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후기〉자본주의 극복을 위해

전우재 l 활동가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는 우울한 내용이었다. 일 년에 두세 번 연락하던 친구는 아버지가 손을 다쳤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친구네 아버지는 현장에서 건설 일을 하셨다. 친구가 있는 대구에서 일하거나 대구 아닌 곳에서 일하셨다. 친구네 아버지는 대구가 아닌 곳에서 사고가 났다. 나는 얼마나 다친 거냐고 물었고, 친구는 재활을 준비해야 할 만큼이라고 답했다. 재활을 준비해야 한다는 대답은 구체성을 띠고 있었지만 자세하지는 않았다.

친구는 불효자가 됐다. 친구는 아버지가 얼마나 다친 건지 알지 못했다. 병원은 방역을 까닭으로 한 명 넘는 보호자를 허락하지 않았다. 한 명이 넘는 보호자에 속했던 친구는 환자를 살필 권리가 없었다. 한 명이 넘지 않는 보호자인 친구네 어머니만이 환자를 살필 권리가 있었다. 친구네 어머니는 구태여 끔찍한 상황을 친구에게 자세히 전하지 않았다. 친구는 그래서 잘 몰랐다.

친구네 아버지가 다친 이유는 친구네 아버지가 운이 나빴기 때문이 아니다. 안전사고를 주의하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다. 눈앞에 보이는 이윤만이 최고인 사회에 살고 있었기 떄문이었다.

산재 사고가 일어나는 원인을 보자. 산재 사고는 안전 관리·감독이 부족했고, 관리·감독을 책임질 인원이 부족했고, 관리·감독을 책임질 인원을 고용할 예산이 부족했기 때문에 일어난다. 10명 시킬 일을 9명에게 시키고, 3명이 해야 할 관리·감독을 2명에게 시키고, 10일 시킬 일을 9일 시켜서 일어난다. 이렇게 하면 임금이 준다. 임금이 줄면 생산비가 적게 든다. 생산비가 적게 들면 경쟁력이 갖춰진다. 경쟁력을 갖추어야 이윤을 더 많이 얻는다.

10명이 해야 할 일을 9명이 하니 돈은 줄어 좋지만 사고가 난다. 3명이 해야 할 안전 관리를 2명이 하니 사고를 못 막는다. 제 인원수에 맞춰야 사고가 적게 나 사업 전체로 봐서 유리하다. 유리하건 말건 눈앞에 보이는 인건비 절감 효과와 이윤을 까닭으로 10명이 아니라 9명이 고용된다. 인건비, 즉 생산비를 절감해 경쟁력을 갖춰 다른 기업을 이겨야 하니, 친구네 아버지와 같은 노동자는 다치게 된다. 산재 사고가 계속 일어나게끔 하는 범인은 자본주의다. 이윤과 경쟁만을 최고 미덕으로 여기도록 강제하는 자본주의가 범인이다.

병문안을 가지 못하게 막은 범인도 똑같다. 코로나는 위험하다. 생계가 끊기는 건 더 위험하다. 친구가 불효자가 된 건 병원이 매정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친구네 아버지가 생계를 위한 노동을 전염병 창궐 여부와 상관없이 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하에서 생산관계는 대립적이고 비대칭적이다.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소유하지 않는 사람들 집단의 노동력을 잉여가치라는 형태로 착취하기 때문에 대립적으로 되지 않을 수 없고, 그들 상호가 서로를 지배하려는 경향 때문에 그러한 대립에서도 반드시 주요한 측면(결정하는 측면, 일반적으로 자본)과 부차적 측면(결정되는 측면, 노동)으로 나누기 때문에 비대칭적이다. 사회계급은 따라서 대립적 본질을 지니고, 서로를 끊임없이 지배하려는 투쟁적 속성을 지닌다.”

「계급」,현장과광장 4호, P 100

“……맑스는 이미 『경철초고』에서도 노동자와 자본가의 적대적 대립관계를 명확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예컨대 그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임금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적대적 투쟁에 의해 규정된다. 자본가들의 승리는 필연적이다” (경철15)”

「소외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현장과광장 4호, P 167

현장과 광장 4호를 보자. 생산비 절감을 통한 경쟁력 제고는 평화로운 과정이 아니다. 인원이 적어 사고가 발생하니 노동자는 더 많은 인원을 고용하라고 자본가에게 요구한다. 자본가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사업장에서 일하면 되는 게 아니냐며 노동자에게 되묻는다. 자본가는 실력 행사로 노동자가 낸 의견을 깔아뭉갠다. 평화로운 과정이 아니다. 폭력적인 과정이다. 노동자와 자본가는 대립하고, 자본가는 대개 승리한다. 개별 사업장은 고를 수 있어도 자본 계급에게 고용돼 일해야 한다는 상황은 고를 수 없다. 모든 사업장이 똑같으니 노동자는 산재 사고가 만연한 작업장을 피하지 못한다.

“……마르크스는 임금노동자가 이중적 의미에서 자유롭다고 했다. 노동자는 한편으로는 누구를 위해 일할지 자본가를 고를 자유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하지 않고 굶어 죽을 자유가 있다.”

「계급」,현장과광장 4호, P 99

친구네 아버지 사례 같은 산재 사고는 어떻게 해야 줄어들까. 미덕으로 여겨지는 가치가 변해야 가능하다. 이윤이 더는 최고가 아니어야 한다. 경쟁이 최고 미덕으로 여겨지지 않아야 한다.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인한 집권 세력의 정국 주도력 효과는 이미 그 실효성이 다했으며,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오히려 더 커질 전망이다. …………오직 ‘진보-좌파’ 만이 코로나 정국을 주도할 가능성과 자격을 가지고 있다. 단지 문제는 주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스스로 창출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2021년 정치 정세 전망」,현장과광장 4호, P 30

“……현대 국가는 본질적으로 자본가들의 기관, 자본가들의 국가, 관념상의 총자본가이다. 현대 국가가 생산력들을 더 많이 자기의 소유로 떠맡으면 떠맡을수록, 그것은 더욱더 현실적인 총자본가로 된다. 국민들을 더욱더 착취하게 된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임금노동자로, 프롤레타리아로 남는다. 자본관계는 폐기되기는커녕 오히려 정점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정점에서 그 자본관계는 전도된다.”

「자본주의 기본모순: 사회적 생산과 사적 부르주아적 전유 – 엥겔스의 “유토피아에서 과학으로 사회주의의 발전”을 중심으로」,현장과광장 4호, P 144

“……이제는 노동자 민중세력이 친재벌 극우와 친재벌 보수 사이에서 선택하도록 강요당하면서 자본독재의 들러리 노릇을 하는 것은 그만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모든 형태의 소외를 몰아내고 자본주의 너머의 풍요로운 평등사회에 이르는 과정에서는 자본권력을 비롯한 온갖 장애물들과의 지난한 전쟁을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자체의 내적 모순과 한계가 새로운 사회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소외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현장과광장 4호, P 183

자본주의 극복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현장과 광장 4호가 귀띔해 준다. 좌파가 주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노동자 계급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 관계를 전도해야 한다. 노동자 민중세력이 자본권력을 비롯한 온갖 장애물들과 지난한 전쟁을 이겨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이윤과 경쟁만이 미덕이 아닌 사회가 온다. 눈앞에 보이는 돈 한 푼을 아끼려 10명이 할 일을 9명에게 시키고, 3명이 해야 할 관리·감독을 2명이 하는 모순이 극복된다.

자본주의라는 문제는 명확하다. 자본주의 극복이라는 해결방법도 명확하다. 더욱 많은 사람이 자본주의가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현장과 광장 4호는 좋은 교재가 된다. 자본주의가 문제임을 알 수 있고 알릴 수 있게끔 도움을 준다. 책이 다루는 여러 주제들은 공통점이 있다. 자본주의가 본질이라는 점이다. 현장과 광장 4호는 이런 숨어있는 본질을 찾아내고 고발하는 데 도움을 주는 참고자료다.

더욱 많은 사람이 자본주의 구조 자체를 극복하는 데 동의하고 참여해야 한다. 현장과 광장 4호는 “활동가는 노동자 민중을 의식화 조직화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고 논한다. 의식화는 완성된 선동과 마감이 끝난 기사를 통해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 선동을 준비하고 기사를 준비하는 과정 모두에서 의식화와 조직화가 진행된다. 선동을 준비하는 사람과 기사를 준비하는 사람 또한 조직화되고, 의식화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문제임을 알리는 사람과, 왜 문제인지를 듣는 사람 모두가 서로 영향을 주며 발전이 진행된다. 앞으로도 현장과 광장이 이런 발전을 잘 이끌어내기를 바란다.

친구네 집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부디 쾌유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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