓글을 입력하세요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