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37호 12-3 일하는 사람에게도 철학이 필요하다- 『마르크스 철학연습』을 읽고

박한솔 l 대경 노동전선 회원

맑스주의란 무엇인가? 아마 맑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들 중에서 맑스주의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맑스주의는 과학적으로 정립된 현대 유물론의 정수이기에 그 풍부한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일뿐더러, 정파의 유불리에 따라 그 내용을 왜곡하여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은 소위 ‘운동판’(?)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한정되는 문제다. 맑스주의가 진실로 유용한 이념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에 있어 지배계급이 유포한 반동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무기로 기능해야 한다. 역사를 추동하는 주체인 노동자계급에게 맑스주의가 더없이 친숙한 이념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한국에서 맑스주의의 입지는 매우 위태로운 것이었다. 반세기 넘도록 이어진 친미반공체제는 노동자로 하여금 ‘맑스’ 이름 자체를 언급하는 것을 터부시하도록 만들었으며, 결정적으로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까지 이어진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붕괴는 맑스주의 철학 사조 자체를 과거의 유산, 실패작으로 치부하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맑스주의는 한 세기 동안 세계의 절반을 자본주의 진영과 양분하였던 변혁 이데올로기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상실하고, 소련 해체와 더불어 한때의 영광을 뒤로한 채 대안으로서의 빛을 잃어가는 듯했다.

그러한 가운데 지난 2019년 출간된 『마르크스 철학연습』(한형식 著, 오월의봄)은 근래에 보기 드문 맑스주의 철학 대중서라서 눈길을 끈다. 이 책의 저자는 수년간 맑스주의의 대중화를 위한 저술활동을 이어왔는데, 맑스주의의 태동과 확산, 치열한 사상투쟁의 과정을 『맑스주의 역사강의』에 담은 데 이어, 이번에는 『마르크스 철학연습』을 통해 맑스주의 철학의 핵심(소외, 인식론, 사적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 등)을 대중적인 언어로 풀어낸다.

한형식은 서문에서 본 저작이 “일하는 사람들, 일에 만족하는 사람들, 원치 않는 일로 삶이 피폐해진 사람들(…)”을 위한 철학 입문서라고 밝힌다. 그러면서 철학의 ‘쓸모없음’을 솔직하게 인정한다(7쪽). ‘아니, 쓸모없는 철학을 굳이? 그것도 하필이면 맑스를?’이라는 의문이 절로 드는 대목이다. 하지만 철학에 있어 중요한 것은 ‘실용성’ 따위가 아니다. 하늘에 비행기를 띄우거나 태평양을 횡단하는 선박을 건조하는 일에는 철학이 아니라 공학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토록 유용한 공기역학과 조선기술이 우리의 사유(思惟) 방식을 점검하는 데 있어서는 전혀 쓸모가 없다. 오직 철학만이 우리의 사유가 진정으로 적절한지 검토하는 데 있어서 유용한 도구가 된다. 철학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평소 당연시해왔던 생각, 태도, 관념들에 넌지시 물음을 던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철학적 사유는 그간 일상적으로 수용하였던 통념에 이의를 제기하고 편견에 사로잡혔던 과거의 자신에게 ‘반성’을 요구하는 비수(匕首,날이 날카로운 단도)가 된다. 필연적으로 “힘들고 불편한 일”(8쪽), 비수(悲愁,슬퍼하고 근심함)가 될 운명인 셈이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분명 쓸모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문계열, 특히 철학과가 ‘비효율’, ‘비생산’의 원천으로 지목되어 대학가에서 폐과 0순위를 다투는 세태가 그런 ‘쓸모없음’의 논리를 반영한다. 그러나 한형식은 철학의 무용함의 적용 대상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기를 원치 않는 사람”에 한정시킨다. 그런 사람에 있어서 “철학은 정말로 쓸모없다.”(9쪽)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임무는 착취체제를 완전히 폐절하고 무착취사회(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일이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삶을 내동댕이치고 싶어도 객관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그리하여 노동자계급의 당파성에 기초한 올바른 세계관의 정립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런데 이 사업은 빈곤과 궁핍에 내몰린 노동자의 즉자적인 분노와 ‘지상낙원’을 그리는 자위적 몽상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관철해나가기 위해서는 마땅히 과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에 맑스주의는 노동자계급이 스스로를 해방으로 인도하는 기초적인 이론적, 실천적 토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과학적인 사상이며, ‘일하는 사람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 철학연습』은 문고본 크기의 160쪽짜리 소책자이다. 일반적인 단행본을 고려하면 얄팍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다만 ‘맑스주의’의 진입 장벽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손바닥 만한 책에 소외론, 맑스주의 인간론,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차이, 국가의 본질, 토대상부구조론, 물질대사, 인식론, 변혁의 필연성, 유물론과 변증법에 이르는 맑스주의의 핵심을 욱여넣고, 이를 독자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정리하는 작업은 상당한 노력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중성을 취한 반작용으로 내용의 엄밀함과 풍부함은 상당 부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몇몇 내용은 대중성 문제와 지면의 한계로 인해 지나치게 단순화된 경향이 있다. 특히 맑스주의의 정수로 꼽히는 “유물론과 변증법” 파트는 15쪽 남짓한 분량으로 압축적으로 서술되었는바, 맑스주의 초심자에게는 다소 난해하게 다가올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이는 『마르크스 철학연습』 전반을 관통하는 문제다. 저자도 이 책은 어디까지나 ‘입문서’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이 갖는 의의는 운동사회에서조차 비주류로 전락한 맑스주의 철학을 대중화하기 위한, 작지만 유의미한 시도였다는 데 있다. 혁명을 설계하며 전위를 자처하는 ‘꿘’들 중에서 과연 진정으로 대중에 입각하여 행위하고 대중의 관점에서 사고한 이가 얼마나 되었나. 80년대에 출간된 낡은 사회과학서적을 뒤적거리고 맑스 원전을 읊는 것만으로는 대중을 획득할 수 없음이 자명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각종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함의를 지닌 도서다. 무엇보다도 공정성, 각자도생, 개인주의, 불확실성으로 귀결되는 부르주아 철학과 달리, 맑스주의는 노동자계급이 나아갈 명확한 방향과 전망을 제시한다. 현실성과 실용성으로 무장한 부르주아 사상은, 이 지긋지긋한 착취체제 속에서 냉소와 절망을 씹으며 하루하루를 버텨온 모든 ‘일하는 사람들’에게 결코 ‘쓸모’를 부여하지 못한다. 반면 쓸모없음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쓸모를 발휘하는 철학,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철학은 일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사고하고 실천할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 마침내 노동자계급은 소외되고 원자화된 존재가 아니라 굳건히 단결한 역사의 주체로 우뚝 서게 된다.

공교롭게도 2021년은 소련 해체로부터 꼭 30년이 되는 해이다. 필자가 세상에 태어났을 땐 이미 냉전이 종식되고 미국 독주체제가 완성된 터라, 더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 대적하는 위험요인이 아니었다. 신자유주의 광풍이 한반도 남반부를 휩쓸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일상화된 시대이기도 했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처럼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를 두고 “역사의 종말”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컸다. 그러나 2008년 대공황과 거듭되는 경제위기는 자본주의 체제 역시 역사발전의 한 단계에 불과함을 증명하고 있다. 앞으로도 인류의 역사는 부침이 있을지언정 끊임없이 진보할 것이다. 필자는 『마르크스 철학연습』이 변혁으로 향하는 끝 모를 천리길에 노동자계급이 기꺼이 한 걸음 내딛는 것을 고무하는 지침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딛고 올라가려면 버리고 가야 하는 사다리”(11쪽)로 이용하기에 이보다 나은 선택지가 없다. 동지들에게 기꺼이 비판적 독해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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