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연합노조 해운지부 투쟁이야기
고태은 l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운영위원, 싸우는 노동자를 기록하는 사람들 싸람 기록자
선원노동자들의 노조할 결심
씨스포빌과 정도산업은 강원도 강릉항과 동해항 두 곳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오가는 여객선을 운항하는 회사다. 두 회사는 이름이 다르지만, 같은 자본에서 운영하는 여객선사다. 회사가 세워졌던 2011년, 신규 여객선사에 선원들이 몰려왔다. 그러나 씨스포빌은 초반 운영부터 선원노동자들의 임금을 체불하거나 적은 인력으로 무리하게 선박을 운영하는 경우가 잦았다. 선원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사측은 ‘아직 회사가 신생회사라 운영이 어렵다, 자리 잡으면 나아질 것이다’라며 불만을 잠재우기 바빴다.
하지만, 이러한 핑계는 회사가 한창 흑자일 때에도 계속되었다. 씨스포빌은 2014년 묵호항로와 선박 두 척을 추가로 인수하여, 현재 5개의 여객선을 보유한 동해안 최대 여객선사로 거듭났다. 이 배경에는 씨스포빌이 운항하는 동해 묵호항과 강릉항은 여객선터미널 가까이 서울서 KTX가 운행되기 시작하면서 수도권 여행객의 이동이 한결 많아졌기 때문이다. 2019년 까지도 45만명의 승객을 싣을 정도로 흑자 규모가 커졌다.
선원들은 우리 회사가 잘되고 있다는 생각에 기뻐했으나, 이 기쁨은 잠시였다. 늘어나는 여객선과 노선을 인력보강 없이 같은 인원이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이윤을 늘릴 수 있는 노선확보와 선박 구입은 서두르면서도 선원들이 정당하게 받아야 할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에는 관심이 없었다. 일이 늘어감에도 인력은 늘지 않았고, 매일 15시간 일하는 초강도 노동이 계속되었다. 적은 인원은 대기인원 없이 운항 내내 선원노동자들에게 종종걸음을 시켰다. 아직 이직의 길이 열려있는 젊은 노동자들은 타 선사에 비해 노동강도가 높고, 임금이 낮으면서 체불도 잦은 씨스포빌을 떠나 다른 일터로 이동했다. 약 450명의 정원을 싣는 큰 선박을 운항하기 위해서는 협업이 필요한데, 손발을 맞춰가기에도 턱없이 잛은 터움으로 구성원이 바뀌었다. 그러나 회사의 대표는 노무비를 줄이고, 최대 이윤을 내려는 경영 방침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선원노동자의 건강권과 승객들의 안전만 점차 위협받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2020년 코로나 19로 인해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이 강화되었고, 씨스포빌의 선박도 운항이 제한되었다. 회사가 힘들다는 핑계로 경영진들은 다시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했다. 일 년 가까이 십 프로에서 이십 프로 삭감된 임금을 받던 노동자들에게, 2021년에는 절반으로 급여를 삭감하겠다는 회사 방침이 내려왔다. 노동자들은 이렇게 버티기 어렵다, 노동자들의 심정을 이해해달라 요청했지만, 대표는 ‘싫으면 나가라’며 노동자들의 자발적 퇴사를 종용했다. 결국, 30명 정도였던 회사 직원은 2021년 4월 무렵, 14명까지 줄었다. 이후 코로나 19로 인한 운항 정지는 풀렸지만 운항에 오를 선원들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미 악덕 기업으로 소문난 씨스포빌에 취업하러 오는 노동자들도 없었다.
남아있는 노동자들의 고통스러운 시간은 계속되었다. 노동자들은 이전에도 선박 운행의 안전 문제로도 직결되니 선원을 충원하라는 이야기를 해왔으나 회사는 선원들을 선동하지 말라며 무시해왔다. 결국,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우리의 권리를 찾자고 뜻을 모으고, 약 한 달 가량의 준비 끝에 ‘민주연합노조 해운지부’를 띄웠다. 그렇게 14명의 선원들은 해운지부라는 새로운 배의 선원이 되었다.
회사의 노동조합 탄압
노동조합을 만들 때부터 조합원들도 회사의 탄압을 예상 못한 바는 아니었다. 회사 대표는 말버릇처럼 노동조합이 생기면 회사를 없앨 것이라는 겁박을 해왔다. 이 때문에 선원노동자들이나 터미널 직원들은 회사에 불만이 생기더라도 쉽게 노동조합을 가입하지 못했다. 떠날 수 있는 이들은 이미 떠났고, 남은 이들은 가정이 있어 이주가 어렵거나, 이곳을 떠나지 못할 이유가 있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씨스포빌의 부당노동행위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악질이었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의 휴가를 문제 삼아, ‘아픈 사람에게 일을 시킬 수 없다’며 부당전보를 내는 것을 시작으로 임금을 수시로 체불하고, 조합원에 대한 불이익을 줬다. 조합원과 비조합원들의 소통을 못하게 막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직원들은 안하무인의 회사와 싸우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했다. 씨스포빌은 동해와 강릉지역의 지방수산청의 근로감독을 받는 곳이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선원법과 근로기준법을 잘 몰랐고 제대로 감독일 이루어지지 않았다. 2년에 한 번 바뀌는 담당자에, 부족한 인력은 근로감독관이 다른 직무를 겸임하도록 하여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는 조건이 되기도 했다. 해운지부는 동해지방수산청에 임금체불과 부당 전보에 대한 진정서를 넣어 이를 시정하고자 했다. 그러자 회사는 ‘선원근무기록부’를 제출한 선원 노동자들이 선박에 무단 침입하여 서류를 절취했다며 해경에 형사고발했다.
이를 빌미로 노동자들에 대한 징계 또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인수인계를 제대로 했다고, 매뉴얼을 지켰다고, 인력 충원을 요청했다고. 그 모든 이유가 노동자들의 ‘쟁의행위’로 규정되었다. 조합원들을 징계하려는 징계위원회가 소집된 끝에 여섯 명의 노동자가 해고되고 두 명의 노동자가 정직되었다.
회사는 벌금을 내면서까지 운항되어야 할 배를 운항하지 않고 묶어두거나, 정규직 노동자를 더 이상 뽑지 않고 촉탁계약직 노동자를 뽑아 대체하는 등 여전한 노동탄압 기업으로서 유지되고 있다. 회사에 남아있는 조합원들에 대한 업무 배제가 이어져 이들에 대한 기본급까지도 체불하여 지급하다가, 지난 8월 17일 쟁의 행위를 빌미삼아 조합원 6명을 추가로 해고하여 노동조합 조합원 모두가 해고되었다.
쫓겨났을지언정, 물러서지 않는 노동자들의 투쟁
그러나 악덕한 사장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씨스포빌에서 일할 때부터 강하게 길러진 맷집을 가진 선원들이었다. 이미 노동조합을 만들 때부터 회사가 쉽게 물러서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힘은 들겠지만 이길 때까지 싸우면 이기는 미래밖에 없지 않겠냐 하는 게, 씨스타호의 선장이자, 해운지부의 지부장인 박성모 씨의 신념이다.
해운지부는 해고 직후부터 법률 투쟁을 시작했다. 작년 10월, 동해선원노동위원회(이하 선노위)는 선원 5인을 정도산업으로 인사 발령한 것에 대하여 부당인사발령 판결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휴직 또한 부당휴직으로 인정되었다. 그리고 올해 1월,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는 이 판결을 유지하며 부당인사발령에 대한 판결이 확정되었다. 이후 지난 3월, 선노위에서 다시 한 번 부당해고 및 부당정직 판결을 받았으며 5월에는 중노위에서도 이를 확인받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해경에 넘겨졌던 무단침입과 같은 형사고발도 무혐의 처분이 났다.
법률투쟁을 이어가는 중에도 노동자들의 일과는 쉼없이 채워졌다. 노동자들은 원주에 있는 정도산업 본사에서 매주 피켓팅을 하고, 씨스포빌에 대한 근로감독의 의무가 있는 동해해양수산청 앞에서 이를 이어갔다. 지역의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씨스포빌의 악질적인 행태에 함께 분노하고, 함께 피켓을 들었다. 해운지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해운지부를 궁금해하고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발언하고 함께 행진했다. 노동자들은 올 봄, 사측과 질기게 싸워 이기길 다짐하며 이제 강릉항과 묵호항 여객선터미널 앞으로 돌아왔다. 매일 여객선이 운항하는 시간보다 두 시간 앞서 여객선터미널 앞에서 피켓팅을 진행한다. 풍랑주의보가 뜨지 않는 이상 매일 운항하는 씨스포빌의 악질적인 운영에 맞서서 노동자들의 지치지 않는 질긴 출근 투쟁도 매일 매일, 이어지고 있다.
아침 출근 선전전이 끝나면 지역에 사안을 알리기 위한 피켓팅도 진행된다. 강릉역과 강릉월화거리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씨스포빌 해고 사태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외부에서 찾아오는 연대자들과 함께하기도 좋은 곳이다. 거의 매일을 쉼 없이 이어지는 일상 투쟁이 피로할만도 하지만 선원노동자들은 씨스포빌에서 일할 때의 피로만 하겠냐며 괜찮다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게 무엇인지 물으면, 십중팔구 이러한 일상을 유지하는 중에도 마음속에 휘몰아치는 분노를 다스리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지 않을까. 노동자로서 당연한 권리인 ‘노조할 권리’도, 휴게시간 보장, 충분한 임금 수준도. 과한 요구가 아님에도 거리로 나와 싸우는 이들에게는 아무것도 보장되지 못했다. 가끔은 ‘내가 너무 과한 것을 바랐던 것일까’ 싶은 후회 아닌 후회, 노동쟁의에 대한 탄압을 일삼는 악덕 기업에 대한 분노, 가족과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과 같은 감정들이 쌓이고 휘몰아치고는 한다. 이러한 마음에도 일상투쟁을 놓지 않고, 새로운 투쟁을 만들어가는 힘을 유지하는 것이, 앞이 보이지 않는 투쟁사업장의 어려움일 것이다. 씨스포빌 해운지부 조합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부당해고 판결에 대한 기쁨도 잠시, 씨스포빌 해고자들이 마주한 것은 선원법으로 인하여 근로기준법에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중노위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받으면, 절차에 따라 이행되지 않을 때에 사측에 벌금을 부과할 수 있으나 여객선원들의 해고 문제에 이는 적용되지 않았다. 행정소송과 민사소송, 고등법원과 대법원 판결까지 끌고 가 시간 끌기를 할 경우에도 그 기간 동안 노동자 보호조치나 사측에 대한 강제 방안도 없다. 이러한 조건에서 투쟁하는 것은, 장기적인 투쟁인 동시에 노동자에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모두의 안전한 일터를 꿈꾸는 해운지부의 질긴 투쟁
하지만 해운지부의 ‘질긴 투쟁’에 대한 마음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노동조합을 띄운지 고작 1년 4개월, 그 중 대부분의 시간을 해고자 신분으로 보냈지만 그 기간 동안 열심히 싸워온 노동자들은 장기전에 돌입하기로 마음먹었다. 해운지부는 ‘해운지부’ 이름에 걸맞게 씨스포빌 노동자 외에도 많은 선원들과 함께 하고자 했다. 선원법으로 인해 근로기준법에서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선원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바꿔내기 위한 투쟁을 시작하고자 한다. 이러한 마음을 담아 8월 17일부터 20일까지 후포항과 포항여객선터미널을 거치는 1차 순회투쟁을 다녀왔다. 추가 해고가 발생한 현재 상황을 고려하여 9월 1일부터 나흘 동안 울릉도항 순회 투쟁도 시작한다. 추가해고 상황은 조합원들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선원들이 꿈꾸는 일터는 자본의 이윤논리에 굴하지 않는 안전한 일터다. 이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여객선을 이용하는 승객의 안전을 포함한다. 본래 항해사와 기관사는 1-2급으로 등급이 나누어져 있는데, 씨스포빌은 급여를 아끼기 위해 2등 항해사와 2등 기관사만 고용하여 1등항해사와 1등기관사 업무를 맡겼다. 매뉴얼대로라면 1개월 동안 인수인계 기간이 보장되어야 하는 선장 채용에 있어서도 3일 만에 인수인계를 끝내도록 지시했다. 450명이 타는 배의 책임자인 선장의 업무를 익히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씨스포빌 내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씨스타호의 경우 최소 8인이 탑승해야 휴게시간을 가질 수 있으나 현재는 선원 6인만 탑승하고 있다. 이조차도 5인만 쓰려는 회사와 싸워 얻어낸 결과였다. 박성모 지부장은 노동권보장 이전에 400여 명의 승객 목숨을 담보한 심각한 사안이라고 목소리 높인다. 구명정이 5개 있는 배에, 선원이 5인 미만으로 탑승한다면 유사시에 선원들이 모두 배를 운항해야 승객들을 살릴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배를 버린 선원이 되어버리고 만다. 재난 상황이 왔을 때에 선장은 배를 끝까지 잡아야 하고, 선원들이 승객들을 싣고 대피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데 이조차 불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충분한 예비정원을 확보하지 않은 선박은 당장은 티가 나지 않아도 재난 상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안전에 대한 비용은 티도 나지 않게 노동자와 승객들의 목숨 값으로 지불되고 있었다. 씨스포빌 노동자들은 이에 대한 우려가 컸다.
해운지부는 씨스포빌, 씨스타호를 넘어 수많은 선원, 그리고 수많은 노동자들의 안전한 일터를 꿈꾸고 있다. 선원법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다른 악덕 선주가 나타나 여객선원들을 씨스포빌 선원들처럼 고생시킨다 하여도 별다른 방법이 없다. 또한 사측이 쉽게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다른 노동자들을 촉탁계약직 등의 형태로 계약하여 더욱 열악한 조건에 순응하여 일하도록 한 것도, 선원 모두가 이러한 처우에서 벗어나는 연대투쟁이 아니고서야 노동자 간의 의자놀이가 시작될 뿐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이는 그가 씨스포빌 단일 사업장이 아닌 해운지부의 지부장이 된 이유일 것이다. 순회투쟁을 시작으로 선원들을 모아, 선원법을 개정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은 해운지부의 중요한 투쟁의 목표다.
해운지부의 투쟁은 노동자들이 해고되었지만, 패배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작은 승리들은 이미 쌓여가고 있다. 법률 투쟁에서 빠르게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판결을 받고 승리한 것뿐만 아니라 일터에서도 조금씩 변화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강릉항에서 출발하여 울릉도, 독도를 운항하던 배 두 척 중 한 척은 울릉도와 독도만 오가게 되었다. 이로서 강릉에서 출발하여 울릉도 독도를 거쳐 다시 강릉으로 되돌아오는 15시간의 살인적인 운항 스케줄은 이제 더는 없게 되었다. 선원들의 운항 수당도 올라, 선원들의 임금이 전반적으로 개선되었다. 노동자들의 질긴 투쟁은 현장을 아주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가야할 길이 멀지만, 이렇게 승리의 길이 남았으리라는 생각으로 오늘도 469일차(8월 25일차)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3 Comments
해운지부 동지들 끝까지 투쟁하십시요..정말 고생 많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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