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강남역 철탑 위에 사람이 있습니다. 삼성은 무노조경영 피해자인 김용희, 이재용 해고노동자에게 사과하고 명예복직 실시하라

이종란 | 반올림 상임활동가

24년이란 세월은 한 사람의 삶에서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성인이 되는 긴 시간이다. 누군가에게 24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묻는다면 제대로 기억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잊혀지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전쟁이나 폭력과 같이 잔인한 일을 겪은 이들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기억을 잊지 못한다. 트라우마가 되어 일상을 잠식한다.

강남역 사거리에 있는 0.5평 밖에 안 되는 좁은 CCTV 철탑위에 24년 전에 삼성으로부터 해고된 노동자 김용희 님이 농성중이다. 그는 악명 높은 삼성 무노조경영 피해자이다. 24년 전에 겪었던 납치, 폭력, 가족 괴롭힘, 간첩누명, 구속, 해고의 기억은 몸에 각인되었고 일상의 삶을 지배해버렸다. 김용희 님은 60세 정년을 맞이한 올해 6월 10일 철탑을 택했다. 그와 한두해 전부터 같이 투쟁을 해 온, 동갑내기 삼성중공업 해고노동자 이재용 님(86년 입사, 노조설립과정에서 97년 해고)은 철탑 밑에서 천막농성을 하면서 김용희 님께 음식을 올려주고 지상과의 연결을 담당하고 있다. 20여 년 전에 해고된 두 해고노동자가 삼성에게 사과와 명예복직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것이다.

김용희 님은 삼성시계에서 노동조합 설립을 시도한다는 이유로 갖은 탄압 끝에 91년 해고되었다. 그의 해고사유는 조작되었다. 대법원 상고심 결심공판을 앞두고, 해고사유 조작이 밝혀질 위기에 처하자 1994년 삼성그룹 비서실 및 삼성시계는 상고심 취하를 대가로 복직을 약속했지만, 원직이 아닌 삼성건설(현 삼성물산 소속) 러시아 스몰렌스크 지부로 발령을 보냈다. 거기서 1년간 근무하면 원직에 복직을 시켜준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러시아에서 김용희 님은 폭행을 당하며 중요한 증거자료를 빼앗겼고 심지어 간첩으로 내몰려 신고를 당했다. 95년 한국으로 간신히 돌아왔지만 원직에 돌아가지 못했고 결국 해고통보서도 없이 해고되었다고 한다. 99년 삼성시계는 정부에서 퇴출기업으로 선정되었다. 당시 김용희는 KNCC 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단식농성을 하면서 저항했다. 그 뒤 24년이 흘렀다.

2017년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촛불항쟁에 ‘이재용 구속, 재벌도 공범’ 이라는 구호가 함께 등장했다. 정경유착으로 부패한 한국사회에 염증을 느낀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든 것이다. 김용희, 이재용 해고노동자는 그때부터 다시 희망을 갖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각자의 삶의 공간에서 이동해서 그때부터 청와대와 강남역 삼성본관 앞을 오가며 원직복직을 외치며 다시 투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삼성은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작년 6월 10일부터 김용희 님은 강남역 사거리 철탑 위 농성을 시작했다. 강남 한복판이니 매연과 미세먼지의 영향 또한 심각하다. 누워 잠을 청하더라도 다리를 펼 수도 없어 새우처럼 말고 잠을 잔다. 그 새장과도 같은 철탑 안에서 55일이라는 끔찍하게 긴 시간동안 단식까지 병행 했다. 김용희는 단식이후에도 내려오지 않았다. 상황의 심각함을 느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람을 살리자는 기조로 대책위도 결성이 되었다. 그러나 삼성은 꿈쩍을 하지 않는다. 2019년 6월 10일 시작한 철탑 고공농성이 겨울을 맞이했다. 200일을 넘기고 있다. 그리고 해를 넘기고 있다.

김용희, 이재용 두 해고노동자가 사력을 다해 싸우는 동안, 삼성 재벌은 여러 가지 시련을 겪고 있다. 재벌총수 이재용은 대법원에서 뇌물죄가 보다 명백해 졌다. 삼성그룹의 승계 현안이 존재하고 뇌물제공의 대가성이 인정된다는 점, 뇌물액수가 86억원을 넘는다는 점 등이 바로 잡혔다. 인정된 혐의만으로도 무기징역까지 가능한 중대범죄다. 다만 현재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건희의 신경영 까지 언급하면서 심리 기간에도 당당히 기업총수로서 일하라는 말을 아끼지 않는 등 엄중처벌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재판을 집행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에 「삼성 해고노동자 고공농성 대책위」 및 「민중공동행동 재벌청산특별위원회」는 이재용 파기환송심 엄중처벌 촉구 청원 서명운동을 벌였다.

최근 삼성재벌은 또 하나의 시련을 맞았다. 12월 13일과 17일 삼성에버랜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사건에 대해 모두 9명의 피고인이 실형 선고를 받았고 이재용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이던 이상훈 이사회 의장과 미래전략실 노사담당 임원 강경훈 부사장 등 7명이 법정 구속이 되었다. 23명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6명에게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2013년 10월 심상정 의원이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폭로하고 금속노조 삼성지회와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이건희 등 삼성그룹 수뇌부를 고소한 지 6년이 훌쩍 넘은 시점에서 나온 1차 판단이다. 두 판결은 모두 삼성이 무노조경영을 유지하기 위해 이재용의 직속기구인 미래전략실을 사령탑으로 하여 조직적으로 노조와해를 해 온 것을 인정했다. 앞으로 조직적으로 노조와해를 하는 경우 실형, 법정구속이 될 수 있다는 본보기가 마련된 것이다.

이제 삼성은 두 해고노동자에게도 사과해야 한다. 외면하고 회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과거 무노조 경영 하에서 벌어진 야만적인 삼성의 폭력과 해고에 대해, 가족들이 겪은 불행에 대해 삼성은 사과해야 한다. 끔찍한 트라우마를 벗어나게끔 해야 한다. 삼성의 사과와 명예복직 조치를 바란다. 삼성은 사람을 살려야 한다. 해고노동자에게 지금당장 사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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