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여성> 여성해방, 노동해방, 그리고 인간해방 – “털이 별로 없는 원숭이”들을 위한 변명 – 엥겔스 <가족, 사적소유, 국가의 기원>을 중심으로

[1]이 책은 1884년, 엥겔스의 64세 때 작품이다. 최인호 역 야만에서 미개를 거쳐 문명에 이르는 인류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첫째, 군혼, 대우혼, … Continue reading이현숙 | 자유기고가

애기들이 어린이가 되려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청년이 장년이 되려면 세 가지 동화(童話)에서 벗어나야 한다.

첫째 동화: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둘째 동화: 노사는 한마음이다.

셋째 동화: 부부는 사랑으로 일심동체이다.

1. 무계급사회(원시 공산사회)

까마득히 먼 옛날에 “털이 별로 없는 원숭이”가 지구상에 출현했다. 이 동물은 나중에 언어를 습득하게 되자, 자신을 인간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들은 튼튼한 턱과 이빨도, 날카로운 발톱도 없었고, 날개도 없었다. 연약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커다란 무리를 지어야만 했다.

그런데 수컷의 질투는 무리를 형성하는 것을 방해한다.

수컷의 질투는 가족[암수와 새끼들][2]인용문에 삽입한 [ ]은 필자의 것이다.의 유대의 끈임과 동시에 가족을 가둬 놓는 장벽인바, 동물 가족과 무리를 대립시킨다; 더 높은 군거형태인 무리는 수컷의 질투 때문에 불가능해지고, 때때로 느슨해지며, 때로는 교미기 동안에 완전히 해체되기도 하는바, 가장 영향을 덜 받는 경우에도 수컷의 질투심은 무리의 지속적인 발전에 방해가 된다. (p. 45.)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수컷들이 질투를 버려야만 했다[3]이후 인류의 삶의 조건이 향상되자(“먹고 살 만해지면서”), 즉 문명기에 일부일처제하에서 수컷들의 질투가 다시 살아나고 발달한다. 질투는 … Continue reading. 아니 질투를 버린 인류만이 살아남았을 것이다.

동물상태를 벗어나는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연계에서 이룰 수 있는 최대의 진보[이른바 “현대문명”]를 이루기 위해서는 [한쌍의 암수로 이루어진 결합체 이상의] 또 다른 추가 요소가 필요하였다; 개체의 불충한 방어력을 무리의 결합된 힘과 협동작업으로 보충하는 것이다. …

동물에서 인간으로의 발달은 비교적 크고 영속적인 집단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집단이 이루어지기 위한 첫째 조건은 성숙한 수컷들이 서로를 묵인하는 것, 즉 질투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었다. (pp. 45-46.)

수컷들이 질투를 버림으로써, “비교적 크고 영속적인 집단”을 형성하였고, “개체의 불충한 방어력을 무리의 결합된 힘과 협동작업으로 보충하”였다. 그 결과 “털이 별로 없는 원숭이”들은 인간으로 발달할 수 있었다.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발달한 이유는 첫째, 손노동[4]엥겔스, “원숭이의 인간화에서 노동이 한 역할”, 박기순 역, <맑스‧엥겔스 저작 선집> 제5권, 박종철 출판사 2000., 둘째, 무리(사회)를 형성한 것이다.

그 결과 원시 공산사회의 가족의 형태는 한 무리의 남자 전체와 한 무리의 여자 전체가 결합하는 형태(군혼)였다. 무리 생활을 하는 들소 같은 동물들도 이러한 가족(결혼)형태를 가질 것이다. 어찌되었든,

가장 오래되고 가장 원시적인 가족형태는 … 군혼, 즉 남성 집단 전체와 여성 집단 전체가 서로에게 속하며 질투의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는 가족 형태이다. (p. 46.)

그런데 무차별적 군혼은 근친교배(상간)와, 자연도태를 초래한다. 희미하게 이를 깨닫고, 근친상간을 제한하여, 열성유전자를 배제하고 우성 유전자를 가지게 되는 무리는 발전한다. 이를위해 처음에는 부모와 자식 간에, 다음에는 자식들 간에, 다음에는 친척들 간에 결혼을 금지하게 된다.

원시사에서 가족발전의 요체는 양성 간의 결혼공동체가 지배하는 범위가 처음에는 부족 전체를 포괄하는 수준이었다가, 지속적으로 좁아지는 데 있다. 처음에는 가까운 친족이, 다음에는 점차 먼 친족이, 그리고 급기야는 결혼으로 인척관계가 된 친족까지 배제됨으로써 결국 어떤 종류의 군혼도 실제로 불가능하게 되며, 종국에는 잠시 느슨하게 결합되는 한쌍의 배우관계만 남게 된다. (p. 58)

이렇게, 군혼에서 개별적 남녀의 결혼으로 범위가 점점 좁혀지게 되는 이유는, 단지 생존을 위한 투쟁이다. 보다 우월한 종족을 생산하여, 자연과의 투쟁에서 생존하기 방편이다. 군혼에서 단혼으로 발전한 이유는, 현대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남녀 간의 애정, 그리고 그 동전의 양면인 질투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원시 공산주의 말기에 주로 나타나는 “종국에는 잠시 느슨하게 결합되는 한 쌍의 배우관계”, 즉 대우혼에 대해 살펴보자.

시기의 길고 짧음의 차이는 있었지만, 어느 정도의 대우관계는 군혼 하에서도 혹은 그 이전에도 존재했다; 남자는 많은 아내들 중에서 한 사람의 본처(아직은 애처라고 말하기는 힘들다)[5]이하 강조는 특별한 언급이 없으면 모두 인용자의 것이다.를 갖고 있으며, 그는 그녀에게 있어서 여러 남편들 중에 가장 중요한 남편이었다. … [이러한] 결혼이라는 유대의 끈은 어느쪽에서도 쉽게 풀어버릴 수 있으며, 아이들은 전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어머니에게만 속한다. …

대우혼 가족은 너무나 허약하고 불안정했기 때문에 독자적인 세대를 요청할 수 없었다. 또 그런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따라서 대우혼 가족이 생겨났다고 해도 이전 시대부터 전승된 [여러 가족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공산주의적 세대가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pp. 57-58.)

소규모의 개별 가족의 힘으로는 자연과 투쟁, 생존이 불가능했다. 즉 “너무나 허약하고 불안정했기 때문에 독립적인 세대를 요청할 수 없었다.”

이 시대에 여성의 가족 내에서의 위치, 따라서 사회에서의 지위는 어떠하였는가.

공산주의적 세대에는 가내에서 여성의 우위[6]번역문에는 지배로 되어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에서는 지배와 피지배는 없다.를 인정한다. 그것은 친아버지를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친어머니만을 인정하는 것이 여성, 즉 어머니에 대한 높은 존경을 의미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이다. … 모든 야만인들에게서, 낮은 단계와 중간단계의 모든 미개인들에게서,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높은 단계의 미개인들에게조차, 여성은 자유로울 뿐 아니라 높은 존경을 받는 지위에 있었다. …

여자들 대부분은 혹은 전부가 동일한 한 씨족에 속하는 한편, 남자들은 여러 씨족에 나뉘어 있는 공산주의 세대야말로 원시시대에 여성들이 어디서나 우월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물적 기초이다. (pp. 59-61.)

다수의 여자와 다수의 남자가 성적으로 결합하였기 때문에 “친아버지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친어머니만을 인정”할 수 있고, 따라서 모계 씨쪽으로 남녀가 무리를 지어, 씨족을 단위로 사회를 구성하게 되었다. 이것이 근친상간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따라서 “여자들은 동일한 한 씨족에 속하는 한편, 남자들은 여러 씨족에 나뉘어 있”게 되어, 여성들이 우월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남녀의 자연발생적 분업에 대해 살펴보자.

인구는 매우 희박하였다: 부족의 거주지에서만 조밀하였다. 부족 주위에는 우선 광대한 수렵지역이 둘러싸여 있었고, 그 다음으로 다른 부족들과의 경계를 이루는 중립적인 방어 삼림이 있었다. 분업은 순전히 자연 성장적이었다; 분업은 남녀 사이에만 있었다. 남자는 전쟁을 치르고 사냥과 고기잡이를 하러 나가며, 먹을 거리와 그것에 필요한 도구[활과 화살, 창]를 조달한다. 여자는 집안일을 돌보며 음식과 옷을 만든다. 즉 요리를 하고 천을 짜고 바느질을 한다. 남자와 여자는 각각 자기의 영역에서 주인이다: 남자는 숲에서, 여자는 집에서, 각자는 자기가 만들고 자기가 사용하는 도구의 주인이다: 남자는 무기, 사냥 도구, 고기잡이 도구의 주인이며, 여자는 가구의 주인이다. 집안 살림은 몇 개의 가족 종종 많은 가족에 의해서 공산주의적으로 운영된다.[7]원주: 퀸 샬로트 제도의 하이다 족의 경우에는 700명까지 한 지붕 아래 포괄하는 세대가 있다. 누트카족의 경우에는 한 부족 전체가 한 지붕 아래 살고 … Continue reading 공동으로 만들어 이용하는 것은 공동의 재산이다: 집, 채마밭, 배[boat]. (p. 176.)

그러면 이러한 모계씨족사회의 운영방식과 인간의 모습은 어떠하였는가.

공동 사무가 지금보다 훨씬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 세대는 여러 가족들의 공동의 것[8]여러 대우혼 가족들이 공동으로 모여, 하나의 공산주의적 세대를 구성한다는 의미이다. 한국사회와 비교하면 여러 형제들이 함께 사는 대가족제도와 … Continue reading이었고, 공산주의적이었고, 토지는 부족의 소유이고, 다만 작은 채마밭만이 각 세대에게 일시적으로 할당되었다 ─ 오늘날과 같은 광범위하고 복잡한 행정기구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결정을 내리는 것은 당사자들이며 대부분의 경우에 수백년 동안 내려온 관습이 이미 만사를 규정해 놓았다. 빈곤하거나 빈궁한 사람은 있을 수 없었다 ─ 공산주의적 세대와 씨족은 노인, 병자, 전쟁 불구자들에 대한 자기들의 의무를 알고 있었다. 만인이 평등하고 자유로웠다 ─ 여자도 그러하였다. … 이러한 사회가 어떠한 남녀를 만들어 내는가는, 아직 타락하지 않은 인디언과 접촉해 본 백인들이라면 누구나 이 미개인들의 인격적 위엄, 솔직함, 성격의 강인함, 용감함에 경탄하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p. 110)

이러한 “고대 씨족의 자유, 평등, 우애[9]모건 <고대사회>, p. 552. (엥겔스, 같은 책, p. 196.에서 재인용)”는 문명사회, 즉 계급사회가 도래하면서 붕괴되었다.

2. 계급사회

생산력이 발달하면서, 잉여생산물이 발생했다. “털이 별로 없는 원숭이”“들은 점점 부유해졌다. 견물생심! 가난했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평등했고, 그래서 우애로웠던 이 동물은 타락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노동으로 생산한 부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들은 더욱 많은 부를, 더욱 빨리 얻고자 했다. 타인이 생산한 잉여생산물이 그들을 유혹했다. 동족학살(약탈전쟁)과 착취가 발견되고, 이에 수반되어 억압, 지배가 발생했고, 이를 위한 지배계급의 폭력기구인 국가도 발생했다. 사적 부는 가장 높이 숭배되고 찬미되었다. 학살자들은 영웅호걸이라고, 파렴치한 절도범들은 귀족이라고 불렸다.[10]작은 성공에 점점 오만해진 “털이 별로 없는 원숭이”들은 심각한 오류를 저지르게 된다. 자신은 동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그럼 식물인가?), … Continue reading 계급사회, 즉 ”소돔과 고모라“가 출현한 것이다.

새로운 문명사회, 즉 계급사회를 탄생시킨 것은 저급하기 그지없는 이해들 ─ 비천한 소유욕, 짐승 같은 향략욕, 더러운 탐욕, 공유재산의 이기적 약탈 ─ 이다; 옛날의 무계급 씨족사회를 균열시키고 붕괴시킨 것은 파렴치하기 그지없는 수단들 ─ 절도, 폭행, 간계, 배신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사회 자체는, 그것이 존속해온 2,500년의 전 기간 동안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다수를 희생시킨 위에서의 소수의 발전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자본주의 사회]은 특히 그러하다. (p. 111.)

이러한 [착취]제도에 기초를 둔 문명은 고대 씨족사회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들[이른바 “위대한 문명사회 건설”]을 해냈다. 그러나 문명이 그렇게 해낸 것은 문명이 인간의 가장 추악한 충동과 정욕을 발동시키고, 인간의 다른 모든 소질을 희생시키면서 그것들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문명이 시작된 첫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노골적인 탐욕이 문명을 추동해왔다. 첫째도 부요, 둘째도 부요. 셋째도 부, 그것도 사회의 부가 아니라 탐욕적인 개개인의 부, 이것이야말로 문명의 유일하고 결정적인 목표였다. (pp. 194-195.)

“문명의 유일하고 결정적인 목표였던, 탐욕적인 개개인의 부”는 20세기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강력하게 작용하였다. 공산주의의 원칙은 능력에 따른 노동, 즉 사회를 위해 노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주의의 원칙은 “노동에 따른 분배[11][사회주의 사회에서] 개별생산자는 자신이 사회에 주는 것을 ─ 공제 후에 ─정확히 돌려 받는다. … 그러므로 여기서 평등한 권리는 여전히 ─ … Continue reading)”이다. 분배를 많이 받아서 사적인 부를 키우기 위해서, 노동을 한다는 의미가 된다. 사적 부에 대한 탐욕을 노동의 동기로서 인정하는 것이다. 결국 여기서도 노동생산물을 분배받기 위해 노동하므로 그런 의미에서, (생산수단이 아니라) 분배받는 생활수단이 인간을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노동 동기로 활용된 “사적 부에 대한 탐욕”은 공공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들을 타락시켰다. 그들은 그 권한을 이용하여 사회적 부를 사적 부로 만들었다. 그 최종적 결과가 쏘련의 붕괴이고, 올리가르히(Oligarch)라고 불리는 독점자본가들의 출현이다.

우리의 본래 이야기로 돌아가자. “비천한 소유욕, 짐승 같은 향략욕, 더러운 탐욕, 공유재산의 이기적 약탈”로 점철된 이른바 “문명사회”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 오늘까지 진행되고 있는가.

문명시대에 들어와서 최고의 발전단계를 이룩한 노예제의 출현과 함께 사회의 최초의 대분열이 일어나 사회 전체는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으로 분열되었다. 이 분열은 문명기 전체에 걸쳐서 존속하였다. 노예제는 고대 세계에 고유한 착취 형태였다; 그 뒤를 이어 중세의 농노제, 그리고 근래의 임금노동이다. 이것은 예속의 3대 형태로서 문명의 3대시기를 각각 특징짓는다; 공공연한 것이건 그리고 최근처럼 가장된 것[자본주의에서의 임금노예제]이건 노예제는 언제나 문명과 붙어다닌다. (p. 193.)

문명사회는 노예제, 봉건제, 자본제 모두 착취와 피착취, 지배와 억압을 본질로 한다. 인간이 부의 수단으로 된다. 단지 그 정도만이 감소했다. 억압‧지배와 착취가 단지 점차적으로 완화되어 왔을 뿐이다. 때문에 노예제적 성격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문명은 가족관계, 즉 남녀관계에도 예외 없이 파괴적으로 작용하였다. 그것은 일부일처제, 즉 공공연한 혹은 은폐된 가내노예제를 확립했다. 그 목적은 사적 부의 세습과 증식이다. 그 이전까지 인류의 역사에서는 자연적 도태가 군혼을 대우혼까지 진행시켰다. 자연적 힘이 배우자를 점차 좁혀가게 만들었다. 이제 문명이 도래하면서 대우혼에서 일부일처제로의 전화는, 그 동력이 사회적인 것이었다.

모든 부문 ─ 목축, 농경, 가내 수공업─ 에서 생산이 증대됨으로써 인간의 노동력은 자기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생산물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

가축 떼와 기타 새로운 부의 출현과 더불어 가족에 혁명이 일어났다. 생계 획득은 언제나 남자의 일이었다. 생계획득 수단은 남자가 생산하였고, 남자의 소유였다. 가축 떼를 길들이는 것이, 다음에는 그것을 보살피는 것이 남자의 일이었다. 따라서 가축은 남자의 것이었으며, 가축과 교환하여 얻은 상품과 노예들도 역시 남자의 것이었다. 이제 생업에 의해 얻은 일체의 잉여는 남자의 것이 되었다; 여자는 그것을 소비하긴 했지만, 그것에 대한 소유권은 조금도 없었다. ‘사나운’ 전사와 사냥꾼은 집에서 여자 다음의 자리에 만족하였다; ‘온화한’ 목축민은 자기의 부를 뽐내면서 첫 번째 자리에 올라 여자를 두 번째 자리로 밀어냈다. 그러나 여자는 불평할 수 없었다. 가족 내의 분업은 남녀 간의 재산분배를 규정하였다; 가족 내의 분업은 전과 다름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내의 분업은 종래의 가족 내 관계를 뒤집어 버렸는데, 이것은 오로지 가족 밖에서의 분업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전에는 가정에서 여자의 지배[우위]를 보장해주었던 바로 그 원인: 여자가 가사 노동에만 종사하는 것이, 이제는 가정에서 남자의 지배를 보장해 주었다: 여자의 가사노동은 이제 남자의 생계 회득 노동 앞에서 꼬리를 감추었다; 남자의 노동이 모든 것이었고 여자의 가사노동은 보잘 것 없는 부속물이었다. (pp. 178-179.)

원래 가축은 씨족의 재산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는 불명하지만 “인증된 역사로 들어설 무렵 가축 떼는 [남성] 가장의 재산이었다”[12]p. 65.. 사적소유는 이미 출현하였다. 문제는 남녀 간의 사적 소유의 양의 차이이다. 여자의 가사 노동의 생산력에는 변화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가족 밖에서의 분업이 달라졌다.” 즉, 남자의 일이었던 목축에서는 거대한 가축 떼가 생산되었다. 남자는 부자가 되었고, 여자는 초라해졌다. 서로 가난해서 평등했었던 “가족에 혁명이 일어났다.”

첫째, 모권제는 전복되고, 부권제가 형성되었다. 모권제하에서는 가축 떼의 소유자인 아버지가 사망할 경우 자식들은 상속권이 없다. 당시의 관습에 의하면 씨족 내에서만 재산이 분배되는데, 자식들은 어머니 씨족에 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버지와 같은 씨족에 속하는 자손들, 즉 친할머니의 자손들에게 재산이 넘어간다. 우선적으로 아버지의 형제와 자매, 아버지의 자매의 자녀들, 또는 친할머니의 자매의 자녀들에게 넘어간다. 따라서 재산을 자식에게 상속하기 위해서는, 모권제가 전복되어야 했고, 전복되었다. 남성들이 장악한 부의 힘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모권제의 전복은 여성의 세계사적인 패배였다. 남자는 집안에서도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여자는 지위가 하락하여 예속적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남자의 정욕의 노예, 단순한 산아도구로 전락하였다. … 여성의 이러한 굴욕적인 지위는 점차 치장되고 포장되어, 때로는 한층 완화된 형태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지위 자체는 전혀 없어지지 않았다. (p. 68.)

둘째, 일부일처제가 확립되었다.

[일부일처제 가족은] .. 대우혼 가족에서 발생한다; 일부일처제 가족의 궁극적 승리는 문명이 시작된다는 표식들 중의 하나이다. 일부일처제 가족은 누가 친아버지인가를 따질 필요가 없는 [친아버지를 알 수 있는] 아이들을 낳는다는 확실한 목적 하에 남편의 지배에 기초해 있다. 그리고 친아버지를 확실히 해야 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훗날 직계 상속인으로서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일처제 가족은 혼인의 유대가 훨씬 공고하다는 점에서 대우혼과 구별된다. (p. 73.)

일부일처제는 결코 개인적 성애의 소산이 아니었으며, 그것과는 절대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왜냐하면 결혼은 변함없이 정략 결혼이었기 때문이다. 일부일처제는 자연적 조건이 아니라 경제적 조건에 기초한, 즉 원시적 자연성장적인 공동소유에 대한 사적 소유의 승리에 기초한 가족 형태였다. 가족 내에서 남편이 지배하는 것, 그의 부를 상속할 틀림없는 자신의 아들을 얻는 것 ─ 이것이 그리스인들이 숨김없이 표명한 단혼의 유일한 목적이었다. …

그러므로 단혼은 남녀의 화해로서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니며, 더욱이 이 화해의 최고 형태로서 나타난 것은 더욱더 아니다. 그 반대이다. 그것은 한 성에 대한 다른 성의 예속으로서, 그때까지 선사시대 전체를 통해서 나타난 적이 없던 양성 간의 항쟁의 선언으로 등장한 것이다. … 역사에 나타난 최초의 계급대립은 단혼에서의 남녀의 적대적 발전과 일치하고, 또 최초의 계급 억압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과 일치한다. (pp. 76-77.)

“결혼은 변함없이 정략 결혼이다.” 즉 원시 공산주의 시대에는 보다 우월한 유전자를 얻기 위해서, 계급사회에서는 사적 부를 위해서이다. 결국 계급사회에서 한쌍의 부부가 탄생한 것은 애정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사적 부와 그 세습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여성에게는 정조가 엄격히 요구된다. 그러나 지배적 남성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사실상의 군혼을 누리고 있다. 물론 경제적 사정이 허락한다면 그러하다. 빈곤한 남성은 일처도 두지 못한다. 노예제가 존재한다고 해도 모두 다 노예를 두지 못하는 것과 같다.

3. 성애(남녀 간의 애정)

원시 공산주의에 존재했던 다양한 단계의 군혼과 말기의 대우혼에서도, 그리고 계급사회의 일부일처제에서도 남녀 간의 성애(애정)는 결혼의 이유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일부일체제라는 틀 안에서, 그리고 일부일처제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혼외 정사에서 성애가 점차로 발달하였다. 아마도 후자가 더욱 중요한 기여를 하였을 것이다. 봉건제 하의 신분제가 무너지고, 이른바 자유의지에 따른 계약이 출현하고, 이에 따라 이른바 “자유연애”가 출현하였다. 예전에는 사소한 것, 혹은 저열한 것(남녀상열지사[13]남녀상열지사 조선 전기의 학자들이 고려가요(高麗歌謠)를 낮추어 부른 명칭. 고려가요에는 남녀간의 사랑을 읊은 노래가 많은데, 표현이 너무 … Continue reading)으로 여겨지기도 했던 남녀의 애정이 결혼의 결정적 조건이라고, 공식적으로 승인되었다. 그러나 이는 형식적인 것에 머물렀다. 부르주아지는 여전히 경제적 고려에 단단히 묶여있다. 그의 부가 크면 클수록 더욱 그러하다.

아내와의 관계에서 성애가 진정한 규칙으로 되고 또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피억압 계급들 사이에서뿐이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서뿐이다 ─ 이 관계가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관계[합법적 부부]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관계가 없다. 그런데 이 계급에게서는 고전적인 일부일처제의 기초도 모두 제거되어 있다. 일부일처제와 남성의 지배는 다름 아닌 재산의 보존과 상속을 위해 이룩된 것인데, 그들은 그러한 재산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그들에게는 남성의 지배를 행사할 아무런 동기도 없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그렇게 할 수단도 없다. … 게다가 대공업으로 인해 여자가 가정에서 노동시장과 공장으로 나와 종종 가족의 부양자가 된 이래, 프롤레타리아트 가정에서의 남편의 지배는 그 마지막 잔재까지 존재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 단, 일부일처제의 도입 이래 곳곳에서 뿌리를 내린 아내에 대한 야만적인 행위의 편린은 아직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 가족은 ─ 쌍방이 더할 나위 없이 열렬히 사랑하고 더할 나위 없이 엄격하게 정조를 지키더라도, 또 있을 수 있는 모든 종교적 세속적 축복을 다 받았다고 하더라도 ─ 엄밀한 의미에서는 더 이상 일부일처제 가족이 아니다. 따라서 일부일처제의 영원한 동반자인 난교나 간통도 여기서는 미미한 역할을 할 뿐이다; 아내는 이혼의 권리를 사실상 회복하였으며, 또 남자와 여자가 서로 잘 살아갈 수 없을 경우에는 그들은 차라리 이혼해 버린다. 요컨대 프롤레타리아트의 결혼은 어원적 의미에서 일부일처제이지만 역사적 의미에서는 결코 일부일처제가 아니다. (pp. 83-84.)

프롤레타리아트 남성은 자신의 지배를 보장할 만한 수단 즉 사적 부가 없다. 혹은 부족하다. 이것이 결정적이다. 그러나 지배에 대해 “아무런 동기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일처제의 도입 이래 곳곳에서 뿌리를 내린 아내에 대한 야만적인 행위의 편린”, 즉 몸종을 부리는 습관은 잔존한다. 그래서 폭력 등등으로 아내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고자 한다. 그러나 “보존하고 상속할 재산이 없기” 때문에, 지배 동기는 그만큼은 약해진다. 다른 한편 여성들이 직업을 갖게 되면서 경제적 힘이 증가했다. 남성이 지배하는 가족으로서의 일부일처제는 존재의 기반이 허물어지고 있다. 이를 인식한 여성들은 공격한다. 이것이 여성해방운동이라는 형태로 분출된다. 20세기 들어 세계적으로 분출한 여성해방투쟁의 근본적 동력은 이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자극은 20세기 사회주의 사회가 이룩한 여성해방에서의 커다란 진전일 것이다.

“아내와의 관계에서 성애가 진정한 규칙으로 되고 또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피억압 계급들” 사이에서뿐“이고, “따라서 오늘날에는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서뿐”일까? 필자는 이견을 가진다. 성애, 즉 애정이 결혼의 가장 우선적인 조건이 되는 것은 부르주아계급에게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마치 조선시대에 양반이 평민과 결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에 비해서는 자유롭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도 애정이 최고의 조건인 것은 아니다. 아니 부에 따라 애정이 생기는 것이 사실과 가깝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가격을 갖게 된다”[14]p. 91.. 그의 소득에 의한 가격을.

어떤 남성 노동자가 연봉을 1억을 받는다고 하자. 그리고 평균이자율이 10%라고 하자. 그러면 그의 가격은 10억이 된다. 왜냐하면 10억원을 은행에 넣어놓으면 일년에 1억원을 이자로 받게 되기 때문이다.[15]… 노동력을 고찰하여 보자. 여기에서는 임금이 이자로 간주되고, 따라서 노동력은 이 이자를 낳는 자본으로 간주되고 있다. 연간의 임금이 예컨대 … Continue reading) 평생직장인가 아닌가도 중요하게 고려된다. 준수한 외모와 건강, 학벌과 교양, 가문 등은 그의 가격에 얼마 얼마를 더하거나 뺀다. 여자도 마찬가지로 가격이 결정된다. 그리고 쌍방의 매매혼이 이루어진다. 사적 부가 지배하는 계급사회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경제적 고려라는 잔재는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노동에 따라서 생활수단이 분배된다. 즉 사적 부가 결정된다. 사적 부는 여전히 노동의 동기이다. 여성의 가사노동은 많은 부분 사회화된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의 일정 부분 ─ 특히 젖을 먹여야 하고, 각별한 보살핌이 필요한 대략 1년 동안의 육아 ─ 은 여전히 어머니가 책임져야 한다. 체력도 남성에 비해 떨어진다. 때문에 노동력은 남성에 비해 열등하다. 남성과 여성의 수입의 격차가 발생한다. 남성은 그만큼 우월하게 된다. 그러나 그 우월이 지배를 낳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일 것이다. 우월함이 일정 수준을 넘어야 지배를 초래할 수 있다. 남녀 간의 약간의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하는 수준에서 그칠 것이다. 남성 사이에서도 개인 차이에 따라 우월이 생긴다. 이것이 결혼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렇게 생산물이 생산자를 지배하는 계급사회의 법칙이 사회주의 사회도 극히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를 받는 사회, 노동생산물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만이, 오직 애정에 근거한 남녀의 결합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때만이 완전한 남녀의 해방, 즉 인간의 해방도 실현될 것이다.

4. 여성해방

여성해방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가족 내의 분업은 남녀 간의 재산분배를 규정하였다; 가족 내의 분업은 전과 다름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내의 분업은 종래의 가족 내 관계를 뒤집어 버렸는데 이것은 오로지 가족 밖에서의 분업[남자의 생산력]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전에는 가정에서 여자의 지배[우위]를 보장해주었던 바로 그 원인: 여자가 가사 노동에만 종사하는 것이 이제는 가정에서 남자의 지배를 보장해 주었다: 여자의 가사노동은 이제 남자의 생계 회득 노동 앞에서 꼬리를 감추었다; 남자의 노동이 모든 것이었고 여자의 가사노동은 보잘 것 없는 부속물이었다.

여성의 해방, 남녀의 평등은 여자가 사회적 노동에서 배제되어, 사적인 가사 노동에만 갇혀 있는 한 불가능하며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이, 이미 여기서 명백해진다. 여성의 해방은 그들이 거대한 사회적 규모로 생산에 참여할 수 있게 되고, 여성이 가사노동에 시간을 별로 빼앗기지 않게 될 때 ,비로서 가능해질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현대의 대공업에서 의해서만 가능하게 되었는데, 이 현대의 대공업은 여성노동을 대대적으로 허용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본격적으로 요구하며, 또 사적인 가사노동을 점점 더 공적인 산업으로 해소하려고 한다. (pp. 178-179.)

원시 공산주의 사회에서부터 여성과 남성의 분업이 존재했다. 여성의 사업은 가사를 돌보는 일이었다. 그 생산력의 발달은 미미했다. 남성의 사업은 식료품을 조달하는 사업이었다. 수렵, 어업, 목축, 그리고 나중에 농업이었다. 이 사업에서는 거대한 부가 창출되었다. 남성은 부를 사적 부로 만들었고, 남성은 여성을 지배하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 있다. 만일 남성이 자신이 생산한 부를 공동의 부, 즉 예를 들어 씨족의 부로 만들었다면, 남성의 지배체제인 일부일처제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아가 부자들의 빈자들에 대한 지배, 즉 계급사회도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여성해방은 다음과 같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여성해방의 첫번째 선결 요건은 여성 전체가 공적 산업에 복귀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또한 사회의 경제 단위로서 개별 가족의 성질이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이 명백해질 것이다. (p. 86.)

첫째, 남녀의 분업을 철폐하는 것이다. “여성의 해방은 그들이 거대한 사회적 규모로 생산에 참여할” 때 가능하다. 이것은 현재 한국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여성들의 수입, 즉 그들의 사적 부의 크기만큼,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분명 상승하고 있다. 때문에 자신의 노동자로서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 고용보장, 임금인상 ─ 은 곧 여성해방투쟁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들이 200원만큼 일한다면, 단지 100원을 받는다. 그들이 생산한 나머지 100원은 이윤으로 자본에게 간다. 여성의 사적 부가 증가하는 만큼 자본도 증식하고 자본의 권력은 커진다. 그런데 자본에게 여성은 열등한 노동력이다. 임신, 출산, 육아, 기타 가사노동을 주로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적인 가사노동을 점점 더 공적인 산업으로 해소하려고 한다”지만, 그 한계는 뚜렷하다. 임신과 출산을 이윤이 나는 공적 산업으로 할 수는 없다. 일하는 여성을 위한 각종 사회서비스에 드는 비용, 임신‧출산‧육아수당 등에 필요한 비용을 자본은 부담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본가가 여성이라 해도 결코 다르지 않다. 결국 남성에 비해 저임금을 받게 된다. 가정주부로서 한 푼도 벌지 못하는 것보다는 백배 나을 것이다. 그러나 사적 부의 크기가 권력을 결정하는 계급사회에서, 남성지배를 완화할 수는 있지만, 남녀 평등과 여성해방을 이룰 수는 없다. 결국 핵심적인 문제는 노동자들이 생산하지만, 자본가가 소유하는 거대한 부를 다시 찾아, 남녀가 공동으로 관리하고 소비하는 것에 있다.

둘째, 사적 소유 자체를 철폐하는 것이다. 가장 거대한 사적 부인 생산수단을 공동소유로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사적으로 소유하는 가옥이나 가구 등 생활수단을 (저렴한 공공임대주택 등으로) 최소한으로 축소하여야 한다. 그래서 일부일처제의 기초인 상속 재산을 거의 없애야 한다.

많은 쌍의 부부와 그 자녀들을 포괄하던 옛날의 공산주의적 세대에서 아내들이 가사를 돌보는 것은 남편들이 식료품을 조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공적인, 사회적으로 필요한 산업이었다. 가부장제 가족의 발생과 함께, 더욱이 일부일처제적 개별가족의 발생과 함께 사태는 변하였다. 가사는 그 공적인 성격을 상실하였다. 그것은 더 이상 사회와 아무런 관련도 없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의 사적 근로가 되었다. (p. 85.)

생산수단이 공동 소유가 됨으로써 개별가족은 사회의 경제적 단위가 아니게 된다. 사적 가사는 사회적으로 산업으로 전환된다.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은 공무가 된다; 사회는 적자건 사생아건 모든 아이들을 똑같이 돌보아 준다. (p. 87.)

현대 계급사회는 가족을 기본 단위로 하여 조직되어 있다. 가족은 생계와 생존을 거의 독자적으로 책임지고 있고, 사적소유의 주체이다. 자영업자의 경우에는 생산의 단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백억의 재산을 가지는 거부가 있는가 하면, 무일푼인 가족도 있다. 부유한 가족은 지배적인 가족들 ─ 착취계급 ─ 로 된다. 가족 내에서도 우월한 노동력을 가진 남성과 열등한 노동력을 가진 여성 사이에서 지배와 피지배가 발생한다. 종종 그 반대일 수도 있다. 특히 남성이 퇴직을 하거나 노인이 되면 그러하다. 이렇게 가족이 경제 단위인 상태에서는 여성 해방도 인간 해방도 불가능하다.

생산수단이 공동 소유가 됨으로써, 가족은 더 이상 경제단위가 아니게 된다. 예전의 원시공산주의 사회처럼 경제단위는 사회전체가 된다. 원시공산사회에서 1000여명의 사람들이 한지붕 아래에 살면서, 의식주를 생산하고, 2세를 생산하고 키우는 것은 공동의 산업이었다. 남녀가 수명씩 무리를 지어 결합하는 형태의 가족들은 그 사회에 통합되어 있었다.

다가올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1천만명, 아니 수억의 사람들이 하나의 경제단위가 된다. 가족은 사회에 흡수된다.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2세들을 키운다. 사적 가사는 사회적 산업으로 된다. 임신과 출산 등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책임져야만 하는 것에 대해, 사회는 공동의 기금으로 충분하게 배려한다. 가족이 사회에 흡수됨으로써, 임신과 출산이 사적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행위로 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가족에서도 임신과 출산은 어머니의 사적 업무만이 아니라, 가족의 공동 사업이다. 가족이 경제단위이기 때문이다. 가족의 최우선적 과제는 첫째,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다. 둘째, 2세를 낳고 기르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재원과 관심은 먼저 여기에 집중된다. 이제 경제단위는 공산주의 사회 전체가 되었다. 핵심 과제는 가족과 동일하다. 사회는 자신의 재원과 관심을 먼저 의식주 생산에, 그리고 2세를 낳고 기르는 데에 투여할 것이다. 임신과 출산은 사회의 핵심적 사업이 된다. 모성은 보호받고 존경받을 것이다. 계급 사회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가장 천대받는다. 그러나 언젠가 그날이 오면, 생산자들 즉, 노동계급과 후손을 생산하는 여성들은 당연히 받아야 할 최고의 대우를 받을 것이다.

그러면 현재의 일부일처제의 가족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일부일처제가 경제적 원인에 의해서 생겨났다고 해서, 이 원인이 소멸하면 그것도 소멸할 것인가?

이렇게 대답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일부일처제는 소멸하기는커녕 비로소 완전히 실현된다. 왜냐하면 생산수단이 사회적 소유로 전화됨으로써 함께 임금노동, 프롤레타리아트도 소멸할 것이고, 따라서 또한 일정한 수 ─ 통계적으로 산정 가능한 수 ─ 의 여자들이 돈을 받고 몸을 팔 필요도 소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매춘은 소멸되지만, 일부일처제는 붕괴되는 대신에 마침내 ─ 남자에게 대해서도 ─ 현실이 된다. (p. 87.)

결혼의 완전한 자유는, 자본주의적 생산과 이 생산이 만들어 놓은 소유 관계들이 제거되고, 그 결과 오늘날 아직도 배우자의 선택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모든 부차적 경제적 고려들이 제거되는 때에야 비로소 일반적으로 실행될 수 있다. 그때는 상호 간의 애착 이외에는 다른 어떤 동기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그런데 성애는 그 본성상 단혼이기 때문에 ─ 오늘날 이 배타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것은 여자 쪽뿐이지만[16]자본주의까지 남자는 매춘 등으로 여전히 군혼을 누린다. ─ 성애에 근거한 결혼은 그 본성상 단혼이다. …

일부일처제로부터 완전히 제거될 것은 일부일처제가 소유관계에서 성림함에 따라 그것에 각인되었던 일체의 성격들이다. 그것은 첫째로 남자의 우위이며, 둘째로 이혼의 불가능성이다. 결혼에 있어서 남자의 우위는 남자의 경제적 우위의 결과일 뿐이며, 후자[경제적 우위]가 소멸하면 이것도 저절로 소멸한다. … 사랑에 기초한 결혼만이 도덕적이라면 또한 사랑이 지속되는 동안의 결혼만이 도덕적이다. 그러나 개인적 성애의 정열이 지속되는 기간은 사람마다 아주 다르며, 특히 남자의 경우에 그러하다. 그리고 애착이 완전히 없어지거나 혹은 새로운 정열적인 사랑이 그것을 밀어냈을 때, 이혼은 부부 쌍방에 대해서나 사회에 대해서나 선한 행위가 된다. 이혼 소송이라는 쓸데없는 진흙탕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pp. 93-94.)

5. 결론: “털이 별로 없는 원숭이들을 위한 변명

사랑도 질투도 원시 공산주의사회에서는 없었다. 문명사회에서 발생한 일부일처제에도 사랑은 결혼의 동기가 아니었다. 자본주의사회에 와서야 비로소 자유연애가 단지 형식적으로만 인정되었다. 그러나 주요한 동기는 여전히 경제적 고려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결혼이란 자유연애로 은폐된 혹은 포장된 남녀의 서로 간의 매매혼이다. 그만큼 위선적이다. 또한 자본주의에서 “가족은 아내의 공공연한 혹은 은폐된 가내 노예제에 기초하고 있다[17]p. 85.” 여성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착취당하는 가내노예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여자가 소유한 부가 적을수록 그 성격은 또렷해진다. 반대로 여자가 부자라면 남자가 가내노예가 될 수도 있다[18]항간의 보도에 의한다면, 한국최대 재벌기업의 계열사 사장인 여자의 경우에 그러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너무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자. 그것은 “털이 별로 없는 원숭이”들의 숙명이다.

경제학자들이 최고의 역사적 성과라고 찬미하는 자유경쟁, 즉 생존을 위한 투쟁이 동물계의 정상상태임을 다윈이 증명했을 때, 그는 자신이 인간에게 그리고 특히 [자유경쟁을 특히 찬양하던 영국] 자기 나라 국민들에게 얼마나 신랄한 풍자문을 썼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생산일반이 특유한 맥락에서 인간에게 그랬던 바와 마찬가지로 계획적으로 생산되고 분배되는 사회적 생산의 의식적 조직이야말로 비로소 사회적 맥락에서 인간을 다른[일반적] 동물계에서 끌어올릴 수 있다. (강조는 엥겔스) (엥겔스, “자연변증법”, 박기순 역,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제5권. 박종철 출판사, 2000. p. 373.)

요즈음은 이른바 “시장경제 전도사”들이 수다를 떨며, “시장경제 혹은 시장경쟁”을 찬미하고 있다. 이는 자유경쟁, 즉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의 다른 표현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동물계의 특징이라고 다윈이 증명했다. 인류는 아직 동물계에 존재하고 있다.

개미는 때로는 수억마리가 하나의 사회를 이룬다. 분업을 통해 노동도 한다. 인간과 동일하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 개미의 노동은 본능적이고, 인간의 노동은 합목적적[19]거미는 직포공의 작업과 흡사한 작업을 하고, 꿀벌은 벌집을 지음으로써 많은 인간들을 무색케한다. 그러나 가장 서툰 건축가조차 처음부터 가장 … Continue reading)이고 계획적이다. 개인들이 생산할 때, 그리고 공장에서 생산할 때도 계획에 따라 합목적적으로 생산한다. 이것이 결정적 차이이고, 이른바 인간과 동물 일반을 구별 짓는다. 그러나 사회 전체에서 보면 다른 동물들과 동일하다. 생산이 맹목적 본능적이다. 3식구가 먹을 아침밥을 30인분을 만드는 주부는 없을 것이다. 계획하고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자동차공장을 보자. 매년 수백만대를 쏟아내고 있다. 사회적으로 얼마나 필요한지, 따라서 얼마나 팔릴지 알지 못하고, 맹목적 무계획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즉 여전히 동물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털이 별로 없는 원숭이”들이 만들어 낸 (가내)노예제에 대해 변명해보자.

노예제가 나타남으로써 비로소 농경과 공업 사이의 분업이 대규모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으며, 이로써 고대 세계의 정화인 그리스 문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노예제가 없었다면 그리스의 국가도 없고, 그리스의 예술도 학문도 없다; 노예제가 없다면 로마 제국도 없다. 그리스 문화와 로마 제국이란 기초가 없었다면 유럽도 없다. …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해도 될 것이다: 고대 노예제가 없다면, 현대의 사회주의도 없다. …

아무리 모순에 가득찬 것으로 들리고 아무리 이단적으로 들린다 하더라도 노예제의 도입은 당시의 사정에서는 커다란 진보였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가 동물에서 출발하였고, 따라서 야만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야만적이고 거의 동물적인 수단을 필요로 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엥겔스, “오이겐 뒤링 씨의 과학변혁(반-뒤링)”, 최인호 역, <맑스‧엥겔스 저작선집>제5권, 박종철 출판사, 2000. p. 198.)

동물 상태인 인류가 “야만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야만적이고 거의 동물적인 수단을 필요로 했고”, 그것이 노예제였다. 자본주의도 노예제의 성격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동물적인 수단이었던 가내노예제로서의 일부일처제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역시 동일하게 “당시의 사정에서는 커다란 진보였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노예제는 분업을 발달시키고, 노예를 착취하여 사회적 생산력을 발달시킨다. 그래서 진보적이다. 동일하게, 가내노예제도 가장의 지휘(폭력)하에 여성을 출산도구로 만들어 최대의 노동력을 확보하고, 아이들까지를 포함하여 가내노동력을 착취하여 생산력을 증진시킨다. 그래서 진보적이다. 생산력이 미약하여, 노동력이 제공하는 초과분의 규모가, 필요한 생활수단을 간신히 넘어서는 정도에 그쳤던 상태에서는 이것이 필연이다. 즉, 개개인이 생산할 수 있는 잉여가 적었기 때문에, 잉여의 양을 늘려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많이 낳아야 했고, 산아도구로서 여성을 착취해야 했다. 더구나 피지배계급은 지배계급까지 먹여 살려야 했다.

이렇게 생산력이 미약한 상태에서는,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 지배계급과 피억압계급으로 사회가 필연적으로 분열된다.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 지배계급과 피억압계급으로의 사회의 분열은 이전에 생산의 발달이 미약했던 데 다른 필연적인 결과이다. 사회적 총노동이 제공하는 수익이 모두의 궁핍과 생존에 요구되는 물량을 간신히 초과하는 정도인 한, 따라서 노동이 대다수 사회 성원의 모든 시간 혹은 거의 모든 시간을 요구하는 한, 이 사회는 필연적으로 분할된다. 전적으로 노동에 부역하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과 나란히, 직접적-생산적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다음과 같은 사회의 공동업무를 돌보는 계급이 형성된다: 노동의 지휘, 국무, 사법, 과학, 예술 등등. 따라서 계급분할의 저변에 놓여 있는 것은 분업의 법칙이다. (엥겔스, “유토피아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전” 최인호 역, <맑스‧엥겔스 저작선집>제5권. 박종철 출판사, 2000. p. 470.)

사회 전체에서 “계급분할의 저변에 놓여 있는 것은 분업의 법칙”이다. 동일하게 가족 내에서 남녀의 항쟁과 지배와 피지배의 저변에 놓여 있는 것 또한 가족 내 분업의 법칙이다. 우리는 위에서 그것을 확인했다.

따라서 생산의 발전만이 분업과 계급의 폐지를 낳는다.

사회계급의 폐지는, 이러저러한 특정한 지배 계급이 현존한다는 것뿐 아니라 지배계급 일반, 따라서 계급 자체가 있다는 것까지도 하나의 시대착오가 되고 낡아빠진 것이 되는 그러한 역사적 발전단계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그것은 특수한 사회계급이 생산수단과 생산물을 전유하며 그럼으로써 정치적 지배를 전유하며, 교육과 정신적 지휘를 독점하는 것이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지적 발전의 장애로 되는 그러한 생산의 높은 발전단계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 도달한 것은 지금이다. (엥겔스, 같은 책, pp. 470-471.)

마침내 자본주의는 분업을 철폐할 만큼, 아니 철폐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생산력을 발달시켰다. 19세기에 주로 유럽에서 건설한 대공업, 20세기 후반기부터 세계적으로 발달한 과학기술혁명은 생산력을 폭발시켰다. 현재 전개되고 있고, 갈수록 심화되고, 만성화되고 있는 과잉생산 공황은 그것의 표현이다.

노동계급은 “생산수단을 점유 획득”하여, 여성해방, 노동해방, 인간해방을 이룰 수 있을까? 그리하여 마침내 “털이 별로 없는 원숭이”들은 동물계를 벗어나고, 필연의 왕국에서 자유의 왕국으로 비약할 수 있을까? 어른거리고 있는 제3차 세계대전의 그림자를 보며, 필자는 그것을 자신할 수 없다.

사회에 의한 생산수단의 점유 획득과 함께 상품생산은 제거되며, 그럼으로써 생산자에 대한 생산물의 지배도 제거된다. 사회적 생산의 무정부 상태는 계획적이고 의식적인 조직화에 의해서 대체될 것이다. 개체의 생존을 위한 투쟁은 중지된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 결정적으로 동물계를 벗어나고, 동물적 생존조건으로부터 참으로 인간적인 생존 조건의 길로 들어선다. … 이제까지 역사를 지배해 온 객관적이고 외적인 힘들은 인간들의 자신의 통제 아래로 들어온다. … 이것이 필연의 왕국으로부터 자유의 왕국으로의 인류의 비약이다. (엥겔스, 같은 책, pp. 472.)

1

이 책은 1884년, 엥겔스의 64세 때 작품이다. 최인호 역 야만에서 미개를 거쳐 문명에 이르는 인류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첫째, 군혼, 대우혼, 일부일처제로의 가족발전사, 둘째, 잉여생산물이 생기면서 사적 소유가 출현하여, 계급사회로 발전하는 것, 셋째, 화해불가능한 계급 적대가 발생하고, 지배계급의 폭력기구로 국가가 출현하는 것이 주요 주제이다.

필자(이현숙)가 교재로 사용한 책은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최인호 역, <맑스‧엥겔스 저작 선집> 제6권, 박종철 출판사 2000.이다. 인용문에서 p.00으로 표현하는 경우 모두 이 책에서의 인용이다.

2 인용문에 삽입한 [ ]은 필자의 것이다.
3 이후 인류의 삶의 조건이 향상되자(“먹고 살 만해지면서”), 즉 문명기에 일부일처제하에서 수컷들의 질투가 다시 살아나고 발달한다. 질투는 지배계급 남성들에게 특히 더 발달한다. 그러나 여전히 먹고살기 빠듯하고, 물려줄 재산도 없는 인민들에게서는 덜 발달한다.
4 엥겔스, “원숭이의 인간화에서 노동이 한 역할”, 박기순 역, <맑스‧엥겔스 저작 선집> 제5권, 박종철 출판사 2000.
5 이하 강조는 특별한 언급이 없으면 모두 인용자의 것이다.
6 번역문에는 지배로 되어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에서는 지배와 피지배는 없다.
7 원주: 퀸 샬로트 제도의 하이다 족의 경우에는 700명까지 한 지붕 아래 포괄하는 세대가 있다. 누트카족의 경우에는 한 부족 전체가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었다.
8 여러 대우혼 가족들이 공동으로 모여, 하나의 공산주의적 세대를 구성한다는 의미이다. 한국사회와 비교하면 여러 형제들이 함께 사는 대가족제도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모계사회 대 부계사회, 재산의 공동소유 대 사적소유라는 측면에서는 전혀 다르다. 또한 대우혼에서 남녀 모두 대개 다른 배우자와의 성적관계가 인정된다.
9 모건 <고대사회>, p. 552. (엥겔스, 같은 책, p. 196.에서 재인용
10 작은 성공에 점점 오만해진 “털이 별로 없는 원숭이”들은 심각한 오류를 저지르게 된다. 자신은 동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그럼 식물인가?), 심지어는 자신이 “신의 아들”이라고까지 한다.
11

[사회주의 사회에서] 개별생산자는 자신이 사회에 주는 것을 ─ 공제 후에 ─정확히 돌려 받는다. …

그러므로 여기서 평등한 권리는 여전히 ─ 원리상 ─ 부르주아적 권리이며, … 생산자의 권리는 그의 노동에 제공에 비례한다. (칼 맑스, “고타 강령 초안 비판”, 이수흔 역,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제4권, 2000, p. 376.

12 p.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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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상열지사

조선 전기의 학자들이 고려가요(高麗歌謠)를 낮추어 부른 명칭. 고려가요에는 남녀간의 사랑을 읊은 노래가 많은데, 표현이 너무 사실적이었기 때문에 조선의 국시(國是)와 유교적 안목으로는 매우 못마땅하였으므로, 비방하는 뜻으로 부른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많은 고려가요가 망실되었고, 지금 전하는 《쌍화점(雙花店》 《이상곡(履霜曲)》 등도 내용이 많이 수정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밖의 작품들을 들면, 《만전춘(滿殿春)》 《가시리》 《서경별곡(西京別曲)》 《청산별곡(靑山別曲)》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14 p. 91.
15 … 노동력을 고찰하여 보자. 여기에서는 임금이 이자로 간주되고, 따라서 노동력은 이 이자를 낳는 자본으로 간주되고 있다. 연간의 임금이 예컨대 50원이고 이자율이 5%라면 연간의 노동력[노동자]은 1000원의 자본과 동등하다고 간주되는 것이다. 사물을 파악하는 자본가적 방식의 미치광이 같은 성격은 여기에서 그 절정에 도달한다. (<자본론> 제3권(하), 김수행역, 비봉출판사, 1995년, p. 570.
16 자본주의까지 남자는 매춘 등으로 여전히 군혼을 누린다.
17 p. 85
18 항간의 보도에 의한다면, 한국최대 재벌기업의 계열사 사장인 여자의 경우에 그러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19 거미는 직포공의 작업과 흡사한 작업을 하고, 꿀벌은 벌집을 지음으로써 많은 인간들을 무색케한다. 그러나 가장 서툰 건축가조차 처음부터 가장 뛰어난 꿀벌보다 돋보이게 하는 것은, 건축가는 밀랍으로 방을 짓기 전에 그것을 자신의 머릿속에 먼저 지었다는 점이다. … 노동하는 기관들의 긴장 외에, 집중력으로서 발현되는 합목적적인 의지가 노동기간이 지속되는 기간 전체에 걸쳐서 필요하며… (칼 맑스 <자본론> 제1권 제2분책, 채만수 역, 노사과연, 2018, p.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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