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87 9-2 누구의 비참함인가

김파란 ㅣ 농민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울화가 치밀어 오른 적 많다.

  • 조국이 느꼈을 비참함을 생각하면…..

무엇이 그리 비참하단 말인가?
그럼 시급 일만원이 안 되는 돈을 받고 편의점 알바로 등록금을 벌다 실패하고 자살을 해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 한국 사회의 참혹함은 비참하지 않은가?

스크린 도어에 끼여 죽고, 콘베아벨트에 몸이 두 동강 나고, 떨어져 죽고, 불에 타 죽는 사람들을 바로 옆에서 보면서도 아무렇치도 않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라고 말하는 사회의 야수성은 공포스럽지 않은가?

조국이 느꼈을 비참함을 생각하는 당신들께 나는 정말이지 물어보고 싶다. 윤석열과 검찰에 의해 멸문지화를 당했다고 ‘반윤석열 선거’로 비례를 쓸어담고 자신의 이름을 단 ‘조국혁신당’ 의 당대표로 있는 조국의 개인적인 사정과 심정에는 그토록 공감하는 당신들이 그런 ‘부모 찬스’의 기회는 커녕 열아홉 교복 대신 안전모를 쓰고 죽음의 일터로 나가는 아이들의 가정이 받아야 되는 고통에는 왜 공감도 비참함도 느끼지 못하는가?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죽을의 일터로 나가는 가정과 아이들은 당신들이 바라보는 이 사회 중상류 출신의 엘리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반면 조국은 이 사회 중상류 출신의 엘리트였다. 조국은 이른바 ‘조국사태’ 이전에는 교수로, 문재인 정권의 관료로 승승장구했다. 해서 이 엘리들 조국의 평탄대로를 가로막고 나락으로 내몬 윤석열에 당신들은 함께 분노하고, 울고, 비참함을 느꼈던 것이다.

일반고등학교, 특수목적고등학교, 특성화고등학교, 자율고등학교는 사실 유형화가 아니고 서열화이다. 비참함을 느끼고 말 할 수 있는 인간과, 아무말도 없이 저렇게 일하다 죽어도 되는 사람을 선별하는 한국 사회의 교육시스템은 이런 권럭의 향방으로만 향하는 선택적 정의와 공감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조국이 말한 “부모 찬스의 기회조차 없는 가정과 자녀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라는 말이 진심이라면, 또 ‘사회권 선진국’을 모토로 내세우는 정당의 대표라면 윤석열이나 한동훈을 향한 개인적 원한을 정치적 목소리로 키울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엘리트 지식인과 관료로 만들어낸 이런 사회에서 절망하는 이들과 더 나아가 열아홉에 죽음의 일터로 내몰리는 아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근본적인 입시, 교육, 노동 개혁에 매진해야 한다. 아니 그런 시늉이라도 내야 한다.

냉전 시대에 갇혀 있는 윤석열이라는 인물이 이 시대의 얼굴로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는 참담한 현실에 조국과 그 지지자들은 어떤 책임도 느끼지 못하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으니 지금 이 순간에도 일터라는 벼랑에서 떨어지는 수 많은 노동자들의 비명은 정치라는 ‘빈 광장’의 구덩이에 묻힐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고학력 지식인이 시간 강사를 하면서 편의점이나 택배 알바를 하면 모든 언론과 진보 지식인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불합리를 얘기하며 사회를 비판한다. 그러나 고졸 노동자들의 긴 노동시간에 대한 저임금, 최저생계도 보장 받을 수 없는 일용직 노동자들에 대한 시선은 어떠한지를 좀 들여다 보라.

이 사회의 참절함과 비참함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노동전선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이전 글

[전선] 187호 9-1“후쿠시마 핵오염수는 ‘괴담’이 아닙니다!” 

다음 글

[전선] 187호 9-3 이상과 현실

댓글을 입력하세요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