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평등과 풍요의 변증법(18): 주요모순과 전략적 사유

평등과 풍요의 변증법(18): 주요모순과 전략적 사유

홍 승 용(현대사상연구소)

1.

오늘의 적나라한 자본독재 속에서는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근본적인 적대적 모순관계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듯하다. 그러나 노동자나 자본가 개개인에게는 이 적대적 모순관계가 그의 모든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임금⋅이윤⋅노동시간을 놓고 적대관계에 들어가지 않는 차원에서 인간으로서, 국민으로서, 소비자로서, 남성 또는 여성으로서, 혹은 그밖의 요인들을 통해 서로 공통점을 지니기도 한다. 예컨대 노동자도 자본가도 인간이라는 동일 범주에 포함된다. (물론 노동자를 개돼지 취급하는 자들을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재활용도 어려운 유해 오염물질로 대우하고 싶지만, 지금까지의 인간 범주에는 그러한 비-인간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또 각자는 계급모순 바깥의 크고 작은 요인들도 끌어들여 자신만의 다양한 개성과 정체성을 만들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본가들 사이에서도 경쟁과 적대적 투쟁은 일상 업무이며, 노동자들이 이해관계 상의 충돌로 분열에 빠지는 것 역시 기이한 예외현상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여타 요인들보다 계급모순을 특히 주시하는 이유는, 자본독재 속에서는 무엇보다 계급모순이 우리의 삶을 결정적으로 좌우하기 때문이다. 계급모순의 결정적 의의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면, 일단 경제문제 혹은 경제적 갈등과 직접⋅간접으로 관련되지 않는 현실 문제가 무엇인지 돌이켜보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계급모순을 주요 문제로 다룬다고 해서, 현실 속에 계급모순 이외의 다른 요소들⋅관계들⋅모순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의미 없다고 보는 것이 변증법의 본분은 아니다. 오히려 대상의 살아 있는 본질을 파악하자는 변증법의 근본 취지에 따르자면, 계급모순과 여타 모순들⋅갈등들⋅현상들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관계 내지 상호작용을 그 중요성에 부합되게 구체적으로 인식해가는 것이 변증법적 이론의 주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모순을 극복하려는 변혁적 실천과 직결된다. 그러한 구체적 인식 없이는, 또 이 인식을 노동자민중이 충분히 공유하지 않고는, 계급모순은 물론이고 여타의 모순들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복잡다단한 현실의 제반 현상들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모순에 대해, 특히 계급모순에 대해 집중적으로 사고하는 변증법에는 처음부터 전략적 성격이 수반된다고 할 수 있다. 실은 개념을 통한 인식 자체가 전략적 성격을 띤다. 개념적 인식에서 우리는 인식 대상, 예컨대 인간이라는 대상의 무궁무진한 속성들을 끝없이 따라다니며 하나하나 확인하지는 않는다. 무한한 속성들 가운데 특정한 역사적 사회적 조건 하에서 실천적으로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 또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을 추상해내 인간이라는 개념을 만든다. 그렇게 만든 개념으로 우리는 전혀 완벽하지 않은 인식을 얻으며,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면 좀 더 나은 인식으로 나아가면서 이에 근거해 실천한다. 그렇다고 해서 개념을 통한 인식은 대상과 완벽히 일치하지 않으므로 쓸모없는 것이니 개념을 버리자고 억지를 부리지도 않는다. 우리는 개념과 대상을 전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는 ‘동일성 사유’를 경계하지만, 추상에 불가피한 불완전성 내지 폭력성을 감수하는 가운데 좀 더 풍부하고 깊이 있는 인식을 얻기 위해 부단히 개념의 노고를 기울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 여긴다. 즉 지극히 전략적인 입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변증법적 사유는 모순에 집중함으로써 개념적 인식의 전략적 효율성을 높인다.

2.

마오의 주요모순 개념은 실천적 인식의 전략적 효율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그에 따르면 “어떠한 발전과정에 많은 모순이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 중의 하나는 반드시 지도적⋅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주요모순이며 다른 것은 부차적⋅종속적 위치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두 가지 이상의 모순이 존재하는 복합적 과정을 연구할 때에는 주요모순을 찾는 데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주요모순을 파악하면 모든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다.”[1]毛澤東: [실천론⋅모순론], 李騰淵 역, 두레 1989, 71쪽. 이하 ‘모순’으로 약칭. 마오는 그러한 ‘발전과정’의 예로 자본주의 사회를 내놓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산계급과 자산계급이라는 두 모순하는 힘이 주요모순이고 그 밖의 다른 모순하는 힘, 예컨대 잔존하는 봉건계급과 자산계급의 모순, 소자산농민과 자산계급의 모순, 무산계급과 소자산농민의 모순, 비독점 자산계급과 독점 자산계급의 모순, 자산계급민족주의와 자산계급파시즘의 모순, 자본주의국가 상호 간의 모순,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모순,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모순들, 이들은 모두 이 주요모순의 힘에 의해 규정되고 영향을 받는다.”(모순69) 이처럼 부차적 모순들과 구분되는 “하나의 주요모순”을 찾을 것과 함께, 마오는 발전과정 속의 각 발전단계를 구별하라고 요구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발전과정에 있는 “근본적 모순”의 성질과 과정의 본질에는 변화가 없더라도, 오랜 과정의 각 발전단계에서 “근본적 모순”이 점차 격화되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또한 “근본적 모순”에 의해 규정되거나 또는 영향을 받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모순들 가운데 어떤 것은 격화되고, 또 어떤 것은 일시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해결되거나 완화되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새로 발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물의 발전과정 중에 나타나는 단계성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사람은 사물의 모순을 적절하게 처리할 수가 없다.”(모순60-61) “예를 들어 자유경쟁시대의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발전해 갔을 때에도 무산계급과 자산계급이라는 근본적으로 모순된 두 계급의 성질과 이 사회의 자본주의적 본질이 변화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두 계급 간의 모순이 격화되고, 독점자본과 비독점자본 간의 모순이 발생하고, 종주국과 식민지 간의 모순이 격화되고 자본주의국가들 간의 모순, 즉 불균등 발전에 의해 야기된 각국 간의 모순이 더욱 첨예하게 나타나 자본주의의 특수한 단계, 즉 제국주의의 단계가 형성된 것이다.”(모순61)

마오 없는 중국혁명은 상상할 수 없으며, 그의 「모순론」이 중국공산당의 중요한 이론적 무기로 쓰였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중국혁명의 성공과 마오의 집권을 통해 그의 이론도 정치적 권위를 높일 수 있었다. 그의 ‘위대한 철학저작’ 「모순론」을 통해 “새로운 역사조건 하에서 맑스⋅레닌주의 유물변증법은 더욱 풍부해지고 발전하게 되었다”[2]李達: 「「모순론」의 역사적 의의」, [실천론⋅모순론], 같은 책, 119쪽.는 평가에서는 그러한 권위와 자부심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순론」의 주요 대목인 위의 인용문들은 용어상의 혼선을 보여주고 있다. 인용문에 따르면 무산계급과 자산계급의 모순은 자본주의 사회 속의 ‘주요모순’으로서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모순’을 비롯한 다른 모순들을 규정한다. 한편 무산계급과 자산계급 간의 모순은 제국주의 단계에서도 ‘근본적 모순’으로서 격화될 뿐 그 본질적 성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단지 이 모순의 격화와 아울러 독점자본과 비독점자본 간의 모순이 발생하고, 종주국과 식민지 간의 모순이 격화되는 등의 변화를 통해 제국주의 단계가 형성된다. 그렇다면 왜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변함없이 ‘근본적 모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주요모순’을 찾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인가. 제국주의 단계에서는 특히 격화된 종주국과 식민지 간의 모순이 ‘주요모순’임을 발견해내야 하는가. 하지만 제국주의와 식민지 간의 모순도 자본주의적 발전과정이 끝나지 않은 한 무산계급과 자산계급 간의 ‘주요모순’에 의해 규정되고 영향을 받는 ‘부차적 모순’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마오는 다음과 같이 답함으로써 개념상의 혼선을 무색케 하는 전략적 사유를 가동한다. “제국주의가 이러한 나라에 침략전쟁을 일으켰을 때, 이러한 나라의 내부 각 계급은 일부 매국노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일시적으로 단결하여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민족전쟁을 수행한다. 이때, 제국주의와 이러한 나라 사이의 모순이 주요모순이 되고, 이러한 나라의 내부 각 계급 간의 모든 모순(봉건제도와 인민대중 간의 주요모순을 포함하여)은 모두 일시적으로 부차적⋅종속적인 위치로 떨어지게 된다.”(모순70)

마오의 「모순론」은 우리의 변혁운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나의 주요모순’ 찾기는 운동의 선결조건으로 존중받았다. 그런데 그 결과는 그다지 고무적이지 못하다. 객관적 발전단계에 따라 가변적이어야 할 ‘일시적’ 주요모순이 정파들의 존속과 더불어 수십 년째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해방전쟁을 위한 전략적 사유에서 탄생한 주요모순 개념이 조직의 정체성과 작은 권력 유지 욕구에 붙잡혀 있는 것이다. 주요모순을 파악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 나름 찾아냈지만, 모든 문제가 쉽게 풀리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주요모순 개념의 전략적 생명력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위해 자본독재 극복과정의 현단계에서 모순들이 차지하는 현실적 비중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한다면, 어느 하나의 모순을 주요모순으로 확정하는 것보다 자본독재를 관통하는 계급모순과 여타 모순들이 맺는 본질적 상호관계를 밝히는 데에 역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로써 레닌이 구상했던 것처럼 계급해방과 민족해방을 결합하는 사회혁명[3]“사회혁명은 오직, 선진국에서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내전과, 발전하지 않은 후진적이며 억압받는 민족들의 민족해방운동을 … Continue reading만 아니라, 부차적 모순들에 전념하고 있는 여러 부문운동들까지 자본독재에 맞선 해방전쟁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3.

핵심적 과제를 찾아 운동역량을 집중하려는 전략적 사고는 마오 이전에 스탈린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전략은 주어진 혁명단계에서 주요 타격방향을 결정하고, 이에 따라 혁명세력의 배치계획을 만들어 혁명기간 전체를 통해 이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4]스탈린: [레닌주의의 기초, 레닌주의의 제문제], 윤시인 역, 두레 1990, 110쪽 참조. 이하 ‘기초’로 약칭. 전술은 운동의 고양과 퇴조에 따라 비교적 짧은 기간에 행동노선을 결정하는 것이다.(기초112) 스탈린은 주요 전략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적의 가장 취약한 부분에 혁명의 주력을 집중시킨다. 둘째, 결정적 공격을 위한 적합한 시기를 선택한다. 이에 실패하면 ‘속도상실’에 빠진다. 셋째, 난관에 부딪치거나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목적지를 향해 채택한 경로를 유지해야 한다. 이에 실패하면 ‘방향상실’에 빠진다. 넷째, 세력관계상 불가피할 경우 퇴각하여 시간을 벌고 새로이 공격을 준비한다.(기초115-119) 역량의 집중은 전술에서도 주요 과제다. “어떤 주어진 순간에 여러 과정의 사슬 가운데 특정 고리, 즉 그것을 움켜쥘 경우 사슬 전체를 장악하여 전략적 성공을 위한 조건을 마련해주는 특정 고리를 찾아내는 것”이 전술의 주요 임무인 것이다.(기초123) 스탈린이 전술 차원에서 제시하는 또 다른 임무는 전략과 전술을 넘어서는 해방전쟁의 근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전위가 구체제의 존속이 불가능하고 그것의 타도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수백만 대중이 이러한 필연성을 이해하고 전위를 지지할 각오를 표명해야 한다는 데 있다.”(기초121)

수백만 수천만 노동자민중이 자본독재의 존속 불가능성과 그 타도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해방전쟁의 주체로 나서는 것은 짧은 기간에 행동노선이나 투쟁방식 혹은 조직형태만으로 해결될 전술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그러한 주체적 조건의 변화를 만들어내려면, 우선적으로 현재의 적극적 운동주체 혹은 전위부터 공유할 이론적 무기를 충분히 개발해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고립분산된 진보적 전문지식인들이나 개별 연구소 혹은 개별 조직 차원의 소생산적 논의구조를 넘어서는 대규모 대안이론 생산 및 대중적 검증⋅공유 사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대중적 검증⋅공유 사업에는 무엇보다 장기간의 조직적 실천이 필요하다. 이는 현단계 노동자정치운동이 여타 당면과제들과 함께 조직적⋅체계적으로 수행해야 할 핵심과제다. 이러한 대안이론 생산⋅검증⋅공유 사업의 성과 위에서야 비로소 스탈린이 제시하는 전략적 전술적 사고도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혁명가들의 탁월한 실천이론들에서 그 핵심적 교훈들을 배우는 데에 주저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종종 과장되거나 단순화되거나 혼란스럽기도 한 그 ‘위대한’ 이론들을 금과옥조로 삼아 오늘의 당면 실천과제와 무관하게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변증법적이지 않다. 그 반대로 그것들은 이제 낡은 것들이므로 폐품 처리해야 마땅하다고 믿는 것도 변증법과 무관하다. 그것들이 현실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제대로 짚어내고 근본 해법을 찾는 데에 전략적 효용성을 지닌다면, 그것들에 딸린 부수적 장애요인들을 치우는 개념의 노고는 변증법적 사유의 본업에 포함된다. 청산주의⋅교조주의⋅속류화는 삼위일체로 변증법에 맞선다.

(2023. 7. 10.)

1 毛澤東: [실천론⋅모순론], 李騰淵 역, 두레 1989, 71쪽. 이하 ‘모순’으로 약칭.
2 李達: 「「모순론」의 역사적 의의」, [실천론⋅모순론], 같은 책, 119쪽.
3 “사회혁명은 오직, 선진국에서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내전과, 발전하지 않은 후진적이며 억압받는 민족들의 민족해방운동을 포함하는 일련의 민주주의적 혁명운동이 결합되는 시대라는 형태로만 일어날 수 있다.” V. I. 레닌: 「맑스주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맑스-레닌주의 민족운동론], 편집부 편, 도서출판 벼리 1989, 265쪽.
4 스탈린: [레닌주의의 기초, 레닌주의의 제문제], 윤시인 역, 두레 1990, 110쪽 참조. 이하 ‘기초’로 약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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