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44호 7-2 사회양극화로 분열된 사회 어떻게 할 것인가 ?

강내희 ㅣ 전 중앙대학교 교수

미국의 진보적 경제학자이며, 내가 자주 참고하고 있는 마이클 허드슨에 따르면, 미국 노동자들은 그들의 수입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상환용으로 43%, 사회보장연금과 건강보험 용도로 15%, 학자금 융자상환 용도로 10%, 자동차 구입 및 세금 명목으로 10〜15%를 쓴다고 한다. 이것은 전체 수입의 78〜83%에 해당하는 부분을 금융 비용에 쓴다는 말이다. 금융 비용에 너무 많은 수입을 지출하니 미국인들이 재화나 서비스 구매를 위해 지출할 수 있는 것은 불과 20% 안팎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금융자본은 어마어마한 규모로 팽창한 상태이지만, 산업자본이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다는 말은 이런 사정을 두고 나온 것으로 이해된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일론 머스크처럼 상상을 초월할 만큼 어마어마하게 큰 재산을 가지고 있지만, 미국인 대부분은 어렵게 살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미국의 성인들 가운데는 비상금으로 400달러도 갖지 못한 비율이 40%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사람들이 금융 비용으로 소득 대부분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 빚을 많이 지고 있다는 말이다. 빚은 대차대조표에서 대변 즉 오른쪽에 적어 넣는다. 대변의 맞은편인 왼쪽은 차변이고 여기에는 자산이 적힌다. 돈을 빌린 사람이 있으면 빌려준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은행 채권 소유자들이고 금융자본가다. 이들은 통상 상위 1%로 불리며, 임금 소득의 80% 안팎을 금융 비용으로 지출하는 대다수에게 돈을 빌려주는 자들이다. 허드슨은 개인들의 부채가 늘면 늘수록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되는 것이 오늘날의 경제 현실이라고 말한다.

세계의 자본주의 국가들 대부분이 지금 미국과 비슷한 상황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정확한 통계는 아직 확보하지는 못했지만(우리 학계에도 경제전문가들이 많은데, 왜 주요 통계를 쉽게 확보할 수 없는지 나 같은 경제 비전문가는 이해할 수가 없다), 한국의 사정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부동산, 보험, 연금, 건강보험, 사교육비, 학자금 때문에 압박받는 개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대략 1980년대 초 이후 지금까지 40년 이상 신자유주의적 금융화가 강화된 결과다. 한국은 특히 1996년의 외환위기를 계기로 IMF에 의해 긴축재정을 강요당하며 금융 자유화를 급속하게 진행한 것이 화근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은행 금리가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다 아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조치는 과거에는 은행 문턱을 넘기 어려웠던 개인과 가계가 돈을 쉽게 빌려 부동산 투자, 주식이나 펀드 투자를 하게 만든 조치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금융적 주체’ 즉 돈 버는 데 환장한 인간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적 주체는 빚진 주체이기도 하며, 최근에 ‘영끌’로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한 개미군단 가운데 다수가 주식 가격 하락과 부동산 시장 냉각으로 큰 손해를 보게 된 데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은 ‘큰 손’의 희생물이 된다.

한국 사회는 1990년대에 WTO, OECD에 가입하고, 미국 등과 FTA를 체결하면서 금융 자유화와 세계화의 물결을 끝 모르고 타고 왔다. 최근에는 러-우 전쟁 사태에서 미국 주도의 대러시아 제재에도 참여함으로써 금융자본 주도의 미국형 자본주의 모델을 추종하는 넓은 의미의 ‘서구 블록’의 일원이 되려는 중이다. 한국의 이런 선택은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신자유주의적 금융화는 자본주의가 진행하는 물신주의의 가장 피상적이고 환상적인 형태에 속한다. 상품이 물신주의의 가장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형태라면, 화폐는 더 강력한 형태이고, 이자 낳는 자본, 예컨대 금융자본은 자본의 물신 가운데 가장 환상적인 형태다. 그런 형태의 자본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지배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인 가운데 빚진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는 것도 그 결과다. 그러나 자본주의 가운데서도 가장 환상적인 형태인 금융자본주의의 지배를 받게 되면, 우리는 자본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자본은 죽은 노동, 흡혈귀라는 것이다. 만인에게 죽음을 가져오는 흡혈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사진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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