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50호 1-2 남파공작원 출신 김진계의 <조국 - 어느 북조선 인민의 수기>를 읽으며

김남기 ㅣ 역사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지난 9월 북한사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발표를 맡게 된 책이 있었다. 그 책은 바로 남파공작원 출신인 김진계씨가 쓴 <조국 – 어느 북조선 인민의 수기>였다. 사실 이 책을 발표로 담당하게 되었을 때는 딱히 별 생각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느낀 것은 참으로 소중하고 막대한 것이었다. 일제 말기부터 소련을 포함한 동구권 사회주의 체계가 붕괴되기 이전까지의 시대를 포괄한 한 사람의 일생을 보았기 때문이다.

김진계의 인생은 파란만장하다. 1918년 5월 강원도 명주군 사천면 판교리에서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김진계는 1930년대 초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을 보았고,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에 의해 2년 동안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와 학대당하고 고통받는 조선인 여성과 미군 B-29기의 폭격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무차별 폭력을 경험했다. 1944년에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강릉에서 해방을 맞이했고, 그 과정에서 일본군을 무찌르고 남진한 규율이 잡히고 신사적이며 민중들에게 겸손한 소련군을 직접 보았다.

해방 이후 조선공산당에 입당했으며, 당의 명령을 받고 경찰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미군정 휘하에서 친일파 경찰들이 활기 치는 것을 보고 10.1사건 이후에는 농사일을 지으며 살았다. 이후 벌목생활로 생계를 이어나가다가 1950년 한국전쟁의 소식을 들었다. 마을에 들어온 인민군을 따라 지역 보안사업을 맡는 간부가 되었으며,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이후 후퇴하는 인민군을 따라 자발적으로 인민군에 입대했으며, 중공군을 돕기 위해 잠시 만주 지역에 배치되어 트럭 운전연습을 지도했다. 1.4 후퇴 이후 다시 전선에 배치되어, 1953년 초까지 전방에서 군 생활을 했다.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나기 2개월 전인 1953년 5월부터 북한에서 본격적으로 생활을 꾸려나갔으며, 북한에서 추진한 전후재건사업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1950년대 북한에서 민주전선실상을 지내기도 했으며, 북한에서 진행한 통일전선사업에도 참여했다. 1958년부터 북한 정부에서 남파공작원을 선발되어 무려 12년간 남북한을 왔다 갔다 하며 생활을 이어나갔다. 전쟁 이후 북한에서 가정도 꾸렸고, 북한 여자와 결혼하여 5남매를 꾸린 가장이 되기도 했으며, 1961년 청산리 운동 및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 등도 북한에서 살면서 경험했다. 1968년 김신조의 청와대 습격 사건과 푸에블로호 사건도 북한에서 직접 들었다. 공작원 생활 막바지인 1970년 8월 3일 남한에서의 활동을 제대로 인정을 받게 되어, 북한의 수상 김일성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영예인 혁명가 가족 증명서까지 받았다. 그러나 1970년 경남 거제도에 침투했다가 주민들에게 발각되어, 체포됐고 18년간 감옥생활을 하게 됐다.

박정희가 유신독재를 실시하기 2년 전, 거제도에서 체포된 김진계는 대략 18년이라는 세월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그는 남한에 있는 가족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1970년대 중반에 전향을 했으며, 대구 및 대전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이 과정에서 간첩조작 사건으로 피해를 본 서승을 포함한 여러 인사들을 만난 것으로 확인된다. 감옥에서 박정희 사망 소식과 12.12 쿠데타 그리고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소식을 접했으며,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제6공화국이 탄생하게 됨에 따라 88올림픽 이후인 12월에 되어서야 출옥했다. 출옥한 이후 그는 자신의 일생을 담은 이 책을 쓰는데 2년이라는 세월을 보냈고, 그로부터 1년 뒤인 1991년에 사망했다.

나는 김진계의 일생을 보며, 우리의 비극적인 현대사가 한 사람을 통해서 이리도 잘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하나의 인간이었던 그였지만, 그와 같은 이들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은 과거 반공주의가 강요한 똘이장군식 이미지였다. 민족의 통일과 자주적인 조국을 꿈꾸었던 그에게 한국사회가 붙인 딱지는 ‘남파간첩’이었다. 이승만과 박정희 시절 우리는 ‘공산당’하면, 무조건 악마화해서 보는 습관이 있었다. 아니 북한과 북한 사람들 존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북한에 사는 사람들을 마치 인간이 아닌 괴물이나 늑대, 뿔달린 악마로 묘사했다. 남파간첩의 이미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얼굴에는 그러한 이미지가 전혀 없다.

저자 김진계가 살아온 북한이라는 사회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김진계 스스로가 인정하듯이, 당시 북한 사회는 분명 지상낙원은 아니었다. 그러나 반공주의 사회가 그리도 얘기하는 “주민들의 얼굴이 강제노동에 시달려서, 강압적이고 통제일변의 체제에 지쳐 절망감 속에 불만만 가득찬 사회, 강제수용소”는 더더욱 아니었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 사회는 새로운 사회를 세우겠다는 일념에 가득 찬 사회였다. 김진계에 따르면, 당시 북한 정부는 전 인민들에게 무상교육과 무상의료의 혜택을 주기 위해 전후 재건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노력을 했고, 배급의 량을 늘려 최소한 인민들이 굶지 않도록 했다. 육류 소비 또한 힘든 일을 하는 노동자들을 우선으로 배려해줬다.

또한 김진계가 본 북한 사회는 일각에서 생각하는 죄없는 사람에게 무차별 폭력을 휘두르는 사회가 아니었다. 대체로 죄질이 무겁거나 가볍거나 상관없이, 가급적이면 처벌보다는 설득하고 교양해서 뉘우치도록 유도하는 사회였다. 물론 정치적 범죄와 살인 그리고 강간 등의 범죄는 그 지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엄벌에 처해졌으나, 이러한 범죄는 어떤 나라든 엄벌에 처하는 것이 상식인 행위다. 무튼, 김진계가 경험한 20년 동안의 북한 사회는 무차별 폭력을 대다수 민중에게 휘두르는 사회가 절대 아니었다. 나는 이러한 사실들이 종편에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탈북자들에 의해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너무나도 분하고 화가 나기까지 했다.

김진계의 수기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을 뽑자면, 전쟁 당시 그가 직접 경험한 미군 폭격의 경험이다. 전쟁 시기 김진계가 경험한 폭격은 말 그대로 지옥 그 자체였다. 전쟁 초기 인민군이 들어와 지역 보안사업 간부를 맡은 시점부터 전쟁이 끝나기 직전까지 김진계는 미군의 폭격을 경험했다.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고통스럽게 죽어나간 민간인들의 얘기는 지상에서 일개인이 경험한 폭격의 참상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자세하게 알려줬다. 또한 김진계는 인민군으로써 전방에 있으면서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미군의 세균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미군이 폭탄에다가 파리와 같은 세균무기를 뿌렸고, 이 때문에 며칠 후 수많은 북한 사람들이 질병에 걸려 죽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경험을 읽으면서 나는 미국이 한국전쟁 당시 자행한 짓이 전쟁범죄라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남파간첩 혐의로 남한에서 체포된 이후 김진계가 감옥에서 겪은 이야기도 정말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소위 미국이 그토록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이 비자본주의자에게 강요하는 폭력성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인 생각하는 자유는 강제로 고쳐지는 것이 절대 아니지만, 김진계에게 전향을 강요하는 미국과 박정희 정권은 한 인간의 내면을 황폐화시키고 패배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 온갖 악질적인 행위들을 자행했다. 정말 자유민주주의가 체제의 기본원리인 사회라면 이런 전향이라는 말 자체가 용납되지 않지만, 박정희 정부는 그런 자유를 1도 인정하지 않는 사회였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존재하지도 않은 셈이었고, 김진계는 자신의 수기를 통해 그걸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책에 대해 종합적으로 얘기하자면, 정말 말 그대로 우리가 잘 모르는 북한사회를 얘기해줘서 좋았다. 사실 이 책은 지도교수가 상당히 흥미롭게 읽은 책이라고 한다. 비록 내가 본 김진계와 지도교수가 인식한 김진계의 방향은 다르지만, 이런 훌륭한 책을 추천해준 것 자체만으로도 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알려준 지도교수에게도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2023년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북한이라는 존재를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북한 사회를 무조건적으로 억압과 강제노동 그리고 굶주림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려는 모습을 보인다. 탈북자들을 모아놓고 방송하는 종편 채널들은 그런 왜곡된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한 관점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북한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이미지들은 과거 반공주의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이기 때문이다.김진계가 경험한 북한 사회는 분명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이상을 향해 전진해나가는 사회였다. 그리고 그가 경험한 사회는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분명 다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북한에 대한 여러 편견이 다시 한 번 깨졌으며, 사회주의 사회 또한 인간이 사는 사회임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됐다. 이 책을 읽지 않은 내 주위 동지들에게도 이 책의 일독을 강력히 권하고 싶다. 분명 이 책을 통해 얻는 점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올해도 북한에 대해 올바른 정보와 팩트를 전달하고자 하며, 이 책의 서평도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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