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2021년 정치 정세 전망

고민택 | 진보평론 편집위원

지난 4월 7일 치러진 재보궐선거 결과는, 한편으로는 이미 사전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바가 그대로 투표로 연결됐다는 점에서는 이변이 아니지만, 지난 4년을 경과한 시간 속에서 보자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가히 충격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다시 돌아보면 이러한 충격적 변화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와 집권 세력이 지난 4년 동안 조금씩 차곡차곡 쌓아온 것들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보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내년 대선까지 계속 이어질지를 가늠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것은 이번 선거 결과가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에 대한 민심의 구조적, 집단적 이반과 이탈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측면과 그러한 상황과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어떤 변화를 꾀하라는 일종의 사전 경고를 보낸 측면이 겹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점은 특히 이번 선거 결과가, 모두가 말하듯이, 야당이 자신의 힘으로 승리를 거머쥔 것이 아니라 집권 여당이 스스로 자멸한 것이라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에도 아직 시간과 기회는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편 ‘진보-좌파’, 노동자·민중의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선거 결과는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심각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는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에 대한 심판이 왼쪽에서 이루어진 성격보다 오른쪽에서 가해진 측면이 더 강하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진보-좌파’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정치세력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도, 어떤 의미 있는 정치적 메시지를 형성하는 데서도 모두 실패했다는 점이다. ‘진보-좌파’ 세력이 이번 선거 결과를 아전인수식으로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이유이다.

아래에서는 지난 4. 7 재보궐선거 이후 내년 대선까지의 정치정세 전망을 크게 정치지형, 코로나 정국, 한반도 정세 세 차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들은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연관성을 갖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정치지형

지난 2016~17 박근혜 퇴진 촛불시위를 통해 상승했던 아래로부터의 정치역량이 문재인 정권 아래에서 사실상 거의 소진되었다. 동시에 ‘진보-좌파’ 진영의 정치적 영향력과 지분 또한 촛불 이전보다 오히려 후퇴했다고밖에 할 수 없다. 반면 ‘적폐세력’으로 내몰리고 의회 내 견제력마저 현저히 약화된 보수/우파 세력은, 비록 여전히 과거의 정치력을 회복하고 있지 못하지만, 4월 재보궐선거 결과를 발판으로, 2022년 정권교체를 부르짖을 수 있는 정도로는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 한편 현 집권 자유주의 세력의 경우는 한때 20년 집권을 내세울 만큼 기세등등했으나 현재는 4월 선거의 결과에서 보듯이 당장 내년 대선을 걱정해야 하는 상태에 놓여 있으며, 스스로 내세웠던 촛불정부로서의 정치적 정당성과 권위는 상실했다.

현재 한국의 정치지형은 기존의 이른바 민주 대 반민주 구도와 함께 진보(좌파) 대 보수(우파) 구도가 뒤섞여 있는 형국을 이루고 있다. 물론 민주 대 반민주 구도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자유주의 세력) 주도 아래 이루어진 신자유주의 전면화와, 지난 이명박근혜정권의 연속 집권으로 이미 그 유효성을 다했다. 그런데도 자유주의 세력은 여전히 민주 대 반민주 프레임을 붙들고 있다. 그 변형된 버전으로 현 집권세력은 박근혜 탄핵 이후 보수/우파 세력을 ‘적폐세력, 친일세력(토착왜구)’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에 맞서 보수/우파는 이명박 집권 시기 이래로 자신들을 규정하는 반민주 세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스스로를 보수/우파로 칭하고, 자신의 상대인 자유주의 세력에게서 민주를 벗겨 내고 진보/좌파로 규정하는 프레임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보수/우파가 말하는 진보/좌파란 ‘반시장/친북세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 정치적 ‘무능(아마츄어)집단’이라는 이미지를 덧붙이고 있다. 그와 함께 문재인 정부를 향해서는 ‘문민독재’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그러나 한국정치(지형)는 지난 김대중 정권 등장 이후 이미 자본 대 노동의 대립 구도로 전환되었다. 문제는, 그런데도 그러한 양상이 지배세력 대 피지배세력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세력 내부에서의 권력 다툼, 주도권 다툼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그런 속에서 민주(진보/좌파), 반민주(보수/우파)를 막론하고 이들 지배세력 모두가 기본적으로 ‘친자본/반노동’을 공유하고 있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보수/우파를 ‘수구보수’로, 자유주의 세력을 ‘중도보수’로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한국정치의 현실에서 가능한 분류이기는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러한 규정과 어긋나는 정치행위를 하는 모순을 보인다. ‘진보’는 스스로를 ‘좌파’로 규정하는 것을 극히 꺼리고 있으며 나아가 ‘중도보수’가 민주 세력이라는 전제 아래에서 그들과의 민주대연합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현실이 지속하고 있는 것은 노동을 대변/대표하는 정치세력이 미약하고 부재한 때문이다. 기존의 ‘진보정치(정당)’은 독자성을 상실한 채 자유주의 세력의 하위 파트너에 머물러 있으며, ‘좌파(변혁/사회주의)’는 정치세력으로서의 면모를 전혀 갖추고 있지 못하다. 이대로 가면, 한국정치의 역동성과 아래로부터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미국식 양당(양강) 구도가 한국 공식/제도 정치의 정치지형으로 굳어질 우려가 없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설령 그와 같은 구도가 형성된다고 해도, 그것들이 안정적으로 지속되기는 쉽지 않다. 자본주의 위기에 따른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위기가 이미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선진자본주의(제국주의) 나라들에서도 정치적 불안정이 일상이 되고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노동당이 겪고 있는 혼란, 미국에서 나타난 트럼프 현상, 프랑스에서 보여 준 사민당의 몰락 등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서의 박근혜 탄핵도 양상은 다르지만 큰 틀에서 유사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한국의 경우는 그런데도 공식/제도정치가 현재까지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양상을 보인다. 이는 그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한국 정치가 아래로부터의 불만과 투쟁을, 비록 더디고 턱없이 부족하지만, 끊임없이 체제 내적으로, 제도적 차원에서 흡수하고 있다는 데 있다. 달리 말하면 한국 자본주의가 아직은 이를 감당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한국 역시 비정규직으로 대표되고 있는 불평등과 양극화 현상이 점점 더 구조화되고 있어 이게 언제든지 정치 불안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안고 있다. 다만 그렇더라도 그 정도가 서구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과 같은 극우/극좌 정치세력이 급격히 등장하거나 주류 정치세력이 급속이 몰락하는 그러한 방식이 될 거로는 보지 않는다. 박근혜 탄핵 여파가 지난 재보궐선거로 인해 진정국면으로 들어서고, ‘진보-좌파’ 세력의 정치력이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제 2021년에 벌어질 모든 정치 현상은 내년에 있을 대선으로부터 규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선 당장 지난 4월 7일 재보궐선거가 이미 내년 대선 전초전 양상으로 치러진 바 있다. 그런데 올 초까지의 상황을 보면 문재인 정권은 집권 마지막 해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권력 레임덕 현상을 보이지는 않았다. 비록 지지율이 하락하고, 정권 반대 여론이 50%를 웃돌았지만, 의회에서의 절대다수와 40% 내외의 굳건한 지지층, 그리고 차기 유력 대권 주자들의 우호적 태도를 기반으로 정치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 민주당이 지지율에서 꾸준히 국민의힘을 앞서고 있었던 것도 밑받침되었다.

그러나 재보궐선거 있기 얼마 전부터 상황이 변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재보궐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참패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로써 그동안 비교적 예측이 가능했던 내년 대선 정국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개 정국에 휩싸이게 되었다. 즉 내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재집권을 하게 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컸던 정국이 크게 흔들리게 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야당으로의 정권교체가 기정사실로 된 것은 아니다. 다만 집권 여당의 독주 체제에 균열이 발생함으로써 야당에도 정권교체를 할 가능성과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한편 지난 재보궐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참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므로 더욱 ‘진보-좌파’의 대선 대응이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이 발생했다. 먼저 ‘진보’의 경우에 보수세력으로의 정권교체를 저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예의 민주대연합을 다시 들고나올 가능성이 있으며, 그렇게 된다면 ‘좌파’는 독자 대응을 더욱 강하게 주창하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상황이 현실화된다면 ‘진보-좌파’는 내년 대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가 사실상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고밖에 할 수 없다.

집권 세력은 당분간 ‘개혁’을 둘러싸고 내홍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 개혁 강화론과 속도 조절론을 놓고 갑론을박하는 현상이 벌써 벌어지고 있다. 촛불정신을 강조하는 쪽과 현상 변경을 주장하는 쪽으로 나누어지고, 정책 논쟁과 이념 논쟁이 뒤섞여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그 속에서 이른바 ‘친문’과 ‘비문’을 둘러싼 내부 권력투쟁 양상이 심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정권 재창출의 가능성이 살아 있는 한 당의 분열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야당의 경우는 여전히 ‘탄핵’을 둘러싼 봉합이 다시 깨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명박근혜 ‘사면’ 요구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여전히 호의적이지 않다. 그 속에서 자강론을 강조하는 쪽과 통합을 주장하는 세력 사이에 힘겨루기가 진행되고 있다. 보수/우파의 결집이냐, 중도로의 확장이냐의 문제도 쉽게 정리되기 어렵다. 가장 무엇보다도 자체 유력 대선 후보가 아직 없는 국민의힘이 주도권을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결정적 약점을 안고 있다. 대선은 재보궐선거와는 성격과 차원이 다르다. 재보궐선거 승리로 인해 정권교체로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은 마련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진보-좌파’는 내년 대선 대응에 대한 가시적인 움직임이 아직은 나타나고 있지 않다. 각자도생하는 것부터 연대연합을 할 가능성이 아직은 모두 남아 있다. ‘진보’의 경우 민주당의 요구가 있음에도 이를 거부하고 실제적인 독자 대응을 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이며, ‘좌파’의 경우 ‘진보’에게 연대연합을 앞장서 제안할 수 있을 것인지 아직 기대하기 어렵다. 이것들에 대한 어떤 가시적인 입장과 태도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지난 4. 7 재보궐선거 이후 내년 대선까지의 정치지형은 현 집권 세력의 상대적 우위가 흔들리는 속에서 이를 지키려는 집권 세력과 어떻게든 현재의 권력 관계를 반전시키려는 보수/우파 세력 두 세력 사이의 대결 구도로 이루어질 전망이다. ‘진보-좌파’의 상태로 볼 때, 이러한 형국에 개입할 수 있는 어떤 개연성이나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찾기 어렵다. 그와 함께 권력 관계 내지 세력 관계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아래로부터의 직접투쟁이 활발히 일어날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재 있는 그대로의 실상이다.

코로나 정국

2021년 역시 2020년에 이어 코로나 정국이 이어지고 있다. 2020년의 경우에 코로나 방역을 앞세운 집권세력이 그에 따른 정치적 반사이익을 독점했다. 반면에 보수/우파는 집권세력이 코로나 방역을 ‘정치화’하고 있다고 공격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른바 K 방역이 일정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 속에서 보수/우파로서는 불리한 정국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진보-좌파’야말로 코로나 방역과 특히 대책 문제를 가장 첨예하고, 또한 치밀하고, 나아가 치열하게 정치화시켜 나가야 했지만, 전혀 그렇지 못하는 정치적 한계를 고스란히 노정했다.

집권 세력은 2021년의 경우도 이와 같은 현상을 이어가면서 이런 상태를 내년 대선까지 끌고 가고자 하겠지만 그 효과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은 코로나 정국에서 공수가 뒤바뀐 형국이 발생한 때문이다. 현재 상황은 기존 방역 정국보다 백신 정국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방역은 이제 아무리 잘해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백신 수급과 접종은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집권세력에게 커다란 정치적 부담이 되는 형국으로 뒤바뀌어 있다. 그와 함께 코로나 사태를 무색하게 할 정도의 정치 이슈가 등장했다. 지난 재보궐선거 결과가 말해주듯이 촛불 배신, 부동산 폭등, 집권세력의 비리와 부패에 따른 대중의 불만과 불신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렇지만 코로나 정국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진보-좌파’야말로 이제부터 본격적인 코로나 정국을 형성하고 이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나가야 한다. 우선은 코로나 19 팬데믹 자체가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백신 접종에도 불구하고 집단 면역이 언제 형성될지가 아직 불투명하다. 변이에 대한 대처 문제도 아직 남아 있다. 적어도 내년 대선까지 코로나 19 팬데믹을 둘러싼 이슈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설령 코로나 19 팬데믹이 진정된다고 해도 이미 그로 인해 발생한 고통과 피해는 물론 그 뒤에 계속될 고통과 피해에 대한 대처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분명 자본주의와 지배세력에게 커다란 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당장 피해와 고통은 오히려 노동자·민중에게 집중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양극화 현상이 코로나 19 팬데믹 아래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 속에서 생존(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를 넘어 생명(죽느냐, 사느냐)의 위기를 낳고 있다. 또한, 코로나 19 팬데믹은 그 이전 이미 경제침체에 빠져 있던 세계자본주의를 더욱 큰 침체로 빠트리고 있다.

다만 한국의 경우는 그 정도가 상대적으로 덜 한 것이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시피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19로 인한 고통과 희생을 노동자·민중에게 고스란히 떠넘기고 있다. 반면에 자본에는 엄청난 특혜를 쏟아붓고 있다. 즉 문제가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 문제가 급격하고 심각한 정치, 계급문제로까지 상승되고 있지 않다. 그렇긴커녕 코로나 19가 아니라면 터져 나올 수 있는 투쟁조차 오히려 위축되거나 그나마 벌어지는 투쟁마저 방역에 갇혀 제대로 조직하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 19 팬데믹은 세계적으로 방역 조치를 둘러싼 논란과 분란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는 코로나 음모론에서부터 국가의 통제 방식에 따른 정당성, 적합성, 실효성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때 이것들 이전에 방역의 목적을 자본의 이윤 방어에 둘 것인지, 아니면 피해 최소화에 둘 것인지의 문제가 있는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윤 방어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것은 자명한 것으로 피해 최소화는 그것이 결과적으로 자본의 이윤 방어와 부합할 경우에 한한 것이지 그 역의 상황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조건에서 통제에 따른 국가의 정당성은 애초부터 그 한계가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적합성이나 실효성 문제 또한 순수한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물론 그것들이 과학의 문제를 포함하지만, 과학 자체의 한계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정치적 필터링을 거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과정에서 왜곡될 가능성은 언제나 상존한다. 다른 한편 통제에 따른 국가의 정당성 문제는 다시 민주주의, 인권, 기본권, 자유의 문제 등과 부딪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 문재인 정부는, 그 의도야 어찌 됐든, 종교 행사에 대한 집중적 통제를 통해 그 밖의 불만과 저항을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보수/우파가 왜 광화문은 안 되고, 민주노총은 되냐는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민주노총이야말로 국가의 방역 통제에 위축되어 그 아래 갇히고 말았다. 물론 이는 민주노총만의 문제가 아니며 ‘진보-좌파’ 전체의 정치역량의 한계를 반영한 것이다.

코로나 정국에서 재난지원금, 이익공유제, 손실보상제 등을 놓고 정치적 논란과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경제가 극심한 침체에 빠지는 것을 저지하고, 방역 조치에 따른 피해 계층의 불만과 저항을 누그러뜨리고, 그리고 선거에 활용하는 차원에서 위와 같은 정책 수단을 동원하려 하고 있다.

재난지원금의 경우 내내 지급 방식과 시기, 실효성 여부, 정책 목표, 재원 마련을 둘러싸고 여야 사이에서, 여권 내부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다. 이익공유제와 손실보상제 역시 현 집권세력이 선거를 염두에 두고 적극적인 추진 의사와 의지를 밝히고 있어 어떤 수준에서든 일단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난지원금은 다 떠나서 턱없이 부족하고, 이익공유제는 그 실효성을 거의 기대하기 어려우며, 손실보상제는 소급 적용을 하지 않으면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재보궐 참패 이후 여당 내에서 손실보상제의 소급 적용 가능성을 언급하고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그것들 모두 자본과 부유층에 대한 세금 인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국채 발행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와 동시에 해고금지, 상병수당 도입, 국유화 등의 노동자 요구는 사실상 외면당한 채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노동자의 요구는 자본의 이해를 직접 침해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고 그런 만큼 그들 요구가 갖는 잠재적 폭발력이 커 지배계급이 이를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진보-좌파’가 이런 어려움을 뚫고 나올 수 있는 절대적 역량이 매우 부족한 조건에서 ‘진보-좌파’ 사이의 연대연합을 통한 돌파구 마련도 못 하는 실정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전 세계 모든 국가는 엄청난 재정을 쏟아붓고 있다. 한국도 액수와 실효성이야 어찌 됐든 정부가 재정을 동원해 전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한 것은 정부 수립 이래 일어난 최초의 현상이다. 이러한 경험은 앞으로 기본소득제를 비롯한 복지 문제(체계) 전반을 둘러싼 논란과 논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한다. 노동자계급과 ‘진보-좌파’ 진영도 이에 대한 구체적 대비가 필요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 19 팬데믹은 이미 말했듯이 극심한 양극화와 함께 금융과 실물경제의 괴리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그로 인해 부동산, 주식 등에 이른바 영투, 빚투 현상이 일고 있다. 이는 노동자·민중들에게 금융에의 종속 현상을 더욱 가속할 것이 분명하다. 그 와중에 거기에 참여하지 못하는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민중들은 더 큰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에 시달리게 될 것도 분명하다. 이는 ‘진보-좌파’의 정치적 영향력이 미흡한 조건 아래에서는 노동자·민중의 단결과 투쟁을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더 크다.

백신 접종이 지금부터 올해 말 내년 초에 걸쳐 이루어진다면 지금과 같은 팬데믹은 완화되겠지만, 그렇더라도 그것은 문제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 국가와 자본의 노동자·민중에 대한 공세가 전방위적으로 거세게 일 것이 충분히 예상된다. 즉 자본 살리기/노동자 죽이기가 다시 본격화될 것이다. 이에 대한 노동자계급, ‘진보-좌파’ 진영의 대비 태세는 매우 부족하고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인한 집권 세력의 정국 주도력 효과는 이미 그 실효성이 다했으며,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오히려 더 커질 전망이다. 그렇다고 코로나 정국이 야당에 유리한 지형으로 바뀌게 될 가능성도 크지 않다. 어쨌든 방역과 백신 접종의 주도권은 여전히 집권세력에게 있으며, 그렇다고 야당이 앞장서서 코로나 사태로 인한 고통과 피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룰 가능성 또한 전혀 없다. 오직 ‘진보-좌파’만이 코로나 정국을 주도할 가능성과 자격을 가지고 있다. 단지 문제는 주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스스로 창출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한반도 정세

2021년에 형성될 한반도 정세가 내년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가늠하기 쉽지 않다. 다만 한반도 정세가 특정 정치세력에게 보다 유리한 방향으로 정세가 형성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집권 시기 동안 한반도 정세로부터 누려왔던 정치적 특수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보수세력이 한반도 정세로부터 역으로 반사이익을 누리게 되는 정세가 형성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사정과는 별개로 내년 대선에서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쟁점이 어떻게 형성되고, 또 어느 세력이 집권하느냐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정세로 다가와 있다. 즉 정치세력 사이의 유, 불리 문제를 훨씬 넘어 한반도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가르는 중대한 분수령이 되는 정세가 지금 한반도를 둘러싸고 형성되고 있다. 이제까지 보여 왔던 관성대로 흘러간다면, 지금으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거의 확실한데, 한반도의 정세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도래하는 것을 저지해야 할 유일한 세력인 ‘진보-좌파’의 상태도 역시 기존 관성에서 벗어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진보-좌파’ 내부를 보면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지배세력 못지않게 분열되어 있고 혼란에 빠져 있다. 이점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진보-좌파’ 사이의 연대연합을 가로막고 있으며, 현실 개입을 또한 어렵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 작동되고 있다. 지금대로라면 현 상태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2021년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또다시 변화를 맞고 있다. 트럼프의 퇴장과 바이든 신행정부의 등장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다. 알다시피 트럼프 집권 아래에서 한반도는 그야말로 요동치는 정세의 연속을 이루었다. 그 백미는, 비록 ‘하노이 결렬(노딜)’로 인해 그 후속 조치가 중단되었지만, 단연 ‘싱가포르 선언’이다. 바이든 행정부 아래에서의 한반도 정세도 바로 이 ‘싱가포르 선언’의 처리 여부를 둘러싸고 벌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2021년에 이 같은 정세가 한꺼번에 판가름 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핵’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 나갈 것인지 대한 정책을 조만간 세운다고 해도 그것를 일방적으로 관철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바이든 행정부가 북과의 접촉을 시도했지만, 북이 이에 응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보아도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거나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북핵’ 문제에 대한 접근법은 5월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이 끝나고 나면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윤곽이 드러날 것이지만, 한반도 정세를 다시 긴장시키는 방향이 될 것만은 분명하다. 바이든 행정부가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북의 비핵화’를 들고나온 것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바다. ‘북의 비핵화’는 ‘북만의 비핵화’, ‘북의 선 비핵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지난 30년 이상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킨 원인이자,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으로 삼아 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싱가포르 선언’을 완전히 무로 돌리고 오바마 행정부 시기의 이른바 ‘전략적 인내’와 유사한 입장과 태도로 되돌아가기는 쉽지 않으며, 그래서는 ‘북핵’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이를 모를 리가 없다. 거기에는 다른 뜻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북핵’ 문제 해결을 그 자체의 독립적인 문제로 삼지 않고 또다시 대중국 전략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의 의지가 성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북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할 만큼 실제로 북의 ‘핵능력’이 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대미 대응 능력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이 아무리 동맹국을 동원한다고 해도 북과 중국을 동시에 봉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싱가포르 선언’은, 분명 트럼프의 특성이 가미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단지 트럼프의 돌출 행동 때문만이 아니라, 이러한 배경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북은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강 대 강’, ‘선 대 선’으로 대하겠다는 의사와 의지를 이미 천명했다. 그 뜻은 미국과 대화와 협상에 임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북은 대화와 협상에 임하더라도 그 시작을 ‘싱가포르 선언’ 위에서 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결국은 바이든 행정부도 북과의 대화와 협상을 위한 외교적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고, 그 경우에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오바마 시기의 ‘전략적 인내’와 트럼프 시기의 ‘싱가포르 선언’ 사이 그 어디쯤에서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바이든 행정부 시기의 한미 관계는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에 이루어질 관계와 2022년 대선 이후 등장할 한국의 새 정부와 이루어질 관계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약 민주당 정권이 재창출되면 문재인 정부와 맺은 관계가 큰 틀에서 연속성을 띠겠지만, 그렇지 않고 국민의힘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면 한미 관계가 상당한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시기보다 한미동맹을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동원하려는 의도를 더욱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한미동맹을 미·일 동맹의 하위에 복속시키고 한미일 동맹을 재강화하겠다는 의지를, 지난 미일 정상회담에서 보듯이, 노골화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에 이른바 쿼드 플러스에 참여할 것과 중국을 배제한 미국의 새로운 공급망 형성에도 참여할 것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이른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어떻게든 진전시키고자 적극적으로 나서고 내년 대선에서 정권재창출을 통해 이를 이어가려고 하겠지만 둘 다 힘겨운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싱가포르 선언은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구축에 매우 중요한 선언이었다”고 확인했다. 즉 문재인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에 ‘싱가포르 선언’을 기초로 북미 대화가 재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보다시피 바이든 행정부는 그럴 의사가 거의 없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 사이에서 진행될 한미 관계는 2021년이라는 시간 안에서만 보면 어떤 진전을 이루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알다시피 현재 남북 관계는 중단 내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그 일차적 원인은 ‘하노이 결렬’이 미친 후과 때문이지만, 이게 아니라도 많은 부분 문재인 정부에게 더 많은 책임이 있다. 북은 문재인 정부를 향해 ‘약속 이행’을 촉구하고 있으며, 문재인 정부가 하는 만큼에 따라 그만큼 관계를 맺어 나가겠다고 공을 문재인 정부에게 던져 놓았다. 즉 대화의 가능성은 열어 놓았으니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 압박하는 형국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을 향해 ‘쉬운 문제’, ‘가능한 사안’부터 우선 다시 풀어갈 것을 제안하고 있지만, 북은 그것들은 본질적 문제가 아니라고 이미 거절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는 다가오는 5월 한미정상 회담을 남북 관계를 다시 가동하는 모멘텀으로 만들려 하겠지만 뜻대로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문재인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남북 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독자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 2021년 남북 관계는 현상 유지를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결론적으로, 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형성되느냐가 그 어느 시기보다 중요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는 데 반해, 현실은 지배세력이든, ‘진보-좌파’든 각자의 기존 관성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 계속되고 있다. 특정 정치세력의 유, 불리를 넘어 제국주의 사이의 힘겨루기에 한반도가 또다시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 있는 냉혹한 현실을 맞고 있는 것이 현재 그대로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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