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후기 〉역사는 과거와 미래의 대화

박은규 l 삼성피해자 공동투쟁

현장과 광장 3호의 표제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였다. 사설학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내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정의였다. 이 표제를 보고 현대성이란 고정불변이 아니라 늘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므로 그것이 진보인지 반동으로의 퇴보인지를 냉철하게 판단하는 것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는 시 호찌민의 ‘혁명에 앞서 마음을 먼저 고쳐 새로이 하자’는 엄중한 시대 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다잡을 것을 준엄하게 요구하고 있다. 전문 위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쓴 글들을 다 이해하고 습득하기엔 부족해서 내가 인상 깊게 읽고 받아들인 글들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노동자 계급은 정치질서 개편을 요구해야 한다>의 정세 분석은 이미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위기를 코로나가 촉진한 대공황의 위기를 맞이해서 노동자계급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요구하는 글이었다. 이 상황에 미·중대립의 격화속에서 미국의 대중국 거세질 압박과 한국에 대한 동참 요구가 것이고 북의 공세까지 더해지는 상황이 도래하고 대선 총선 일정과 맞물리게 되리라 예측한다. 미·중대립의 중심에 있는 한국에서 노동자 계급이 정치적 진출에 성공해 단일한 노동자계급 정당을 건설하고 부르주아 정치 질서에 파열음을 내고 진정한 노동자 민중의 민주정부를 구성하는 투쟁으로 나갈 것을 주문하고 있다. 당면과제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과 코로나발 대공황에서 진행되는 구조조정을 막아내야 한다고 제안한다.

<신종 코로나 대유행 시국 감상>에서는 코로나발 대공황 속에서 문재인 정부가 제시하는 ”한국판 뉴딜”이 갖는 기만적 성격을 폭로하고 있다. ‘디지털 뉴딜’이 가속화 하는 것은 재생산과정 저ㆍ반의 자동화 무인화일 뿐 일자리 안정은 불가능한 사기라는 것이다. 본질에서 노동자 대중의 이익이 아닌 철저히 자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파헤친다. 코로나 정국을 통과하며 한국 사회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 생산력과 생산관계 간의 모순은 더 격화될 뿐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와 노동자 계급>은 바이든의 승리로 끝난 미국 대선은 중국과 미국의 대립 격화로 세계 제국주의 질서가 흔들리고 2020년 발발하고 있는 세계 대공황이 세계 자본주의를 약화시켜 객관적 정세는 노동자 계급에는 유리하다고 진단한다. 문제는 노동자계급이 소련 해체 뒤의 세계사적 반동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세 편의 정세 분석이 코로나발 대공황의 위기에 반동이 격화되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투쟁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같은 지점을 향하고 있다. 문제는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부분이다. 무력한 노동진영 특히 민주노총이 노동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못 하고 노조탄압 비정규직 해고자 복직 투쟁들이 분산되어 진행되는 현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는가? 대안이 절실하다.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는 조창익 전전교조 위원장의 헌시는 7년 동안의 투쟁이 얼마나 부당한지 절절하게 폭로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오랜만의 승리의 찬가였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에서 이을재 조합원이 폭로했듯 문재인 정부는 선거 공약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대법원 판결 운운하며 법외노조 철회를 미루고 전교조의 고통을 방조해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는 3년 4개월 전교조 탄압을 사죄하고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 나아가 ILO협약 비준하고,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노동3권 전면 보장해야 한다.

사실 노동3권은 대한민국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에 적혀 있어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교사도 공무원도 다 노동자인데 정치적 중립 운운하며 공무원이라고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해고하고 수십 년 복직을 시키지 않고 고통받게 한다는 건 명백한 노동탄압이고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 즉 국민의 기본권 침해다. 진보를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는 부끄러운 줄 알라고 현장에서는 죽음과 투병을 겪는 공무원노조 해고노동자들이 절규하고 있다.

또 하나의 현장 별마을 소성리 사드 뽑기 투쟁을 낮고 굵은 목소리로 외치는 고희림 시인의 호명은 설움을 담은 통곡이다. 4년째 지속되는 투쟁의 고단함이 서려 있지만 포기할 수 없다는 다짐이 단단하다. 언젠가 혼자 소성리 집회에 간 적이 있었다. 살고 있는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반대 시위의 기억을 소환시킨 그곳 소성리가 어찌나 아름답고 소박한 마을이던지 그 외진 곳에서 나이든 어르신들이 싸우시는 모습에 식민지 신세 조국의 처지가 가슴 아프고 숙연해졌었다. 사드 뽑기는 끝내 이기고 말 싸움이어야만 한다.

세 번째 현장은 문제가 좀 더 근원적이다. 의료파업 정세 분석과도 이어지는 문제기도 하다. 코로나 위기에 두드러지긴 했지만, 의료는 상품이 아닌 공공재라는 대원칙이 전제되어야만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삼성같은 재벌 대기업의 요구에 부응해 원격진료를 위해 디지털 3법 규제 완화 같은 의료민영화를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 코로나 사태에 K방역을 내세우면서 공공의료 확충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환자의 약 80% 가까이 공공병원에서 치료했다. 예기치 못한 위기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공공의료, 지역별 균형 있는 확충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네 번째 현장 삼성생명 고객센터 암 환자 고립 농성장은 본인이 연대하는 투쟁 현장이기도 해서 각별하다. 당연히 지급 받아야 할 암 보험금을 받기 위해 암 환우들이 서울 강남 한복판 재벌 기업 사옥에 감금 고립된 채 365일 넘게 투쟁한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삼성은 금융감독원의 지급 권고도 무시하는 나라 삼성공화국이 어떻게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는지 가슴 아프고 분통 터지는 현장의 목소리를 함께 연대하는 조이희 동지가 절절하게 폭로하고 있다. 국정농단의 주범이기도 한 삼성 이재용을 문재인 대통령이 감싸고도는 사태가 현실인지 묻고 싶다.

특집 기사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표제의 의미를 담고 있는 한국 전쟁 70년,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은 휴전협정의 전말과 전후체제 성립과정을 짚어가며 현재의 우리가 한국전쟁의 종전 필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실현해야 함을 상기시키는 유익한 글이었다. 새롭게 알게 된 여러 내용이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두 번째 특집 김승호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대표의 기고 ‘전태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특히 아직도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27%에 해당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대상에서 마저 제외된 노동현실에 질문을 던지는 글이라고 본다.

전문적인 과학이나 음악 꼭지는 내용 따라가기도 바빴지만, 과학도 음악도 사회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읽었다. 특히 음악은 코로나로 어떤 지원도 없이 초토화돼버린 문화 예술 진영을 생각하니 빨리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 꼭지에서는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와 역할을 읽으며 현실에서 여성 노동자의 지위와 투쟁에 대해 고민하는 것과의 연관성을 찾아보았다. 최근 여성 노동자들이 주축이 된 비정규직 철폐 노조설립 부당해고 복직 투쟁이 부쩍 많아지고 성과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의 정규직 쟁취투쟁도 그렇고 ‘회사가 사라졌다’라는 책을 만들게 한 레이테크 코리아, 신영 프레시젼, 성진 씨에쓰의 이긴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도 있다. 최근엔 LG트윅스 청소노동자들이 노조설립 때문에 부당해고를 당해 투쟁 중이다. 여성 노동자가 주축이 된 노동탄압 분쇄 투쟁이 노동가족주의로 이야기되는 가부장적 노동 강요 속에서 이중 삼중 차별을 받던 여성의 노동자의 지위 향상에 어떤 의미를 남길지 주목하게 된다.

두 번째 여성 꼭지 공동체적으로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질문도 연장 선상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서울시장이 성추행 혐의로 피소 직전에 사망함으로써 피해자는 진보 진영에게서조차 졸지에 피해호소인, 꽃뱀이라고 불리며 가해자처럼 규정당했다가 최근에 다른 사건 재판에서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 사건에서 서울시가 하위직 공무원인 피해자에게 질문을 빙자해 2차 가해를 저지른 이유가 무엇일까?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라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바로 서울시청의 가장 높은 곳에 남성이, 가장 낮은 곳에 여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재임했던 최근 3년, 시장실과 부시장실이 모인 ‘시청 6층’의 고위 별정직은 모두 남성이고, 하위 행정직은 모두 여성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청 내 공고한 성별 위계질서에서 위력 성폭력이 발생했고, 은폐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강력한 성별 위계 속에서 하위 직급의 여성은 직군에도 없는 비서로 ‘사적 수발’을 들어야 했다. 비서 직군은 없었으며, 이에 선발 기준과 절차도 없었다. 인사팀 과장 등이 비서 후보를 올리면 채용책임자가 뽑는 구조다. 보기 좋고 말 잘 듣게 생긴 하위 직군 여성을 채용해 오고 성폭력을 저지를 수 있었다. 성폭력을 구조의 문제로 인식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지 말고 가해자에게 왜 성폭력을 행했느냐고 질문해야 함을 일깨워 준다.

책 소개 꼭지에서도 코로나와 신자유주의가 만드는 문제 제기와 연관된 여러 좋은 책들을 만났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목적의식적 활동의 고민을 담은 사람들을 위한 ‘휴버먼의 자본론’과 코로나와 기후위기로 당장 닥쳐온 환경문제에 대한 고찰과 이런 위기를 가중하는 주범 자본주의에 대항해 무엇을 할 것인가 안내하는 전진수 환경활동가의 책 소개는 매우 유익했다. 사회주의 국가 소련을 다시 보다는 좌파도 반소 반북 반공주의적 편견을 극복하고 객관적으로 접근해야만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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