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후기〉 노동자의 표현과 수용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현장과 광장」으로 발전하기를

김성심 l 맑은장애인자립생활센터 부소장

곰곰이 생각해 보니, 노동운동과 그 현장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 내가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을 문득 깨달았다. 가정대학을 다녔던 학생운동시절과 민중당 활동을 지나 비영리단체에서의 직장생활을 줄곧 해오다 지금은 장애인단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내가 노동현장을 ‘잘 알고 있다’면 어불성설이겠으나 어찌된 일인지 노동운동과 그 현장을 ‘잘 안다’고 생각해 온 것이었다. 학교 선배들의 위장취업, 노동자계급에 대한 학습, 노조활동에 대한 관심, 총파업 투쟁 참여 등의 어쭙잖은 동행이 인식의 과장을 가져 온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하여 급기야 모 토론회에서 ‘민주노총’이 아닌 ‘민노총’이라고 말하여 “그것도 모르면서, 무슨..” 식의 낯 뜨거운 비판을 받기도 했다. 80년대 뜨거운 피로 사회변혁을 외치다가 서서히 일상생활에 파묻혀 그 어디로부터 아무런 지도도 받지 못하고, 노동자 계급의 이해로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이 30년이 넘는 터에 노동의 현장을 ‘잘 알고 있기’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었으니, 그 실상을 감안한다면 나의 ‘민노총’이라는 발언에 발끈할 일도 아닐 것이다.

「현장과 광장」 편집위원으로부터 서평을 요청받았을 때, 대수롭지 않게 그러마했다. 처음 「현장과 광장」 제목을 들었을 때, 「현장」은 단위로, 「광장」은 통합으로 생각했기에 내가 몸담고 있는 「현장」 단위의 사고를 진솔하게 알리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현장」의 소리가 드러나야 「광장」에서 만날 일도 생길 수 있다는 희망도 가졌기 때문이다. 책을 받고 펼쳐보니, 먼저 눈에 들어오는 글이 있다. <2019년 노동자계급의 투쟁 평가와 2020년 정세 전망>, <학교에서 말하지 않은 3.1운동에 대한 이야기>, <과학적 사회주의 vs 낭만적 페미니즘’> 등의 글들이 먼저 개인적 관심을 잡아끈다. 그러한 글부터 읽어본다. 모두 훌륭한 글이지만, 나로선 이해하기 힘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2019년 노동자계급의 투쟁 평가와 2020년 정세 전망>에서는 「현장」의 투쟁평가를 보고 싶었지만, 편집위원회의 평가만 있으니 아쉬운 부분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으로 평가는 다음을 계획하는 기초선으로서 구체적이며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19년 투쟁의 목표가 무엇이었으며, 그러한 목표달성을 위해 「현장」에서는 어떠어떠한 활동을 하였으며, 「현장」 투쟁의 공통점은 무엇이며, 어떠한 독자성과 연대가 가능했는지 밝히는 체계를 평가틀로서 제시되어야 하며, 이에 따라 구체적으로 밝혀져야 한다. 그렇게 제시된 「현장」의 투쟁평가만 모아도 두툼한 묶음이 나올 터이다. 평가의 분량이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정도의 평가를 위해서는 단위가 모여야 한다. 모여서 일년의 활동을 되돌아보고, 내년의 활동을 계획하는 조직화 과정이 수반되기 때문에 「현장」에서의 평가는 중요한 것이다. 편집위원회는 “2019년에 노동자계급은 …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는 투쟁은 문재인 정권의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를 저지하면서 경사노위 참가를 부결시켰다는 점을 들 수 있다.”고 평가하고 “노동자계급은 2019년에 사회적 합의주의를 저지함으로써 향후 투쟁의 귀중한 전제를 마련하였다. 이는 개량주의로 인한 노동자계급의 역량의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정세가 노동자계급에게 변혁의 길로 나아갈 것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전망을 내어놓았다. 이러한 평가와 전망은 경사노위를 둘러싼 논쟁에 대한 이해도 없고, 현재 정세 속에서 무엇이 변혁이고, 무엇이 개량인지에 대한 구분도 어렵고, ‘사회적 합의주의’라고 쓰고 ‘노동자 억압책동’으로 풀이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대중인식상에서의 오류를 어떻게 선전·선동할 것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나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학교에서 말하지 않는 3·1운동에 대한 이야기>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에 즈음하여 새로운 시각에서의 3·1운동에 대한 이야기로 흥미로웠다. “탑골공원에서 기다리고 있던 대중들과 만나지 않고 태화관이라는 음식점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일제 경찰에 전화하여 자수한” 독립선언문 낭독 33인을 그동안 위대한 민족대표로 오인한 역사의 시간이 억울하였다. 또 “문재인대통령은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에서 ‘일제는 독립군을 사상범-빨갱이로 몰았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 빨갱이가 사회주의자들을 의미한다면 (다수의)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에 의해 빨갱이로 몰린 것이 아니라 ‘빨갱이’였다.” 라는 글에서는 괜히 속까지 시원해진다. 김준혁 한신대 교수는 “역사는 미래다.”라고 말한다. 앞으로도 노동자계급이 알아야 할 우리의 역사, 혁명의 역사, 공산사회의 역사를 함께 이야기 나누길 희망한다.

<과학적 사회주의 vs 낭만적 페미니즘’>과 같은 여성해방운동 관련 글들은 한동안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어쩌다 토론의 자리가 마련되면 페미니즘의 사람이든, 맑시스트이든 앞에 큰 벽을 두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그저 회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회주의와 페미니즘의 거리는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건지, “사랑과 우정 사이”인 것인지 좀처럼 좁혀지지가 않는다. 그렇다고 내놓고 정리할 능력은 물론 나에게 없다. 다만 최근에 스웨덴의 복지모델을 보면서 나왔던 뮈르달(Myrdal) 부부 이야기가 떠오른다. 스웨덴은 일찌감치 1930년대에 여성 1명당 1.7의 출산율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당시 우파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피임과 낙태를 제한하고 임신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을 쾌락주의의 만연이라는 도덕적 측면에서 비판하였고, 사민당과 노동 운동 등 좌파 쪽은 노동자 공급이 늘어나는 것을 우려하여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아예 저출산을 옹호하고 나섰다. 이 때 여성 사회활동의 선두주자였던 뮈르달 부부는 1934년 「인구문제의 위기」라는 저서를 통해 “여성이 출산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은 얼마든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싶어도 사회활동을 하면 아이를 키울 수 없기 때문에 낳기를 포기한다면 여성의 선택의 자유가 제한되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뮈르달 부부의 이러한 제안을 사민당이 받아들이면서 1937년에 출산수당이 도입되었다고 한다. (조형근·김종배. 『섬을 탈출하는 방법』. 반비. 2015)

과학적 사회주의를 이야기 하는데, 배반의 사민당을 들먹이는 게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은 비과학의 영역에 남겨져 있겠지만, 현상을 외면한 이론은 공허할 뿐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가 페미니즘을 말할 때에는 구체적인 현상에 착목해서 이야기했으면 한다. <과학적 사회주의 vs 낭만적 페미니즘> 글의 결론인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과학적 사고의 결실인 맑스주의 언어를 되찾고 그동안 활성화되지 못했던 유물론적 관점의 여성해방 운동의 이론과 실천적 기준들을 다시 논의하고 정립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았다.

가 나의 주장과 접목될 수 있을 것으로 이해한다.

의사소통을 이야기할 때에는 ‘표현언어’와 ‘수용언어’를 나누어서 말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알아들어도 스스로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수용언어’는 있지만, ‘표현언어’가 없다고 한다. 그동안 노동현장의 ‘표현언어’를 많이 접하지 못한 나로서는 「현장과 광장」이 매우 반가운 서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수용언어’가 낮은 나로서는 먼 나라 이야기로만 들리기도 한다. 노동자의 표현과 수용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현장과 광장」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며 광장에서 만나 함성을 외치는 날까지 흔들림 없는 투쟁을 「현장과 광장」이 안내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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