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여성> 여성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 상상해보라 –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부담을 노동계급의 핵가족이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집단적으로 책임진다면!

김파란 | 농민

2018년 자한당 김성태가 국회에서 출산주도성장이라는 말을 했다. 그때 도대체 저것들의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을까 헛웃음만 났다. 또 2020년 10살, 8살 형제가 당한 참상을 보며 언론들이 그 책임을 비정하고 무책임한 부모에게서 찾으려 하는 모습을 보고 허탈했다. 우리 사회는 정말 진보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과 함께 어쩜 퇴보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사회가 되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성찰도 없이 ‘성장’만을 외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야만적이기 때문이다.

진정 집단적으로 시회를 책임진다는 것은 누구나 사회적 책임에 이해관계가 있고 모든 개인에게 자아실현의 가능성이 활짝 열리는 것이다. 인류학자인 엘리너 리콕은 “진정한 협력의 달성은 개인의 표현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최대한 허용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금 한국 사회가 다음 세대를 책임질 출산을 멈춘 것은 극소수의 엘리트만이 사회의 모든 이익을 가져가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경고다. 야수적인 자본주의에서 다음 세대를 양육하고 자본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는 교육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린다. 즉 출산에서 돌봄 교육까지 부모들이 평생을 일해서 부담하면 기업은 그 중에서 몇몇만 추려간다. 그리고 나머지는 ‘정당한 경쟁’이었다는 이름으로 방치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는 사회가 됐다. 최소한 노동력을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을 사회적으로 부담하거나 아니면 기업이 자기들 입맛에 맞는 인재를 고를려면 그 비용을 내야 한다. 이런 변화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여성들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상상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사랑할 것인지에 관해 진정으로 자유롭게 선택하기를 원하고, 출산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우리 사회는 이런 여성들의 투쟁들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고, 찾기 위해서는 현실에서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야 햔다.

1. 가족 신자유주의 이제 평등을 말할 수 없다

이미 이 나라에서 자신의 노력만으로 계층 상승이 불가능하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최상층에서 ‘입시코디’에게 수십억을 지출한다, 할 만큼 세습 자본주의 상황은 깊어지고 ‘문턱’은 무한대로 높아져 있다. ‘좋은 학벌’을 취득하기 위한 경쟁은 유치원에서부터 시작되고, 이미 학력 격차는 초등학교에서부터 구조화되어 있다.

상층에서 가족은 새로운 무한경쟁의 기획 및 전술의 단위이며, 부부는 일종의 경제적 동맹자다. 그들은 특히 자식의 생산, 교육, 양육을 중심으로 시간 허용, 직장 생활 등을 통해 역할분담을 하여 다른 가족들 또는 사회와 경쟁하는 전사와 같은 존재들이다. 당연히 이런 경쟁에 해당되는 것은 중상위층이다.

교육을 매개로 계층이 대물림되는 상황 속에서 경쟁에서의 평등과 그 문제는 중산층 이상의 이슈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이미 이런 학력 학벌사회화 되어 이제 이런 집단의 파워게임(권력투쟁)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불공정한 사회가 공정한 경쟁이라는 가면으로 도덕성이라는 마지막 자정 능력까지 파괴해 버렸다.

금융권 및 공기업 인사청탁,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 학생부 조작 사건, 그리고 미성년 자녀를 논문 저자 명단에 끼워 넣은 명문대 교수들의 행태 같은 것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좋은 직장’을 간접 세습하려 한 중산층 이상 계급의 부도덕한 반칙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것을 부도덕한 반칙이라고 하지 않는다. ‘가족 신자유주의’에서의 경쟁력 일 뿐이라고 말한다.

반면 하위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의 삶에서 학벌은 어떤 의미일까? 대졸자가 고졸자에 비해 월평균임금이 약 23% 높기 때문에 부모가 가난할수록 자녀를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역사비평 여름호). 그러나 이미 대학 졸업장 값이 많이 내려가서 이제 약 30~40%의 고교 졸업자들은 대학을 가지 않거나 전문대를 간다. 이 나라에서 하층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젊을 때부터 자영업자나 노동자계급으로 살고, ‘비정규직화’ 때문에 직업을 자주 바꿔야 한다. 이 트렉의 삶에서는 출신과 전공이 중요하지 않고, 부모가 교육에 무관심해지거나 오늘날의 대입 방법 같은 복잡한 정보에서 소외돼 버린다.

이런 계층간 위계화 속에서 평등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든다는 것이 가능할까?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는 결과의 공정만을 시비 삼아서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미 기회가 불평등하게 체계적으로 구조화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 평등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과만을 말하고 있다. 기회의 단계마다 있는 상층의 특권이 불평등임을 아무도 말하지 않고 있다. 제일 먼저 실행하여야 하는 것은 기회의 단계마다 앞 단계까지의 불평등을 보완하는 조치들이 수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헌데,

개인자유주의가 깊이 침투해버린 우리사회는 그런 개입을 모두 ‘역차별’ ‘불공정한 경쟁’이라고 부르짓는다. 기득귄을 1이라도 가진 자들이 그런다. 예컨대 교육부가 발표한 고졸 출신 공무원 채용 확대 방침에 ‘대졸자 역차별’이라며 공무원 준비생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일이 벌어졌다. 기득권 세력이 만든 지배의 매트릭스 속에 우리 스스로 포로 또는 주체가 돼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만들고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죄인’이 되어야 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지금 당장 무엇이 가능할까? 원론적인 말이지만, 일단 내놓을 수 있는 계층이 내려놓아야 한다. 제일 먼저 상층의 특권을 폐지하고, 가장 소외된 계층이 받는 극심한 차별을 완화하는 일을 우선 실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층의 지배계급에게 우리가 요구해야 되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특권을 내려놓을 수 있는 도덕성이다. 이 도덕성을 상실한 집권층이 기득권 세력이 되고 이들이 이 땅을 이렇게 사람이 태어나지 않는 지옥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 유령이 되는 아이들(, 고등교육)

제일 먼저 중,고등 교육의 현실을 돌아보면, 한 반 35명 중에 20명이 수급자이고 나머지도 차상위계층이 다니는 학교가 있는 성북구의 한 해 탈학교(학교를 그만두는 학생)를 하는 학생이 7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은 학교를 그만두던 어디서 무엇을 하든 케어해 줄 사람도 없고, 사회적 안전망도 없다. 결국 이 학생들 나중에는 다 굶어 죽는다. 이 사회에서 중졸. 중퇴로 뭘 할 수 있나? 최소한 고졸은 되어야 마트에서 알바라도 할 수 있다. 그래서 탈학교를 한 학생들은 이 현실의 문턱을 느끼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다시 제도권으로 들어오려고 하지만 대부분 실패한다.

그런데 중산층은 뭐라고 하나? 학교를 벗어나자 벗어나자고 말한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진보 교육감을 만들었다. 이런 공교육의 문제를 제기하고 바꾸려는 것이 가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진보적인 가치관도 상당히 의미 있는 가치관이다.

그러나 저 700명, 서울 시내에서 버스나 지하철로 20 ~30분만 들어가면 분명 존재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이 사회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명절날 특집으로 한번씩 나오기도 하지만. 주구장창 중산층 이상의 목소리만이 들린다는 것이 문제다. 왜 그럴까? 미디어나 교육제도를 비롯한 모든 것들이 중산층이나 그 위에서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산층 이상에서 좌,우로 나뉘어서 싸우고 그 밑의 계층은 유령이 되어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실이다. 교육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교수다. 그들의 진보적인 교육정책은 그들만의 리그내에서 진보적인 것이다.

3. 유아와 어린이들의 양육과 노인 돌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라는 소설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귀족인 여성이 농촌을 지나가다 농노의 딸인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 여자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은 자신의 아이를 땅에 묻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한다. 안나의 시누이인 귀족 여인이 물었다. ‘아이가 죽었는데 슬프지 않냐고….어떻게 일을 하냐고..’ 그랬더니 이 여자가 이렇게 대답한다. ‘슬프냐고요…아뇨 홀가분해요..우린 일을 해야 해요..아님 식구들이 다 굶어 죽어요…’ 라고.

위 내용에서도 알 수 있지만, 가족은 추상적인 구조물이 아니다. 가족은 서로 부양하고자 나날이 분투하는 현실의 여성, 남성, 그들의 피부양자로 이뤄져 있다.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상식에 따르면, 여성은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적합하고, 가정은 당연히 여성의 영역이며, 여성은 모든 집안일을 가장 잘 한다. 그러나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늘고 교육 수준이 높아지자 일하는 남성이 여성을 부양한다는 핵기족 이데올로기와 현실 간의 간극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크게 벌어졌다.

성인 여성의 대다수는 집 밖에서 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개별화된 재생산 노동이 대부분 자신의 책임이라고 느낀다. 특히 육아휴직의 경우 대부분 여성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런 생각에 근거해 이뤄지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핵가족은 중요한 소비의 장소다. 워킹맘을 겨냥한 광고의 주된 포인트는 마치 저 제품을 사기만 하면 여성들은 모든 가사와 육아에서 해방되어서 일도 하면서 좋은 엄마이면서 좋은 아내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노동계급 여성과 남성은 저임금, 보육시절 부족, 사회적 지원 감축, 저소득층의 열악한 주거 환경, 높은 주거비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왜냐면 노동계급을 지배계급의 필요에 순응하도록 만드는 과정에서 가족 이데올로기는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가족 이데올로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녀를 먹이고 입히는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게 만드며, 만약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고 주거 환경이 열악하다면 사회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 부족 탓이라 믿게 만들었다. 그러나, 늙은 부모든, 어린 자식이든 다른 사람을 24시간 책임진다는 것은 돈으로 사기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사랑과 연민의 마음에서 이뤄지는 것인데, 국가는 이런 매우 인간적인 감정을 무자비하게 착취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족이 소중하다고 떠들어 대며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신성하다고 가르치지만, 현대 산업의 형태는 ‘없는 사람’ 즉 노동자 계급의 모든 유대를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있다. 그들의 가족에 대한 그들의 입에 발린 소리는 역겹다. 이 사회에서 노동자나, 여성 노동자들이 양심적으로 열심히 일만 하면 저 8살, 10살 아이는 충분한 돌봄을 받을 수 있었단 말인가? 온 사회가 공모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해방의 가능성도 노농계급 남성들의 해방도 이 ‘낡고 답답한’ 제도 내에서 수행하도록 요구받는 책무들을 사회화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사회의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책임은 사회가 져야 한다. 국가가 포괄적 복지를 제공해야 하며,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유급 육아휴직을 줘야 하고, 육아수당 등이 있어야 한다. 이런 요구들은 노동계급 전체를 위한 요구다. 어떻게 아이와 노인과 병자를 돌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성 문제’ 가 아니기 때문이다.

4. 상상해 보라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은 지금까지 일어난 많은 진보를 계속해서 뒷받침했고, 전통적인 가족이 약화되고 (양성) 관계가 평등을 계속해서 주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여성은 여전히 남성과 평등한 임금을 받지 못한다. 시간제 여성 노동자의 임금과 남성 노동자의 임금 격차는 더 크다. 수많은 여성이 시간제로 일하는 까닭은 여성이 육아를 맡과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많은 여성 일자리 보고서를 보면 여성이 왜 시간제로 일하는지를 대략 알 수 있다. 이유는 가정 형편, 저렴한 탁아 시설 부족, 직업 능력 개발 부족, 노동시장의 조건과 양질의 일자리 부족, 이런 환경과 조건은 노동시장에서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여성이 시간제로 일하는 것은 생애 주기의 특정 단계와도 관계가 있다. 특히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여성은 시간제 일자리를 택해야 가사와 일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느낀다. 만약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부담을 노동계급의 핵가족(여성)이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집단적으로 책임진다면 여성의 삶이 어떻게 바뀔까? 상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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