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후기 〉역사가 현대사가 되려면

김석정 l 노동당 정책위원회 의장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라는 제목으로 나온 현장과 광장 3호를 받아보았을 때 ‘현대사’인 역사가 갑자기 생각나서 울컥하는 것이 있었다. 2호 제목인 “영원한 승리의 그 날까지”가 뜨거운 에너지와 힘찬 의지를 전달하고 있었다면, 이번 호의 제목은 무언가 냉철하게 사고하고 행동하려는 마음을 담은 것 같았다. 편집자의 글에 나온 ‘사회 변화를 향한 변증법적 재해석과 실천 철학으로서의 역사학을 강조한 것’이라는 의미 풀이도 적절해 보였다. 나의 방식으로 풀어본다면, 역사는 사건 자체의 유사성에서, 구조에 따른 의미에서, 그 영향에서, 해석과 실천에서 각각 현대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할 것이다.

사건 자체의 유사성이란 말 그대로 비슷한 일이나 패턴이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새로운 권력이 등장하여 지나간 권력을 정리하려 하는 일 같은 것이다. 구조에 따른 의미는 우리가 잘 알듯이 고대의 노예제적 생산양식과 중세의 농노제적 생산양식이 오늘날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생산을 담당하는 계급에 대한 착취라는, 비록 외양은 다르나 그 의미에서 하나의 맥락으로 관통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번 호 특집에서 다룬 한국전쟁, 전태일 동지의 분신 그리고 광주민중항쟁과 같이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아직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현대성을 가진다.

이처럼 김동국 동지는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 즉 정전체제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 … 한국전쟁 시기 휴전회담과 협정 체결 과정에 주목’하였다. 글에는 휴전협정이 시작된 배경에서부터 그 과정, 그리고 회담의 결과가 잘 정리되어 있다.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에 기초하여 한-미-일 세 나라 사이의 관계가 성립되었고, 동북아시아 역내 관계는 아직도 ‘남북한의 표면적 대립 구조보다 더 강한’ 관련국들의 정책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정전체제의 변화는 ‘당사국의 주체적 노력과 해결 의지’ 없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강력한 관련국들의 영향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그 의지와 노력은 강력하고 또한 현실적인 기초를 담고 있어야만 한다. 특히 지난 몇 년간 미국이 제국주의 패권을 잃지 않기 위해 강력하게 중국 견제를 시작한 이후 정전체제를 해체하여서 한-미-일 삼각관계에서 탈피하고, 미-중의 대결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요구된다. 그러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당사국의 주체적 노력은 더더욱 중요해 보인다.

광주민중항쟁을 다루는 최승원 동지의 글에서도 오늘날 ‘8~90년대 전국 곳곳에서 함께 일구었던 5.18의 역사가 광주에서는 80년 광주 5.18에 머물러 기념화되고 박제화’되었음을 지적하고 ‘몹시 패권적이고 은밀한 지역 내에서 작동하는 의사 수렴의 구조와 과정’을 비판하며, ‘80년에 고립되고, 광주에 고립된 5.18을 해방’시켜 ‘5.18을 여전히 현재에 살아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역사(과거의 사건)는 고립된 하나의 사건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로서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기획과 글들로 구성된 이번 특집을 읽으며, 다시 한번 역사를 고정된 사건에서 오늘 실천하는 것으로 만드는 ‘변증법적인 재해석’의 필요성을 느꼈다.

정세를 다룬 세 편의 글들도 적확한 내용을 담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선, 신재길 동지의 글은 인플레이션을 용인하고 과감한 재정정책을 통해 완전고용을 달성하고, 중국에 의존적인 산업 밸류체인을 개편하려는 미국의 노력이 스테그플레이션을 야기할 공산이 크다고 본다. 즉, 대 중국 배제정책을 의제 자본주의라는 가치 이전/약탈 시스템(미국이 가치가 없는 종이 돈(달러)을 가치 생산물(중국의 상품)과 교환하는 체제)이 붕괴되는 과정으로 파악하고, 세계 경제의 블록화가 야기하는 과잉생산 때문에 결국 경제는 침체하는데 물가는 올라가는 스테그플레이션을 예측하고 있다.

저자가 정확히 예측한 바와 같이 미국 대선의 결과로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행정부가 바뀌었지만, 그 결과와 무관하게 미·중 양국의 대립은 격화하고 있다. 한국전쟁을 다룬 특집 글에서도 말한 바이지만, 우리는 이러한 블록화의 경향과 미-중의 대결이라는 국면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도록 정전체제를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결국, 저자는 이러한 경제 – 정치적 상황에 세계적 차원에서 계급투쟁이 격화될 것으로 보고,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진출이 요구됨을 주장한다. 즉, 단일한 노동자 계급 정당을 건설하고, 부르주아 정치질서에 파열구를 내는 것을 앞으로의 10여 년의 기간 노동자 계급의 전략적 목표로 제시한다. 충분히 동의하는 방안이며, 많은 동지가 이러한 과정에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글과 비슷한 맥락에서 쓰인 글로, 연구 부분의 홍승용 동지의 글이 있다. 이 글에 대해서는 우선 저자의 글 취지를 전체적으로 요약하고 그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평을 드리고자 한다. 우선 저자는 사회주의 대중화의 필요성이라는 주장이 있음을 소개하며 실질적으로 성과를 거둔다면 노동자 민중의 입장에서 좋은 일일 것이라고 정리하며, 사회주의 대중화 사업에 따르는 어려움 역시 소개하며, 사회주의운동을 통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히 의식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한다. 저자로서는 유사 이래의 착취관계를 근본적으로 끝내고, 인류가 그동안 발전시켜온 생산력과 문화유산을 모든 사회구성원이 함께 누릴 수 있는 사회, 자본주의 너머의 풍요로운 평등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바로 사회주의 운동을 통해 추구하는 바라고 정의한다.

저자는 이 글의 부제에 있는 ‘풍요로운 평등사회’를 만들어낼 사회주의 운동의 필요성과 가능성은 자본주의 사회 자체가 만들어내고 있다고 하며, 불가피한 자본권력과의 전쟁을 위한 주동력인 노동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인정하면서, 각 부문운동과는 느슨한 연대 수준에서 시작하더라도, 여기에 머물기보다 변혁운동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지양함으로써 부문운동의 당면과제들이 더 근본적•효과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경로를 밝힘으로써, 변혁운동과 제반 부문운동의 유기적 결합을 추구하는 것을 제안한다. 또한, 반제국주의 투쟁의 경우, 미국이나 일본에 대한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예속관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투쟁에 국한될 수 없고, 한국 독점자본의 제국주의적 발전에도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주의의 대중화나 사회주의 연합정당 건설 등과 같은 사회주의 변혁운동의 일차 목표는, 노동자 민중을 국가권력의 실질적 주인으로 만드는 일, 곧 노동자국가를 건설하는 일로 규정하고, 그 과정에서 정책수립의 기본 방향은 절대다수 노동자 민중의 기본생존권을 보장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현실적 방안들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방법으로 어떤 유산이나 이론 혹은 모델을 통째로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데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분석적으로도 파악하여, 오늘의 실천적 필요성에 비추어 버릴 부분과 받아들일 부분을 선별하고 필요한 만큼 활용해 우리 자신의 모델을 종합해내는 방식, 즉 분석적-종합 방식의 주체적 활용을 제기한다.

그 주체로서의 전위에 대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임을 밝히고, 대신 전위가 자신들의 위치를 특권화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들고, 운동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구현해나가며, 노동자국가가 자본독재와 다름없이 노동자 민중에 대한 억압기구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한 국가사멸의 이념을 현재의 운동방식과 정책 속에 반영할 필요까지 언급하고 있다.

본 서평자 역시 저자가 강조한 바대로, 착취관계를 끝내고 체제대전환을 끌어내는 것이 노동자 계급의 임무이고, 운동의 우선적 목표가 노동자국가의 건설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특히 그 과정에서 저자가 제시한 ‘분석적-종합 방식’이 정말로 받아들여지고 활용될 수 있다면 여러 사회주의 변혁운동 세력들이 함께 모여 운동을 올바르게 대중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사회주의를 내세운 정당의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인민들의 삶을 향상시키고 또한 다른 국가의 노동 인민들과 함께 나아갈 방안들에 대하여 여러 세력과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할 기회를 넓혀 나가도록 노력하겠음을 밝힌다.

정세 부분에 담긴 다른 글인 채만수 동지의 글은 ‘신종 코로나 대유행 시국 감상’이라는 한 발 떨어져 관조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제목과는 달리 코로나 대유행과 관련하여 거짓으로 덮여있는 것들을 드러내어 논파하는 글이었다. 이러한 목적은 저자가 자본주의 사회를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구조와 기능•운동의 많은 것들, 특히 그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것들을, 악의에 의해서든, 즉 목적 의식적으로든, 선의에 의해서든, 즉 무지에 의해서든, 신비화하고 은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로 글 모두에서 규정하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부르주아 인문•사회과학의 대중지배 때문에 대중은 저들이 떠들어대는 기만적 언설의 진정한 사회적 의미를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함을 미리 밝히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경제위기, “한국판 뉴딜”, 의사 파업, 인권의 전투적 수호자•인권의 천국 미국, 종교 혹은 득시글거리는 귀신들, 그리고 극우의 발호라는 각각의 장들에서 저자는 숨겨져 잘 드러나지 않는 구조와 도착된 논리들을 모두 끄집어내어 하나하나 과학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각각의 논거에 대해 더는 더할 것이 없을 정도로 도치된 논리와 현상에 대해 가차 없이 사실과 논리에 입각한 비판을 가한다. 마지막 장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의 발생•창궐을 다루고 있는데, 저자는 우선 고대•중세에도 존재했던 각종 팬데믹의 원인균들의 존재에 비겨볼 때 코로나-19의 원인균 발생은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며, 전염병의 확산은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라는 단순명쾌한 사실을 제시한다. 여기에서, 저자는 모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도록 강제하는 자본주의 사회체제가 팬데믹 창궐을 일으킨 진짜 원인이고,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더욱 고도로 조직된 사회에서는, 사회체제가 모여야만 하도록 강제하지 않는, 사실상 사회 성원 전체의 기꺼운, 따라서 철저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빨리 그 전염병을 극복하게끔 할’ 것이라고 정확히 지적하며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보여준다. 이 글을 읽으며 내내 긴 비판보다는 사실에 기초한 논리적인 비판이 거짓을 드러내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졌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한국판 뉴딜”을 ‘찬양’하는 마침이 인상적이었음을 밝힌다.

정세의 또 다른 글인 문영찬 동지의 글은 2020년 미국 대통령선거의 ‘중간’결과(투표자 수에서는 이겼으나 아직 결과 선언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를 보고 그 영향을 논한 글이다. 우선, 바이든 승리가 ‘트럼프에 대한 미국 민중의 심판이라는 민주주의적 요소가 담겨 있’으나, ‘자유주의 정치의 승리’로서 미국민들이 ‘노동자와 민중의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는 것을 머지않아 깨달아 갈 것’임을 밝히고, 동시에 트럼프를 지지한 절반 가까운 유권자들을 감안하면 ‘미국 노동자와 민중의 상당수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 반동적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또한, 유럽과의 동맹 강화와 그에 따른 대러시아 대결의 강화를 예측하고, 중국과의 패권 경쟁이 아시아에서의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고 또한, 대 한반도 전략에서도 북한 핵과 함께 변수가 될 수 있음을 적확히 지적하고 있다. 결론에서는‘세계사적 반동이 현실로서 극복된 것은 아니지만’‘(부르주아)민주주의는 … 세계사적 반동이 극복될 가능성이 자라고 있다는 것의 징표’로 받아들인다. 본인도 저자와 같이 미국에서의 민주주의가 일정 정도 회복되었다는 점에 대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미국민들이 더욱 각성한 의식을 가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일어나고 있는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 범죄와 살인, 또한 이미 상당 기간 존재했던 무슬림에 대한 혐오와 차별, 여전한 흑인 차별처럼 상당수 미국인의 반동적이고 인종적인 편견이 깨지기 전에는 미국 민주주의의 회복•성장이 힘들 것이라는 점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외에도, 지난 2호와 이번 호에 연재된‘과학과 기술의 정치화를 위한 이론적 주제들’과‘공동체적으로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질문’은 미처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질문들을 마주하게 하였고, ‘사회주의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 현장 부분의 몇 꼭지 글들과 쟁점은 우리가 맞닿은 현실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할 수 있는 글들이었다. 이번 후기에서 자세히 다루지는 못했지만, 저자들에게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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