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사회주의〉 세상은 모순, 인생은 회색, 사회주의도 회색

이범주 | 한의사

세상에 순일(純一)한 게 무에 있겠는가. 서로 상반되는 요소들이 엉기고 섞이며 갈등하되, 무언가를 유지하고 지향하면서 사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가만히 보면 모든 게 그렇다. 생명현상도 삶의 요소와 죽음의 요소가 팽팽하게 긴장, 길항관계를 이루면서 유지되다가 어느 순간엔가 필연으로 삶의 요소가 기진(氣盡)하고 죽음의 요소가 승리하면서 삶이 끝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진짜 끝나는 건 아니지만…

기하학적 의미에서의 도형은 존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원(圓)은 평면상의 한 점으로부터 동일한 거리에 있는 점의 집합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림을 그려보면 아무리 정밀한 필기구로 그려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곡면은 삐뚤빼뚤, 추상적 모양을 보일 것이다.

그런 것이다. 모순인 것이다. 이념으로는 사해(四海)의 인간을 사랑하지만 구체적으로 가까이 있는 이의 땀 냄새 똥오줌 입냄새를 역겨워하고, 그의 모순적이고 위선적인 행태,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는 인간으로서의 한계와 약점을 혐오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상으로서의 원은 존재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의 모습을 혐오한다 한들 그의 추상적 인간에 대한 사랑과 그에 근거한 이념이 전적으로 기만과 위선이라 말할 수는 없다. 그 또한 한편의 진실. 이렇듯 삶의 본질은 모순 그리고 그 모순을 담은 추구에 있다.

한 사람의 삶도 이럴진대, 한 사회의 모습이야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여러 가지 상반되는 모순적 요소와 인간사의 갈등, 투쟁이 존재할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를 생각한다. 그 곳에는 과연 이기심 없고 사회가 요구하는 과업과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일치시키는, 말하자면 견결한 혁명가 혹은 고상한 도덕적 존재만 있을 것인가. 피가 뜨거워 사랑의 욕구를 억제할 수 없고, 맛난 음식과 따뜻한 옷 쾌적한 주거환경을 선호하는 몸이 있는데 어찌 그런 사람만 존재할 것인가. 당장의 일차적인 감각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고, 의무와 당위의 세계는 나의 감각을 넘어서야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이니 양자 사이의 갈등은 아마도 피할 수 없으리라. 어디 간들 그러지 않으리. 어쩔 수 없다. 삶의 조건, 인간의 조건이다.

자 그렇다면 무엇으로 사회주의의 본질을 규정할 것인가. 내가 보기엔 두 가지다. 먹고 사는 데서의 핵심, 즉 생산수단을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사회적 소유로 유지하는가, 또 하나는 권력을, 혁명의 성과를 침탈하려는 외부 세력으로부터 보위하고 인민(혹은 노동자)의 이익을 옹호 관철하기 위해 행사하는가, 즉 인민독재를 실시하는가…두 가지가 내가 보기에는 핵심이다. 과거의 소련은 엄청난 군사력과 산업생산력을 수중에 갖고도 외부의 침탈에 스스로 투항했으며, 다당제를 허용함으로써 자본가들이 권력 쥐는 것을 스스로 허용했다. 그래서 그들은 망했다.

두 가지를 유지한다면, 즉 인민독재와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단단히 쥐고, 그와 더불어 공동체적 지향으로 사상과 문화를 견지해나간다면, 그 외는 어떤 변화와 개혁 개방이 와도 그냥 사회주의인 것이다. 나머지는 사소하니, 마치 손오공이 하루 종일 날았어도 부처님의 손바닥 위인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대통령제든, 영국의 내각제든, 덴마크의 국왕제든, 일본의 천황제든, 정체(政體)야 천태만상이지만 본질은 부르조아 독재인 것이다. 왜냐 생산수단이 그들의 손에 장악되어 있고 정치, 문화, 철학, 사상, 뭐든 궁극적으로는 부르조아를 위해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다. 세상에 순일(純一)한 건 없으니 서로 상반되는 요소들이 엉기고 섞이며 갈등하되, 무언가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을 유지하고 바람직한 가치를 지향하면서 제 깜냥대로 살다 가는 게 인생인 것이다. 사회도 뭐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노동전선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이전 글

〈특집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와 수정주의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민당의 과제』서평

다음 글

〈특집 사회주의〉 쿠바와 체 게바라

One Comment

  • Your point of view caught my eye and was very interesting. Thanks. I have a question for you.

댓글을 입력하세요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