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39호 2-1 한국 정치는 어디까지 퇴보할 것인가?

김파란 ㅣ 농민

: 윤석열의 발언 모두를 정치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

: 당대의 일어나는 모든 부조리는 현실의 노동 실태에서 파악해야 한다. (프랑스 내전 – 파리코뮌)

내가 맛없고 조금 딱딱한 빵 먹더라도 사회구성원의 일부인 제빵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향상시키자. 그 정도 불편한 것은 감수하겠다. 그러니 제빵공들의 야간작업을 폐지 시켜라..

이 말은 파리코뮌의 시민들이 한 말이다.

149년 전에 자본가들이 버리고 떠난 도시에 노동자들이 세운 정부가 있었다. ‘파리코뮌’이다. 한국에서 코뮌주의 주장하시는 분들이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텍스트인 <프랑스 내전>이다. <프랑스 내전>은 1871년 마르크스가 쓴 것으로 말 그대로 프랑스에서의 내전을 소재로 씌여진 책이다. 그 내전이 뭐냐면 <파리코뮌>이라는 사건이다.

이 ‘파리코뮌’이라는 사건을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면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끝자락에 1871년 파리쿄뮌이 있었다. 이제 정말 대중들 즉 인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정부를 만들었다. 파리를 장악했다. 파리를 장악하면서 파리에 나뉜 여러 개의 구, 또 그 안의 작은 마을들의 자치적인 지역체 같은 것이 코뮌이다. 파리코뮌 당시에는 부자들은 다 도망가고 파리에 가난한 사람만 남게 된다. 이 사람들이 코뮌중앙위원회를 만들어 정치적 주체가 된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파리코뮌’의 시절이라고 한다.
한 세 달 남짓 지나고 진압된다. 독일 군대에 진압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군대 즉 자국 정부군에 진압된다.

이 짧은 몇 달 간의 일들을 마르크스가 인터내셔널에 보고 하기 위해 보고서를 쓴다. 이것이 <프랑스 내전>이라는 텍스트다. 대부분의 내용은 파리코뮌의 역사적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그 중 한 파트가 파리코뮌에서 시행되었던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조치들을 평가하는 부분이 있다.

<프랑스 내전>에서 취했졌던 사회적 조치 중에 중요한 것이 상당히 많다. 이것을 마르크스가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면서 그 의의를 설명한다.

첫 번째 직접 민주주의 강화다. 요즘도 이런 말은 시민사회의 화두다. ‘파리코뮌’에서 실제로 그런 조치들을 실행한다. 제일 강조되었던 것이 <주민소환권>이었다. 물론 코뮌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대의제다. 그러나 직접 민주제 요소가 상당히 강한 대의제다. 소환요건이란 것이 상당히 느슨해서 소환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였다. 주민발의도 있었다.

두 번째 공직자들이 노동자 평균임금 이상을 받을 수 없다는 원칙을 만들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사항이라 내가 페북에서도 따로 글을 몇 번 올렸다. 3개월 남짓 존재했던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일관된 정책이 실행되기는 힘들었지만 이런 정책이 일반화됐든 안 됐든 공직자 즉 대중의 위임을 받은 자가 대중들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없다. 이건 임금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공직자가 ‘특권’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중요한 원칙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2020년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를 1871년 무렵에 벌써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 번째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이 버리고 떠난 생산시설을 점거해 노동자들의 직접 경영을 시도했다.

물론 자본가들이 다시 돌아오면 얼마만큼 보상해준다는 제도도 만들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지금이야 노동자들이 직접 경영하는 사례도 있고 그런 이야기도 많이 하기 때문에 신기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 당시는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역사책을 조금이라도 읽은 사람이면 지식인들이나 지배계급이 그 당시 노동자들을 어떻게 서술하고 바라보았는지 알 것이다. 한 마디로 그들에게 노동자는 같은 인간이 아니었다. 다른 인간 또는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생물학적 결정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서 인종간에 종이 다르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식민주의자들 중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방식의 접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동묘지에서 두개골을 파내서 용량을 쟀다. 그러고는 노동자는 기본적으로 자본가나 지식인 계급보다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소재다, 라고 말했다. 이런 생각이 상당히 널리 퍼져 있었다. 맬더스 인구론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오고 수 많은 그 당시 문헌들에 항상 나오는 얘기가 노동자 계급이 왜 가난하냐? 성욕이 강해서 애를 많이 낳아서 가난하다. 이 말은 노동자들은 성욕을 억제할 이성적 능력이 처음부터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근데 자본가나 지식인들은 그런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걸 가지고 노동자들에 대한 억압적 착취와 차별을 정당화시키는 논리로 활용했다. 이게 아주 널리 펴져 있던 논리였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스스로가 자기들이 자본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도 못했다. 즉 그 당시 풍토에서는 거의 생각할 수도 없던 ‘노동자 스스로 공장 경영’ 을 파리코뮌에서 시도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이 사례에 주목한 것은 어쩜 당연하다.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통치할 수 있다는 마르크스의 믿음을 ‘파리코뮌’ 이 역사적으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네 번째 여성의 지위가 향상 되었다. 실제로 코뮌에서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 당시 남녀차별을 생각했을 때 내전 상황에서 여성들이 정치적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자체가 너무도 선진적인 사례였다.

마지막 내가 가장 중요하고 눈여겨 본 사례가 바로 글감 제목으로 뺀 바로 ‘제빵공들의 야간작업 금지’였다. 이게 왜 중요할까? 어떻게 보면 좀 마이너한 정책 같은데 말이다. 마르크스도 이걸 수 많은 정책 하나로 열거하면서 중요하게 다룬다.

‘제빵공들의 야간작업을 금지’ 하는 게 왜 중요할까?

프랑스인들은 아침 식사로 빵을 먹는다. 아침에 빵을 먹는데 그 전날 만든 것은 딱딱해져 맛이 없다. 그럼 아침에 맛있는 빵을 먹을려면 제빵공들이 밤샘 노동을 해야 한다. 이런 까닭으로 제빵공들의 노동조건이 상당히 열악했다. 이것이 그 당시 아주 중요한 사회적 문제이기도 했다. 지금 우리 상황에서는 택배 노동자들과 비교할 수 있겠다. 이젠 당일 배송도 넘어 새벽 배송을 경쟁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 속도에 멀미가 날 지경이다. 어쨌든 그 당시에도 제빵공들의 야간작업도 이렇게 사회적 문제였다. 근데 ‘파리코뮌’에서 제빵공들의 야간작업을 폐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그럼 어떤 결과가 나올까? 파리 시민들은 다 그 전날 만든 딱딱한 빵을 먹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로 치면 밭에서 식탁으로, 바다에서 식탁으로가 아닌 다 푸드뱅크에 실려갈 음식을 사람들이 먹기로 동의한 것이다.

시민들은 내가 맛없고 조금 식은 빵 먹더라도 사회구성원들의 일부인 제빵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그 정도 불편한 것은 감수하겠다고 동의한 것이다.

사회적 연대의 아주 중요한 조치였다.

또 이런 조치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코뮌 안에 대부분 노동자나 공인된 노동자 대표자들이 자리 잡게 됨에 따라 결정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노동자들이나 하층 계급이 권력을 잡으면 무자비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지만 역사는 다른 진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정작 반인륜적 학살이
일어나는 것은 대부분 이런 노동자 농민들을 진압한 권력에 의해 자행됐다.

같은 프랑스 군대 즉 자국 정부군에 의해 진압된 ‘파리코뮌’의 시민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여자, 남자, 어린아이들까지 학살 당한다. 후장총으로는 빨리 사살할 수 없었던 프랑스 군은 마트레이유즈 기관총으로 집단 총살했다. 최종적인 대학살이 자행되었던 페르라세즈 공동묘지의 ‘연맹병의 벽’은 오늘날까지 서 있다. 이렇듯 노동자나 하층 시민들이 통치를 하면 폭력적이다, 라는 말은 역사적인 경험으로 봐도 사실이 아니다. 노동자가 스스로 나설 때 사회적 연대는 더욱 강화 되었다. 물론 그 연대에도 제한일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상층 엘리트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사람뿐만 아닌 자연도 포함된다)을 알고 있다.

작금의 한국 정치는 너무 급격한 퇴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윤석열이 연일 내뱉는 말들과 그 옆에서 있는 윤희숙의 발언은 사실 150년 전 지배계층이 노동자 농민 즉 대다수의 하층민들의 억압과 착취를 정당화 시키는 논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허나 민중의 삶과 현실은 언제나 정반대였음을 이미 역사가 증명했다. 그러니 이런 진부한 정치적 언술을 내뱉는 윤석열은 청와대가 아니라 정치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

노동전선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이전 글

[전선] 138호 1-8 누가 내 쏘련을 옮겼을까?

다음 글

노동전선 소식지 (통권138호, 2022.2.3)

One Comment

댓글을 입력하세요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