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파란 l 농민
어느 페이스북 친구의 노동자대회 집회에 대한 게시글 밑으로 달린 댓글들에 기가 찬다.
- 모두 주사파들이다
- 노동 문제가 아니라 모두 정치적 문제만 말한다.
이건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노동만 하고 노동에 관한 말만 하고 노동자로만 살라는 것이 아닌가? 당신들은 노동자들을 뭐라고 생각하는가? 정치하는 놈 따로 있고, 노동하는 놈 따로 있는 세상인가?
사실 대한민국 사회가 내지르는 노동혐오의 시작은 국가권력이다. 해방이 되고 난 후부터 군사독재 정권 시절부터 국가권력이 노동자에게 덧씌운 이 땅의 노동혐오는 일관적이다. 민주정부라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또한 정리해고, 파견법들을 밀어붙이면서 반대하는 노동자들에게 귀족 노조, 빨갱이, 불법 파업, 떼쟁이들, 이기주의자라는 낱말들이 노동조합의 상징처럼 바뀌었다.
촛불 정부라는 문재인 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철처하게 반성하고 분석해야 될 문재인 정부가 반성은 커녕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그 실패를 되풀이하겠다는 것이다. 역사의 혼돈을 자처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언론사의 기사마다 달리는 노동자들에 대한 모욕과 혐오적 발언은 이런 정권의 폭력보다 더한 절망감으로 노동자들의 목을 조여 오는 올가미가 된다. 촛불집회를 통해 탄생한 문재인 정권과 더블어민주당이 집권을 하고도 국민의힘의 반대에 약속한 개혁을 할 수 없다기에 집권 여당에게 180석을 만들어 줬다. 그 180석을 얻어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오직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행보에만 안간힘을 쓰는 걸 우리는 눈앞에서 봤다. 이번에는 이들을 심판하기 위해 국민의힘으로 정권을 교체해야 된다는 난리를 부려서 바꿨다. 지금 더블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나?
노동자들은 언제까지 이런 사람들의 관념인 ‘가난’ 과 ‘약자의 아픔’에 기대어 살아야 하나? 판사, 검사, 변호사, 인권운동가, 민주화 투사, 노동운동가들이 여당이나 야당으로 가서 뺏지를 달고 어떻게 일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예컨대 가난한 자, 약자의 슬픔을 공감하다던 민주당 박주민이 자한당과 손잡고 노동악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을 보지 않았나! 즉 그들은 사회과학적 용어로 계급적 존재가 바뀐 것이다. 김웅이나 박주민은 그들의 사회적 존재에 맞게 사회적 의식에 물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건 법칙이다. 그런데 선거 때만 되면, 검사나 변호사들이 가난한 유년을 말하거나, 또는 노동자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 인간들이라면 자신의 검사나 변호사 간판을 팔아서 국민의 힘이나 민주당에 기어 들어가 국회의원 뺏지를 달아겠나?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견을 하고 통일문제나 정치를 말하면 노동의 본질을 벗어난다고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난리가 난다. 지금 보는 것처럼 정치운동이라고 매도까지 한다. 또 많은 대중들이 여기에 동조한다. 또 너무 많다. 사법개혁, 검찰개혁, 학벌타파, 이런 건 말로만 하는 얘기고 국회의원 선거할 때 어른들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프로필 보면 뭐 부터 보나? 서울대! 판사! 검사! 뭐 이런 스펙만 본다. 스팩 안 좋으면 바로 ‘개나 소나’가 나온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것에 빠진 것이다. 이런 걸 사회는 ‘전문성’이라고 말하고 각 정당들은 ‘인재 영입’이라고 표현한다.
헌데 이게 다 개소리 아닌가? 무슨 전문성이 있었고 인재가 있었나 ? 전문성이라는 자체가 자기들이 정하기 때문에 전문성이 되는 것이다. 어떤 지식이나 기능이 중요하다라고 먼저 전제를 해 놓고 그걸 대중들이 받아들이고 나면 어떤 게임을 해도 우린 저들을 결코 못 이긴다. 왜냐고? 처음부터 자기들만이 가지고 있는 것을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라고 정해 놓고 시작하면 어떻게 이길 수 있나? 지금껏 사회적으로 의미하는 일 중요한 일의 경계는 무엇이었나? 그것은 지배계층이 만든 효율성의 논리에 우리가 우리 노동력과 그 가치를 종속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만들고 정해 놓은 틀과 룰에 따라서 일등이 된 사람과 이등이 된 사람과 꼴등이 된 사람의 격차를 정당화시켜 버렸다.
이것은 결코 공정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검사 출신 국회의원이 온갖 신파를 들고나오며 말할지라도 그건 진실도 아니고 그럴 마음도 없다. 오늘날 사회가 이렇게 심한 불평등에 신음하는 것은 민주당이 외치는 ‘국민의 힘= 적폐’ 들 때문도 아니고, 국민의 힘에 김웅이나 윤희숙 같은 사람이 여지껏 없어서도 아니다. 노동자들은 통일을 말하고, 한미관계를 비판하고, 정권을 향해 요구하면 노동의 본질을 벗어난 짓인가? 노동자들이 말하는 사안에 대해 비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 운동을 노동 문제에만 국한 시키고 가두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살이에 정치적이지 않는 것이 어디 있는가? 있으면 필자에게 좀 가르쳐주기 바란다.
지금 사회의 모든 불평등과 모순은 사회적 모든 중요한 결정을 이런 기득권(상층)이 만든 룰을 통과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었기에 벌어진 일이다. 이런 자들이 고작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들이 가진 특권을 지키고 아래에서 올라올 수 없도록 사회적 장벽을 더 높게 만드는 일뿐이다. 여지껏 이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내려놓은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를 돌아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되려 자신의 권력과 금력을 끊임없이 대를 이어 재생산하는데 또 권력과 금력을 다 쏟는다. 조국 정국에서 보지 않았나?
필자가 페북에서 지겹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가난과 노동자들의 고통은 현실에 발을 디디고 선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장 객관의 모습이다. 그러니 가난은 자기 손으로 생산하는 사람이 사회의 중요한 결정을 자기가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해결할 수 있는 것이지, 기득권의 선의에 기대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