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76호 4-5 이제 그만! 호구 노릇을 끝내자!

백창욱 ㅣ 목사

김성해 지음, 『벌거벗은 한미동맹』 부제-미국과 헤어질 결심이 필요한 이유, 개마고원.

4월 4일(금) 오전 11시 22분,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했다.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행위에 해당합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 대행이 주문 직전 한 말이다.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했으므로 파면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에서 헌법은 제일 상위 법이다. 여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위헌행위까지도 심판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헌법보다 더 위에 있는 개념이 있다. 무엇인가? 한미동맹이다. 실질적으로 한국 헌법도 한미동맹 아래 있다. 예를 들어 87년 체제가 낳은 헌법도 이제는 시대의 변화에 맞게 개헌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후죽순처럼 나온다. 그러나 한미동맹은 성역이다. 한국에서 한미동맹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신주단지이다. 또한 이번에 우리 모두가 목격했듯이, 헌재가 윤석열 파면을 선고하기까지 미국은 많은 내정간섭을 했다. 이런 행위가 가능한 이유가 한미동맹 때문이다.

그런데 한미동맹의 문제는 한미관계가 수평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거의 수직적 관계이다. 미국은 주로 지시를 하고 한국은 지시를 받는다. 그래서 말은 한미동맹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종속국가에 가깝다. 그 대리인 대표가 민간인은 주한미국 대사이고 군인은 주한미군사령관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 한미연합사령관도 겸한다. 그래서 한국이 진짜 주권국가인가, 자주국가인가, 독립이 됐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반문하게 한다.

이 책의 제목 <벌거벗은 한미동맹>은 유명한 네덜란드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작품,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땄다. 저자는 한미동맹을 대하는 우리 모습이 딱 이 동화같다고 고발한다.

“안데르센이 이 동화를 쓴 때는 아주 옛날이다. 장소도 다르다.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한국과 달리 배경도 왕조시대다. 현재 상황과 전혀 관련성이 없을 것 같은데 안 그렇다. 겹치는 지점이 꽤 많다. 그중 하나는 한미동맹을 대하는 태도다. 옷을 안 입은 것처럼 보이면 질문을 던져야 하는데 안 그랬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한미동맹은 정말 좋기만 할까? 만약 한미동맹이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왜 다른 국가는 안 할까? 엄청난 행운이었다면 한국은 도대체 무슨 복이 있어 미국으로부터 이런 선물을 받았을까? 미국이 한국만 특별하게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아낌없이 나눠 줄 이유가 있을까? 미국은 애초 왜 한국에 개입했을까? 미국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고 한국만 은혜를 입었을까? 불평등한 동맹이었다는 점에서 좀 다른 형태의 식민지는 아니었을까? 동맹이 있어 북한이라는 적을 막아낸 게 아니라, 동맹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전쟁 공포가 계속되는 건 아닐까? 적이 없으면 지속할 수 없는 동맹의 본질로 인해 없는 적이 만들어져왔고,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적이 등장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미국의 힘이 약해지는 상황에서 동맹으로서 한국이 짊어질 책임과 의무는 오히려 더 늘어나지 않을까? 당장, 한국은 앞으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얼마나 늘려야 할까? 소련을 대신해 중국이 들어선 신냉전 국면에서 한국이 다시 최전선에 서는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일까?(30-31쪽)

정말이지 저자의 질문은 한미동맹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뼈 때리는 의문들이다. 질문 하나하나가 너무도 실질적인 것이어서 모두 인용했다. 미국이 획책하는 패권의도에 휘말린 한국의 딱한 처지이며 미국이 계속해서 한국에게 들이미는 청구서들이기도 하다. 불평등하고 불의하기까지 한 동맹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말을 못 꺼내듯이, 한국의 정치인이나 고위관료 누구도 불평등한 한미동맹을 손봐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되레 주야장천 한미동맹 덕분에 잘 살고 있다고 나팔을 분다. 괜히 신주단지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이 책은 이렇게 한미동맹이 한국사회 지배이데올로기가 되기까지 미국이 어떻게 한국을 조정통제해 왔는지, 구체적인 사례들을 열거한다.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 사례들을 일일이 소개하기에는 지면제한이 있지만, 한미동맹의 폐단이 어떤 실정인지 최대한 들여다보자.

“미국은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고 대북 선제공격과 지도부 암살을 목표로 하는 ‘작전계획 5027’ 등을 일방적으로 수립하고, 핵잠수함같은 전술무기를 한반도 주변에서 자유롭게 전개하는 데 있어 한국 정부와 협의할 의무가 없다.”(42쪽)

“전쟁이 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문장렬(전 국방대교수)은 말하기를, 연합사령관은 직속 상관인 미국 인도태평양사령관의 지휘를 받아 한반도에서 전쟁 진입 단계부터 종결까지 책임을 진다. 7명의 한국군 4성 장군 중 6명은 연합사령관의 작전통제 아래로 들어간다. 사실상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한국군의 주도적 통제 없이 치러지게 될 수 있단 얘기다.”(43쪽)

“한미동맹 문제는 심리적 의존상태라고 말하면서 (주한미군) 2개 사단 빠지면 다 죽는다고 국민들이 와들와들 사시나무처럼 떠는 나라에서 무슨 대통령이, 외교부 장관이 미국의 공무원들하고 만나서 대등하게 대화를 할 수 있겠냐 라고 했다.”(노무현 전 대통령, 45쪽)

미국이 한국에서 전횡을 일삼는 근거는 한국전쟁이다. 북한에 점령당할 위기에 처한 한국을 미국이 구해줬다는 설이다. 이 설 때문에 지금까지 75년 동안 미국이 한국을 농단해도 참고 넘어가는 구실이 됐다. 하지만 이 은혜설은 늘 논란거리이다. 저자도 이 점을 말한다.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는 건 상식이다. 그렇지만 북한의 김일성이 왜 그렇게 무모한 공격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미국의 미끼설이 나오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몇 가지 살펴볼 지점 중 하나는, 남한과 달리 북한에서는 소련이 군대를 철수해도 정권이 무너질 가능성이 적었다는 점이다. 남한은 달랐다. 브루스 커밍스 등이 지적한 것처럼, 이승만정부에 대한 민중의 불만은 컸다. 1948년 제주와 여수 순천사건은 전형적인 민중항쟁이다. 미국이 완전히 떠난다면 겨우 수립해놓은 친미 성향의 정권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당시 한반도 상황이 일종의 내전이었다는 것 역시 미국은 잘 알았다. 국민 다수가 사회주의를 원하는 상황에서 내전이 벌어지면 그 결과는 뻔했다. 국제사회의 눈치를 봐야 했던 미국은 그런 상황에서 군대를 철수했다. 그러면서도 수백 명의 군사고문단을 남겨뒀다. 북한을 겨냥한 비밀작전을 목적으로 하는 15개의 정보기관 지부는 물로 당시만 해도 세계 최대 규모의 대사관을 유지했다. 완전한 철수가 아니라 국제사회에 보여주기였다.”(92-93쪽)

보도연맹 사건을 보자. 한국전쟁 시 대표적인 한국 인민학살 사건이다. 이 사건에 미국은 어떻게 개입했을까? 당시 미국이 전시작전권을 지휘했기에 당연한 질문이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학살자는 한국 군인이다. 미군이 직접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다. 혹시 나중에 밝혀지더라도 전쟁범죄 혐의를 벗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신 학살을 승인하고, 무기를 지원하고, 책임을 묻지 않는다. 적어도 20만 명, 많게는 50만 명이 학살됐다.”(115-117쪽)

보도연맹 학살사건은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하고 지금까지 주둔하는 이유가 한국 인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미국이 한국에 개입하는 데 있어서 제국의 지배전략을 어떻게 작동시키는지 보자.

“제국이 직접 통치하는 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손해다. 지배 받는 걸 좋아할 식민지는 없다. 간접통치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제국의 외교와 군사 정도만 장악하고 있으면 된다. 정치는 제국의 아바타에 해당하는 토착엘리트에게 맡기는 게 좋다. 전통, 문화, 언어도 굳이 제국을 따라 할 필요가 없다. 원주민 사회의 주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면 통제받는다는 사실을 잊거나 덜 민감해진다.”(162쪽) 이렇게 딱 들어맞을 수가!

그럼 토착엘리트들은 어떻게 양성하나? 군학복합체다. 군산복합체가 아니다. CIA가 세운 위장단체 아시아재단이 앞장섰다. 1956년 한국학센터를 연다. 1958년에 ‘한국연구도서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서울대의 윤일선, 연세대의 백낙준, 고려대의 유진오, 이화여대의 김활란총장이 이사회 구성원이다. 재단의 후원으로 한국학 시리즈가 나온다. 돈줄은 포드재단이다.

미국유학도 미국의 지배전략이 작동했다.

“미국이 제공해준 원조물자를 팔아서 남은 이익금을 서울대교수의 미국 유학에 사용했다. 1955.1.1-1962.6.20까지 모두 226명의 교수가 혜택을 봤다. 의도적으로 젊은 교수를 뽑았다. 대중과 학생들에 장기간에 걸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과 일본식 교육을 받지 않아 미국을 더 쉽게 배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결정이었다.”(185쪽)

한국의 대표대학들도 한미동맹의 충실한 부역자들인 것이다.

나는 한 두 가지 사례를 열거했지만 실상은 미국의 CIA와 각종 기관들이 총체적으로 움직인 거대한 원조 프로젝트이다.

군학복합체 중에는 깜짝 놀랄만한 내용도 있다. 바로 사상계다. 1955년 8월에 발간하여 1970년 김지하의 시 ‘오적’을 실어서 폐간당한 사상계는 당시 지식인과 대학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 지식인의 등불로까지 불렸던 이 잡지의 배후에도 미국이 있었다. 접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백낙준 연세대총장이다. 미군정과 CIA가 배후인 아시아재단 등과 관련이 깊은 인물이다. 백낙준이 문교부 장관으로 있을 때 설립한 ‘국민사상연구원’에서 일한 사람이 이 잡지의 책임자인 장준하다. 사상계는 1954년부터 아시아재단이 주는 돈으로 운영자금과 용지 비용에 도움을 받았다.

두 번째 접점은 문화자유회의다. 1967년에야 CIA가 뒷돈을 댔다는 게 밝혀졌다. 좌파지식인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차이나쿼터리>, <인카운터>, <파르티잔리뷰> 등을 발행한 곳이다. 번역해서 소개했던 논문의 상당수가 이런 잡지에 투고된 글이었다. 공짜 점심은 아니었지만,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 공모 관계였던 것이다. 공산주의는 ‘절대악’이라는 것과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 진영에 편입되는 것’이 한국의 전략이라고 믿었다.(205-206쪽)

한미동맹의 저변에 미국의 사주를 받는 카르텔이 얼마나 깊고 넓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미국은 심리전의 대가이다. 정보생산유통분야에서 미국은 경쟁자가 없다. 한 예로 미국의 정보기관은 모두 16개나 된다. 잘 알려진 CIA를 포함해서 FBI, 재무부, 육군, 공군, 해군, 국가안보위(NSA), 국방정보위(DIA) 등이다. 이 기관들의 지부가 모두 한국에 있다. 이들이 모두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실무자들이다.

“한국은 미국 심리전의 놀이터다. 한국 정부 곳곳에 미국에 봉사하는 정보원이 있다. ‘청와대 정보원, 외교통상부 정보원, 국회 정보원’ 등으로 표현된다. 활용 정도에 따라 ‘보통 정보원’ ‘접촉 빈도 높은 정보원’ ‘오랜 정보원’ ‘믿을 만한 정보원’으로 분류돼 있다. 최시중(전 방통위원장), 김승호(전 청와대 경제정책 비서관), 반기문(전 유엔사무총장), 한미FTA 협상을 담당했던 김현종과 김종훈, 엄종식(전 통일부 차관) 등이 등장한다.”(250-251쪽)

이렇게 실명으로 미국을 대리하는 검은머리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미국하면 껌뻑 죽는 한국 기독교 신자들, 반공보수주의자들, 자본가와 돈 가진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언론복합체 역시 오래된 충견이다.

미국이 이렇게 유학 보내주고 돈 대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미국숭배자로 만든다는 목표다. “이렇게 분단 기존질서에서 미국 덕을 본 수혜자들은 한미동맹을 보호하기 위해 앞장설 준비가 된 호위무사다.”(279쪽)

실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은 미국의 손바닥 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영희선생은 “삼장법사 손바닥 위에서 노는 손오공”(251쪽)이라고 했다. 이런 나라를 주권국가라고, 자주국가라고, 독립국가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래서 저자는 한국이 미국의 호구(虎口)가 됐다고 말한다. 어떤 호구인지 보자. 전시작전권이다. 한국 자체적으로 방어력이 있다는 평가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불과 1개 사단에 불과한 3만 명을 운용하는 주한미군이 60만 군대를 지휘할 수 있는 것과 관계가 깊다. 패권경쟁을 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데 이만한 자신이 없다. NATO에서 미국의 직접 통제를 받는 대응군 규모는 2022년 2월 기준으로 4만 명밖에 안 된다. 제 정신이 아니라면 자국 군대를 모두 미국에 맡길 이유는 없다.”(268쪽)

이제 결론 대목이다. 저자는 한미동맹을 작별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역시 뼈 때리는 질문을 연속해서 던진다.

“만약 우리가 동맹에 대해, 미국에 대해 알고 있는 게 틀린 거라면? 만약 미국에 대해 우리가 갖는 감정과 태도가 우리 자신이 선택한 게 아니라 외부에서 이식된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한국의 집단정체성이 미국 심리전의 결과물이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만약 한국의 지금 상황이 가두리 양식장의 물고기와 닮았다면 그래도 무조건 동맹을 외칠 수 있을까? 분단 70년이 넘도록 현 상황이 지속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한미동맹은 ‘해결책’이 아니라 오히려 ‘질병’이 아닐까?”(319쪽)

저자는 미국과 작별해야 할 네 가지 이유를 말한다. 첫째, 한미동맹의 민낯이다. 동맹으로 얻는 것도 있지만 기회비용이 그에 못지 않다. 둘째, 미국을 추앙하는 근거가 되는 많은 상식이 ‘우상’이라는 점이다. 셋째, 한미동맹 까닭에 한국은 혹독한 군부독재를 겪었다. 또 ‘반공십자군’으로 길러졌고 냉전 동안 많은 희생을 치렀다. 넷째, 미국의 아바타가 되어 제 운명조차 스스로 건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까닭에 한반도를 찾아왔던 두 번의 봄이 너무도 허무하게 저물어버렸다. 먼저 찾아온 봄은 2000년부터 2007년. 두 번째 봄은 2008년의 봄이다.

두 봄 모두 미국이 동의하지 않았다. 한반도는 다시 익숙한 상황으로 되돌아갔다.

나도 질문을 던지겠다. 언제까지 한미동맹 사슬 아래 종살이를 할 것인가?

그렇다면 한미동맹을 끝장낸 이후 한국이 선택할 길은 무엇일까?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중립화다. 한미동맹을 해체하고 남북이 공동으로 중립화를 선언하면 미국, 중국 등 외부세력이 격렬하게 반대할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를 수 있다고 한다. 유엔을 통해 한 약속이 있고,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이웃국가들 간 역사가 있다.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선 한미동맹 속살의 진실을 아는 것이다. 한미동맹이 흔히 말하는 국익과도 멀고 무엇보다 나라의 정기(精氣)인 자주, 주권, 독립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중립화든 뭐든 한국이 자주, 주권, 독립국가가 된 이후 논의할 문제이다. 이점을 한국 대중이 크게 공감하면 그 뒤 방향은 자연스럽게 합의, 도출, 실행하게 된다. 민중과 민주시민의 도도한 저항으로 윤석열 권력도 끝장내지 않았는가. 우리에게는 새 판을 짤 저력이 얼마든지 있다.

이 책은 2023년 9월에 발간했다. 내가 알기로 한미동맹을 이야기하는 가장 최근의 책이다. 현직교수가 한미동맹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정식으로 다루었다는 점 자체가 귀하고 반갑다. 한국의 최현대사가 한미동맹으로 어떻게 일그러졌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아프지만 값진 역사공부가 될 것이다. 한국인의 필독서로 삼아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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