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79호 7-8 휴전협정에 나타난 미국의 실체

백창욱 ㅣ 목사

어제는 1953년 7월 27일 정전회담 체결 72년 되는 날이다. 당신은 정전회담이 어떤 내용으로 진행했고, 그 과정이 어떠했는지 아는가? 거의 대부분 결과만 알지, 과정과 내용은 잘 모를 것이다. 한번 들여다 보자.

정전회담은 51년 7월 10일에 시작했다. 그런데 무려 2년이 지나서야 양측이 합의를 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정전회담의 쟁점은 무엇이었을까? 두 질문이 서로 긴밀히 얽혀 있다.

첫 번째 쟁점은 군사분계선 획정문제였다. 공산측은 38선을 주장했고, 미국측은 현재 전선을 주장했다.
공산측 대표인 남일장군의 말이다. “38선은 이전부터 존재했다. 군사행동의 시작도 이 선에서 비롯하였다. 따라서 군사정전의 합의도 38선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라고. 그러나 연합군 조이는 “귀측은 전쟁이 38선에서 시작했으므로 38선에서 종결되야 한다고 말하지만, 귀측의 논리는 옳지 않다. 우리는 38선 의제를 단호히 반대한다.”고 응수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남일이 38선을 군사경계선으로 획정할 것을 재차 주장하며 준비한 발표문을 읽었다. 그 후 쌍방의 대표는 두 시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조이는 침묵으로 거부의사를 나타낸 것이다. 결국 군사분계선은 지리한 공방 끝에 공산측이 양보하여 휴전선으로 결정났다.

두 번째 쟁점은 외국군 철수 문제였다.
남일은 말했다. “귀측의 대표는 한반도에서의 외국군 철수를 왜 동의하지 않는지, 정전 후에도 무엇 때문에 한반도에 남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귀측이 아무런 근거없이 외국군 철수문제를 회피한다는 사실이 매우 유감스럽다.”고.

그리고 남일은 준비한 연설문을 읽었다. 그 중 일부다. “전쟁은 소풍놀이가 아니며, 군대 역시 관광객은 아니다. 포격이 멈추고 휴전이 성립되더라도 군대가 주둔한다면, 그 목적이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이번 회담의 목적은 전쟁의 종결과 한반도 평화의 부활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외국군 철수문제를 주요 현안으로 삼을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 정말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다. 그러나 미국의 태도는 완강했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상대의 주장을 거부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일도 참 힘들텐데 미국은 그렇게 한다.

답답했던 모택동은 스탈린에게 전보 보고를 한다.
“필리포프 동지! 외국군 철수문제에 대해 적이 양보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현시점에서 이 문제를 포기할 생각이다.”
스탈린의 답신이다. “모택동 동지. 우리 역시 귀하의 의견대로 외국군 철수를 의제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미국의 불성실한 자세를 드러내는 데 충분했다. 의제에서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는 귀하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한편, 김일성은 교섭이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그 사이 적이 북한에 막대한 물질적 손실을 주고 있다고 스탈린에게 호소하며, 대공방어를 강화하여 교섭의 진행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미국은 회담 중에도 끊임없이 북한 영토를 폭격하면서 교섭을 지연시키므로 미국의 폭격을 제어하면 미국이 별 수 없이 회담장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말이다. 누가 정전회담에 진심이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공산측은 전쟁을 끝내야 하므로 여기에 또 다른 의제가 정전회담을 지체시키면 안되겠기에 부득이 외국군 철수 문제 안건을 철회한다. 공산측이 두 번째 쟁점도 양보한 것이다.

마지막 쟁점은 포로교환 문제였다.
공산측은 무조건 송환을 주장했고, 미국은 포로들이 돌아갈 나라를 선택하게 하자고 했다.
얼핏 보면, 미국이 포로들 인권에 관심이 지대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협정이 지연되는 동안 엄청난 폭격으로 수많은 민간인을 살해했다. 또 수용소에서는 포로들이 자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극도의 강제전향공작이 벌어지고 있었다. 여기에는 남한의 악명높은 서북청년단이나 장제스의 게슈타포들이 침투해서 포로들을 폭력, 살해 등 온갖 수단으로 포획했다.
견디다 못한 포로들은 52년 5월, 폭동을 일으켜서 수용소 소장 도드를 납치, 인질로 삼았다. 폭동진상조사를 위해 파견된 콜슨 준장은 포로들과 합의하고 도드 소장을 구출한다. 합의 내용은 수많은 포로들이 송환여부 선택과정에서 상해나 살해를 당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대령으로 강등됐다. 미국이 원하지 않는 합의를 한 까닭이었다.

그렇다면 미국의 의도는 무엇인가? 미국과 이승만 정권은 휴전협상을 방해해서 전쟁을 질질 끌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전쟁을 지연시키기 위해 공산측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회담 교착 상태가 지속되면서 미국인들이 공산주의의 위협을 실감하게 되고 높은 국방비를 수용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평화를 피하려고 가능한 모든 것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전회담이 오래 간 이유다. 결국 세 가지 쟁점 모두 미국의 억지 제안이 통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거의 공산권의 양보로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에 서명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그토록 천신만고 끝에 맺은 협정을 곧바로 위반한다. 휴전협정의 13(d)조항(ㄹ.한국경외로부터 증원하는 작전비행기, 장갑차량, 무기 및 탄약을 들여오는 것을 정지한다.)을 일방적으로 폐기한 것이다.

이상이 미국이 정전회담 때 보여준 협상태도이다. 나는 협상에 대한 미국의 이런 기만적인 태도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그들이 보여준 행동이 그랬다. 협상으로 평화를 이룰 것처럼 잔뜩 포장하고 선전하고 애를 먹이며 합의를 하지만 얼마 안 가 그 협상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태도를 반복해 왔다. 이것이 미국의 실체다. 이런 미국을 상대로 우리는 정전회담을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시대의 과제를 안고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우선 미국에게 매달리지 않기. 미국은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더 고압적으로 나온다. 지금 트럼프 정부를 보라. 미국의 호의나 선처를 기대하지 말 것. 미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다. 한미동맹 운운하면서 우리 권리를 포기하지 말라. 그것은 자살행위다.

그리고 우리만의 확실한 대안을 확보하는 것. 결국 이것은 자주 주권 독립의 영역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은 진정 나라가 된다. 자주적 평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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