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호텔노동조합 ㅣ 허지희
검찰청 조사관이 묻는 지난해 6월20일 투쟁을 기억해 내는데는 잠깐 시간이 필요했다.
집회가 있었나요?
그랬다.
세종호텔노동조합(이하 세종노조)은 7년 동안 매주 목요일 집회를 했다. 세종대학교 주명건 이사장이 113억 회계 부정으로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가 슬그머니 세종호텔 회장으로 복귀해 시작한 일들은 노조탄압이었다. 임신한 프론트 노조간부를 타부서인 커피숍 서빙으로 강제 전환배치 시키기도 하고, 파업에 참가한 계약직 조합원을 계약 해지시키기도 했다. 민주노총으로 상급단체를 바꾼 세종노조는 조합원들의 파업과 로비농성 38일 동안 계약직 정규직 전환 단체협약의 이행을 요구했고 투쟁으로 이루어냈다.
파업에서 복귀한 후에도 여전히 상식 밖의 전환배치는 계속되었고 세종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납득할 수 없는 연봉삭감 등 탄압에 대해 집회와 선전전 등 투쟁으로 항의했다. 목요일 세종노조의 집회는 투쟁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서서 미세먼지 속에서도 수 년 동안 매주 쉬지 않고 목요집회를 이어왔다.
복수노조법이 시행되고 새노조가 생긴 후 팀장은 나에게 “팀원들이 모두 같은 배를 타야하니 세종노조를 탈퇴해 새노조에 가입하라”고 회유하기도 하고, “회사를 계속 다니려면 세종노조를 탈퇴해야한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물론 “노조를 선택하라는 팀장의 압력은 불법 아니냐? 노조에 보고하겠다!”는 나의 대답에 더 이상 회유와 협박을 하진 않았지만 늘 말없이 째려보곤 했다.
나는 20년 동안 세종호텔 대표전화를 받는 업무를 해왔으나, 회사는 프론트와 통폐합해 교환실을 없애버렸고 객실을 청소∙관리하는 룸어텐던트로 전환배치 시켰다. 그때부터 강제 전환배치 철회를 요구하며 목요집회에 함께했다.
나만 뿐 아니라 세종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새로운 팀을 만들어 전환배치 하기도 했고, 이런 전환배치에 따르지 않는 전임 위원장을 해고하기도 했다. 전환배치는 업무를 감당할 수 없는 부서로 배치해 스스로 회사를 떠나게 만들거나 해고시킬 수 있는 사측의 정형적인 탄압 수단이다.
회사의 악랄함은 성과연봉제에서 더욱 드러난다. 세종호텔 사측은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친사측 노조 집행부와 직권 합의해 성과연봉제을 전 직원으로 확대해 도입했다.(세종노조의 현장 조합원 여론조사에 따르면 90퍼센트 가까운 직원이 성과연봉제에 반대했다.) 사측은 수 차례에 걸친 구조조정을 통해 수 십 명의 노동자들을 퇴출시켰고 그들의 빈자리는 용역과 단기 계약직, 일용직 등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으로 채워나갔다. 회사 멋대로 최대 30퍼센트까지 임금을 삭감할 수 있는 성과연봉제는 노동자들에게 공포였고 협박이었다.
실제 각 부서 팀장들의 회유와 협박에도 친사측 노조로 갈아타지 않고 세종노조에 남아있는 조합원들에게 수년에 걸쳐 임금 삭감으로 연봉이 반토막 나기도 했다. 겉으로 보이는 호텔의 화려함과 달리 대부분 동결 혹은 삭감된 임금을 감내하며 생활해야 하는 대부분 정규직들도 비정규직만큼이나 팍팍하다.
친사측 노조 조합원들이라고 안전했을까 회사는 세종노조만의 임금삭감과 전환배치가 아니라는 친사측 노조 조합원에게도 그 칼날을 들이댔다. 그러나 세종노조가 회사의 부당한 지시를 강요할 때 집단행동으로 맞서고 과도한 업무량과 노동강도에 앞장서 항의하고 몸이 아파도 병가를 쓰지 못하던 부당함을 깨고 당당히 권리를 행사하는 등 회사의 탄압에 저항해 성과를 내자, 생계를 위해 어쩔수 없이 한쪽 발은 친사측 노조에 담그고 있으나 세종노조의 옳은 주장과 저항에 지지와 마음의 응원을 보내는 현장 노동자들이 많아졌다. 또한 세종노조 조합원들처럼 연차나 병가를 요구하는 등 예전처럼 참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세종노조 조합원들에게 해왔던 전환배치와 임금삭감, 해고에 대해 법원은 늘 사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법원의 상식적이지 않은 판결 속에서 주명건 회장의 사돈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양승태 사법농단으로 구속되고 교육부의 세종대 종합감사를 앞두던 지난해 5월 세종노조는 총력투쟁에 들어갔다.
세종호텔 정문 앞 농성 투쟁을 시작으로 노조탄압에 맞선 투쟁을 확대했다. 1박 2일의 희망텐트와 난장 투쟁으로 사측을 압박하고 고용노동청의 중재 등으로 몇 차례의 사측을 교섭장으로 끌어냈지만 사측도 물러서지 않았다. 때로 조합원들이 일하는 호텔 로비에서 피켓을 들고 들어가 노조탄압에 항의하자, 사측은 노조를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해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 내가 일하는 일터에서 나의 부당한 전환배치 철회를 요구하면 갖은 죄목으로 고소를 당하는 세종호텔의 현실이 부끄럽기도 하다.
올해 설날 연휴 이후 코로나19가 성행하자 호텔관광업은 치명적인 직격탄을 맞았다. 현장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마스크와 소독약 등 방역에도 늘 세종호텔은 늦장 대응이었다. 아무리 호텔 방역에 신경을 써도 매일 늘어나는 예약 취소를 막을 도리가 없었고 2월 한 달 만에 객실은 텅텅 비어 청소할 방이 없게 되었고 침구 소독과 딥 클리닝 같은 업무로 근무시간을 채워지기 시작했다. 호텔 상설 뷔페 영업 중단을 시작으로 커피숍 단축영업, 연회 행사가 줄줄이 취소됐다. 외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명동거리는 포장마차까지 사라져 행인조차 없는 유령의 거리가 되어갔다.
이런 코로나 사태에 사측은 발 빠르게 무급휴직을 공고해 세종노조 조합원을 제외한 현장 노동자 대부분이 사측을 눈치 보며 2주간의 무급휴직을 신청했다. 세종노조는 코로나19 재난의 고통을 매월 받는 임금으로 생활하는 현장 노동자들에게 떠넘기지 사측을 폭로하고 휴업수당 지급을 요구했다. 사측의 눈치만 보며 팔장만 끼고 있는 친사측 교섭대표노조에 공문을 보내 코로나19 예방대책과 강제적인 연차휴가 사용과 무급휴직 중단, 휴업수당을 사측에 요구하도록 압박했다. 결국 세종노조의 대응에 사측은 70퍼센트 휴업수당 지급을 결정했다. 세종노조는 호텔이 영업을 중단하고 사실상 전면 휴업에 들어간 상황에서 호텔 앞 농성투쟁을 지속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다고 판단해 3월 26일 농성 309일 만에 농성장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출근과 투쟁이 중단된 지 두 달이 되어가고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서 초중고 등교가 멀지않았지만 우리들의 출근은 요원해 보인다. 코로나19 펜데믹으로 해외 입국자는 전원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업무 복귀는 세계적 코로나 상황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장기적인 휴업과 불황의 늪에 빠진 세종호텔이 이를 회복하기 위해 또다시 구조조정을 밀어붙일게 불을 보듯 뻔하다”며 고용불안을 호소하는 친사측 노조 정규직 조합원의 걱정에 나는 농담처럼 웃으며 “방법은 있어! 세종노조로 모두 옮겨와 교섭대표노조로 만들어 함께 하나되어 싸우면 모두를 지킬 수 있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답하니 그는 언제나처럼 어이없어한다.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랫듯이…
검찰조사관이 묻는다. “코로나19로 호텔이 휴업 중이고 농성도 중단되었으니 노조 활동도 쉬나요?”
나는 답한다. “진술을 거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