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여성> ‘페미니즘이 아닌’ 여성해방으로 가는 길 – 『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다』를 읽고

박한솔 | 노동전선 회원

2016년 5월 17일, 23세 여성 A씨가 목숨을 잃었다. 피의자는 34세 남성 B씨. 피의자가 지하철역 화장실 앞에서 1시간가량 범행 대상을 물색하는 동안, 남성 10명이 화장실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표적이 된 이는 젊은 여성이었다. 범행은 원한 감정에 의한 살인도, 금품을 노린 강도 목적 살인도 아니었다. 피의자는 범행 이틀 전 어느 여성이 버린 담배꽁초가 자신의 신발에 떨어진 것에 화가 나 살인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이 사건을 조현병 환자에 의한 ‘묻지마 살인’으로 규정했다. 이에 여성계를 중심으로 해당 살인사건이 ‘여성혐오(misogyny)’ 범죄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아무 사람’ 대 ‘여성 중 아무 사람’ 중 하필이면 후자를 택한[1]“정신병력 거론, 가해자에게 면죄부 주는 것”, 오마이뉴스, 2016년 5월 26일 수정, 2022년 2월 16일 접속, … Continue reading 피의자의 행위가 ‘묻지마 살인’이라는 표현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 페미니즘에 있어 ‘강남역 살인사건’은 중대한 변곡점이었다. 그간 언론과 수사기관에 의해 범행 대상을 불문하고 묻지마 살인으로 규정되었던 사건이 마침내 ‘여성혐오 범죄’라는 이름으로 공론장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피의자 남성에 규탄과 피해 여성에 대한 추모는 특히 여성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사건 직후 강남역 10번 출구 일대에 부착된 추모 메세지들-“어쩌면 ‘내’가 되었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나’였어”, “얼마나 더 조심해야 무고한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나요?”, “살아남은 나는 한국 여자다”-은 당시 여성들이 느꼈던 공포와 분노, 무엇보다 ‘페미니즘 리부트(reboot, 재기동)’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각인돼 있다.

한국 사회는 자타가 공인한 극심한 성차별 사회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성 격차 지수(GGI) 순위는 156개국 중 102위로 조사됐으며[2]“한국, 성평등 수준 102위… 세계 성별 격차 해소에 136년 걸린다”, 한국일보, 2021년 3월 31일 수정, 2022년 2월 16일 접속, … Continue reading, 성별임금격차 또한 여전해서 2020년을 기준으로 여성은 남성 임금의 67.7%밖에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3]남성대비 여성 임금비율, 고용노동부 e나라지표, 2021년 7월 7일 수정, 2022년 2월 16일 접속, https://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2714.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과 함께 앞서 언급한 강남역 살인사건과 같은 여성 대상 범죄도 여성의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경찰청범죄통계를 보면 지난 10년간 강력범죄 피해자 10명 중 8명은 여성이었으며, 반대로 범죄 가해자의 경우 남성 10명 중 8명을 차지했다. 강력범죄로 한하면 무려 가해자 중 무려 96%가 남성이기도 했다.[4][팩트체크] 이수정 “강력범죄 피해자의 80%가 여성이다”, 2021년 12월 16일 수정, 2022년 2월 16일 접속,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2323.

위와 같이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별불평등과 여성 대상 증오범죄는 페미니즘의 부흥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 페미니즘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2030 여성을 중심으로 상당한 소구력을 얻게 되었는데, 특히 2015년 개설되어 2017년까지 운영된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는 남성에 의한 여성 폭력을 남성에게 ‘미러링(mirroring)’하는 전략을 통해 웹상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남성혐오’[5]여성혐오(misogyny)의 대칭 개념으로 쓰이고 있는 표현. 그러나 여성학계에서는 여성과 달리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가해지는 구조적인 억압은 … Continue reading) 문제를 비롯하여 숱한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페미니즘 대중화의 기폭제로 작용하며 90년대~00년대 초반의 ‘영페미(young-feminist)’ 흐름을 계승한 넷페미(‘net-feminist’)의 등장으로까지 이어졌다. 요컨대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여성해방’ 그 자체를 대표하는 주류적 이념이 된 것이다. ‘페미니즘이 아닌 여성해방’을 상상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페미니즘이 여성해방을 독점하고 있지 않고서야 ‘여성해방=페미니즘’이라는 공식이 유일한 정리(定理)일 까닭이 없다. 단지 무엇이 ‘궁극적인 해방’으로의 첩경이 될지가, 얼마만큼의 과학성과 역사성을 겸비하고 있을지가 중요할 뿐이다. 지난 2019년 출간된 『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다』(도서출판 해방, 이하 책)는 주류 여성계와 다른 관점에서 여성해방을 전망한다. 어쩌면 (여타 사회주의적 이념과 마찬가지로) 금기시되고 있을지도 모를, 그래서 더욱 생소한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이 바로 그것이다.

책은 강남역 살인사건과 미투운동, 혜화역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에 이르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흐름을 비판하면서 시작한다. 그러나 페미니즘이 여성우월주의라거나, 남성역차별이라는 소위 ‘안티페미니즘’ 부류의 주장을 답습하는 것은 아니다. 책은 오히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불리한 위치에서 억압과 차별을 겪고 있다는 건 엄연한 사실”(7p)임을 인정하고 “우리는 적극적인 여성해방 투쟁이 필요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7p하단-8p)고 강조한다. 다만 지금의 페미니즘 담론이 가지고 있는 여러 한계를 극복하고 여성해방을 과학의 토대 위에 정초하는 것이 목적이다.

“모두가 페미니즘을 말하는 시대”(7p)이지만 이는 페미니즘이 단일한 이념체계로 존재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19세기 여성참정권 운동에서 출발하는 1세대 페미니즘, 1960년대부터 70년대 사이에 미국을 중심으로 태동한 ‘급진주의 페미니즘(radical feminism)’,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인식틀을 수용하여,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을 넘어 계급과 인종 등 개인을 둘러싼 여러 정체성들을 중심으로 구축한 ‘교차성 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은 그 계파에 따라 수많은 입장이 병존하고 있다. 이들은 여성해방이라는 대의에서 서로 일치하지만 몇몇 쟁점, 특히 트랜스젠더와 성매매여성에 대한 태도를 두고 극심한 반목을 겪기도 한다. ‘남성 페미니스트’를 인정할 것인지를 두고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다. 그럼에도 이들은 모두 자타공인 ‘페미니스트’이다. 하여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상황을 ‘n명에게 n개의 페미니즘이 있다’는 문장으로 설명하곤 한다.

책은 이처럼 페미니즘의 복잡다단한 성격을 간략히 검토한 뒤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결국 역사적으로 살펴본 페미니즘은 그냥 ‘여성억압을 철폐하고자 하는 사상’이 아니라, 여성의 억압을 다른 모든 억압에 앞선 사회의 기본 모순으로 바라보는 사상”(9p)이라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한계는 바로 여기서부터 나온다. 사회주의 여성해방론과 달리 페미니즘은 “기본적으로 물질적 생산으로부터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여성억압의 영역이 있다고 보고, 실천적으로도 여성억압을 철폐하는 운동이 계급억압을 철폐하는 운동과는 독자적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21p). 반면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은 “역사유물론[6]사적유물론(史的唯物論)과 같은 말. 이하에서는 직접인용이 아닌 한 사적유물론으로 표기를 통일한다.에 의거하여 물질적 생산의 관점에서 여성억압을 포함한 이제껏 존재했던 착취와 억압을 역사적으로 설명한다.”(같은 쪽). 하지만 몇몇 여성운동가들은 사회주의 운동이 계급 문제로 모든 것을 환원시키고 여성억압을 부차화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오빠는 필요없다』의 저자 전희경은 “여성문제의 부차화, 주변화라는 문제는 단순히 우연적 현상이 아니라 정통 맑스주의의 이념에 의해 정당회되고 또한 재생산돼온 것”(22p)이라며,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을 비판한 바 있다. 이러한 주류 페미니즘의 주장에 따르면 사적유물론에 입각한 여성해방의 전망은 ‘정통 맑스주의 이념’이 계급환원론으로의 귀결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페미니즘의 대안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책의 저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사적유물론에 기초한 분석을 통해서만 여성억압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 있다.

책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살아 있는 인간 개인들의 생존”을 인용하여 사적유물론을 소개한다. 인류 역사 대부분이 그랬듯이, 아니 현재까지도 ‘먹고 사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달리 말해 사적유물론은“인간이 생산을 통해 물질적 생산을 영위해나간다는 점”(25p)에 착안하여 인간 사회의 발전을 한 사회의 생산력 수준과 결부짓는다. 맑스에 따르면 인간 사회는 크게 원시공산제-고대노예제-중세봉건제-자본주의-공산주의라는 다섯 단계에 따라 발전하게 된다. 이 중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이 나뉘지 않았고, 성별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지 않았던 원시공산제 사회이다. 인류 최초의 불평등은 생산력의 발달에 따른 잉여생산물의 발생으로 야기된 (적대적) 계급 분화로부터 태동하였는데, 원시공산제 사회는 생산력 수준이 낮은 탓에 잉여생산물이 없었고, 이에 원시적인 형태의 공산사회가 실제로 구현되었다. 이 시기 인간의 주된 필요는 생존 그 자체였기 때문에 생산수단의 공동소유라는 기초 위에 공동체 구성원에게 필수적인 생산수단을 공급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때문에 사적소유도, 계급분화도 없었으며 당연히 착취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엥겔스도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최초의 계급억압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과 일치한다”[7]책 33쪽에서 재인용.고 말했는데, 결국 잉여생산물과 사유재산의 발생이 여성억압의 역사적인 원인으로 되는 것이다.

한편 남성과 여성 간의 임금격차의 한 가지 원인으로 되고 있는 성별 분업 또한 사적유물론에 따라 분석하면 보다 간명해진다. 원시공산제 사회에서도 성별 분업은 존재했지만, 이것은 당대의 낮은 생산력 수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분업은 인간이 자연적 제약을 어느 정도 극복했는지, 즉 해당 사회의 생산력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의 문제와 직결된다.”(31p). 원시공산제 사회는 생산력 수준이 낮아 남성과 여성의 신체 능력 차이에 따른 자연스러운 분업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으며, 이는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 모든 인간에 대한 자연의 지배를 반영하는 것이다.”[8]린다 번햄·미디엄 루이, 「불가능한 결혼」, 책 31쪽에서 재인용. 아울러 이 시기는 성별 분업으로 인해 남성과 여성 사이의 발언권 차이가 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여성은 공동체의 의사결정과정에 남성과 함께 참여하였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생물학적 차이’가 여성억압의 근본 원인이라는 주장에 대한 역사적인 반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초의 평등은 생산력의 발전과 함께 나타난 사적소유와 계급분화로 인해 사라지고 말았다. 고대노예제와 중세봉건제에 이은 계급사회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사적소유에 말미암은 여성차별은 계속되고 있으며, 이는 계급억압과 여성억압이 서로 보폭을 맞추고 있음을 상기할 때 필연적인 일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의 성차별은 한층 교묘해진 상황이다. 자본가계급은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 대우를 확대 강화하여 막대한 이윤 창출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데, 특히 봉건시대에 구축된 여성의 성별 역할(특히 가정에서의 역할)을 강요함으로써 자본주의 특유의 여성억압을 만들어냈다. 자본주의 체제는 잉여가치 착취를 위해 가정에 속박되어 있던 여성조차 외견상 자유로운 임금노동자로 전환시켰지만, 여전히 여성들에게 ‘노동자이자 가정 주부’라는 이중의 억압을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책에서 제시하는 여성해방의 길은 당연히 사적소유의 폐지와 사회주의의 건설이다. 그렇다고 ‘사회주의 체제로 이행하면 모든 억압과 차별이 일시에 해소된다’ 따위의 유토피아론을 설파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사회주의는 공산주의 사회로 가기 위한 과도기인 만큼, 사적소유가 철폐된 여타 현실사회주의 국가와 마찬가치로 여성차별은 어떤 형식으로든 당분간 잔존함이 불가피하다. 그럼에도“사회주의의 건설은 이제껏 여성억압을 존립케 했던 토대를 제거하고 (…) 여성해방을 위한 결정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창출할 것”(41p)이다.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요소를 지양한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문화적인 성차별은 물론이고 경제 영역에서의 성별 분업과 임금 불평등 역시 폐지하기 위해 마련된 든든한 주춧돌이 된다. 사회주의 건설 이후에 필요한 것은 여성의 사회적 생산 참여를 보장하고, 가사노동을 사회화하며, 여성의 임신과 출산이 여성에 대한 억압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아울러 계급사회의 잔재인 성차별 이데올로기와의 투쟁 또한 가열차게 벌려나가야 한다. 사회주의를 건설해나갈 우리에게는 “더욱 의식적이고 체계적인 실천”(41p)이 요구될 뿐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나아가 공산주의가 실현되었을 때 여성의 지위는 어떻게 되는가? 바벨(August Bebel)의 『여성론』(1990, 까치)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바벨에 따르면 “새로운 사회의 여성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된 존재로서 기만적 지배와 착취에 예속되지 않으며 남성에 대해서 자유롭고 남성과 동등하다.”(496p). 또한 “자신의 희밍과 소질 성향을 고려해 선택한 활동분야에서 남성과 동일한 조건하에 일”(496p)한다. 연애 문제에 있어서도 남성과 여성은 자유로우며, 결혼제도 또한 일정한 변화를 수반하게 될 것이다. 바벨은 “현재의 부르주아 사회에서 연애의 자유를 완전히 실현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499p)고 말한다. 사적소유를 바탕으로 한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 연애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물질적, 정신적 조건을 갖춘 몇몇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표현한 ‘N포세대’ 담론이 최초에 3포세대로 제기되었을 때, 여기엔 연애, 결혼, 출산이 포함되었던 바 있다. 물론 이는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현재의 자본주의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이다. 즉, ‘소멸 단계에 접어든 자본주의’라는 소리다. 역사발전 법칙에 따라 자본주의는 폐지되고 사회주의가 들어선다. 인류가 한 단계 높은 발전 단계로 성큼 발을 내딛는 것이다. 진보적인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바탕으로 계급사회는 철폐되고, 원시공동체 사회와 마찬가지로 무계급사회로 회귀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으로 새로운 무계급사회가 건설될 것이다. 여기서 ‘높은 수준’이란 생산력 발전은 물론이고 물질적 토대를 바탕으로 의식적으로 전개해내가는 “여성의 완전한 해방과 남녀평등권의 획득”(504p)을 포괄한다. 계급사회 이후 마치 ‘인간본성’의 발로인 것처럼 여겨졌던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마침내 종지부를 찍고, “계급지배가 영원히 자취를 감추고 이와 더불어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도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504p).

1 “정신병력 거론, 가해자에게 면죄부 주는 것”, 오마이뉴스, 2016년 5월 26일 수정, 2022년 2월 16일 접속,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10798.
2 “한국, 성평등 수준 102위… 세계 성별 격차 해소에 136년 걸린다”, 한국일보, 2021년 3월 31일 수정, 2022년 2월 16일 접속,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1033113120003589.
3 남성대비 여성 임금비율, 고용노동부 e나라지표, 2021년 7월 7일 수정, 2022년 2월 16일 접속, https://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2714.
4 [팩트체크] 이수정 “강력범죄 피해자의 80%가 여성이다”, 2021년 12월 16일 수정, 2022년 2월 16일 접속,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2323.
5 여성혐오(misogyny)의 대칭 개념으로 쓰이고 있는 표현. 그러나 여성학계에서는 여성과 달리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가해지는 구조적인 억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은 반-여성적 편견과 반-남성적 편견의 사회적 기반이 다르다는 점, 두 편견이 매우 상이한 귀결을 가져온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 여성의 분노와 증오는 남성 특권 및 여성 억압의 일부로 여성됨(femaleness) 그 자체를 평가절하하는 여성혐오적 문화에 뿌리를 둔다. 하지만 위 현상에 대응하는 반-남성적 이데올로기가 존재하지 않기에, 여성의 (남성에 대한) 분노는 피억압집단으로서의 경험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강하다.”, Johnson, Alan G. (2005). 《The Gender Knot: Unraveling Our Patriarchal Legacy》 2, revis판. Temple University Press. 107쪽, https://femiwiki.com/w/%EB%82%A8%EC%84%B1_%ED%98%90%EC%98%A4#cite_note-Johnson107-3에서 재인용.
6 사적유물론(史的唯物論)과 같은 말. 이하에서는 직접인용이 아닌 한 사적유물론으로 표기를 통일한다.
7 책 33쪽에서 재인용.
8 린다 번햄·미디엄 루이, 「불가능한 결혼」, 책 31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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