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68호 8-4 베네수엘라. 차베스주의의 ‘전락’과 그 교훈

※ 이 기사는 노동자신문 20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진상은(陳祥殷)

7월 28일에 치른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베네수엘라 연합사회당으로 대표되는 신흥 집권 부르주아 분파와 미제(美帝)를 등에 업은 전통적 부르주아 분파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그리고 특히 수많은 노동자ㆍ인민대중이 선거 결과를 투명하게 밝힐 것을 요구하며 투쟁에 나서면서, 베네수엘라의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이 상황이 어떻게 귀결될지, 현재로서는 단정하기 어렵거니와, 지금 우리의 주요 관심사도 아니다.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현 사태의 성격과 역사적 배경인데, 극우 언론은 물론 사실상 부르주아 언론 일반이 현 사태를 기화로, 역사적 진실을 은폐하면서, 사태의 원인은 사회주의라고 왜곡ㆍ비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지자들이 ‘미치광이(El Loco)’라고 부른다는 아르헨티나의 극우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는, 역시 미치광이답게, “베네수엘라인들은 공산 독재를 끝내기 위해 투표했다”고까지 지껄여댔다고 한다.(≪조선일보≫, 2024. 7. 30. 참조.)

주지하다시피, 현 사태의 직접적인 배경은 특히 2016년 이후 격화되어 온 심각한 경제위기와 그에 수반한 노동자ㆍ인민대중의 극악한 빈곤과 고통인데, 저들 부르주아 언론의 일반적 주장인즉슨, 이 경제위기의 주요 원인은, 사실상 석유산업 일변도의 심히 불균형한 산업구조와 더불어, 우고 차베스 정권이 정착시킨 사회주의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저들은,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의 매장량을 가진 5대 산유국으로서 남아메리카 최부국이었는데, 차베스 정권 이래의 사회주의적 정책 때문에 오늘날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전락했다고 주장한다.

일단 저들의 주장대로 ‘남아메리카 최부국이었다’고 치자. 그런데 누가 그렇게 부자였는가? 저들은 GNP, 즉 ‘국민총생산’이 어떻고 하면서, 마치 ‘국민’ 일반이 그러했다는 듯이 능청을 떤다. 진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차베스가 집권하던 1998년 당시 ‘석유 대국 베네수엘라’의 실상은, 인구의 80% 이상이 빈곤층이었고, 인구의 5%가 경작지의 75%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학교와 병원이 붕괴되어 학생들의 퇴학률이 70%, 문맹률이 7%에 달했으며, 인구의 60%에서 70%가 기본적인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태였다.(채만수,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 혁명 ― 그 배경과 경과, 성격, 그리고 전망”, ≪정세와 노동≫, 제15호, 2006년 7ㆍ8월 합본호 참조. 이하 자료들도 동일.) 게다가, “차베스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28년 동안에 베네수엘라의 1인당 소득은 35%나 떨어져서 그 지역에서 최악의 감소를 기록했고 세계적으로도 최악의 하나”여서, “베네수엘라에서 자본주의에 의해서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10만 명 정도이고, 나머지 대다수는 자본주의로 인해 임금노예나 채무노예로 전락했다고 생각한다”는 증언도 있다. 차베스가 반미제(反美帝)와 ‘21세기 사회주의’의 기치 하에 집권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극빈과 노예상태, 즉 미제국주의와 그 앞잡이ㆍ동맹자인 현지 부르주아지가 베네수엘라 노동자ㆍ인민대중에게 강제해온 극빈과 노예상태였다.

그건 그렇고, 차베스가 내걸었던 저 이른바 ‘21세기 사회주의’는 정말 사회주의인가? 차베스 생전, 특히 2000년대 중반에는 많은 사회주의자들조차 그 사회주의적 성격을 단호하게 부인하거나, 명시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많은 사회주의자들조차 ‘21세기 사회주의’에 고개를 끄덕였다. 1976년에 국유화되었다가 다시 주로 미국 자본의 지배 하에 있던 석유자원[PDVSA]의 재국유화를 비롯하여 차베스 정권은 철강 등 주요 기간산업 국유화한데다, 때마침 상승하던 국제 유가 덕분에 생긴 거대한 자금을 무상교육ㆍ무상의료ㆍ무상주택 등 빈민들을 위한 여러 사업(missions)에 지출하여 인민대중의 빈곤ㆍ노예상태를 대폭 완화함으로써, 일응 사실과 실천으로 ‘21세기 사회주의’를 입증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명확해진 것처럼,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는, 베네수엘라가 가진 최대의 자원인 석유를 이용하여 인민대중을 빈곤과 노예상태로부터 구제하겠다는 선의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가 아니었다. 적어도 맑스-레닌주의적 사회주의, 즉 과학적 사회주의는 아니었다. 그가 내세운 ‘볼리바르 혁명’은 과학적 사상과 규율로 무장된 노동자계급의 전위, 그 혁명적 정당에 의해서 조직되고 지도된 혁명이 아니었고, 석유 자원과 철강산업 등 일부 기간산업을 국유화했을 뿐, 무엇보다도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의 폐지, 계급의 폐지를 위한 어떤 계획조차 없었다. 더구나 인구의 다수가 종사하고 있던 농업은, 유휴지(遊休地) 일부가 농민들에게 분배되었을 뿐, 기본적으로는 대토지소유에 기초한 반(半)봉건적 생산양식이 그대로 온존되었다.

차베스와 그 정권의 ‘볼리바르 혁명’ 혹은 ‘21세기 사회주의’의 이러한 성격과 한계는, 자신들의 정권에 대한 거듭된 불법적 도전에도 불구하고, 미제의 앞잡이이자 동맹자인 기존의 부르주아ㆍ지주 세력을 사실상 고스란히 존치시키는 것, 그리하여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온존ㆍ발전시킨다는 것을 의미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집권 ‘베네수엘라 연합사회당(PSUV)’을 중심으로 새로운 부르주아 분파가 형성ㆍ발전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한때 널리 칭송받기도 했던, 차베스와 그 정권의 ‘21세기 사회주의’가 가능했던 것은 전적으로 우연적인 조건들에 의한 것이었다. 그 우연적 조건들이란, 우선 심히 유감스럽게도 과학적 사회주의에 대한 그의 무지에도 불구한, 미제를 배제하고 석유 수입(收入)을 이용하여 인민대중의 상태를 개선하겠다는 차베스의 강한 선의와, 그리고 특히 그 선의의 실현을 가능하게 한 고유가였다. 그러나 그 우연적인 조건들이 사라지자, 특히 유가가 크게 떨어지고, 이 저유가가 장기화되자, 게다가 미제의 경제 봉쇄ㆍ제재가 장기화되고 심화되면서 석유 생산시설의 갱신ㆍ개선도, 그나마 저유가로의 수출도 심히 어려워지면서 심각한 경제위기가 발생, 전개되고 있고, ‘21세기 사회주의’도 급전직하로 전락하였다. 그리하여 집권 베네수엘라 연합사회당은 그나마의 ‘21세기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즉 그나마 노동자ㆍ인민의 경제적ㆍ사회적ㆍ정치적 권리와 이익을 옹호하는 정당ㆍ정치세력이 아니라, 경제위기를 핑계로 그들의 제반 권리와 이익을 짓밟는 세력으로 전락했다. 그 대표적인 표현이 특히 최근에 들어 빈번해지고 있는, 베네수엘라 공산당(PCV)에 대한 탄압이다.

차베스 시대 이래의 베네수엘라에서의 상황과 그 전개로부터의 교훈은, 우선 저 유명한 격언, 즉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것을 상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의’ 대신에, 즉 그 주관적 선의가 초래할 객관적 결과에 대한 무지 대신에 모름지기 과학으로, 즉 맑스-레닌주의의 과학적 사상으로 무장해야 하고, 그에 기초하여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과거에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나 ‘볼리바르 혁명’을 찬양했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기존의 부르주아 국가를 그대로 존치시킨 채 단지 그 권력만을 장악하고, 그것을 지렛대로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맑스주의 국가관을, 따라서 맑스-레닌주의를 부정하는 소부르주아적 망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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