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희 l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학부모회 사무처장
과천 철거 피해자 방승아, 김이옥 씨는 횟수로 벌써 16년째 거대 재벌 삼성에 맞서 삼성 본관 앞에 봉고 차를 세워 두고 투쟁을 하고 있다.
삼성재벌은 이들에게 어떤 피해를 입혔는지, 왜 16년이라는 세월을 길에서 투쟁하고 있는지 방승아 과천 철거민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
16년이라는 긴 세월을 투쟁하고 있다. 투쟁하게 된 이유는 ?
“과천 3단지에서 작은 옷 가게를 했었는데 단지 재건축이 결정되고 삼성이 시공하는 과정에서 전혀 보상없이 철거가 이뤄져서 그때부터 이렇게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2004년 10월 29일 재건축 사업 승인이 나고 삼성 물산이 과천 3단지 3150세대 157개에 달하는 점포를 철거할 때가 2006년 11월7일 한겨울로 알고 있다. 그때 당시 삼성 측에서는 아무런 이주 대책도 없이 막가파식의 개발을 진행했다고 언론에서 봤는데 실제는 어땠는지 ?
“삼성 건설 간부들이 3~5m떨어진 곳에서 진두지휘하고 용역이 300명이 와서 157개 점포를 마구잡이로 부쉈다. 생지옥도 그런 생지옥이 없었다. 그때 당시 17명 남은 철거 피해자들이 상가 하나를 점거하고 시위하고 있었는데 집기류까지 모두 빼앗기고 보증금, 시설비, 권리금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쫓겨났다. 그때 저는 용역들을 막다가 용역 한 사람이 저를 들어 바닥으로 내팽개쳐서 끝내 정신을 잃고 앰블런스에 실려가 전치 2주 진단을 받았다. 성적인 욕설도 서슴지 않는 용역들은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린다.”
재건축 사업 진행 당시 장사를 못하게 된 영업 손실 보상 금액으로 300억 정도의 예산이 책정되어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 이 비용에 대해서 알고 있었는지 ?
“원래는 몰랐는데 조합원들한테 안내하는 책자에 보니까 영업 보상비로 ‘300억을 책정한다’라고 쓰여 있었다. 삼성물산은 재건축 전에 각 점포들을 감정 평가를 통해서 300억이라는 예산을 책정을 해놓고도 우리를 이사비 한 푼 안주고 길바닥으로 내몬 것이다. 그때 당시의 분노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재건축 이후 삼성 물산은 과천 재개발 이익으로 3년만에 1조원이라는 수입을 냈고 성과금 잔치도 했다고 알고 있다. 이 애기를 들었을 때 심정은 어땠는지 ?
“그때 당시 삼성은 과천 3단지, 11단지, 국립 과학관을 함께 단독으로 시공하면서 1조원이라는 수입을 냈다. 그렇게 큰 수입을 눈앞에 두고도 장사하던 영세 상가 세입자들을 한겨울에 맨몸으로 강제적으로 쫓아낸 것이다. 너무나 억울하고 분통했다.”
과천 철거민 대책 위원회는 언제 결성이 되었으며 어떤 활동들을 해 왔는지
“재건축 시 이사비라도 달라고 사정했지만 삼성 측은 단호히 거절했고 이에 상가 입주민 몇몇이 모여 “이주 대책을 세우고 시공을 해야지 어떻게 그냥 나가라고 하느냐…” 고 꽹과리 치면서 조합장, 과천 시장에게 알리는 수준의 시위를 시작했다.
근데 이렇게 알렸던 일로 명도 소송을 당했다. 무조건 나가라는 소송이었다.
2005년 6월 명도 소송 때문에 법원에 갔는데 거기서 전철연(전국 철거민 대책위 연합)이라는 철거민 단체를 만났다. 이때 아무런 보상 없이 그냥 쫓겨나면 안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됐고 연대하는 법도 배웠다. 전철연을 만나면서 100여명의 상가 세입자들이 참여하는 과천 철거민 대책 위원회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100 명이나 됐던 과천 철거민 위원회 회원이 현재 세 명만 남았는데 그 이유는 ?
“철거 피해자 모임인 전철연에 우리가 가입하자마자 갑자기 조합측에서 철거 피해자 한 명 한 명에게 연락이 왔다. 1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전철연에 가입한 것이 겁나서였는지 1대1 방식으로 합의를 추진한 것이다. 순식간에 투쟁으로 끝까지 함께 가자고 했던 사람들이 다 빠지고 17명만 남았다. 이때부터 사실상 본격적인 투쟁과 시위가 시작된 것이다.
과천 시청과 재건축 현장에서 시위하다가 마지막 선택으로 재건축 현장의 상점 하나를 점거하고 3개월을 먹고 자면서 죽기 살기로 시위를 했다.
근데 이 17명도 삼성이 한 명 한 명 몰래 합의를 해서 결국엔 3명만 남게 됐다. 여기 삼성 본관 앞으로 시위하려 2009년 12월 29일 왔었다. 올 때는 4명이었는데 그 중 한 명도 삼성과 개인적인 합의를 하고 결국 3명만 남게 됐다.”
한 명 한 명 삼성이 개인적 합의를 해서 결국 세 분 남았을 때 심정은 어떠셨는지 ?
“형제보다 더 친하게 같이 뭉쳐서 투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삼성의 고소·고발 죄를 우리에게 다 떠넘기고 삼성하고 개인적 합의를 하고 갔다. 배신감에 정신적 충격이 와서 제정신 차리기가 힘들었고 무기력증까지 왔었다.”
16년은 꽤나 긴 시간이다. 삼성은 그 동안 합의에 대한 의사를 전혀 표현하지 않았는지 ?
“과천 시청 건축과 담당자와 삼성물산 도시재생팀 담당자가 ‘얼마면 되냐? 추석 쇠고 좋은 소식 주겠다’ 등 진정성 있는 사과는 없이 보상금 액수로만 해결하려 했다.
2013년에는 과천시청 건축과 담당자하고 과천시장이 주선해서 삼성물산과 협상이 이뤄졌고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았었는데 삼성물산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며 협상을 깨버렸다.
더구나 삼성 측에서 ‘얼마면 되냐’며 돈으로 해결하려 하고서는 외부에는 철거민들이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해서 합의를 못하고 있다고 애기하며 우리를 오히려 모욕했다.“
삼성 측에서 고소한 부분에 대한 재판 과정 중에 삼성은 도덕 경영을 해야 해서 합의할 수 없다는 애기를 했다고 들었는데 이 애기는 어떤 말인지 ?
“재판관이 삼성 측 증인에게 ‘정말 보증금도 안 줬냐?’, ‘저 분들 문제 해결해 주면 안되겠느냐’ 라고 애기 했는데 삼성 측은 ‘본인들은 도덕경영 준법 경영을 하고 있고 법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어 해결할 것이 없다’ 라고 대답했다. ‘법대로 해라’ 라는 식이었다.
보상 책임 주체는 실제로는 시공사인 삼성이었으나, 형식적으로는 조합이라는 점을 내세워 삼성은 보상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시설비와 권리금을 받는데 전혀 결격 사유가 없음에도 세 분만 합의를 못 받고 남겨진 이유가 있는지?
“과천 시청에서도 ‘철거민들이 보증금 받는데 전혀 결격 사유가 없다’고 까지 애기했다. 결국 우리는 끝까지 투쟁하고 대항했다는 이유로 합의를 못 받은 것이다. 한마디로 삼성에 찍힌 것이다.
그때 당시 조합장이 우리한테 직접 “너는 절대 합의금 주지 않는다. 이주대책 없다. 투쟁이나 해라”라고 했고 삼성 총무과에서도 “3년을 못 버틸 줄 알았다. 본보기로 남겨놓았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삼성에 대응하고 강하게 투쟁하면 고통을 당한다는 본보기로 남겨 둔다’ 라는 뜻이다.“
삼성 측에서 시위 중 폭행 및 감금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이건희 회장이 이명박 정권 때 동계 올림픽 핑계로 특별 사면을 받고 사회적 책임을 내세우며 도덕 경영하겠다고 삼성 본사에 출퇴근 경영을 했었다. 그때 당시 우리는 사실 이건희가 출근하는 것도 몰랐다. 피켓 들고 시위하러 삼성 앞으로 갔는데 삼성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저, 김이옥, 방준아 세 사람을 납치하고 감금, 협박, 목 조르기 등 온갖 언어적 물리적 폭행을 가했다가 이건희 회장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풀어줬다. 이건희가 퇴근할 때도 비명조차 못 지르게 개 끌듯 끌고 가서 벽에 고착시키고 6~7명이 세 명을 꼼짝도 못하게 막고 이건희가 시야에서 사라져야 놔줬다. 이건희가 뇌출혈로 쓰러질 때까지 일주일에 3번, 3년을 그 폭행과 수난을 당했었다.
이건희 취임 25주년 축하 행사가 호암 아트홀에서 있었을 때가 가장 심하게 폭행을 당했던 때다.
일인 시위하려고 갔던 네 사람을 (김이옥, 방준아, 방승아, 삼성일반 노조 위원장 김성환)삼성 에스원 여러 명이 인적 없는 장소로 끌고 가서 가죽 장갑 낀 손으로 마치 기절놀이 하듯 목을 졸랐다가 풀어주기를 반복했고 비명을 못 지르게 입을 틀어막고 온갖 욕설을 해댔다. 바닥에 눕히고 발로 눌러서 꼼짝을 못하게 했다. 그때 당시 총무 분은 전치 3주 진단을 받았고 정신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 현재는 시골에서 하루 하루 버텨내며 살고 있다.“
삼성 측에서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이유인지 ?
“호암 아트홀 취임 축하 행사 당일 폭행을 심하게 당하고 경찰에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삼성 측은 그런 일이 전혀 없다며 도리어 우리를 명예훼손 로 고소했고 인허가 개발 과정과 강제 철거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도 사람들에게 애기했는데 이것도 허위 사실이라고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도로교통법 위반, 업무 방해, 명예 훼손 등 삼성 측의 지속적인 고소·고발로 벌금이 300만원씩 여러 차례 나왔었다.
그때 당시 돈을 낼 형편이 안돼서 강제 노역을 했다. 300-400명 규모의 양로원, 사회복지관에 가서 범죄자 취급을 당하며 하루 일당으로 5만원씩 계산해서 3개월을 설거지, 화장실 청소 등으로 벌금을 대신했다. 정말 고되고 억울하고 힘겨운 시간이었다.“
삼성 측에 어떤 합의를 바라고 있는지 ?
“진정성 있는 사과, 초기 투자 금액, 피해 배상, 16년 정신적 피해보상, 고소·고발 취하 및 ‘추후 민형사상 고소 고발은 안 할 것이다’라는 각서, 삼성은 지금도 우리가 집회하고 있는 것을 계속 녹취하고 있다. 언제 또 고소·고발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투쟁하는 데 어려운 점이 있다면 ?
“지나버린 세월들과 삼성 때문에 고통당한 순간들을 생각하면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들어서 우울증이 온다. 그럴 때면 투쟁의지가 약해져서 힘들다. 무엇보다 “16년이란 긴 세월을 어떻게 투쟁하고 있냐?”,”뭔가 결격사유가 있어서 합의를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라는 시선을 받을 때가 가장 힘들다.“
앞으로도 계속 투쟁을 이어가실 건지 ?
“우리는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이 투쟁을 멈출래야 멈출 수가 없다. 이거라도 해야 그나마 숨을 쉬고 살수가 있다. 살아 나가려면 승리하는 그 날까지 끝까지 투쟁할 수밖에 없다.
현재 월요일부터 금요일 7시에서 4시까지 선전전으로 방송으로 투쟁하고 있고 앞으로도 문제가 해결될 때가지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한편 삼성 물산은 ”과천 철거 보상의 주체는 조합측으로 이 문제는 조합측과 해결해야 할 문제다. 조합과 해결해야 할 문제를 우리 측에서 보상할 경우 법적으로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