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심 ㅣ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한형식의 「맑스주의 역사 강의」 서평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아, 손에 책을 쥐어 읽고 책을 덮으며 나는 앙상한 생선가시로 글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맑스주의 역사 강의」를 통해, 맑스주의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절대적으로 관철되는 성경의 십계명과 같은 것이 아니라, 물질의 변화법칙을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현실 사회에서의 인간해방 실천을 강조한 사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엉뚱한 생각이기도 하겠지만 생선가시 위에 각자가 생각하는 멋진 그림을 그려본다면, 생선가시는 맑스주의가 될 것이고 형형색색으로 그려진 물고기는 맑스주의에 기초한 우리들의 사회가 될 수 있겠다고 비유적으로 생각한 것이다. 「맑스주의 역사 강의」를 통해 한형식은 오늘 우리의 실천을 과제로서 제시하고자 했을 것이고, 이는 소련, 중국 또는 아시아식 공산주의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우리가 만들어가는 사회주의(공산주의)어야 한다는 것과 같다.
1. 「맑스주의 역사 강의」를 읽어야 하는 이유
「맑스주의 역사 강의」는 맑스의 사상이 지난 시기에 어떻게 적용되고 발전되었는지를 개괄적으로 그러나 실천적으로는 매우 섬세하게 쓴 책이다. 자본주의의 발전과 맑스 이전의 사회주의를 1강으로 하여 맑스·엥겔스의 사상과 제1, 제2 인터내셔널의 논쟁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아시아 공산주의까지를 이해하기 쉽도록 안내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저작활동의 목적이 “맑스주의를 좀 더 널리 알리기 위해서” 라고 하였다. 그러나 개론서 또는 입문서가 가지는 일반적 특징으로서의 단순화는, 사상을 도식적으로 이해하게 하거나 주관식 문제가 아닌 객관식 문제와 같이 지식화하는 오류를 낳을 수 있다. 이 책이 그렇게 기능하는 것을 저자가 절대로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 책을 통해 맑스주의적 실천에 대한 충분한 호기심을 자극받기 원했을 것이며, 오늘의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야 할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한 천만가지 이상의 실천을 꿈꿔 보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온전히 객관적인 역사서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가급적이면 역사에서 좀 더 영향력을 가졌던 맑스주의 해석들을 제 판단을 개입시키지 않고 소개하려고” 애썼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소개해 준 맑스주의 역사를 기반으로 우리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맑스주의적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새로운 숙제를 받아야 한다. 마치 앙상한 생선가시에 살을 붙이고 생명력을 불어넣어 살아움직이는 물고기를 만드는 것과 같이 말이다.
맑스의 사상을 ‘과학의 법칙’처럼 기계론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사회의 변화에 적용하려 하지 않고 교리와 같이 절대적으로 받아들일 때 이를 교조주의라고 한다. 반대로 맑스의 사상을 제멋대로 이해하고 수정하여 왜곡할 때는 이를 수정수의라고 한다. 「맑스주의 역사 강의」에서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이 맑스주의이고 무엇이 교조주의 혹은 수정주의인가이다. 19세기 중엽의 프루동, 바쿠닌 그리고 맑스의 대립에서는 쉽게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사회주의 진영 내에서 맑스의 제일 큰 라이벌의 한 사람은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이고 다른 한 사람은 바쿠닌(Mikhail Bakunin)입니다. … 프루동은 아나키즘의 핵심적인 이론가였습니다. … 그는 정치권력의 획득을 통해서 사회를 변혁할 수 있다는 것을 전면 부정합니다. … 왜냐하면 모든 정치는 억압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어떤 형태의 정치든, 그게 군주제든 귀족제든 민주주의든 모두 악이라고 봅니다. …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새로운 의미의 공동체, 바로 협동조합을 얘기합니다. (중략) 프루동주의 운동은 현실 역사 속에서는 19세기 중엽에 이미 그 영향력을 잃고 거의 소멸해 버렸습니다. … 그래서 아나키즘의 목표는 그대로 수용하지만 프루동과는 사뭇 다른 전술을 들고 나온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 사람이 바쿠닌입니다. 바쿠닌은 아나키즘이 꿈꾸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폭력혁명만이 수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바쿠닌주의자들은 의회전술 자체를 부정합니다.
맑스주의자들은 더 나아가 소수 음모가들의 무장봉기가 아니라, 노동조합도 만들어야 하고 협동조합도 만들어야 하고 의회진출도 해야 하고 대중교육도 해야 하고, 이런 것들을 다 포괄적으로 해야 세상이 바뀐다고 주장해요.
그러나 맑스 사후 사회주의역사 속에서 등장한 총파업의 문제, 의회참여의 문제, 전쟁참여의 문제, 혁명적 시기의 문제, 민족문제, 주체세력의 문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대립, 자본주의 붕괴 방식의 문제(불비례설, 과잉생산설 또는 과소소비설), 식민지 논쟁 등은 매우 다채롭고 복잡하여 맑스주의와 교조주의 또는 수정주의의 미묘한 차이를 파악하기 어렵다. 맑스주의에서 자주 언급하는 토대와 상부구조를 일례로 살펴보자. 「맑스주의 역사 강의」 에서 저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독일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의 영역이 자립적인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최초로 표명한 텍스트입니다. “이데올로기에는 역사가 없다”, “이데올로기는 자립적이지 않다” 또는 “한 시대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에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이다” … 이 구절들의 의미하는 바는,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로 생겨나고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형태의 문제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토대에 의해서 상부구조가 결정된다는 맑스주의의 아주 핵심적인 테제가 여기에서 정식화되기 시작한 것이죠. … 맑스주의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이런 입장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경제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맑스·엥겔스는 경제환원론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상부구조의 상대적 자율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수많은 구절을 맑스·엥겔스의 텍스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저자가 인용한 글에서 보이는 ‘토대에 의해서 상부구조가 결정’, ‘자립적인 영역’, ‘상대적 자율성’ 등의 말로서는 “맑스·엥겔스는 경제환원론을 말한 것이 아닌” 것으로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매우 혼란스럽다. 그러다보니 의도적으로 한 것은 아니겠지만 동그란 토대에서는 동그란 상부구조만 존재하고, 네모의 토대에서는 네모의 상부구조만 존재할 뿐이라는 식의 기계적인 토대-상부구조의 사고가 생겨난다. 맑스·엥겔스 선집(제2권,모스크바,1962년. 존 몰리뉴, 천형석 역, 중요한 것을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에서 재인용)의 글을 살펴보자.
“경제적 상황이 토대이지만, 상부구조의 다양한 요소들(계급투쟁의 정치적 형태와 그 결과 … 법률 형태 … 이 모든 실제 투쟁에 참가한 사람들의 머릿속에 반영된 것들 즉 정치적·법률적·철학적 이론·종교관)도 … 역사적 투쟁의 경로에 영향을 미치며 많은 경우 그런 투쟁의 형태를 결정하는데서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또한 맑스는 “법률적·정치적 상부구조가 형성되고, 사회적 의식의 일정한 형태들도 이 경제적 토대에 상응한다. 물질생활의 생산양식이 사회적·정치적·지적 생활 과정 전체에 주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종합해보면 정치·학문·예술·종교 등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주된 영향’을 미치는 인간의 생산활동 및 생산관계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생산활동인 사회적 관계(토대)를 근본적으로 살펴보지 않고 정치·학문·예술·종교 등(상부구조)을 별도로 이해한다거나 그 반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이해해야지, 토대가 반드시 먼저이고 상부구조는 그 안에서만 생성되는 것으로 이해한다든지 또는 토대(생산관계)로 상부구조(정치·학문·예술·종교 등)을 모두 설명해 내려고 한다든지, 상부구조의 영향을 과소평가하거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혁명의 과정에서 상부구조에 대한 실천적 임무를 전략적으로 도출하지 않으려는 것은 모두 잘못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맑스주의 역사 강의」에서 저자가 주요한 역사적 순간에 사회주의자들이 어떠한 주장을 펼치며 대립하였는지, 어떠한 차이를 나타냈는지 그 핵심적인 내용을 잘 추려서 정리해 주었으니 우리 실천의 소중한 안내자로서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2. 맑스–엥겔스의 사상
한형식은 「1844년의 경제학-철학 초고」(1844),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들」(1845), 「독일 이데올로기」(1845~1846), 「공산당 선언」(1848), 「자본 제1권」(1867), 「프랑스 내전」(1871), 「고타강령 초안 비판」(1875), 「반뒤링」(1878),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6) 등의 맑스-엥겔스 저작을 소개하면서 맑스의 핵심적인 사상을 이해하기 쉽게 소개하였다.
(「1844년의 경제학-철학 초고」에서) 맑스가 설명하려고 했던 첫 번째 경제적 현상은 ‘사적소유’이고, 두 번째는 ‘상품생산’, 상품이라는 현상입니다. … 그는 이 현상들을 소외라는 개념을 통해서 해석합니다. …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가 나타나는 대표적인 경우가 노동입니다. (중략) 맑스는 변증법에서 부정의 부정이라는 논리를 강조합니다. 부정의 부정은 ‘고양’의 과정입니다. A가 부정되면 not A가 되고, 다시 이게 부정되면 A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단계인 ‘A’가 된다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것들은 부정을 통해 더 발전된 높은 단계로 고양됩니다. 이것이 바로 ‘부정의 부정’입니다. 부정의 부정이라는 것은 현 상황이 완결되고 고착된 것이 아니라 더 높은 단계로 끊임없이 나아간다는 것을 설명하는 논리입니다. (중략) 맑스에게 ‘유물론’은 현실을 넘어선 초월적이고 관념적인 영원한 존재는 없고 구체적인 현실만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이 소유형태의 역사를 가지고 인류의 역사를 해명합니다. 맑스는 이 무렵부터 소유형태의 변화가 인류 역사 변화의 원동력이라는 인식을 합니다. 이게 맑스 스스로 말하는 유물론적 역사이해입니다.
「공산당 선언」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첫 구절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자본」에서) 자본주의의 문제는 생산물의 분배가 아니라 생산의 영역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고타강령 초안 비판」에서) 어떤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평등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형식상으로는 불평등해야 합니다. … 어떤 사람은 부양해야 할 가족이 많고 어떤 사람은 혼자 사는데 형식적으로 똑같이 분배하면 결국 실질적으로는 불평등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을 감안하면 오히려 형식상에서는 불평등해야 합니다.
「맑스주의 역사 강의」로 한형식은 시대순 저작물을 쫒아, 맑스-엥겔스의 사상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음에도 맑스의 사상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맑스가 살아 있어서 그로부터 직접 들을 수도 없는 노릇이며, 맑스-엥겔스의 저작 가운에서도 말이 다르기도 하며, 맑스 사상에 기초한 성공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아직 건설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철학으로는 고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현대 철학자 그람시, 루카치, 알튀세에 이르기까지 경제에서는 화폐, 잉여가치, 공황론, 금융자본 등 전문적 경제지식 등 철학·경제·역사의 방대한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만 하는 등 여러가지 이유로 맑스주의에 접근하기 어렵다.
그런데 사회변혁의 운동세력에게 미치는 맑스주의의 막대한 영향력으로 인해, 현실의 사회운동 속에서 맑스-엥겔스가 자주 불려지니, 맑스주의를 모르면 입도 뻥긋하지 못하며 ‘쪽 팔리는’ 처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쫄지 말자!’ 누구나 맑스를 이야기 하지만, 누구도 잘 알지 못하고 있으니 맑스 저작 한 번 못 읽었다고 주눅들지 말고 배짱 좋게 나가자. 다만 맑스와 엥겔스는 영국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을 목도하면서, 왜 누구(자본가)는 풍요로운데, 누구(프롤레타리아)는 죽을만큼 궁핍할 수 밖에 없는지를 알아내고자 했고 결국 인간해방의 실천이 중요함을 강조했다는 것만 잊지않도록 하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유년기부터 각종 행상을 하며 초등학교 중퇴의 정규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으나, “2만여 명이 넘는 종업원의 40%를 차지하는 시다 공들은 평균 년령 15세의 어린이들로써 … 하루에 90원 내지 100원(당시 라면 1개에 20원)의 급료를 받으며 1일 16시간의 작업을” 하는 것에 울분했던 그가 있었다. “인생이란 내일이 오늘보다 낫도록 노력하는” 것이라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재봉틀이 아니다.”를 불꽃으로 외친 그가 있었다. “이 일을 하려면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인가? 정당한 세금을 물고 기능공을 기계와 다른 인간적인, 배움의 시기에 있는 소년소녀들에게 여기에 합당한 대우를” 꿈꾸고 현실로 만들어내고자 했던 그가 있었다. 그는 바로 전태일. 위대한 혁명가이자 따뜻한 인간인 그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맑스주의이다. 그러니 사상이니 이론이니 또는 논리가 어떻고 하면서 맑스-엥겔스를 들먹이는 떠벌이 지식인들에게 ‘쫄지 말자!’
엥겔스는 맑스 추도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존 몰리뉴, 천형석 역,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책갈피).
“맑스는 무엇보다 혁명가였습니다. 그의 평생 사명은 어떻게든 자본주의 사회와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전복하고 현대 프롤레타리아를 해방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었습니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가 자기 계급의 고유한 처지와 요구를 스스로 인식하고 자기해방의 조건을 깨닫도록 이끈 선구자였습니다. 투쟁이 마르크스의 근본적 특징이었고 그는 열정적으로 투쟁했습니다.”
3. 세계 각국의 혁명
한형식은 맑스-엥겔스의 사상을 소개한 후, 제2인터내셔널에서의 논쟁 즉 수정주의 논쟁, 총파업 논쟁, 반전논쟁, 식민지 논쟁 등을 소개하였다. 1991년 12월 31일에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USSR)이 공식적으로 사라진 후, 30여년 맹위를 떨치던 신자유주의가 패배의 항복깃발을 들어올리고 있는 지금에 지난 사회주의 역사의 치열했던 논쟁을 다시금 살펴보는 것는 매우 의미있는 것이다. 사회주의의 주요 논쟁에 이어 소개해 준 러시아, 중국 그리고 웨스턴 맑시즘과 아시아 공산주의까지의 사회주의 역사는 살아있는 맑스주의를 보는 듯 하다.
(러시아의) 1905년 혁명은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나게 되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많은 성과를 혁명 세력에게 가져다줍니다.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혁명을 한 번 해본 경험입니다. 만약 1905년 혁명이 없었다면 1917년 혁명도 없었을 것입니다. (중략) 러시아 민중들의 삶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되면서 또다시 혁명이 일어납니다. 그게 1917년 2월 혁명입니다. 의식적인 지도에 의해서 발발한 것이 아니라 1905년처럼 자생적으로 발발한 혁명입니다. … 2월 혁명에 볼셰비키가 개입하면서 “빵, 평화, 토지”라는 효과적인 구호를 제시합니다.
(중국의) 마오는 농민혁명의 가능성에 대한 전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당시 코민테른이나 중국 공산당의 공식 노선과 상당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 중국공산당은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눠 주는 것이 자기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하는 제일 확실하고 빠른 길이라는 것을 실천적으로 깨달았던 것입니다. (중략) 대중 노선은 단순히 대중들에게 영합하자는 것이 아니라, 농민의 자발적인 혁명 역량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 노선입니다.
(1937년 마오가 쓴) 「실천론」은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인식은 실천에 근거하는 것이고, 진리의 기준은 실천에 달려 있으며, 실천에 의해서 진리의 여부가 검증된다는 얘기를 해요. 이런 이야기는 맑스주의자라면 누구나 다 하는 얘기죠. 마오는 왜 새삼스럽게 이 시점에서, 이 정세 속에서 실천의 중요성을 얘기한 걸까요? 교조주의는 현실을 하나의 도식적인 이론적 틀 속에 끼워 맞추려는 태도-그것이 현실에 부합하지 않더라도-를 말합니다. 마오가 상대방을 교조주의라고 비판하고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서 실천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는데, 이 때의 실천은 어떤 의미일까요? 중국의 상황에 맞는 실천을 말하는 겁니다.
언젠가 중국을 여행했을 때, 여행안내원이 말하기를, 중국에서는 TV 정규방송에서 과거 혁명 활동을 소재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지속적으로 보여준다고 하였다. 숙소에서 TV를 틀어보니 실제로 그러했다. 우리는 어떠한가? 돈이라면 부모-자식도 파는 패륜의 막상드라마가 아침부터 시끄럽고, 제목도 요상한 ‘아내의 맛’과 같은 거짓의 리얼 다큐멘터리가 도색되어 사회주의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항일운동의 역사 조차도 눈을 씻고 봐도 찾아 볼 수 없다. 역사를 모르고 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겠는가? 저자 또한 특히나 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 활동에 대한 이해가 너무도 무지함을 비판하며 지금도 진행형인 세계 각국의 맑스주의 운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아시아 공산주의운동의 기본적 특징은 자생적인 운동과 외부에서 이식된 운동이 결합되는 방식으로 시작되고 전개된다는 것입니다. (중략) 민족주의, 식민지 민족해방운동과 분리해 아시아 공산주의운동을 설명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세계의 혁명을 일괄하고 저자는 “지금까지 우리는 맑스주의의 흐름이라는 것이 도저히 하나의 단일한 흐름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4. 나가면서
결국 우리는 「맑스주의 역사 강의」를 읽음으로서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당면 변혁의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1845)에서 기계적 유물론을 비판한 글과 「맑스주의 역사 강의」를 마치면서 저자가 남긴 글을 인용하며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이제까지 모든 유물론(포이어바흐의 유물론도)의 주요 결점은 대상·현실·감성을 오로지 객체로 또는 관조적으로만 파악할 뿐 인간의 감성적 활동, 실천으로 파악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파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활동의 측면은 유물론과 대비되는 관념론에서 추상적으로 발전했다. 물론 관념론은 현실적·감성적 활동 자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맑스주의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세상에 초월적이고 영원한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역사적일 뿐이라는 것, 역사의 변화와 그 원인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 이것이 맑스사상의 대전제 중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맑스주의를 그것이 생성되고 실천으로 옮겨진 역사적 구체성을 떠나서 이해하려는 접근은 전적으로 비맑스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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