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직업계 고등학교, 어쩌다 이 지경에 내몰렸는가?

김경엽 | 전국교직원노동조합사

아! 슬프도다.

어찌 이리도 매정한 현실이 반복되는가? 기능대회는 정부의 정책과 설명과 다르게 변질하였다. 노동 현장에서 직업적 단련으로 형성된 기능을 평가받는 자리가 아니다. 산업체에서 외면받아온 기능대회를 학생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래서 학교는 기능반 학생들을 ‘기능대회’에서 메달을 따기 위한 목적으로 선발하여 운영하였다. 교육부는 2007년 고 황준혁, 2020년 고 이준서 학생들의 죽음으로 보여준 아픈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메달 경쟁 때문에 희생된 학생들의 모습은 13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죽음의 사슬을 끊어내지 못하고 오늘 또 연장하고 있다. 우리는 ‘교육부가 왜 존재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4월 8일 늦은 밤, 만 17세, 고 이준서 학생은 ‘나는 메달 따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온몸을 던져 직업계고등학고 ‘기능반’의 어두운 현실을 폭로하였다. 전국의 교육·시민·노동·사회단체들이 고 이준서 학생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 성명서와 기자회견으로 애도하며, 경쟁적 기능대회를 개선하고 이를 준비하는 직업계고등학교의 기능반을 폐지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2020년 기능대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개최되었다. 성과를 기념하는 행사가 전국 각 학교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 심지어는 경주 S 공고 인근의 경주 K 공고가 비정하리만큼 2002년 지방경기대회 입상실적을 선전하는 모습이 신문에 소개되었다.

현실이 이렇게 비정함에도 교육부는 너무도 안이하다. <경주 S공고 고 이준서 학생 사망 사건 진상규명과 직업계고등학교 기능반 폐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학생안전을 방치한 교육부를 규탄하며, 고 이준서 학생 사망 사건의 진실을 알리는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전교조도 활동의 연장 선상에서 함께 하고 있다. 교육부는 ‘고인이 얼마나 더 현실 세계로 소환’해야 직업계고등학교 기능반 학생의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할 것인가?

산업화 시대의 기능대회

기능대회는 55년의 전통과 역사를 가진 대회이다. 1964년 이후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을 추진해나가던 박정희 정부는 국제기능올림픽 출전을 결정하였다. 1966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제15회에 첫 참관인단을 파견하였다. 1966년 9월 지방기능대회, 11월 제1회 전국기능대회에 이어 67년 7월 제16회 국제기능올림픽 대회에 9명의 선수를 스페인에 파견하였다. 초기에는 국위 선양과 한국 상품의 이미지 제고를 통한 수출증대라는 경제적 목적이 강했다. 당시 발족한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한국위원회는‘경제발전과 숙련 기술 인력양성이라는 과제를 짊어진 시대적 요구’라고 지금까지 밝히고 있다. 산업화 초기 단계의 근대성을 겨우 벗어난 우리 사회에서 산업인력을 배출하는 통로로 핵심 기능인을 키워 ‘기술 한국’을 만드는 데 일정 기간에 한정된 분야에서 공헌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능대회가 기능을 가진 모든 기능공이 자신의 기술력을 평가받는 자리이기보다 경쟁에서 승리한 선수를 선별하는 대회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국제기능대회에서 성적에 매몰되어 입상자에게 집중 조명하는 정책이 우리 사회 전체 기술력을 도움이 되지 않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입상성적에 따라서 선택적으로 부여하는 방식은 기능반 학생들에게 상위권 대학진학의 기회를 부여하였다. 역설적으로 가장 우수한 기능인들이 전공과 무관한 대학진학 하는 등 탈 기능공의 길을 걷게 하였다.

출전 선수가 대부분이 고등학교 학생이 된 이유가 무엇인가? 기능대회 과제가 산업현장에서 쓰임과 응용력을 높여 주는 것이라면 현재‘기술 한국’을 이끌고 나가는 기업들의 노동자들이 기능대회를 외면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새로운 기술 변화의 시대에 직면해 있다. 기업은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해나간다.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대회 과제는 현실과 멀어졌고, 시험을 위한 기능과제 설정은 비현실적이다. 공정성을 높이려는 시험문제는 더 추상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눈에 보이는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은 현실적 응용력과 현실적이지 못한 과제 수행을 요구하게 된다. 기업이 기술 변화에 빠르게 대처했음에도 국제대회 메달 획득이라는 성과주의 목표에 매몰되어 관행처럼 기능대회는 유지되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기능대회는 산업현장 노동자를 대신하여 고등학교 학생들이 출전했고, 성과주의에 매몰된 현실에서 학생들은 메달 경쟁에 삶을 갈아 넣고 있다. 이것이 기능대회가 고등학교 기능반을 운영하는데 왜곡을 가져오는 핵심 기저이다.

정부가 말하는 기능대회는 숙련노동자의‘기술적 기능 능력을 평가’하는 대회라고 하지만 결코 평가의 장이 될 수 없었던 역사이다. 노동교육학적 관점에서도 추상적 기술이 인간의 몸에 안착하는 육체지능으로 제대로 형성하는지를 평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메달을 목적으로 선발과 경쟁 중심의 대회 운영 방식은 비교육적인 활동을 학생에게 강요하게 된다.

기능반은 통상적인 학교 동아리

직업계고등학교에서 왜 소수 학생을 선발하여 기능반이라는 학급이 아닌 소집단을 만드는가? 일상적인 교육활동이 아닌 특별할 만큼 학생의 진로 선택지가 넓어지거나, 취업의 문이 열리는 등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학생의 선택과 특별할 것도 없는 학교 선발 과정이 혼합되어 있지만, 기능반 활동에 억압적 요소가 발생하는 구조는 무엇인가? 등 수없이 많은 질문과 의문이 세상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기능반은 학교교육과정의 동아리다. 구체적으로 동아리 형태를 구별 짓기로 하면 ‘전공교과 동아리’로 분류된다. 하지만 학교에 운영하는 일반 동아리와 다른 결의 무늬를 갖는다. 기능반 선발은 조기에 한다. 통상 고등학교 1학년에 선발되지만 기능중심으로 학교 운영하는 몇몇 학교의 경우 중학교 3학년 입학예정자들을 선발하여 관리하고 있다. 메달 가능성이 보이는 학생을 조기 선발하여 소수 정예화된 기능반을 운영하고 있다. 17세부터 24세 사이 참여하는 국제기능올림픽 대회는 2년 주기로 열린다. 그래서 매년 열리는 전국기능대회 우수자 2명이 출전권 획득하는 ‘평가전’추가로 시행하는 구조이다. 전국기능대회 우승자는 세계대회 평가전에 참여권을 획득한다. 결론적으로 세계대회 메달을 목표로 16세(고1)부터 20세까지 4년의 기간이다.

고1부터 고3까지 소집단의 기능반은 학교교육과정에서 동아리 활동과 같은 위상을 뛰어넘는다. 기능반은 교육활동의 결과로써 운영되지 않고 교장을 포함한 관리자들의 관심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회 입상 현황과 같은 대외적 선전에는 기능반 성과가 활용되지만, 평소에는 외부에 잘 노출되지 않는 매우 폐쇄적인 조직이다.

기능반 구성은 같은 전공학과 1~3학년 학생으로 구성되다 보니 지도교사와 학생, 학생들 간의 권력 구조가 매우 명확하다. 한 예로 작업준비과정을 1~2학년이 해놓으면 대회 출전하는 3학년 선수학생은 과제수행 작업만 하고 쉰다. 심지어 뒷정리는 저학년의 몫이 된다. 타일 직종의 경우 타일을 붙이기 위한 시멘트벽은 2~3일 한 번씩 세웠다가 부수는 과정이 수없이 반복된다. 이 작업을 저학년이 해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폭력의 대물림이 일어난다. 교사의 폭력성이 3학년에게 전가되고 다시금 후배에게 가는 것이다. 자기가 후배 시절 받았던 고통을 선배가 돼서는 갚음 하는 현상이다.

전교조 조사에서 훈련일정을 학생 스스로 결정하는 경우는 3.5%(7명)에 불과했다. 교권이 무너졌다고 하나 직업계고등학교 문화는 아직 90년 초 같다. 여전히 공고하다. 학생과 학부모와 상의하여 결정한다고 하지만 신라공업고등학교 사례에서 보듯이 결국 학교의 의중이 지배적으로 훈련시간을 결정한다(기능반 운영학교 교사 198명이 설문에 참여함. 교사 58명, 교사와 학생, 학부모 67명, 교사와 학생 62명, 교사와 학부모 4명).

기능반에서는 선후배 간 도제식 훈련으로 학교폭력이 대물림되었다. 신라공업고등학교는 기능반 학생들 간에 학교폭력을 숨겼고, 심지어 학생의 학교폭력 이력을 학생이 기능반을 그만두고 싶어 할 때 잡아두는 협박용으로 활용하였다. 게다가 기능반 학생 간 ‘성폭력’ 문제를 제보하여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이런 기능반 내 폭력 문제는 성장기 학생들의 심리적 파장을 더 키웠다.

기능반 학생들의 정상적 학습 보장?

어릴 적 기억은 왜 시간이 지나면서 미지의 섬처럼 가라앉는 걸까? 기억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한 기억을 ‘일화기억’이라고 부른다. 이런 기억에 비해 어떤 물질의 무엇인지를 아는 것도 기억인데, 이러한 기억을 ‘의미기억’이라 부른다. 어떤 물체의 사용법,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는 것은 ‘절차기억’이며, 의식할 필요 없이 자동으로 처리되는 암묵기억의 일종이다. 형태가 다르더라도 정보를 저장하고 나중에 다시 꺼내서 사용할 수 있다면 ‘기억’이라고 부른다.

아기 때에 경험을 저장할 수 있지만, 우리가 세 살 이전에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인 해마와 관련이 있다. 해마는 특히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에 대한 기억, 즉 ‘일화기억’을 저장하는 데 중요하다. 기억은 신경세포에 일대일로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뇌 영역에 걸친 신경세포들의 활성화 패턴으로 저장된다. 기억을 회상한다는 것은 저장된 패턴을 다시 활성화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미국 템플대의 심리학자 노라 뉴컴 교수는 아이들이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지는 못해도 그 기억이 있다는 점을 보였다. 그의 실험결과는 과거의 기억을 의식적으로 기억해내지 못하더라도 기억의 흔적이 뇌에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기 때의 기억은 다시 떠올릴 수 없었을 뿐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언어능력은 기억의 형성과 유지에 도움을 준다. 언어를 사용해 기억을 더 체계적으로 구성하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계속 기억을 회상하고 무엇이 중요한 내용인지 학습하여 기억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기능은 신체를 사용해야 하기에 ‘절차기억’에 연관되어 있다. 신체기능은 뇌 지적 활동을 통해 상상해낸 물체의 표상, 제작 순서, 요소별 작업 계획, 사고의 흐름 등 관념으로만 존재하는 것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를 사용하는데 손재주를 발휘하는 근육을 통제하는 능력이다. 즉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재료를 인간의 노동활동이 더해져 새로운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인간이 가지는 신체를 통제하는 능력이다. 특히, 손동작을 정교화는 생산품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기술이 인간의 몸에 익혀지는 과정은 인간의 근육이 통제되는 몸과 뇌 근육 활동으로 생성되는 마음을 분리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체화된 인지’로서 완숙되어가는 상태이다. 최상의 기술은 몸과 마음이 하나 된, 생각하는 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 ‘손이 뇌를 가르치게 하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지능보다 인간 몸의 능력과 가치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반복되는 손동작을 통해 언어로 풀어낼 수 없는 형용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통찰을 얻으라는 것이다.

순차적인 언어로 기술되는 서술적인 기억형식지의 영역이 아닌, 동작을 몸으로 익히는 절차적인 기억암묵지의 영역이 인간의 근육을 통제한다(유지원, 홍익대 교수).

기능대회 훈련과제를 연습하는 것이 암묵지의 영역을 발달시키는데 바른 방향인가. 직종별 대회 과제와 시간은 차이가 있다. 통상 3일 15시간~22시간 과제이다. 대회 준비과정에서 3일 한 번씩 같은 작업을 수없이 반복한다. 이는 일반 훈련과정과 다르게 느슨한 기능 학습이 아니라 모의고사를 보는 고강도의 집중력과 신체 한계에 도전하는 강도 높은 훈련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단순 기능만 반복적으로 훈련하였다. 기능대회 전까지 메달 따는 기계가 되어서 학생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고강도 훈련을 감내해야 했다. 이런 훈련과정은 기술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현상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기르지 못하고 반복적인 기계적 행위만 남는다. 어찌 이를 두고 실무능력 배양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기능대회 입상자의 인터뷰 기사이다. 질문은 ‘작업을 하면서 힘든 점은 없으셨어요?’이다. 입상자는 “힘들 걸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아침 7시부터 훈련을 하는데 하루의 시작과 끝이 모두 훈련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오늘 작업한 내용을 정리하고 분석하고 문제점 파악하고 청소까지 마치면 오후 11시가 됩니다. 대회 기간에는 새벽 3시까지 훈련을 하기에 정말 힘듭니다. 이런 고된 훈련 때문에 기능반을 하다가 그만두는 사람도 많습니다.”

장시간 기능훈련으로 학생들의 건강권 침해와 수업시간 중 훈련 등 학습권 침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교조 설문 조사에서도 확인되었다. 응답 조합원의 65.7%는 기능반 하루 평균 훈련 시간이 6시간 이상이라고 답했으며 오후 8시가 넘어서야 훈련을 마치는 답변은 86.9%에 달했다. 통상 기능반 학생들이 일반 학생들과 함께 수업에 참여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한 조합원은 28.8%에 불과했다. 기능반 학생 10명 중 7명은 ‘일부 수업만 참여(30.3%)’하거나 ‘아예 참여하지 않는(40.9%)’ 것으로 나타났다(◦훈련량: 9시간 이상-45명, 12시간 이상-40명 ◦훈련 종료시간: 20시~22시-129명, 22~24시-43명 ◦휴일 훈련 시작: 9시-130명 ◦학습권: 수업이 참여하지 않는다-81명, 일부 참여-60명).

신체적 성장과 정신적 성장이 필요한 시기에 쉼 없는 반복 노동은 가혹행위와 다르지 않다. 기능대회 상위권 입상이라는 화려한 찬사로 가려진 기능대회 준비과정에서 훈련과 혹사로 인하여 교사들과 학생들이 거듭 그 고통을 호소해 왔다. 기능반 학생들은 고등학교 기초 교과목 학습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성장과 발달을 추구하는 ‘고등학교의 존재 의미’를 망각한 것이다. 학생들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교육 적폐로 전락한 지 오래되었다.

고 황준혁 학생에게 2월의 학교는

2007년 2월 3일 토요일, 대구는 겨울의 끝자락이 가는 시기였지만 그날 정오는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따스한 햇볕으로 온화한 기운이 감돌았다. 2월 학교의 모습은 1년간의 학교생활을 마무리하고 새 학년을 맞이하는 설렘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교정은 그저 미래의 꿈을 꿈꾸고 사색에 잠기는 공간이면 충분하다.

고 황준혁 학생에게 2007년 2월은 평범한 학생들과 다른 의미였다. 그해 4월 있을 기능대회를 준비하기 위해서 2년간 쉼 없이 훈련했던 하나의 순간에 불과하였다. 방학 기간의 토요일임에도 평소와 같이 아침부터 기능훈련에 몰입하였고, 주말 저녁 가족과 함께 보낼 기대감에 부푼 상태였다. 모든 상념을 뒤로 한 채 몸에 익은 작업에 집중해야 했다.

기능대회 훈련과정에서 안전은 뒷순위로 밀려있었다. 더 빨리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안전을 확인하는 공정은 생략하기 일쑤였다.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고 황준혁 학생은 위험한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게 하였다. 지금까지 몸에 익혔던 대로 시간 단축하며 빠르게 작업을 진행하였다. 메달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서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요구되기에 작업 공정을 생략해야 했고, 빠르게 손발을 움직여야 했다. 그 과정에서 냉각 장치에 가스를 주입하다가 냉각기 폭발로 뚜껑이 학생의 가슴을 치는 사고가 났다. 사고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당일 사고 현장에서 고 황준석 학생은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 후로 13년이 지난 2020년 4월 8일에 또 다른 뼈아픈 사건이 발생했다.

고 이준서 학생에게 3월의 학교는

3월 학교는 새 학년의 기대감에 부푼 시기다. 또한, 새로운 친구와 선생님과의 관계 맺음으로 긴장감도 높은 시기기도 하다. 어른으로 성장하는데 거쳐야 할 과정이기에 회피보다 잘 극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다림의 여유를 가진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코로나19로 4차례에 걸쳐 등교 개학 연기에 대면 교육이 아닌 온라인으로 관계를 맺어야 했다. 그동안 물처럼 흔해서 중요함을 몰랐던 학교라는 공간을 다시금 인식하는 한해였다.

일상적인 학교 풍경과 다르게 직업계고등학교 기능반 고 이준서 학생에게 3월의 학교 풍경은 머나먼 다른 세상의 일이었다. 기능반 소속 학생들은 ‘코로나19로 등교 정지 시기’에도 메달 경쟁을 위해 기능훈련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물리적 거리를 강화하던 시기에 고 이준서 학생은 합숙훈련을 강행하면서까지 죽음으로 내몰렸다. 기능반 학생들은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쉼과 삶을 포기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작은 차이’를 만들어내야 했다. 메달을 위한 작은 차이는 혹독한 훈련을 감내해야 했고, 같은 작업을 수없이 반복해야 했다. 고 이준서 학생이 2020년 지방기능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교내 합숙을 하면서 몸무게가 10kg이나 빠질 정도로 힘들어했던 이유다.

그동안 학생들의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하는 교육부는 합당한 조처를 마련하지 않고 외면했다. 2020년 4월 8일 밤 고 이준서 학생은 온몸으로 그런 교육부에 경종 울렸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근본적인 해결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고 이준서 학생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로 보는 근본적 이유이다.

1% VS 99%, 또 다른 공간에서 경쟁교육

지난해까지 지방기능대회에는 28만7000여 명이 참가해 6만9000여 명의 입상자를, 전국기능대회는 7만2000여 명이 참가해 9000여 명의 우수 산업인력을 배출했다. 이들은 우리나라가 세계 일류의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제조산업의 강국으로 발전하고,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의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 공헌한 핵심 숙련기술인이다.

윤정식 한국기능올림픽연구원장, 2020.06.02. 한국경제

윤정식의 말을 그대로 해석해보면 지방대회 참가인원 약 28.7만 명 중에서 단 0.9만 명(3%) 사람이 우수 산업인력으로 배출되고 있다. 그러나 학령 인구의 감소와 직업계열과 일반계열 학생의 진학비율 등 통계 변화를 고려하여 보더라도, 기능대회가 처음 시작 된 1967년부터 현재까지 직업계고등학교 입학생은 평균 10만 명 정도이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총 졸업생이 600만 명인데 그들 중에서 기능대회 참가인원은 전체 직업계고등학교 학생의 5% 미만이다.

기능반의 문제는 학생들이다. 1%를 위해 99%의 학생은 버려지는 구조이다. 기능대회 수상은 결코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했다. 전국 기능대회에서 지난 10년 동안(2007~2016년 통계) 입상자 중 1470명이 대기업에 입사했을 뿐이다. 그나마 2007년부터 특정 대기업이 기능대회를 후원하고 입상선수를 뽑고 있다. 그 기업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한 위상을 가진 회사다. 2007년 기업의 정치적 타격을 무마하기 위한 용도로 지원에 참여한 것이기에 이제는 한계에 부딪혔다. 지방기능대회 참가인원이 매년 약 5천 명 인점에 고려하면 취업 성과는 매우 미비한 수준이다. 전국대회 입상자가 진학에 도움이 된다고는 하나, 일반 수업을 빠진 상태에서 고교 3년간 훈련해도 메달을 따서 대학에 진학하여도 대학교육에 적응할 방안은 없다. 이는 소외되는 시점만 뒤로 밀릴 뿐이다.

고 이준석 학생이 훈련하던 곳(S 공업고등학교)

고 이준서 학생의 계기로 숨어있던 기능대회의 모순이 알려졌다. 선진산업국가 한국이 육체 기능기술으로 국제사회 위상을 선전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본다. 또한, 경제적 관점에서 인간을 도구화하는 교육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소수 학생에게 혜택이 주어지는 메달 경쟁은 학생의 발달을 추구하는 교육철학과 어울리지 않는다. 폐쇄적인 구조는 내부의 문제를 안고 곪게 만든다는 점을 우리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기능 학습의 결과로 얻어지는 기능 능력이 아니고 메달 따는 과제 숙달은 정상적인 과정에서 일어나는 직업계고 학생의 기능연마라 볼 수 없다.

기능대회, 누군가를 위한 잔치 들러리인가?

제55회 전국기능경기대회(2020.9.15~ 개최)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확인되어 조기 폐막했다. 코로나 확산 우려에도 개최를 강행한 대회에서 또 다른 논란이 발생하였다. 9월 23일 같은 날에 ‘55회 전국기능경기대회 불공정한 심사를 고발합니다’와 ‘전국기능경기대회 전기전자분야 분과장과 기술위원장, 기술부위원장의 해임을 요청합니다’라는 청원 2개가 등록되었다. 안전과 교육 모두를 놓친 기능대회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청원의 내용인즉슨 경기운영의 불공정을 고발하는 것으로 부적절한 코로나 대응책, 일관성 없는 실격제도, 학생 인권 유린 하는 경기 운영, 특정학교를 편들기 위한 심사장과 분과장의 비상식적 평가행위 등이다. 기능대회의 구태의연한 모습은 55년의 기능대회 역사와 같이하고 있다. 이제 막 사회를 배워나가는 학생이 인생의 쓴맛을 경험의 흔적이 아니라, 불공정함을 뼛속까지 세기는 충격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코로나의 확산 조짐이 농후한 위험한 조건에서 강행 결정을 두고 교육부는 학생의 안전보다 기업의 인력공급 선발대회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코로나 확진자가 참여한 직종에서 대회는 3시간만 진행되었다. 짧은 작업 수행 결과만으로 금·은·동을 가르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금은 입상 학생에게 대기업 입사 혜택이 있었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금 실적 학교는 가장 높은 등급의 ‘금탑’ 기관 표창을 받았다. 입상자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되고 여러 가지 혜택이 부여되는데 방식은 행복한 고등학교 생활을 포기하고 3년 내내 고된 훈련과정을 견디어내야 했던 대부분 학생을 들러리로 전락시킨다는 점이다. 좁은 문은 만들어 놓고 공정한 대회 운영을 기대하기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일과 같다. 어김없이 이번 기능대회에서도 심사과정에서 불공정성 시비가 일었다. 여러 각도로 기능대회를 입체적으로 짚어보아야 실체적 모습이 그려질 것이다.

이번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대회에 직접 연관된 사람이 아니면 알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내부 제보가 없으면 부정한 사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종종 부당함을 참지 못하고 용기를 내어 세상에 알려도 대회 운영하는 주체가 조사한 사안 해명자료로 무마되고 있다. 심지어는 ‘금품 수수’가 확실한 정황이라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아도 같은 집단 내 사람들은 피를 나눈 형제처럼 뭉쳐서 법망을 피해 나간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명백한 형사사건이 아닌 지능형 범죄는 실증적 사실을 입증하는 데 증언이 중요하다. 그래서 ‘어’와 ‘아’에 따라 처벌과 무혐의를 가른다. 경쟁이 심한 제도는 사람들을 불법에 무감각하게 만들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 기능대회를 경험한 사람이 느끼는 대회 운영의 불공정성에 대한 인식과 외부 온도 차는 크다. 기능대회 광고 장면을 볼 때마다 동떨어진 현실에 발 딛고 있는 직업계고등학교 교사로서 나 자신을 발견한다.

산업화 초기 정부는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해서 전략적으로 선택한 기계 분야다. 왜냐하면, 다른 산업에 미치는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기술 후진국 이미지를 탈피할 목적으로 기계공고를 육성하였고, 세계기능대회 출전하여 세계 무대에 기술한국을 위상을 높였다.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화마로 폐허가 된 국가가 선택한 수출주도형 성장 전략은 경제성장의 핵심이 된다. 그들을 산업의 기수, 역군이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시대 과업이기에 기업들도 정부 정책에 잘 호응하고, 전략적으로 기능대회에 노동자들을 출전시켰다. 하지만 90년대 들어서 산업고도화를 나아간 기업들은 기능대회와 멀어졌다. 그 자리를 직업계고등학교가 채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부의 세습 도구로 전락한 교육, 교육을 통한 부의 세습을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아직도 직업계고등학교 교육은 과거에 머물고 있다. 지금 시대의 교육은 달라져야 한다.

직업계고등학교를 관할부처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고용노동부가 기능대회를 개최하면 코로나의 위험에도 학생들을 보내는 곳은 교육부다. 기업이 저임금 미숙련노동자가 필요하다면, 학생들을 노동력으로 보내는 곳도 교육부다. 사정이 이러하니 교사인 나는 교육부가 아닌 노동부에 기능대회, 현장실습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 도서관에서 ‘태백산맥(조정래)’에 푹 빠져서 여름방학을 보냈던 추억이 지금의 직업인으로서 삶을 지탱하고 있다. 내가 경험했던 고등학생의 낭만을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들도 누렸으면 좋겠다. 기능대회의 불공정성을 넘어 공교육의 불평등을 바로 잡는 일이 그래서 나에게 너무 소중하다.

허울뿐인 개선안 발표에 분노

‘강력한 물리적 거리 두기가 필요했던 코로나 사태 기간에도 등교, 기능훈련 강행’, ‘수업시간에 기능반실에서 기능훈련’, ‘주말, 늦은 밤까지 장시간 고단한 훈련’, ‘동일한 과제를 매일, 매주, 3년 동안 반복적인 기계적 행위(대회 과제)로 청소년 전면적 발달 지체’, ‘폐쇄적인 소집단이 가지는 위계적 폭력구조’,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불법도 용인되는 전근대적인 문화’ 등이다. 그런 상황을 교육부 중등직업교육정책과와 경북교육청 창의인재과는 합숙 훈련 사실이 확인되어도 행정 지도하지 않았다. 우리는 교육부의 포괄적 등교 중단 지침에도 훈련을 강행한 학교들을 개별 학교의 문제로 치부한 교육부와 경북교육청의 인식이 오늘의 사태를 키운 장본인으로 보고 있다. 직업계고등학교 기능대회 준비과정에 교육이란 없다. 비교육을 넘어 반교육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번 정부의 발표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금메달 상금을 1,2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조금 낮추고, 학생부와 일반부 분리, 정규수업 후 저녁 10시까지 기능훈련, 기능반은 전공심화동아리로 운영하고, 방학 때 대회를 운영하며, 단기해외기술연수로 보상하고 전국대회 참가 학생을 늘리겠다는 내용이다. 현재 교육부 지침으로 내려간 내용을 그대로 대책이라고 발표하는 무책임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태도에 허탈함을 넘어 분노한다.

우리 요구와 기대를 저버리고 메달 경쟁 기능만 남은 기능대회에 직업계고등학교 학생들을 계속 내몰겠다는 대책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의 기능대회 출전 선수의 85%가량이 직업계고등학교 학생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부와 일반부를 분리는 불필요한 경쟁완화가 아니라 ‘분리 경쟁’일 뿐이다.

두 학생이 죽음으로 보여준 아픈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죽음의 사슬을 끝내지 않고 미래로 미루고 있다. “기능반을 정규 ‘전공심화동아리’로 구성‧운영”,“기능반 학생의 학습권과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기준을 마련하여” 등은 현재 교육부 지침이다. 기능반을 ‘전공심화동아리’라 변경해 부른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그동안 취업이라는 유인을 통해 학생들에게 기능반 활동을 독려하였다. 하지만 바늘구멍 통과하기와 같은 대기업 입사가 기능반 학생들 앞에 놓인 상황이다. ‘자율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한 기능반 활동’은 현실 앞에서 무력화된 지는 오래전 일이다. 기업의 참여를 보장하자고 한 것은 수십 년째 같은 이야기 반복이다. 이런 직업계고의 취업 경쟁교육은 기능반 구성원들의 폭력이 외부로 노출되지 않고 억압하는 환경을 낳았다. 불법도 용인되고 눈 감는 일이 일어났다.

기능반 학생들의 학습권(수업 참여)과 건강권을 위한 보호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수업 참여를 보장할 구체적인 기준은 미루어졌다. 현재도 수업 참여는 학생의 의무다. 그런데도 기능반 운영과 기능대회 준비 앞에서 학습권과 수업 참여는 간단히 무너졌다. 기본을 지키지 않고 온갖 관행이 지배하는 현실, 무기력한 현실임에도 실효성 없던 정책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학생의 건강권을 고려하여 밤 10시 이후 훈련금지라고 쓰고 학생과 학부모가 희망하고 학교운영위원회가 승인하면 야간 및 휴일 훈련도 가능하다는 예외를 두었다. 코로나19 정국에서도 학생과 학부모 동의서로 합숙훈련을 시키는 판박이가 될 것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훈련시간의 원칙적 제한’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기능반 학생 학습권(수업 참여)과 건강권(밤 10시까지 활동 보장)도 수업 참여를 보장할 어떠한 기준도 없이 대책이라고 발표하여도 달라진 것이 없다. 즉 그동안 실효성 없었던 교육부 공문과 같은 ‘알맹이 없는 정책’이다.

과제출제를 문제은행 방식으로 전환하면 과도한 경쟁구도를 완화한다는 대책에서는 할 말을 잃는다. 도대체 기술을 테스트하는 곳에서 왜 예상문제를 미리 주고 그것을 훈련하게 하는 것인가? 우리의 암기식 입시제도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다. 기술력을 위한 기초지식과 기술 적용, 응용력을 충분히 공부한 학생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대회로 구성해야 직업계고 학교 수업이 정상화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지난 교육부의 허울뿐인 발표는 특혜와 차별 그리고 메달 경쟁을 부추기는 기능반이라는 폐단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두고 잔가지를 손보는 데 그치고 있다. 지방대회 2월, 전국대회 8월에 치른다고 기능반 학생 구성원이 달라지지 않는다. 고1~3까지 소수집단이 형성한 폐쇄적 환경을 그대로 존속하는 잔인한 현실은 변함이 없다.

기관평가로 성과주의에 빠지게 한 문제, 실적 경쟁을 부추기는 문제, 메달에 따른 부가적 혜택이 삐뚤어진 교육환경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누차 기능대회 개선을 위한 선결 과제로 제시하였다. 이는 비교육적일 뿐만 아니라 반교육적인 행태까지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눈앞에 이익으로 공동체 공동의 선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충격적인 모습은 코로나19 사태로 등교했던 사례, 심지어 2차 대유행이 걱정되던 5월 14일에도 다수 학교에서 등교한 사실이 있다. 이 와중에도 ‘기능훈련 동의서’를 문제의식 없이 작성한 교육공동체들의 현실을 직시하였다. 아직도 기능대회 입상 성적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려는 학교의 민낯을 지금도 보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의 기능대회 개선안은 현장의 변화를 이끌 어떠한 자극도 주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 발표 이후 전교조와 공대위, 정의당에서 공식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성명의 내용에 대해서 교육부와 고용노동부에 기자들이 끈질기게 질의를 하는 과정에서 교육부 관계자가 이런 말을 했다.

기능반이 비공식 특별반으로 운영하는 학교도 있어 공식화하자는 차원이며, 수업권 보장은 지침 수준이기 때문에 이후 시도교육청, 한국산업인력공단(실제 기능대회 집행 기관)과 함께 모니터링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도 교육청이 (학교별) 운영계획서를 점검해 학습권 침해를 미리 방지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강력한 제제를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이 정도이면 ‘교육부가 왜 존재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유체 일탈 화법이다. 우리는 지침을 내렸다. 관리 책임은 외주화하겠다. 학교별 운영계획서는 학교가 작성하니 그것에 맞게 운영하지 않으면 학교를 처벌하겠다. 이것이 현 교육부의 계획이다.

현장에서 바라본 전국기능경기대회의 속살

전북에서 코로나 위기 상황으로 다른 해에 비해 축소된 제55회 전국기능경기대회가 시작되었다. 무려 3년이나 되는 긴 시간을 이 무대만 바라보고 고단한 기능훈련과정을 묵묵히 견디어낸 학생들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한편에 이를 두고‘기술로 꽃피우는 길’,‘우수 숙련기능인 발굴’, ‘숙련 기능인 축제’ 등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이런 수사적 갈채에 직업계고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나는 왜 불편할까?

기능대회는 노동현장에서 직업적 단련으로 얻어지는 숙련된 기술을 평가하는 무대이다. 우리나라의 기능대회는 세계무대에서 후발 산업국가로서 위상을 높이기 위해 선수를 발굴하는 데 주요 목적이 있다. 국제기능대회 성과에 매몰된 대회 운영은 55년에 전국대회 개최 역사와 함께하였다. 노동부의 성과주의는 세 가지 면에서 국가경제력을 한 단계 높은 도약하는 데 한계를 낳았다.

첫째, 낮은 수준의 기능은 산업화 초기에 통용되던 국가경제력이다. 후발 산업국가에서 전략적으로 중화학공업 발달을 이끌고자 기능인력 육성에 집중하였다. 산업고도화 시기에 접어든 기업이 과거의 전략을 채택하는 것은 기업활동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기능대회는 세계라는 드넓은 무대에서 ‘기술한국’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 아니다. ‘기술로 꽃피우는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기능대회 출전 선수 대부분이 직업계고등학교 학생이다. 2019년 지방대회의 경우 참가인원 5,758명, 실 참가자 4,688명 중에서 직업계고등학교 학생은 4,489명 95.7%(2019 지방기능경기위원결과보고자료집 p.35)라는 비정상적 결과로 나타난다. 전국대회는 출전선수의 75~80%가 직업고등학교 구성원이다. 기능반에 속한 학생들은 3년 동안 입상을 위해 대회 과제를 연습한다. 메달을 목표로 하다 보니 비현실적인 기능을 몸에 익힌다. 산업현장에서 활용되지 못하는 대회 과제이기에 산업체에서 기능대회를 외면한다. ‘우수 숙련기능인 발굴’은 허구이다.

셋째, 축제라고 하기에는 결과에 따라 취업 분배가 치열하다. 한동안 관심 밖에 있다가 2007년부터 몇몇 대기업에서 관심이 있다고 하나, 입시교육 외벽에서 형성한 또 다른 경쟁의 장이다. 기능대회 참여 학생의 기능 격차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입상자와 그렇지 못한 학생 간의 결과에 따른 차별은 너무 크다. 기업은 일부 직종에서 선발된 인력만 채용하고 있다. 소수만이 누리는 영광이다. 세계기능대회에 출전한 유럽국가의 선수들과 자유분방함과 경직된 우리 선수들의 모습이 너무 비교된다. 이처럼 세계대회 입상 목적으로 소수 직종에 주는 취업 혜택은 기능대회는 결코 ‘축제장’이 아니다. 그저 참여 동기를 제공하기 위한 미끼일 뿐이지 소수에게 주는 취업혜택은 전체 학생의 교육의 질을 높이는 교육 정상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 빨리, 더 정확하게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서 ‘안전’을 위한 작업과정을 줄여야 했던 기능 훈련의 문제는 고 황준혁(2007.02.03.) 학생이 드러내 주었다. 또한, 기능중심의 반교육적 학교운영의 문제는 고 이준서(2020.04.08.) 학생의 사망원인 조사 결과로 확인되었다. 두 학생이 희생된 주요 원인이 성과 중심주의에 매몰된 기능대회 준비과정에 발생하였다. 직업계고등학교에 진학하여 기능반이 학생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정말 자유로운 선택이었는가? 직업계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받으면 누구에게나 진로가 보장되는 정책이 먼저다. 그런 정책이 공고한 상태에서 개인의 적성과 희망이라는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 제한된 선택지, 구세대가 만든 가치 속에 그들을 밀어 넣고 있다. 그래서 기능대회 개최 소식을 접한 나는 교사로서 슬프다.

비교육적 문화를 넘어 반교육적 학교문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워 학생을 죽음의 길로 내모는 학교가 정상적인 모습인가. ‘침묵의 자살’은 닫힌 세상에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그 고통을 외치는 것이다. 한 생명이 무엇으로 죽음에 내몰리게 되었는지 성찰해야 한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말이다.

7월의 학교는 기말고사 출제모드로 전환 중이다. 6년 차 교사의 전화 통화를 들은 나는 난감한 상황에 부닥쳤다. 전화통화 내용은 이랬다.

부장님 기능대회 때문에 바쁘시죠. 부장님이 가르치신 부분 시험문제를 제가 대신 냈어요. 메시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 중으로 시험문제 검토해주시겠어요?

전화통화를 듣고 있는 나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우리 주변에는 능력 있고 똑똑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조직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조직의 규칙이나 문화가 잘못 설계되는 경우가 대다수 있다. 멀쩡한 사람이 학교에 들어오면 이렇게 이상해진다. 직업계고등학교 문화는 정상을 비정상으로 만드는 척박한 환경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전교조는 직업계고등학교 기능반 운영 실태조사를 했다. 특히, 2차 의견조사에서는 기능반 제도와 관련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교사 10명 중 9명이 현재의 기능대회 체계에 대한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기능대회 출전을 목표로 하는 기능반 활동은 비교육적 활동이므로 교육적 활동으로 개선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반교육적 학교문화를 양성하는 기능반 폐지를 적극 지지하는 강한 목소리를 폭발적으로 뿜어낸 것이다.

많은 교사는 학교가 기능반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기능반 담당 교사가 나를 대신해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한 감정이 뒤섞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침묵하는 것이 다수이다.

이 정부는 ‘사람이 먼저다’라고 입으로 떠들어 대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저들의 교육부는 인지 부조화를 보인다. 정작 우리 학생이 멸시당하고 죽어 나가는데 말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직업계고등학교 학생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행태를 보았다. 기능반 중심, 취업이 중심된 학교는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거추장스러운 행정으로 여기고 있다. 권력이 아니라 권위는 가르쳐야 할 가치이다. 교육활동의 진정한 가치는 학교는 학생들이 배워야 할 지점을 제대로 익히도록 하는 데 있다.

비교육적 행태를 넘어 반교육적 모습으로 보이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무엇을 배울까? 우리 사회가 나서서 자정능력을 상실한 학교의 문제를 제대로 톺아주기 기대한다.

저도 기능반 출신입니다.   윤영균(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조합원)   1986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요. 그땐 기능반이 따로 전공과목만 공부했습니다. 반복. 반복 또 반복. 선배들에게 매주 매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선배가 되었을 때 후배를 똑같이 때렸고요.   그 주를 결산하는 회의를 하고 지적받은 잘못에 대한 방망이 대수를 정해주면 엎드려뻗쳐서 그 매를 다 맞아야 했습니다. 인문 과목 책은 기능반 안에서는 꺼내 놓지도 못했죠. 학교에 제일 일찍 와야 했고, 학교에서 제일 늦게 나왔습니다.   필요한 선수T/O에 배수를 뽑아 3학년 때 정해지는 교내출전선수 명단에서 빠지면.. 잉여.. 스페어가 되죠. 1.2학년 때 그 많은 매와 시간을 드려 공부한 전공은 풍선이 터지듯 사라져 버리고 더 이상의 기능반 활동은 의미 없이 그저 난 기능반 출신이라는 기억만 남아 있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그러네요. 그렇게 열심히 갈고 닦은 기능은? 토목측량인데.   학교가 소개해준 취업 현장은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노가다 잡부였습니다.똑같은 일은 했는데. 당시 아저씨들은 출·퇴근하고 일당 1만 원..   나는 숙식을 하고 월 10만 원인가 받은 기억만 있습니다. 잠자리는 공사장 골조만 한 건물에 합판으로 평상을 만들어 한겨울에 이불 한 채 주고 난방은 난로 하나. 고3 우리끼리 불침번 정해 난로 지킴이하고..   당시 어린 나는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선배가 시키면 아니요. 왜요? 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길들여졌고. 학교는 단 1분이라도 근로기준법. 노동자의 권리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런 교육을 받은 어린 고3이 어떤 권리의식이 있었을까요?   매와 명령으로 길들였고 후배를 매와 명령으로 길들인 어린 청소년이 어떤 자존감이 있었을까요? 아마 당시 선생님들도 노동과 노동자의 권리는 생각조차 안 했고 또 못했을 것입니다.   학교에서 우리는 그저 실적 그래프의 숫자에 불과했습니다.

인간해방 교육으로

취업, 진학…. 무수하게 많은 교육 외적 가치들이 학교를 지배한 현실이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침묵의 자살’은 닫힌 세상에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그 고통을 외치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는 이준서 학생의 극단적 선택의 진상으로 제대로 알려 하지 않고, 변명하기에 급급하다. 이제는 기능담당 교사 한 명을 처벌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기능대회가 아무 일 없는 듯이 치러졌다. 입상성적을 언론에 자랑하는 학교들이 다수 보인다. 이런 현실을 봐야 하는 직업계고등학교 교사로서 나는 참담할 뿐이다.

소수 정예를 선발하고 이들의 성적을 통해 학교의 명성을 드높이고 차별화하려는 교육은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학교가 다수 학생을 소외시킬 뿐만 아니라 수혜 당사자에게도 고통과 차별을 감내하게 만든다. 직업계고등학교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내몰렸는지 전 사회적 차원에서 심도 깊이 논의를 시작할 단계가 되었다.

직업계고등학교는 제대된 교육, 인간해방을 위한 교육으로 변화해야 한다. 학교 경쟁교육 밑바탕에는 우리 사회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실업이 문제가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위한 고용은 경쟁적 구조가 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구별되면서 누구나 정규직을 꿈을 꾼다. 그러나 현실은 비정규직이 만연한 사회다. 또한, 같은 일을 하면서도 대기업의 소속인가 아니냐 여부가 2배의 임금 차이가 나는 구조이다. 이런 우리 사회에서 더 좋은 고용을 추구하는 것은 생존경쟁과 다름없다. 생존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에게 교육이 경쟁적 목적으로 활용되거나, 선망하는 직업을 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교육을 바로 세우자고 하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사회를 교육으로 바꿔보려는 우리들의 시도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되고 있다는 전망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

전국기능경기대회 조기 폐막 소식이 전해온다.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현실은 우울하다. 창 넘어 들려오는 빗소리를 들으며 진한 커피 한잔을 음미하고 있다. 나는 오늘 학교에 왔다. 내일도 학교에 갈 것이다. 비판적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서, 인간 행방을 위한 교육이 이 땅에 심어지기를 기대하면서 희생당한 학생들의 넋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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