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더 늦기 전에 공공의료 확충해야 한다.

최은영 | 의료연대 서울대병원 분회 간호사

마늘 9kg. 식초 한 병

어느날, 오후 근무(이브닝) 출근을 했다. 환자 인계를 받는데 담당 간호사가 황당해하며 인계를 해주었다. 간호사들은 질병의 특성상 식사를 잘 못하는 환자들이 있어서 짬을 내어 보호자나 환자가 시킨 물건을 1층 안내데스크까지 가서 찾아다 주곤 하는데 그 안에 마늘 9kg에 식초가 왔더란다. 식자재나 유리병, 날카로운 칼 등은 감염에 사고의 위험이 있어 반입을 안 시키는데 내용물을 보고 기겁을 했던 것이다. 마늘이 배달되리라고는 상상을 못한 것이다. 환자에게 자초지종을 확인하니 이번 한 번만 봐달라고 본인이 폐암환자여서 꼭 필요한 거라고 하여 다른 중환자들도 있어 더 이상의 실갱이를 못하고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며 물품을 반입해 주었단다. 그 환자는 식초에 담근 마늘을 썰어서 콧구멍, 귓구멍을 막고 방언기도를 하며 지냈다. 하루가 지나 또 다시 택배물품이 도착했고 부랴부랴 계단을 뛰어 물품을 수령 후 확인하니 부추 2단에 양파, 키위가 있었다. 더 이상 식자재는 안 된다고 설명했음에도 들은 척 만 척, 그리고 또 양배추가 도착했다. 결국 의료진은 좌절했다. 도대체 뭐하자는 거지? 치료에 전념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소모적인 일로 정작 도움이 필요한 환자 방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이후 중증도 높은 환자의 입원 병실이 부족하여 상대적으로 경환자를 빼기로 결정하면서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가게 됐지만 이런 억지와 신경전, 우격다짐은 일하면서 곧잘 빚어지곤 한다.

한번은 겪어야 할 일들. 그러나 다시는 겪지 말아야 할 일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서울대병원은 1월 20일부터 코로나 19 환자를 돌보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15년 메르스 환자를 겪으며 축적된 노하우가 있어서 혼란이 덜했다는 것이다. 감염병 환자를 처음 돌봐야 하는 병원은 아마도 아수라장인 전쟁터가 아니었을까 싶다. 기존에 있던 환자는 당장 어딘가로 빼야 하는데 그 절차 또한 쉬운 게 아니다. 환자를 퇴원을 시키거나 다른 병동이나 병원으로 이송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감염환자와 관련해서는 환자 보호자 없이 입원수속은 어떻게 하고 차트는 어떻게 만들지. 다른 사람과 접촉없이 어떤 경로를 통해 입원을 시킬지, 환자를 돌볼 때 입는 레벨D라는 방호복은 어떻게 입고 벗어야 비말, 혈액, 체액 등으로부터 신체와 주변을 오염시키지 않는지, 정말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중 삼중의 장갑을 착용하고 검체는 채취가 가능한지, 채취한 검체는 삼중포장을 하여 접수를 시키는데 누가 검체를 이송하고 검사는 어떤 보호장구를 입고 처리는 어떻게 하는지. 착용한 마스크로 숨이 탁탁 막혀오고 고글에 김이 서려 앞이 보이지 않는데 환자 상태는 안 좋을 때 어떻게 처치하는지, 갑작스런 입원으로 휴지, 수건 ,세면도구, 충전기, 슬리퍼도 없이 입원한 환자에게 각종 물품은 어떻게 제공해야 하는지. 당장 마실 물은 일일이 간호사가 사다 줘야 하는지. 화장실 거동이 불가능한 환자의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변기와 화장실, 병실 청소는 누가 하고 쓰레기통은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인력은 없는데 당장 돌봐야 하는 사람은 많을 때 일의 우선순위는 어떻게 정할지, 환자 상태가 안 좋아졌을 때 누구와 상의하여 치료 방침을 결정할건지. 시도 때도 없이 걸려 오는 보호자의 전화는 어떻게 통제할지, 기타 등등. 그간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펼쳐졌을 때 눈앞이 하얘졌을 것이다. 제대로 된 교육도 인력도 없이 일에 내 던져진 간호사들은 두려움, 공포, 당혹감이 공존하는 상태로 환자를 돌보지만 환자의 상태가 안 좋아지면 자괴감과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죄책감까지 가질 수 있다. 살릴 수 있는데 눈앞에서 불꽃이 스러져 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번은 겪을 수 있지만 두 번 다시는 겪어서는 안 될 일들이다.

2015년 메르스와 2020년 COVID-19,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라졌을까

1) 부족한 공공병원

우여곡절을 겪으면 그로 인해 얻는 교훈이 있다. 5년이 지난 지금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방역은 잘했을지 모르지만 의료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공의료의 비중은 병상수 기준으로 2012년 11.7%에서 2018년 10.0%로 감소했고, 기관수 기준으로도 6.1%에서 5.7%로 감소했다. 쉽게 말하면 진주의료원이나 대구적십자병원 등 공공의료기관이 폐원하고 상급종합병원을 포함한 민간의료 기관이 증가했다는 뜻이다. 병상 수 자체는 OECD 평균의 2.6배가 넘는 세계 2위지만 공공의료기관은 꼴찌이다.

2월 27일에는 대구에서 병실이 모자라 사흘간 자가격리중이던 코로나봐이러스 감염환자가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3월초에는 대구에서 4000여명의 환자가 발생했을 때 2300여명이 집에서 대기해야했고, 3월 중순까지 발생한 사망자 75명중 17명(23%)이 입원도 못하고 사망했다고 한다. 대구·경북지역은 병상이 부족한 지역이 아니었으나 입원할 공공병원이 부족했던 것이다. (4월 중순까지 우리나라 전체병상의 10%에 불과한 공공병원이 코로나 19환자 4명중 3명을 진료했다). 그 시기 서울대병원에도 대구·경북지역에서 입원한 환자들이 있었다. 일주일에 2~3회씩, 1회에 4시간씩 주기적으로 혈액투석을 받아야 생존이 가능한 만성신부전증 환자가 대구에서 투석 받을 곳이 없었던 것이다. 나날이 병세는 나빠지고 생사를 오가는 순간에 병원을 수소문해서 투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또, 호흡이 불안정하고 흉부CT상 폐렴 악화소견으로 산소 요구량이 증가하여 생존을 위해 앰블란스를 타고 3시간 넘게 걸려 서울대병원에 도착했으나 환자의 상태는 급격이 악화되어 호흡과 맥박이 없는 심각한 상태인 적도 있었다. 병원 문턱을 넘어 입원할 곳만 있었어도 대구에서 사망자는 훨씬 줄었을지도 모른다. 서울대병원 감염격리병상도 코로나 19환자를 받을 수 있는 병상 수는 7개에 불과하다. 폭발하는 환자 수를 어쩌지 못해 불가피하게 침대를 하나씩 더 넣어 12개로 운영하다가 현재는 위기대응 중환자실 8개, 확진 환자 병실 12 자리를 추가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또 다시 중환자수가 증가하면 치료공간이 부족할 수 있다.

2) 부족한 중환자실

현재 서울대병원은 약 1800여개의 병상이 있다. 그 중에서 내과병동이 절반정도인데 내과계 중환자실의 침상 수는 12개에 불과하다. 2개는 음압격리병상, 1개는 심폐소생술 병상이다. 9개의 병상을 가지고 내과계 중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상황이다. 병동에서 중환자가 발생하면 중환자실로 내려야 하는데 돌려막기 하듯 중환자실의 가장 경환을 병동으로 올린다. 병동의 업무 부하는 중환자실 못지않게 높고 환자는 집중간호를 받지 못한다. 중환자실은 간호사 1명이 1~2명의 환자를 돌보지만 병동은 간호사 1명이 10명에서 17명의 환자를 돌봐야하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중환자실이 부족한데 코로나 환자를 돌봐야 할 경우는 중환자실 병상 2개를 운영하지 않아야 가능하다. 병동의 환자가 줄지 않고 중증도는 높은데 중환자실 자리는 더 작아지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서울대병원은 결국 위기대응 중환자실을 만들어 코로나 확진 중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그러나 순환이 되지 않고 중환자는 계속 침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공호흡기를 가지고 있는 중환자의 경우 쉽게 호전이 되지 않아 45일이 넘게 치료받는 환자도 많기 때문이다. 정부는 광복절 이후 6주가 지나서 확진 환자 수는 두 자리 숫자라고 하지만 여전히 중환자실은 꽉 차있다.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코로나 확진환자는 서울대병원에 입원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서울대병원이 이 정도인데 다른 곳은 말해 무엇하랴

3) 부족한 간호인력

이태원 확진자와 달리 요양병원이나 방문판매, 광화문 집회 등에서 확진된 환자는 기저질환이 있거나 연령이 높다. 이태원 확진자는 증상조절을 하거나 관찰을 해도 되는 정도라면 다른 환자들은 고농도 산소를 하거나 기도삽관을 하여 인공호흡기를 부착하는 환자가 많다. 레벨D라는 방호복을 입고 보호 장구를 착용하면 평상시보다 더 많은 간호 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간호사들은 항상 인력부족에 허덕이며 살았다. 예전에 간호사를 대상으로 설문을 한 적이 있었다. 어떤 부서에서 일하고 싶은지를 묻는 것이었다. 답변은 “화장실 가고 밥 먹을 수 있는 곳”이라는 답변이었다. 아직도 근무 중 화장실 가는 시간이 확보되지 않을까봐 물도 못 마시는 간호사들, 생리적인 욕구마저 처리해야 할 일처럼 여기는 간호사들, 어쩌다 밥이라도 먹을라치면 환자 보호자의 부름에 씹다 만 반찬을 우걱우걱 넘기며 환자를 응대하는 간호사들, 오후 번 근무 때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제시간에 퇴근하고 싶은 간호사들, 본인이 살아남기 위해 사직을 꿈꾸는 간호사들, 8시간 노동만 하면 좋겠다는 간호사들이 아직도 즐비한 대한민국에서 간호 인력은 요원한 문제이기만 하다.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되는, 다섯째 아이를 임신한 출산이 임박한 중동지역의 임신부와 그의 가족을 돌볼 때도, 치매가 있어서 음압격리실 밖으로 시도 때도 없이 나가려는 고령의 환자나, 정신질환이 있는 환자나, 간호사가 먹여주지 않으면 굶을 수밖에 없는 환자나, 거동이 불가능하여 하나부터 열까지 간호사가 수발을 들어야 하는 환자나, 난폭한 환자나, 산소줄이 빠지면 폐에 심각한 손상이 야기되는 환자나. 각종 치료 장치를 갖고 있는 환자를 돌보는 일은 결국 사람이 할 수 밖에 없다. 우스개 소리로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고 얘기하는 간호사들이 대한민국에 존재한다. 간호인력이 부족하다고 2008년 이후 근 10년 동안 간호대 정원은 60%이상 확대됐으나 아직도 현장에서 일할 간호사는 없다. 취업은 하지만 정년퇴직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졸업은 하지만 장롱면허에 유휴간호사가 많다. 일은 하지만 간호사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고, 불규칙한 교대근무와 야간노동, 과중한 업무, 중증 환자에 대한 부담감, 나아지지 않는 근로조건은 젊은 시절 한때는 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제까지 그들에게 평생을 그렇게 살라고 강요할 순 없다. 힘들게 들어간 병원을 그만두는 간호사들에게 과연 희생정신과 사명감도 없다고 나무랄 수 있을까. 환자 안전의 핵심은 간호 인력이다. 그러나 간호사 1인당 돌봐야 하는 환자 수는 줄어들지 않는다. 정규 간호사의 수가 10%증가하면 수술 환자의 사망률이 5%감소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병원에 정규 간호사가 많을수록 요로감염률, 상부위장관 출혈, 수술환자의 폐렴, 수술환자의 혈전증, 수술환자의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률 등이 감소한다는 각종 통계들이 보고된 바 있다. OECD평균에도 못 미치는 간호인력의 확충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4) 부족한 개인보호구

코로나 환자가 증가하면서 방역물품이 동이 나기 시작했다. 레벨D, 고글, 장갑, N95마스크, PAPR후드 등 환자를 돌볼 때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필수적인 개인보호구가 동이 나기 시작했다. 그 즈음 의료진들은 병실 출입 최소화 방안을 모색하고, 한번 들어가면 모든 일을 다 해치우고 나오는 방안을 택했다. 서울대병원도 N95마스크 재사용에 관한 지침을 공지했다. 일회용이 원칙인데도 불구하고 환자를 접촉한 마스크를 다시 회수하여, 수거·소독후 재사용 한다는 것이다. 의료진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 19봐이러스에 밀어 넣고 있었다. 결국 소독한 마스크를 착용하는 일은 없었지만 일하는 사람들이 개인보호구까지 걱정하며 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메르스 때도 있었던 일이 5년이 지난 2020에도 똑 같이 벌어지고 있다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

서울대병원은 코로나 환자로 인해 외래 환자 수 감소, 입원환자 수 감소 등으로 병원 경영이 부실화 되었다고 2020년 인건비 100억을 절감하겠다고 했었다. 모 의료원은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면서 일반 환자가 방문하지 않아 병원 경영이 부실하여 인건비 줄 걱정까지 하고 있다. 국가적 재난 사태가 되면 현재 있는 공공의료기관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야 한다. 그러나 모든 역할과 책임은 각 기관이 지면서 지원이 없다면 아무도 국가가 요구하는 역할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 돈벌이의 대상이 되서는 안 된다. 국민의 건강권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의식이 없으면 악순환은 계속 될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공공의료 병상 30% 이상 확충하고, 의료인력을 충원하고, 각종 의료민영화 정책을 중단하여야 한다. 감염병 전문병원을 만들고 향후 발생할 각종 감염병 대응책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재난사태가 발생해도 국민이 허망하게 죽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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