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다가오는 20대 대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2022년 대선과 ‘진보-좌파“ 정치 – 민중경선을 통한 단일후보 선출과 연대연합정치는 ‘좌파’의 기획 –

고민택

1. ‘진보좌파전체에 제안

– ‘진보-좌파’는 연대연합을 통해 한국사회 계급/정치지형을 3분할해야 한다. –

현재 한국사회 계급역학과 정치지형은 보수 세력과 자유주의 세력 두 지배세력에 의해 양분되어 있다. 이러한 세력관계, 정치구도를 흔들고 깨뜨리지 않고는 ‘진보-좌파’의 정치적 성장을 이루기 어렵다. ‘진보-좌파’가 단지 지배계급에 대한 압력 단체 수준을 넘어 지배세력에 맞서는 대안적 정치세력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사회 정치지형을 보수-중도-진보로의 3분할을 이루어야 한다. 이를 건너뛰고 바로 지배세력 대 피지배세력 사이의 대립구도를 형성하기는 어렵다. 현재로서는 사실 3분할을 이루는 것도 쉽지 않다. ‘진보-좌파’ 전체의 역량을 발휘해야 비로소 그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현재 ‘진보’와 ‘좌파’가 ‘진보-좌파’로 묶일 이유와 근거는 충분하다. 지금 한국사회 전체 계급세력 관계에서 ‘진보’와 ‘좌파’는 구별되지 않는다. 이 둘 사이의 차이보다 이 둘이 같이 해결해야 할 공통 과제가 더 크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이 둘이 하나의 형식아래 묶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서로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연대연합정치를 시도해야 한다. 연대연합정치가 가능할 수 있는 정치 형식과 정치 과정을 적극 창출해야 한다.

‘진보-좌파’는 미래의 새로운 분화를 위해서라도 분열로 비쳐지고 있는 현실을 공동으로 돌파해야 한다. 제도정치 차원에서 적어도 보수-중도-진보로의 3분할을 이루기까지 ‘진보-좌파’는 연대연합정치를 지속해야 한다. 정세를 노동 대 자본으로의 대립구도로 형성할 때까지 그럴 필요가 있다. 거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예정하기 어렵지만 그 시간을 앞당기고 싶을수록 ‘진보-좌파’ 사이의 연대연합정치가 강력하게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각자의 정치를 뒤로 미룰 필요는 전혀 없다. 그 반대다.

연대연합정치는 각자의 정치를 강화하는 속에서도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다. 연대연합정치가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강화하는 계기와 과정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재편이 일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 ‘진영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계급의 선택’에 의한 재편이 가능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창출해야 한다. 대중이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검증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회를 대중에게 제공해야 한다.

서구의 독립 좌파, 그리스의 시리자, 스페인의 포데모스, 그 전 브라질의 PT당, 베네수엘라의 21세기 사회주의, 그리고 최근 칠레, 콜롬비아에서의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 미국에서의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 등이 끼친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하고, 반대로 그들 속에서 나타난 한계와 문제를 뛰어넘는 정치적 전범을 한국의 ‘진보-좌파’가 못 만들어낼 이유가 없다. 북아프리카-중동 혁명, 미국에서의 점령하자 운동, 유럽에서의 광장정치를 한국의 현실에 맞게 재구성하고 진전시키려는 시도를 못할 이유도 없다. ‘진보-좌파’가 걸어온 지난 시기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고, 여기에 한국 노동자민중이 갖는 정치역량을 결합한다면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는 일이다.

2. 민주노총에 제안

  • 2022년 대선 단일후보 선출을 성사시켜야 한다 –

민주노총은 2022년 대선을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 사업을 대대적으로 다시 시작하는 계기와 출발로 만들어야 한다. 2022년 대선을 앞둔 지금이야말로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 운동을 대중적으로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기회다. 현재 겉으로 드러난 양상만 놓고 보면 그럴 동력을 형성하고 현실화시킬 가능성이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태를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가 않다. 크게 두 가지 배경을 들 수 있다. 하나는 그동안 노동자정치 세력화를 이루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 자유주의 세력과의 연합이 어쨌든 더는 어렵게 된 것이다. 또 하나는 노동자민중이 보기에 ‘진보-좌파’가 대선을 각개 대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모처럼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성립하고 있다. 이 두 가지 배경을 살리면 새로운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 운동을 대중적으로, 대대적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문제는 새로운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 운동을 어떻게 불러일으킬 것인가이다. 민주노총이 또 다시 ‘진보대통합’을 시도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올바르지도 않다. 그렇다고 존재하는 ‘진보-좌파’와 관계없이 새롭게 민주노총 당이나, 노/농/빈 등 기층대중을 중심으로 한 당을 만드는 것도 역시 가능하지도, 취할 길도 아니다. 어느 것이든 민주노총 내부의 혼란과 분란만을 일으키게 될 뿐이다. 가장 최상의 경우를 가정하더라도 그 결과는 도로 민주노동당에도 미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또 그렇다고 현재의 ‘진보다원주의’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현실을 타개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민주노총은 일단 현재 존재하는 ‘진보-좌파’ 제 정당(정파)을 정치세력화 운동의 주어진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난 시기 정치세력화 운동이 실패했다고 해서 그 사이에 조성된 물적 조건마저 무로 돌릴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것들을 새로운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 운동을 위한 자산과 토대로 삼아야 한다.

민중경선은 2022년 대선 ‘진보-좌파’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경로와 과정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현재 각개 흩어져 있는 ‘진보-좌파’ 사이의 연대연합정치를 이끌어내는 정치적 계기로 작용해야 한다. 그동안에도 민주노총은 총선과 지방선거의 경우에 ‘진보-좌파’ 제 정파와 간담회를 갖고, 정책 공조나 후보단일화 등에 관한 협의와 논의를 해왔다. 때로는 공동기구를 만들어 이들 문제를 공식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정도로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진전시키기가 불가능하다. 획기적이고 담대한 변화가 필요하다. 가능한 최소한의 것을 담아내는 정도의 현상유지로는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를 위한 대중적 동력을 형성할 수 없다. 대중들에게 다시 한 번 도전해보자는 결의와 사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과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는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이 나서서 ‘진보-좌파’ 제 정파가 참여하는 연대연합정치를 시도(강제)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다.

대선까지 남아 있는 물리적 시간이 너무 짧다. 이 거대한 사업을 성사시키기에 객관적으로 부족한 시간이다. 그러나 이것을 핑계 삼아서는 안 된다. 의지가 있다면 시도하지 못할 정도로 짧거나 부족하지는 않다. 스스로 납득과 동의가 안 될 수도 있다. 조직 차원의 논의를 이끌어갈 엄두가 안 날 수도 있다. 무엇하나 분명한 것이 없고, 서로들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객관화, 공개화 되어 있지 않다. 어쩌면 ‘진보-좌파’ 제 정파 각자도 아직 어떤 판단과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 모른다. 바로 그래서 하는 얘기다. 민주노총이 먼저 공론화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민주노총은 조직의 공식 절차를 통해 대선방침 논의를 빠르게 착수해야 한다. 지도부가 안을 제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활동가들로부터라도 촉발시켜야 한다. 누구든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마냥 뒤로 미뤄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이 공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3. 정의당에 제안

  • , ‘진보-좌파’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

현재 정의당은 진보정당으로서의 성격과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는 상태에 놓여 있다. 일부에서는 정의당이 과연 진보정당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한편에서는 정의당이 더 이상 진보정당이 아니라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정의당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당의 성격과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정의당은 한국사회 전체 정치지형에서 보면 당연히 ‘진보-좌파’를 구성하는 중요한 일원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진보-좌파’를 대표하는 정치세력으로서의 위치와 지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바로 이 둘 사이에 벌어져 있는 간극을 메우고 해소하는 것이, 정의당 자신은 물론, 한국 ‘진보-좌파’ 세력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이다.

이제 정의당은 더 늦지 않게 당의 성격과 정체성을 분명하게 정립해야 한다. ‘진보-좌파’ 일원으로서의, 더 나아가 그 대표주자로서의 역할과 임무를 다할 것인지, 아니면 바리케이트 저편으로 넘어갈 것인지를 더는 미루지 말고 선택, 결정해야 한다. 그게 정의당이 크게 빚지고 있는 한국 노동자민중 투쟁에 대한 최소한의 조치다. 정의당은 최근 기본으로 돌아가서 당의 성격과 정체성을 다시 가다듬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연이은 당 지도부 선거, 선출에서 그와 같은 주장이 당원들로부터 선택을 받고 있다.

정의당은 민주당에 대해 이른바 ‘데스노트’를 행사하는 것을 훌쩍 뛰어넘어 민주당 자체를 데스하는 정당, 정치로 거듭나야 한다. 정의당은 지난 ‘민주대연합’은 오류였으며 실패했다는 것을, 그 결과의 하나로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 역시 실패하게 되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정의당이 그 책임의 전부를 져야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 책임을 져야할 중요한 당사자인 것은 분명하다. 지금 책임론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정의당이 민주당과 결별하는 것이 ‘진보-좌파’, 민주노총에게 미칠 영향이 너무도 중요하고 크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정의당 자신도 민주당과의 공조를 중시해왔던 지난 과정이 정의당 자신을 위해서도 결국 득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어 보인다. 이게 일시적인 현상에서 그치지 않고 지속되어야 한다.

정의당이 민주당과의 공조를 거두고 ‘진보-좌파’ 사이의 연대연합정치를 시도한다면 진보당도 그에 따르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좌파’ 또한 다는 아니라도 ‘진보-좌파’ 사이의 연대연합정치를 고려하고자 할 수 있다. 그 수준이 어느 정도에서 형성될지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어떤 차원에서든 일단 ‘진보-좌파’ 사이의 연대연합정치가 태동할 가능성은 분명 존재한다.(물론 정의당이 민주당과의 공조를 거둔 상태에서도 ‘진보-좌파’ 사이의 연대연합정치가 아니라 독자 행보를 걸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일단 그 경우는 제외한다.) 지금 ‘진보-좌파’ 사이에서 필요하고 요구되는 연대연합정치는 ‘통합’이나 ‘단일정당’을 배제한 상태에서 지속 가능한 방식과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행 소선거구제가 유지되는 조건 아래에서 ‘진보-좌파’ 세력이 원내에 다수가 진입하기 위해서는 비례대표제를 강화하고 활용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비례대표제가 강화된다고 해도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연대연합정치를 함께 구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각자 대응, 독자 대응을 고집한다면 지난 총선에서 보듯이 그 효과를 지배세력이 도로 가로채 가게 된다. 정의당은 ‘진보-좌파’ 세력 전체의 원내 진출을 강화하는 것을 통해 자신도 강화할 수 있는 길과 방안을 앞장서 제시하고 추진해야 한다.

최근 정의당은 정의당을 플랫폼으로 하는 대선 대응을 시도하고자 하는 듯이 보인다. 바람직하고 진전된 태도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가야 한다. 그것은 여전히 정의당을 중심으로 하는 플랫폼이다. 또한 ‘진보-좌파’ 사이의 연대연합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차원에서의 소극적 개방이다. ‘진보-좌파’, 민주노총과 함께 정치세력화를 다시 시도하고자 하는 맥락에서 나오는 구상과는 거리가 있다. 그 정도로는 ‘진보-좌파’와 노동자민중이 처한 현 상태를 극복, 돌파하기 어렵다. 정의당은 가능한 정도의 범위에서 소극적인 정치 행위를 하는 것을 과감히 넘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4. 진보당에 제안

  • ‘진보-좌파’ 내에서의 신뢰를 다시 획득해야 한다. –

진보당은 ‘진보-좌파’ 내에서 오랫동안 조직적으로 다수파의 위치를 점해 왔다. 비록 현재 원 외 정당으로서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단일 정파로서는 여전히 적지 않은 정치적 자산을 가지고 있다. 진보당은 내적으로 당의 성격이나 정체성을 놓고 바깥으로 문제가 된 적은 없다. 그만큼 집단성과 응집력이 강하다. 진보당은 자주민주통일 노선을 기반으로 자주적민주정부 수립이라는 분명한 정치적 지향과 목표를 가지고 있다. 진보당은 한국사회 ‘진보-좌파’ 제 정파 중에서 독립적, 독자적으로 대중 속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구상과 계획을 세우고 실천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정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진보당이 보이고 있는 모든 문제는 바로 위와 같은 사실로부터 비롯되고 있으며 발생하고 있다. 진보당 계열이 가지고 있는 강한 집단성과 응집력이 밖에서 볼 때는 패권으로 표출되고 폐쇄로 나타난다. 또한 그들이 보이고 있는 강한 민족주의 성향은, 그들의 의도와 관계없이, 나머지 정파와의 정치적 연대연합을 어렵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진보당만이 아니라 ‘진보-좌파’에게도 이 지점이 함께 풀어야 할 숙제로 주어져 있다.

진보당은(민중당 시절) 지난 21대 총선에서, 민주노총이 지지정당으로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의 취지와 의미를 앞장서 실천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과감히(?) 떨쳐버리고, ‘비례연합(위성)정당’ 문제에서 노골적으로 민주당 세력에 의지, 의탁하는 태도를 드러냈다. 그러한 행태가 당시의 정황에서는, 낮은 수준에서는 정의당을 역고립시키는 효과를 낳게 되고, 더 본질적 차원에서 보면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민중이 커다란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려고 하더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행태다.

정의당도 그렇지만 진보당 또한 예전의 ‘진보대통합’을 먼저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정의당이 ‘진보-좌파’ 일원에서 밀려나는 상황이 도래하거나, 정의당이 스스로 ‘진보’에서 더 멀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지도 모른다. 실제 그럴만한 정황이 현실적으로 없지 않다. 그러나 두 가지를 말할 수 있다. 하나는 그와 같은 현실이 만약 닥친다면 그것은 ‘진보-좌파’ 전체의 힘과 역량이 지금보다 더 후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실제 정의당이 그렇게 되더라도 그 공백을 지금의 진보당이 메울 가능성은 객관적으로 매우 희박하다는 점이다. 진보당은 이 두 가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2022년 대선에서 진보당이 어떤 행보를 할 것인가가 ‘진보-좌파’ 전체의 대선 대응과 투쟁이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를 가르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진보당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객관적으로는 세 가지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완주하는 독자후보, 독자후보 운동 후 일정 시기에 이르러 후보 사퇴, ‘진보-좌파’와의 공동 대응이 그것이다.(물론 외적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방안도 있을 수는 있겠으나 이점은 일단 제외한다.) 사실 객관적으로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 ‘진보-좌파’와의 공동 대응이 그것이다.

진보당이 민주노총을 플랫폼으로 하는 선거인단을 통한 경선으로 ‘진보-좌파’ 대선 단일후보 선출하자는 대의에 공감을 하더라도 고민이 깊을 수 있다. 정의당과 ‘좌파’가 이를 받아들일 지가 미지수인 상태에서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은 문제가 있다. 진보당이 그들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설득력과 힘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모두가 동의한다고 할 경우에는 경선에서 자신의 후보가 단일후보로 선출될 수 있을 것인가가 또한 미지수라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하나는 대선 공동 대응은 특정 정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진보-좌파’, 노동자민중 전체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것이지만 진보당은 특히 더 그럴 필요가 있다. 또 하나는 모든 것을 가지려고 하면 어느 것도 가지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진보당은 자신들의 독자 생존 능력이 지금 자신의 성장을 오히려 가로막고 있는 독이 되고 있는 현실을 냉정하게 되돌아 봐야 한다.

최근 민주노총은 내년 대선방침과 관련한 일련의 조직적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 핵심 내용은 ‘진보-좌파’ 제 정파에게 민주노총의 11월 총파업투쟁에 대한 공동 투쟁, 2022년 대선 대응을 위한 공동 의제 발굴, 그리고 2022년 대선 ‘후보단일화’ 논의를 제안한다는 것이며, 이것들을 논의하기 위한 ‘공동대응 기구’ 구성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그 취지를 대선 대응이 상층 중심의 ‘후보단일화’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고 옳게 말하고 있다. 또한 ‘후보단일화’ 방식은 민주노총 책임하에 진보정당들의 ‘정치협상’을 통해 결정하고자 하고 있다. 여기서 진보당이 ‘정치협상’에서 ‘후보단일화’ 방식을 민주노총 조합원을 플랫폼으로 하는 민중경선 통한 ‘단일후보’ 선출을 적극 주창한다면 분명 ‘진보-좌파’, 민주노총, 나아가 전체 노동자민중에게 모처럼 새로운 정치 활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5. ‘좌파에 제안

  • 좌파’는 ‘진보’와의 연대연합 속에서 독자의 힘을 키워야 한다. –

‘좌파’는 현재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채 각개 흩어져 있다. ‘좌파’의 어떤 정파도 독자로는 전체 (계급)정치지형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을뿐더러, ‘진보-좌파’ 내에서도 독자적인 변수가 될 수 없다. ‘좌파’가 처한 현재 상태로는 대중을 향한 직접 정치를 할 수 없고, 대중 속에서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 성장할 수도 없다. ‘좌파’의 힘을 다 합해도 독자적인 정치 세력이 되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현재 ‘좌파’가 이러한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누구나 인정하고 있듯이 ‘좌파’의 결집이 계속해서 지연, 불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여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제도(공식)정치로의 진출이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때문이다. 물론 이 두 가지 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원인이 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중요하고 근본적인 원인이 더 있다고 해도 위 두 가지를 먼저 극복하지 않고는 지금의 세력관계를 극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금의 세력관계를 극복·진전시키지 않고는 나머지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대중 앞에 펼치지도, 지상 위로 표출해 보지도 못하고 주머니 속에만 간직하고 있게 될 뿐이다. 이점은 지난 역사적 과정이 생생희 보여주고 있다.

지난 시기로부터 ‘좌파’가 배워야 할 것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좌파’ 사이의 결집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좌파’ 전체의 힘을 키우기 어렵고, 당연히 개별 정파 차원의 능력도 결코 기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좌파’ 어느 정파도 독자의 힘으로 사회주의 대중화, 사회주의 정당 건설, 사회주의 정치세력화를 이루기 어렵다. 둘째는 따라서 ‘좌파’는 빠른 시일 안에 연합 형식을 통해서라도 큰 틀에서 하나의 세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좌파’의 현재 상태로는 대중에게 ‘좌파정치’가 ‘진보정치’를 대체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이라는 것을 설득시키기 어렵다. ‘진보정당(정치)’에 문제가 있다는 것과 ‘좌파’가 대안이라는 것을 대중에게 설득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안으로는 연합 형태를 띠더라도 밖으로는 하나의 세력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는 ‘진보정당(정치)’의 실패가 곧 ‘좌파’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보정당(정치)’는 이미 지난 10여 년 전부터 대중들에게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확대되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흘러왔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좌파’는 정치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이상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문제가 바깥에 있지 않고 ‘좌파’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좌파’는 자신의 문제를 먼저 해소하지 않고는 대중을 향한 독자정치, 직접정치를 펼치기 어렵다.

지금은 좌파의 시간이다. 충분히 좌파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 반드시 좌파의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의 ‘좌파’가 이를 구체화시킬 때 가능한 얘기고, 가능한 전망이다. ‘좌파’는 우선 노동자계급 속에서, 지금으로서는 그의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토대인 민주노총 안에서, 조직의 뿌리를 내려야 한다. 민주노총 바깥에서 새로운 주체를 찾거나, 새로운 의제와 담론을 형성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좌파’는 민주노총 안에서 진지와 참호를 건설하지 않고는 사회주의 대중화, 사회주의당 건설을 이루기 어렵다. 현재 ‘좌파’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자산은 그나마 민주노총에서의 역할을 통한 것뿐이다. 사회주의 세력이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 확보하기 위해서는 먼저 민주노총 안에서 정치적 발언권을 획득, 확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필요하다. 하나는 당연히 자신의 정치로 대중을 조직하는 일이다. 또 하나는 그를 위해서라도 ‘좌파’가 앞장서 주도적으로 ‘진보-좌파’ 사이의 연대연합정치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지금 민주노총 안에서 ‘좌파’와 연동되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정치적으로 가장 앞선 부위는 어쨌거나 ‘진보정당(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자다. 이들 노동자를 아무런 매개나 과정 없이 ‘좌파’ 정치와 관계를 맺게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이점에서 ‘좌파’는 그들 노동자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함께 부여잡고 극복해 나가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지난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실망하고 돌아선 그들 노동자를 ‘좌파정치’로 이끌기 위해 ‘진보-좌파’ 사이의 연대연합정치를 시도해야 한다. 의회주의 노선이 아닌 노동자계급의 의회 정치가 가능할 수 있는 현실태를 만들어내야 한다. 사실 이들 문제는 ‘좌파정치’와 관계를 맺고 있는 활동가나 조합원들에게도 시급한 일이다.

‘진보-좌파’ 사이의 연대연합은 선거 시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사회 전체 계급(정치)지형을 적어도 3분할하고, ‘좌파’가 독자적 힘으로 대중을 향한 직접 정치가 가능할 때까지 지속적이고 일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좌파’의 주장이 민주노총 수천, 수만, 끝내는 수십만 노동자에게 들리게 하고 그들 노동자의 의견과 발언이 다시 ‘좌파’에게 들려오는 현실을 만들기 위해 ‘진보-좌파’ 사이의 연대연합 정치를 구사해야 한다. 도로 민주노동당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될래야 될 수도 없다. 처음부터 그러한 연대연합을 ‘좌파’가 주도적으로 하면 된다. 물론 그러려면 ‘진보’를 설득해야 하며, ‘진보’가 동의해야 한다. 그 힘을 바로 민주노총을 통해 획득해야 한다. ‘좌파’는 ‘진보’가 자유주의 세력과 단절하는 한 그들과의 연대연합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 민주노총 안의 ‘좌/중/우’ 정파원들 사이에서 부딪치고 있는 문제도 노동조합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정치적 차원에서 같이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려면 치열한 논쟁과 내부투쟁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 에너지를 패권 다툼이나 ‘진영 논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보-좌파’ 전체의 정치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노동전선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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