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63호 3-7 선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지를 알아야 한다.

김파란 ㅣ 농민

2017년 수능시험 전날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당장 지진의 피해보다도 수능이 문제였다. 그때 다른 쪽에서는 스크린 도어에서 19살 청년의 몸이 찢겨 나가고, 콜수를 채우지 못한 실습생이 스스로 자살을 했고, 제주도에서는 아무런 안전 장치의 보호를 받지 못한 현장 실습생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 죽었다.

그래도 세상은 포항 지진으로 수능이 연기된 것으로 이 모든 비극을 덮었다.

이때 많은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수능은 결국 연기되었다.

수험생들의 안전과 포항 지역 수험생들에게 공정하게 기회를 주고자 함이었다. 그렇다면 그 수능은 정말로 공정한 것이었을까? 그 세대 모두의 삶의 결과를 결정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인 것일까? 수능시험이 연기된 그때, 수험생과 같은 나이지만 수험생이 되지 못한 제주지역 특성화고 학생 한 명은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기계에 눌려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모두에게 기회를 공정하게 주었다고 간주하고 학력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처우가 달라지는 것이 ‘공정함’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결국 죽음의 길을 가고 만 현장실습 학생은 묻지 않았을까?

‘ 자신에게 어떤 기회가 주어졌는가…..라고.

그 다음 해에는 열아홉 학생이 납 벨트까지 차고 물 속에서 죽었다. 이런 살인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19살의 청년이 스크린 도어에 죽어 나가고, 콜 수를 채우지 못한 학생이 자살을 하고, 아무런 보호 장치도 없이 기계 안으로 들어가 죽어 나가고, 납 덩어이가 채워져 죽는 이 엄청난 살인을 눈 앞에 두고도 사람들은 슬픔과 분노는 커녕, 오히려 수능만이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할 ‘공정한 경쟁’ 이라 얘기하고 대통령만 잘 뽑으면, 국회의원만 잘 뽑으면 세상이 바뀐다고 말한다.

말도 되지 않지만 또 그게 먹히는 게 지금 한국 사회다.

허나 이런 노동의 분할은 기존 세력이 만든 폭력이다.

즉, 지식인들이나 기존 지배세력들이 자신들이 가진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적 장벽을 쌓기 위해 교육을 이용한다. 사회가 교육을 통해 불평등하게 재생산되고, 사회의 불평등성이 교육의 불평등성을 통해 재생산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절대 이런 사회에서 공정한 경쟁과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바랄 수 없다.

혁명이란 빨갱이 또는 먹물들이 향수에 젖어 나도 한때는 마르크스주의자였다고 혼자 먹물로 자위하는 신음에 있는 화석이 된 활자가 아니다. 혁명은 이런 폭력적 사회를 바꾸자는 것이다. 제도가 바뀌고, 사람들 생각이 바뀌고, 재산 정도가 바뀌고…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삶의 방식 모두가 바뀌는 것이 혁명이다.

이 바뀌는 과정 없이 이런 잔혹한 폭력에서 벗어날 다른 방법이 있는가?

가난한 자들, 즉 노동으로 자신과 가족들의 삶을 지켜내야 하는 사람들(민중)의 권리(몫)는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그냥 주어지지 않았다. 지금 한국 사회의 ‘공정성’은 기층민의 권리 침해를 정당화하는 논리에 불과하다. 노동자들의 권리는 보편적인 것이다.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생활할만한 임금을 받고 안전하게 일하고 휴식을 누리며, 자율성과 협력이 조화를 이루는 일터는 모든 노동자의 권리여야 한다. 이 권리를 빼앗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니 노동자들은 이 권리를 끊임없이 외쳐야 한다. 권력과 자본이 당연하게 내세우는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문제화해야 한다. 결코 깨지지 않을 거 같은 현재의 상태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모든 질문과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한 과정이 혁명이다. 내가, 내 아이가 왜 이런 차별과 배제 속에서 죽어가야 하는지를 말이다. 어느 소설가는 말했다. 드러나는 모든 문제가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바뀔 수 없다고.

즉 사회 사다리의 맨 꼭대기는 이 놈이나 저 놈이나 그들만의 리그다. 결코 대통령 하나 바뀌고 다수당이 바뀐다고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들은 승자독식 사회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권력과 돈이면 타자들 위에 군림하고 노동을 자신들을 위한 봉사로 강요하고, 노동하는 자는 권력과 돈에 복종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더 나아가 돈으로 노동하는 인간을 모욕하는 권리마저 살 수 있다는 포악함을 상식으로 만들고 있다.

이 현실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변화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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