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37호 12-2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지 마시라

『현대민주주의론 1』, 창작과비평사, 1992 를 읽고.

전우재 l 대경 노동전선

1.

활동가는 계란을 던졌다. 계란은 정치인을 향해 날아갔다. 날아간 계란은 정치인을 맞추지 못했다. 경찰은 활동가를 붙잡았다. 활동가는 붙들렸다. 경찰은 활동가를 쉬이 풀어주지 않을 듯했다. 활동가는 전쟁 반대를 위해 계란을 던졌으며, 전쟁 반대를 위해 몸부림을 친 전과가 있었다. 전쟁 반대는 중죄다. 활동가는 중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쉽게 풀려나기 어려워 보였다. 기자는 영상을 찍었다. 영상은 인터넷에 올라갔다. 전쟁 반대가 중죄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활동가를 비난했다. 왜 상대 당에게 묻지 않았냐고 힐난했다. 계란을 던지고 이틀이 지났다. 정치인은 편지를 썼다. 편지는 신문에 실렸다. …(저는) 주어진 현실과 상황에 맞춰 국익을 극대화할 방안을 찾는 정치가 … 현실화된 상황에 기초해 대안을 찾는 게 역할 … 신문은 편지를 인용하며, 정치인이 선처를 요구했다는 사실 또한 언급했다.

저들이 말한 바는 이렇다. “주어진 현실과 상황에 맞춰 국익을 극대화할 방안을 찾고, 현실화된 상황에 기초해 대안을 찾아야 한다.” 정치인이 무슨 행동을 해야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고, 왜 행동을 해야 하고… 곁가지를 다 쳐내고 알맹이만 남기면 저런 말이 되는 듯하다. 그들이 말한 현실과 상황은 냉혹했다. 감옥에 갇힌 대통령은 현실과 상황 때문에 풀려났다. 현 상황에서 국익을 극대화하는 대안은 전쟁 반대를 말하는 활동가를 잡아 가두고, 전직 대통령을 풀어주는 결단으로 나타났다. 민주당과 이재명 이야기다.

정치인은 한심하다. 이쪽 정치인이 한심하다는 말은 저쪽 정치인도 못지않게 한심하다는 말이다. 일부 청년들이 지지해 세를 불린 정치인을, 청년들은 더는 지지하지 않는다. 청년들은 정치인에게 과격한 정책을 요구했다. 상대 당과 다른 정책을 내세우길 바랐다. 정치인은 분부대로 과감한 정책을 선보였다. 청년들은 경악했다. 정치인이 제시했던 대안은 자기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과격했다. 세금을 거두어 나눠줄 거면 처음부터 거두지 않으면 되는 게 아니냐, 한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 못 견딘 그 당 당대표는 지방으로 도망가고 직위를 내려놓았다. 그 일이 있고 정치인은 이제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차라리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게 지지율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인데, 그 뿐만은 아니었다. 당 안에서 패권을 쥐는 게 더 중요하단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밀은 민주주의를 경계했다. 소수 의견을 존중해야만 바람직한 민주주의이고 옳은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수 노동자 계급이 선전선동을 통해 소수 자본가 계급이 가진 재산을 침해하는 정치 결정을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책, 32P) 위 사상과 맥락이 같은 말인 중우정치는 표만 쫓는 정치인을 비판하고 경계하는 말이다. 벤담은 정치인이란 무릇 다수 유권자가 가진 힘을 빌려 제멋대로 이익을 챙기는 자들로 보았다. 표만 쫓으며 잘못된 선택을 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벤담 입장에서는 국민의 힘과 윤석열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국민의 힘과 윤석열은 정치 행보를 보임에 있어 유권자를 고려하지 않는다. 표에 초연한 모습을 보이며 열심히 내부 투쟁 중이다. 이런 자들을 어떻게 정치인이고 정치인들 무리라고 부를 수가 있겠는가? 정치인조차 되지 못한 이에게 중우정치를 경계하라는 주문은 과중하다.

양당 정치인들은 한심하다. 한심하지만, 이게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시각은 위험한 시각이다. 자본가 계급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그렇게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창비에서 92년에 엮은 『현대민주주의론 1』을 통해, 그 중에서도 박주원,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를 중점적으로,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알아보자.

2.

“…민주주의의 어원적인 정의인 ‘인민의 지배’라는 것은, 현실에서 볼 때 한편으로는 인민의 지배를 달성하고자 하는 투쟁이나 운동으로 나타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인민을 지배하는 구체적인 형태, 따라서 그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체제의 문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란 역설적이게도 인민의 지배를 달성하려는 ‘투쟁’과 인민에 대한 ‘지배’라는(즉 ‘운동’과 ‘제도’라는) 대립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책, 20P)

민주주의는 어느 시기에나 통용되는 말이 아니다. 책이 가진 문제의식은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가 어디서 나온 말이냐 어원을 따질 때는 데모스 크라토스라는 말에서 뿌리를 찾는다. 민중이 지배한다는 뜻이다. 이는 반만 맞다. 그리스에서 정치 참여가 가능했던 건 성인 남성뿐이었다. 노예나 여성은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건 성인 남성 중에서도 일부 남성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결정을 한다기보다는, 노예주들이 모여 앞으로 일을 의논하는 데에 가까웠다. 일부 구성원만이 참여했던 그리스 민주주의는 보다 많은 구성원을 참여하는 방향으로 확대된다. 페르시아와 맞서며 해군이 중요해진다. 해군에 주로 복무하던 노 젓는 병사, 격군은 4등급 자유민인 테테스가 주로 복무했다. 해군이 날로 중요해지니 해군에 복무하는 테테스가 가진 정치 입지도 확대되었다. 높은 등급 자유민만이 정치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낮은 등급 자유민까지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본디 노예주인 자유민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쓰는 제도였다. 페르시아 침공이라는 역사 사건과 격군으로 복무하는 테테스 비중이 커지며, 그리스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가 변한다. 일부 구성원이 행하는 행동에서 많은 구성원이 행하는 행동으로 바뀌었다. 책은 민주주의는 지배와 피지배관계라는 맥락 안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높은 등급의 자유민이 낮은 등급 자유민과 노예를 다스리던 형태에서, 자유민 일반이 자유민 자신과 노예를 다스리는 형태로 변했듯이, 누가 지배하고 어떻게 지배하느냐에 따라서 민주주의는 이런 형태를 띨 수도 있고, 저런 형태를 띨 수도 있다. 민주주의가 반드시 특정한 형태를 띠어야 하며, 그러지 않은 민주주의가 잘못된 민주주의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지금 민주주의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지금 대한민국이 채택한 정치 체제는 자유민주주의로, 봉건제와 투쟁하며 나타난 결과물이다.

사적 소유를 할 권리와 계약을 자유로이 할 권리를 위해 봉건 세력과 투쟁하며, 자유주의와 시민 계급이 나타난다. (책, 26P) 이들은 봉건에 맞서 평등을 주장하고, 봉건 세력에만 허락된 정치 참여를 시민 자본가 계급으로 확대하여 권리를 보호받고자 했다. 문제는 정치 참여를 확대할 때 사용했던 평등 논리가 시민 계급을 넘어 더 많은 계급이 정치에 참여할 핑계가 된 점이다. 자유주의는 간섭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다. 시민 계급은 사적 소유를 할 권리, 자유로이 계약할 권리를 간섭받지 않기 위해 봉건 세력과 싸워왔는데, 이제 하층 계급과도 싸워야 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봉건 세력과 싸우며 평등을 강조한 나머지, 하층 계급이 평등을 핑계로 시민 자본가 계급이 가진 사적 재산을 침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 사상가인 밀은 소수를 향한 다수가 하는 지배를 경계하며 대의제와 차등 대표제 등을 두자고 제안한다. 민주주의를 통해 다수 대중이 시민 자본가 계급을 지배하는 상황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정치 참여를 확대하는 움직임이다. 자유주의는 간섭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그 두 움직임을 융합하려 했다. 정치 참여 확대와 간섭 축소를 동시에 진행하기는 결국 불가능했다. 하층 계급 전반이 주장한 정치 확대는 시민 계급을 위협했기 때문에, 시민 계급은 실력으로 간섭 축소를 밀어붙였다. 시민 계급은 자본가 계급이 되었고, 지배 계급이 되었다. 지배 계급이 된 자본가 계급은 자유주의와 결합한 민주주의만이, 대의제와 관료를 활용한 민주주의만이 바람직한 민주주의라고 선전했다. 다수 민중이 가진 뜻을 대변하는 자를 뽑아 중요 결정을 진행하는 게 아니라, 국정 전문가를 뽑아 중요 결정을 진행하는 오늘날 대의민주제를 완성했다. 국정 전문가라고 거창하게 말했지만 본질은 그리스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구성원 모두가 정치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일부만이 참여한다는 게 본질이다. 신문 정치면을 보고 속이 터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내가 참여를 못 하니까!

3.

정치인들은 주어진 현실과 상황에 맞춰서 국익을 최대화하는 선택을 한다고 한다. 그 선택을 통해 전쟁을 반대하는 활동가를 잡아 가두었다. 내전을 기획하던 자들을 부렸던 대통령을 감옥에서 풀어주었다. 국익을 최대화한다는 말은 국가 구성원과 표 주는 사람이 동일하지 않음을 전제한다. 이 때문에 표 주는 사람이 요구하거나 말거나 당 내부에서 주도권을 두고 싸우는 정치인이 나타났다. 단순히 지역구 주민을 위해서 정치를 진행하는 게 아니라, 자기 양심에 맞도록 국정 운영을 하라는 헌법 조항은 야속해 보인다. 야속하지 않다. 원래 이러려고 만든 조항이다. 정치 참여 확대와 간섭 축소라는 두 방향이 충돌한 결과, 간섭 축소 쪽이 승리했기 때문에, 대다수 민중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도록 여러 제한 조치를 두었기 때문에, 활동가는 잡혀가고 대통령은 풀려나고 정치인은 유권자에게 제시할 정책에는 아무런 관심 없이 당 안에서 파워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주의는 자신과 관련한 정치 결정을 자신이 내리는 사상이다. 그런 사상을 현실에서 나타나게끔 하기 위해 뒷받침하는 행정, 정치 제도이다. 그런 제도를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도록 확대하려는 운동이다. 정치 참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은, 자유로운 이익 추구와 계약 체결을 보장하기 위해 간섭을 축소하려는 움직임과 충돌한다. 봉건 시대에는 충돌하지 않거나 그 정도가 작았다. 2021년은 아니다. 간섭을 축소한 결과를, 자유로이 자본가 계급이 정치판을 포함한 사회 전반에 활개치게 둔 결과를 우리는 매일 여러 언론을 통해 듣고 있다. 심지어, 현 체제를 가장 투쟁적으로 옹호하는, 보수 유튜브에서조차 지금 정치인들은 정상이 아니라며 꾸짖어대고 있다.

이제 한심한 정치인을 보지 않기 위해서, 정치 참여를 확대하는 움직임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자유로운 이익 추구와 계약 체결을 위해 간섭을 축소하려는 움직임과 결판을 내야 한다. 간섭을 축소한 결과, 구성원 일부만 정치에 참여하는 그리스 시절과 달라지지 않고 말았다. 간섭을 축소한 결과, 국익을 최대화한다는 핑계로 민중과 분리된 ‘국’만이 가질 이익을 위하는 정치인이 나타났다. 간섭을 축소한 결과, 민중이 내비치는 의사를 반영하는 정치인이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간섭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에 맞서 정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기존 대의제와는 다른 새로운 정치 체제를 구성해야 한다. 봉건 세력과 맞설 때 활용하던 평등 논리를 구성원 일부가 아닌 구성원 전반에 적용해야 한다.

구성원 일부는 지금까지 특권을 누렸다. 이익 추구와 계약 체결을 통해 부를 축적했고, 부를 통해 정치에 참여했다. 부가 정치에 영향을 끼치고, 다시 그 정치가 부에 영향을 끼쳤다. 정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저 순환하는 고리를 다른 성질을 가진 무언가로 바꾸어야 한다. 순환하는 고리를 다른 무언가로 바꾸려는 움직임은, 지난 1871년부터 나타났다. 그 움직임이 처음 나타났을 때의 이름은 파리 코뮌이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다.

기사 출처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23559.html 정수연, 연합뉴스, 「이재명, ‘사드반대’ 계란 던진 고교생에 “큰책임 느껴” 편지」 2021년 12월 16일.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2244 신다임, 뉴스톱, 「[팩트체크] 홍준표가 제기한 ‘윤석열 망언리스트’」 2021년 11월 2일.

노동전선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이전 글

문재인 정권의 박근혜 특별사면을 규탄한다! 문재인은 물러나라!

다음 글

[전선] 137호 12-3 일하는 사람에게도 철학이 필요하다- 『마르크스 철학연습』을 읽고

댓글을 입력하세요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