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자본주의와 노동법

문영찬 |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장

1. 자본주의와 법치주의

법은 한 사회의 지배질서를 말한다. 그것을 위배하면 처벌이 따르는 강제적 요소를 가진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한 사회의 통치의 유력한 수단이다. 그러나 법이 원래부터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법의 등장은 사회가 계급으로 분열된 이후부터였다. 사회가 계급으로 분열되기 전에, 그리하여 국가라는 것을 몰랐던 시기에 법은 존재하지 않았고, 사회 질서는 공동체의 간단한 규칙, 규약에 의해 유지되었다. 그러나 생산력이 발전하여 잉여 생산물이 발생하게 되고, 그 잉여 생산물에 대한 사적 소유가 발생하여 계급이 등장하면서 이익과 이해관계의 대립은 첨예해졌고 사회는 가진 자와 없는 자로 분열되게 되었다. 사회가 경제적인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분열됨에 따라, 그 계급들 간의 투쟁은 사회가 유지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가 되었다. 그리하여 사회의 계급분열로부터 초연한 외양을 띠는 하나의 기구,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명목으로 하는, 무력이 집중된 기관, 그러나 실제로는 지배계급의 지배 수단으로 작동하는 기구가 등장했는데, 그것이 곧 국가의 발생이었다. 그리하여 군대, 감옥 등의 국가 기구가 출현하였다.

국가의 출현 이후 곧바로 법이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국가의 운영, 통치를 위하여 법이라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발생한 것이었다. 그리고 법이 발생했을 때 그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중국에서 법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발생한 것은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 때부터였다. 그 이전에 중국에서 법은 대부(大夫) 이상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고, 법은 대부 이하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적용되었다. 즉, 지배계급은 법을 지킬 필요가 없었고, 아예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최초의 법은 피지배계급에 대한 억압의 수단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진시황제를 도와 중국의 통일을 이룬 사람들 가운데 한비자, 이사 등의 법가(法家) 사상가들은 법이 지배계급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이 지배계급에게도 적용되어야 법에 의해 사회질서가 공고해지고 따라서 국가적 통일이 강력해지고 국력이 발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진시황제는 이러한 주장을 채택하였고 국력이 강대해진 진나라는 중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진나라의 중국 통일을 가능하게 했던 요소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법의 전반적인 적용, 공평한 적용이 중국 통일의 하나의 요소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리하여 법치주의라는 개념이 발생하고 발전했는데 국가가 사회를 통치함에 있어서 법률에 의거하여 통치해야 한다는 것이 곧 법치주의이다. 근대적 의미의 법치주의는 유럽에서 절대왕정에 맞선 자본가계급의 투쟁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봉건제의 절대왕정 하에서 인민의 재산권에 대한 보장은 매우 취약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영주와 고을 수령은 재산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자의적으로 형벌을 가하고 재산을 몰수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최초에는 상인으로서 부를 모으고, 이후에는 농업, 광업, 직물 등 생산과정을 통하여 부를 축적하고 있었던 자본가계급에게 재산권의 보장, 사적 소유의 안전은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유럽에서 부르주아 혁명이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핵심적 요구사항이 되었던 것이 사적 소유의 보장이었다. 심지어 프랑스 혁명에서는 인권의 하나로서 사적 소유의 보장을 들고 있었다. 재산의 안전이 천부 인권의 하나로 선언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재산의 안전, 사적 소유의 보장을 위한 유력한 수단으로서 법치주의가 주장되었다. 절대왕정의 자의적인 통치에 맞서 법률에 의거한 통치를 주장한 것이 근대적 의미의 법치주의의 등장이었고, 그러한 법률 중에서 으뜸의 가치,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소유권의 보장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법에 근거한 통치, 법치주의가 보편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한 사회를 통치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그러나 법은 동시에 사회가 계급으로 분열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가진 자와 없는 자로의 분열이 없다면, 이해관계의 적대를 전제로 하여 강제력을 동원하는 법은 존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법은 한 사회를 공동체로 보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그때의 공동체는 단지 가상의 공동체에 지나지 않으며[1]맑스,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1권, 박종철 출판사, p. 252. 그 공동체의 내부는 적대적 이해관계로 분열되어 있는데, 이를 가리켜 홉스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까지 하였다.

자본주의 사회, 부르주아 사회에서 법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간의 상호 관계를 가리키는 일종의 지표이며, 하나의 형식이다. 내부적으로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분열되어 적대적으로 대립하지만 자본가계급이 통치하기 위해서는 한 사회의 통일성에 대한 가상, 형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의 역할이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계급의 평균적 이익에 대해 보편성의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 자본주의에서 법의 본질이다.[2]앞의 책, p. 260 그런 점에서 법의 실질은 자본가계급의 통치, 지배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그 형식으로서는 보편성, 예를 들면 자유와 평등과 같은 구호를 빌린 보편성의 형식이 나타나는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의 실질, 그 내용은 자본가계급의 지배도구로서의 역할이지만 그 국가가 겉으로는 공적 권력의 형태를 띠고 있듯이, 법 또한 그 실질은 자본가계급의 평균적 이익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형식적으로는 자유, 평등 등의 구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에서 법치주의는 국가 권력의 자의적인 집행을 제어하고 법률에 근거하여 통치하는 것을 말하지만, 그때의 법은 곧 자본가계급의 평균적 이해에 보편성의 형식을 부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2. 자본주의 법체계에서 노동법의 위상

자본주의 법체계에서 으뜸은 형식적으로는 헌법이다. 국민의 기본적 권리와 국가의 통치구조 등을 담고 있는 헌법은 법 규범 중 최고의 법이다. 수많은 법률들이 있지만 그것이 헌법의 규정에 위배된다면 위헌으로 선언되어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런데 그러한 헌법이 보호하고 보장하려는 핵심적 가치는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이다. 즉, 재산의 안전, 사유재산의 보호를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모든 법체계가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적 소유는 단순한 화폐적 가치의 보호, 물건에 대한 소유를 보장한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자본가계급을 자본가계급이게끔 하는 조건, 즉,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를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 자본가가 자본가인 까닭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를 통하여 노동력을 고용하여 잉여가치를 착취하여 자본을 축적한다는 점인데, 자본축적의 대전제가 되는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가 자본주의 법체계에서 소유권의 보장에 의해 담보되고 있는 것이다. 물권법(物權法)이라 불리는 이러한 소유권 보장법은 자본주의 법체계에서 내용적으로 으뜸을 차지하고 있으며, 헌법 또한 이러한 소유권 보장을 핵심으로 하여 배치되어 있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의 모든 법에는 이러한 부르주아적 가치가 관철되어 있는데, 심지어 가족 관계에 대한 법 또한 가족 간의 애정을 본질로 한다는 점은 전혀 존재하지 않고, 단지 가족 관계에서 나타나는 재산관계의 문제가 핵심적 가치로 규정되어 있다.

그리하여 19세기 자본주의의 발흥기에 자본주의의 법체계는, 사적 소유의 보호를 핵심으로 하는 민사법(民事法)의 영역과, 형벌권 등 국가의 행정, 통치를 핵심으로 하는 공법(公法)의 영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모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간의 대립 그리고 투쟁은 자본주의가 발생하면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계급투쟁의 발전은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자본가계급의 지배질서를 불안정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법의 영역에도 반영되게 되었는데, 자본과 임금노동의 관계를 특수한 법의 영역으로 하는 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을 체제 내화하려는 시도와 법제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그것이 곧 노동법의 발생이었다. 기존에 법의 영역은 소유권 보장을 핵심으로 하는 민사법과 형벌권 등 국가권력의 작동을 핵심으로 하는 공법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질서가 국가의 영역과 시민사회의 영역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은 소유권 보장을 핵심가치로 하는 시민법, 민사법의 체계로 담기에는 부적절하여, 민사법 영역 이외에 노동법 등의 사회법의 영역이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20세기 러시아 혁명 이후 쏘련에서 사회주의 건설이 진전되면서 경제에서 계획경제가 발전하고, 또 사회주의적인 사회보장이 발전하면서 자본주의 사회도 그 영향을 받게 되었는데,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 사회 등의 영역에서 민사법과 공법으로 담을 수 없는 영역이 사회법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노동법은 그러한 사회법의 핵심으로 작동하게 되었다. 사회법의 주요한 것으로는 경제에서 공정거래에 관한 법(독점 자본에 대한 규제법), 자본-임금노동 관계를 다루는 노동법, 사회복지, 사회보장에 관한 법 등이 있는데, 이러한 사회법은 자본-임금노동 관계의 대립과 발전이 자본주의의 틀을 넘어서서 발전하는 것, 즉 사회혁명으로 발전하는 것을 저지하고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자본주의 틀 내에서 체제 내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노동법을 비롯한 사회법의 출현은 이중적 성격을 띠는데, 한편으로는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을 반영하는 법으로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즉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대립과 투쟁은 자본주의의 틀을 넘어서서 사회주의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모순의 운동이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저지하려는 자본가계급의 계급적 의지가 담겨 있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노동법은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관계, 계급투쟁을 반영하는 바로미터의 역할을 해왔다. 그리하여 노동법은 한편으로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의 무기가 되는 성격과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체제 내적으로 묶어두고 통제하기 위한 자본가계급의 무기라는 모순적 성격을 띠어왔던 것이다.

3. 노동법 개악의 쟁점들

2020년 4월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온 나라가, 아니 온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고 그에 따라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작동이 멈추고 있고 또 실업자가 격증하고 있다. 이 양상이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는 좀 더 그 추이를 지켜보아야 하지만 바이러스 국면이 지나면 자본가계급의 노동법 개악의 공세가 재개될 것임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자본가계급은 노동법의 영역에서 지난 10여 년간 공세를 펴왔고 개악을 시도하고 관철해 왔다. 이는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역량이 그동안 매우 취약한 상태였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지난 촛불시위는 노동자가 계급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반동세력에 반격을 한 것이었고 그에 따라 자본가계급의 폭력적 공세는 일정하게 저지되어 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 또한 자본가계급의 정권이며 우리 사회의 실질적 지배계급인 독점자본의 좌익에 지나지 않는다. 코로나가 막 발생하기 시작했던 시점에 문재인은 두 가지를 말했는데, 하나는 방역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였다. 부르주아 당파성이 진하게 묻어나는 이러한 문재인 정권에 대해 노동자계급은 전열을 가다듬어 방어 전선을 꾸리고 나아가 공세를 준비하는 일에 착수해야 한다. 특히 총선국면이 지나면 부르주아 의회는 노동법 개악을 통해 자본축적의 곤란을 해소하려 전력을 다할 것이다.

2020년 현 국면에서 노동법 개악은 ILO 핵심 협약 비준을 매개로 하고 있다. 노동자의 단결의 권리의 신장을 내용으로 하는 ILO 핵심 협약을 비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는 긍정적인 것이지만, 문제는 문재인 정권을 비롯한 자본가계급이 이를 구실로 노동자의 단결의 권리를 실제적으로 제약하는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조합법에 있어서 해고의 효력을 다투는 자를 노조원으로 본다는 규정을 삭제하고, 노동조합의 임원 자격을 제한하고,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을 연장하여 노동자의 현장 민주주의를 질식시키는 등의 개악을 꾀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의 단결의 강화를 위한 현안인 특수고용 노동자의 단결권의 인정, 교원, 공무원의 단결권 등에 대해서 ILO의 권고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사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노동자의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그리고 국제적 기준에 맞는 규범을 실시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요구와 투쟁을 체제 내화한다는 성격을 지닌다. 그런데 자본가계급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각종의 노동자 단결의 권리의 제한, 제약을 통해 노동운동의 숨통을 죄려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문재인 정권 또한 자본의 이익 앞에서는 단호히 자본가 계급적 입장을 취하며 노동운동에 대한 공세의 고삐를 놓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권과 반동세력이 다른 점은 문재인 정권은 단지 개혁의 제스춰를 취하면서, 노동자계급에 대해 공세를 취한다는 점에 지나지 않는다.

단체 협약의 유효 기간의 연장은 자본가가 노동조건을 개악하더라도 그에 대한 투쟁을 수년 동안 유보해야만 한다는 것으로서, 현장의 노동자 투쟁을 질식시키고 현장 민주주의를 무력화하는 독소조항이다. 그리고 노조 임원의 자격제한은 노조의 지도부는 자본가의 입맛에 맞아야만 한다는 것으로서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다. 과거 노동법의 개정은 비정규직, 복수노조 등 자본축적 조건의 개선을 위해 노동자를 압박하고 분열시키는 것이 주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노동운동은 상당히 위축되어 왔는데, 지금 시도되고 있는 노동법의 개악은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의 숨통을 죄겠다는 것으로서 실질적으로 노동조합의 무력화를 기도하는 것이다.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의 체제 내화의 완성!을 향해 자본가계급과 그 국가가 치밀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이러함에도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의 대열 내에서 계급투쟁의 횃불을 올리는 모습은 찾기 어려우며, 단지 국회 일정을 주목하면서 국회 일정에 맞춘 퍼포먼스를 계획하고 있는 것이 고작이다.

4. 노동법 개악 반대 투쟁의 전술원칙

현재의 노동법 개악의 쟁점들이 보여주는 것은 지금의 계급 역관계, 즉,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역관계에서 자본가계급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는 점이다. 노동조합의 숨통을 죄어오는 한 걸음 한 걸음은, 노동운동이 밀리고 밀린 상태에서 완전한 체제 내화, 굴종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주노조 진영은 투쟁의 방식에서도 체제 내화된 투쟁 이상을 기획하지 못하고 있다. 겉으로는 100만 조합원 달성 등으로 한껏 고무되어 있지만 계급적 역량이라는 면에서는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법 투쟁이 국회 일정에 맞춘 퍼포먼스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지금의 노동운동의 현실,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역량의 취약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계급적 단결에 기초한 투쟁이라는 노동운동의 기본원칙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즉,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바라보고 진단하고 조직하는 기본원칙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노동법 투쟁에 임한다면 노동법의 개악은 노동운동의 획기적 진전을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노동법의 개악은 단지 일개 단사의 근로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노동자계급 대부분에 미치는 근로조건의 개악, 단결권의 제약이라는 점에서 광범한 노동자 대중을 단결시키고 분기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전국적 시야, 그리고 계급투쟁의 관점,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노동법 개악에 맞선 대중투쟁의 분출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지만, 계급투쟁 관점의 소멸이 노동법 개악에 맞선 투쟁을 제약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법 개악에 맞선 투쟁은 노동자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일원으로서 투쟁한다는 것을 공공연히 승인하는 것이다. 노동자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투쟁하는 것과 노동자계급의 일원으로서 투쟁하는 것은 운동에 있어서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지난 촛불시위는 노동자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투쟁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 성과가 모두 자본가계급에게 귀속되었고 한국 자본주의는 개혁의 추동력을 얻었다. 그리고 노동법 개악 반대 투쟁은 노동자가 계급으로서 투쟁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 성과와 손실은 모두 노동자 자신에게 귀속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법 개악 반대 투쟁은 계급적 단결의 획기적 진전을 위한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이익은 적대적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다는 것, 노동자계급은 계급으로서 단결할 때만 허리를 펼 수 있고 최소한의 이익을 획득할 수 있고 나아가 해방을 꿈꿀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단결은 조합주의적 단결, 경제주의적 단결을 넘어 서서, 해방을 향한 정치적 단결로 나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이러한 제도 개선투쟁, 노동법 개악 반대 투쟁 과정에서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해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단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노동해방의 기치, 사회주의의 기치를 펄럭이는 정치적 당으로 결집하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단결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노동법의 영역에서 주어지는 단결의 계기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경제적인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단결권의 강화를 통해 계급으로서 단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단결은 노동법의 영역에만 국한될 수는 없다. 노동자계급의 단결은 노동법의 영역을 넘어서서 자본-임금노동 관계 자체를 철폐하기 위한 단결, 계급 대립의 철폐를 위한 단결로 확장되어야 한다.

노동법의 개악 반대 투쟁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단결을 위한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노동법 개악 반대 투쟁은 조합주의, 경제주의에 매몰되어서는 안 되며,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 원대한 노동해방 세상의 건설,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을 향한 투쟁의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자본이 노동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이 자본보다 우위에 서는 사회, 인간의 노동의 생산물이 더 이상 자본이라 불리지 않고, 인간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을 풍요롭게 하는 단순한 조건으로 되는 사회를 향한 기치를 들어야 한다.

노동법 개악 반대 투쟁은 더 이상 국회 일정을 따라가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노동자 대중의 투쟁보다 국회의 일정을 우선하는 것으로서 민주주의의 원칙, 계급투쟁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의 숨통을 죄어오는 자본가계급에게 노동자계급의 대중 투쟁에 기초하는 투쟁으로, 계급적 단결에 입각한 투쟁으로 전선을 치면서, 계급적 이익의 방어에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정세의 변화에 따른 공세의 준비를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1 맑스,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1권, 박종철 출판사, p. 252.
2 앞의 책, p.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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