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39호 2-4 노동자들의 처절한 목소리를 들어라.

2022 대선시기 1차 공동실천 ‘이구동성’ 참가기

박혜영 l 박해규 자살시도 피해대책 가족위원회

회사 앞 집중집회 대신 서울고용노동청 앞으로 갔다. 기쁘게도 발언할 기회를 얻었는데 또 울어버렸다. 여러 단체들이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을 상대로 하는 투쟁에 대해 알게 된 감사한 시간이었고, 또 회사 앞과 국회 앞이 아니어도 투쟁장소는 어디든 될 수 있다는 값진 경험을 했다. 오랜 시간 투쟁하고 계신 분들의 발언을 듣는 귀한 시간이기도 했고 문화제 마지막에 권리찾기 유니온 한상균 위원장의 힘찬 발언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사회주의라는 말에 아직 많이 공감하지 못하고 모든 발언들이 다 귀에 들어오는 건 아니지만, 어쨋든 현재 우리나라 자본주의 폐단이 아주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노동자 불평등 세상에서 해고 등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분노가 심각한 상황이다. 노동자가 부당해고를 당해도 기업이나 기관이 승소하는 편파적인 판결이 비일비재하고 노동위에서 이긴다한들 대법원 판결까지 가야 하는 오랜 기간 해고자로서 싸우며 살아야 하는 삶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또 편파적인 판결을 받지 않기 위해 농성 등 투쟁까지 불사하며 사회적 여론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의무처럼 되어버린 현실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혼자 법적쟁송만 하다보면 박해규처럼 사법피해자가 되어 복직의 길이 더더욱 어려워지기도 한다.

박해규라는 사람이 한국사회보장정보원에서 노동조합 만들려는 기미를 눈치 챈 사용자들은 그를 표적해고 시키고 사법피해자로 만들어 자살기도를 초래하기까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그래서 부당함을 목소리 냈는데 노동조합이 없기에 또 혼자였기에 사용자측에 의해 오히려 철저히 비행자와 무능력자로 매도가 되어 법적쟁송 과정 중에 그 삶이 파탄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부당노동행위를 한 사용자는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모든 것을 조작했다. 기가 차게도 그것이 정부기관이자 공공기관으로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바로미터가 아니겠는가.

업무적 잘못이 아닌 해고는 원천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부당)해고문제가 노동자 개인이나 단체 대 기업이나 기관의 문제라 여기는 정부의 방관적인 태도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정치인과 재벌기업인은 범죄행위를 해도 정부가 명분을 만들어 죄를 없던 것처럼 만들어주기도 하는데 왜 노동자 문제는 개입하지 않는 것인가?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 복직문제처럼 엄청난 사회적 이슈가 된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해고 37년만에 명예 복직과 동시에 퇴직이라는 것도 혼자가 아니라 수많은 단체가 오랜 세월 연대해서 이루어낸 결과이다. 왜 정부와 국가는 노동자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가? 노동존중세상을 만들고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던 문재인은 공약실천은 커녕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시켜 5년 동안 국민들에게 단단히 빚을 졌다.
만약 지금 유력 대선 후보가 기업인들 반발이 대선결과에 미칠 악영향력을 우려해서 공약으로 내걸지 못했다면 당선 후 반드시 비정규직을 단계적으로 없애나가고 노동존중세상을 향한 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고 본다.

노동자가 최소한의 권리를 찾고 부당해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려다가 그나마 갖고 있던 노동할 권리마저도 빼앗기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자의 노동할 권리는 노동자의 것이지 사용자의 것이라고 인식되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셈이다.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고 국민들이 정치에 참여해 나라를 다스리고 나랏일이 국민의 행복을 위하여야 하는데 과연 그런가?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정치인들에 의해 국민은 선거철에만 투표권만 행사하는 수단으로 여겨져 선거가 끝나고 나면 선택된 자들은 국민을 무시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문재인으로 당선 후에는 공약을 지키지 않는 모습과 180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적폐청산을 하지 않고 오히려 적폐를 키워준 모습은 국민들이 더불어민주당을 불신하게 만들었다.

국가의 경제를 살린다는 것에는 노동자와 민중도 고려되어야 하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과정에서 양산된 노동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이 되어야만 사회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부르짖는 처절한 노동자들의 삶도 좀 살아갈만하지 않겠는가. 단식을 하고 투쟁을 해야지만 노동조건 하나라도 바꿀 수 있는 답답한 현실은 노동자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왜 노동자들만 거리에서 부르짖어야 하는가? 노동자들의 처절한 목소리를 들어라.

노동전선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이전 글

[전선] 139호 2-3 소리 내면 죽는다

다음 글

[전선] 139호 2-5 ‘악플’에서 변혁으로

3 Comments

댓글을 입력하세요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