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58호 10-10 노동자 계급의식과 사회주의 정치의식

오세중 ㅣ 노동전선 선전편집위원장

현재 노동운동과 정치조직의 활동 과정에서 나타나는 혼돈 중의 하나는 외부로부터 인텔리들에 의해 도입되고 발전되는 사회주의 정치의식과 노동자들의 투쟁 속에서 변화·발전하는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에 대한 혼돈이다.

이러한 혼돈은 선진노동자에게 무리한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학습을 강요하거나, 다른 한편으로 정치조직에서 학습을 도외시하는 모습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선진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각성하도록 해야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계급이 국가권력을 쟁취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하는 혁명정당 건설을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

노동자들은 자본과의 투쟁 속에서 자본가계급과는 화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각성해야하며, 연대투쟁 속에서 모든 노동자의 이익은 공통적이고 동일하다는 것을 각성해야한다. 또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국가권력에 대한 정치투쟁을 통해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획득해야한다는 것을 각성하고 투쟁해야하는 것이다. 이러한 각성은 오로지 노동자 대중 스스로의 투쟁의 경험을 통해서, 그리고 그러한 경험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한’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조직의 정치사상적 선전선동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이다. 그리고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의식은 ‘투쟁의 경험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되지 않으며, 혁명적 사회주의 사상가들에 의해 정리되고 발전된다.

1.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은 투쟁 속에서 변화·발전한다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란, 자신들의 지위를 개선하고 해방을 획득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대규모 공장에 의해 창출된 자본가 및 공장소유자 계급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라는데 대한 노동자들의 각성을 의미한다. 나아가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란, 특정 국가에 있어서 모든 노동자들의 이익은 공통적이고 동일하며, 그들은 사회의 다른 모든 계급들과 구별되는 단일 계급을 구성한다는 점에 대한 각성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란, 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지주들이나 자본가들이 그래왔듯이 국사(國事)에 대한 영향력을 획득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각성을 의미한다.”
레닌, 1896, <사회민주당 강령 초안과 해설>

노동자들은 일상적으로 자본주의 의식에 찌들어 있다. ‘회사는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의식, ‘노사 상생’을 위해 노사가 협력해야한다는 의식, ‘법’은 공정하고 공평하다는 의식,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라는 의식, ‘국회’는 국민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의식 등등…

심지어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도 몸으로는 자본과 싸우고 있지만, 의식은 자본주의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자본주의 의식을 깰 수 있는 것은 노동자 대중 스스로의 투쟁의 경험을 통해서, 그리고 그러한 경험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한’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조직의, 정치사상적 선전선동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이다.

개별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회사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 고용불안, 산재위험 등에 맞서기 위해 노조를 만들고 투쟁을 조직한다. 그 투쟁은 일시적으로 승리할 수도 있지만 자본가들의 탄압과 교묘한 분열 정책, 자본가들의 연합에 의해 패배한다. 노동자 투쟁의 지도부 그리고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역할은 그 과정에서 자본가들의 본질을 폭로하고, 개별 사업장이 아닌 다른 사업장과의 연대를 통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선전선동해야한다.

그러나 그렇게 조직된 연대투쟁도 일시적으로 승리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공권력과 정부의 탄압으로 또다시 패배한다. 노동자 투쟁의 지도부 그리고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투쟁의 과정’에서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이 자본의 수호자임을,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법원이 결코 노동자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가 자본의 이익만을 대표한다는 것을 선전선동해야한다.

이러한 투쟁의 경험 속에서 노동자들은 정치권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신들의 요구를 실현할 정당을 찾거나, 의회 진출을 위한 정당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거대 자본과 결탁한 부르주아 정당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노동자들의 요구를 차단하고, 의회 진출을 가로 막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자 투쟁의 지도부 그리고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결코 ‘의회’를 통해 합법적으로 노동자들의 요구가 온전히 실현되는 것이 불가능하며, 노동자 대중이 혁명적 방식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을 선전선동해야한다.

‘노동자들의 투쟁 경험’과 ‘혁명적 사회주의 사상의 선전선동’을 통해서 노동자들에게 주입되었던 수많은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깨질 수 있고, 비로소 노동자들의 집단적 계급의식은 발전하게 되며, 궁극적으로 노동자계급이 혁명적 방식으로 권력을 쟁취해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현실은 다양한 투쟁 속에서 다양한 정치의식과 투쟁 경험을 가진 노동자 대중의 복잡한 상호 과정을 통해 의식이 발전한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의식은 노동의 경험과 과정을 통해 발전하고,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은 투쟁의 경험과 과정을 통해 발전한다’는 것이다. 노동자투쟁의 지도부 그리고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노동자 투쟁을 조직하고, 그 투쟁의 경험과 과정 속에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러시아혁명의 과정을 보면 소비에트는 1905년 혁명과정에서 처음 발생하였는데, 그 당시에는 러시아 민중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이 중심세력이었다. 1917년 2월 혁명 시기 ‘이중 권력’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멘셰비키가 다수를 차지했던 소비에트 지도부는 자신들이 국가권력을 획득하려는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레닌이 ‘4월 테제’를 통해 국가권력을 소비에트가 쟁취하고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갈 것을 주장했다. 볼세비키 내부에서도 레닌의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힘들었지만, 레닌의 ‘객관적이고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정치 선전선동은 볼세비키의 의식의 변화 발전을 가져왔다. 그리고 볼세비키의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노동자 대중의 정치의식을 변화 발전시킬 수 있었으며, 마침내 소비에트의 다수의 지지를 획득하고 10월 혁명을 통해 소비에트 권력을 선포하게 된 것이다.

2.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의식은 외부로부터 가져와야한다

“러시아에서 사회민주주의의 이론적 원리는 노동계급운동의 자연발생적인 성장과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생성되었다. 사회민주주의 이론은 혁명적인 사회주의 인텔리겐챠들 사이에서 사상발전의 당연하고 필연적인 결과로서 생성되었다.”
레닌, 1902, <무엇을 할 것인가?>

혁명적 사회주의 사상은 자연발생적으로, 노동자들의 투쟁의 경험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즉 혁명적 사회주의 사상가들의 목적의식적 활동의 결과로서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의 최종 결과물이 바로 혁명적 사회주의정당이다. 혁명 정당은 노동자투쟁의 역사, 정치경제학에 대한 학습 등 혁명적 사회주의 의식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 노동자투쟁의 역사적 경험을 학습하면서 동일한 패배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하며, 정치경제학 학습 속에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전망을 수립해야한다. 그리고 그러한 전망속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또한 그러한 방향으로 이끌도록 노력해야하는 것이다.

소련 해체 이후 자본주의체제의 대안으로서 사회주의에 대한 전망이 무너졌으며, 그 자리를 환경운동, 여성운동 등의 부문 운동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러한 사상적 혼란을 극복하는 것은 지난 역사적 경험을 평가하고, 정치사상적 학습과 토론을 통하여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조직은 이러한 이데올로기 투쟁의 중심적 역할을 해야한다.

3. 노동자 대중 투쟁과 혁명 정당

혁명정당이 어떠한 방식으로 노동자 대중 투쟁을 지도할 것인가에 대해 1917년 이전에는 레닌조차 추상적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그러나 레닌은 1917년 ‘4월 테제’를 통해 노동자 투쟁 속에서 건설된 대중기구인 ‘소비에트’가 권력을 잡을 것을 주장하고, 볼셰비키가 소비에트 내에서 다수의 지지를 얻도록 노력했다. 초반에 그러한 주장은 볼세비키 내에서도 많은 혼란과 반대를 가져왔지만, 결국 다수의 지지를 얻게 되었고, 사회주의 혁명은 성공할 수 있었다. 대중투쟁 속에서 건설된 생산현장 기반의 노동자 민주주의 권력기구인 ‘소비에트’와 정치 사상적 전위조직인 ‘혁명정당’이 하나가 되었을 때, 즉 소비에트에서 혁명정당의 지지자가 다수가 되었을 때, 비로소 혁명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혁명정당의 역할은 무엇인가? 볼세비키를 비롯한 사회주의 정당들은 노동자 대중 속에서, 그리고 노동자 대중의 민주주의적 권력기구인 소비에트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방향을 제시하고,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받기 위해 노력을 한 것이다. 볼세비키당은 결코 소비에트 위에 군림하는 조직이 아니었으며, 대중 권력 기구인 소비에트 위에 군림할 수도 없었다.

흔히들 ‘혁명 정당의 건설없이 혁명은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혁명정당의 역할은 노동자 대중에게 사회주의 혁명의 필요성을 선전선동하고, 투쟁속에서 노동자계급의 조직화, 의식화를 진행하며, 투쟁속에서 건설된 대중 권력 기구인 소비에트의 지지를 획득하여, 소비에트를 지도하며, 마침내 노동자계급이 국가권력을 쟁취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어떤 정치조직이, 어떤 사회주의 정당이 진정한 ‘혁명정당’이 될 수 있는지는 오직 혁명 이후의 역사 속에서 확인될 수 있다. 현재도 우리 주변에는 여러 사회주의 정치조직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노동자 투쟁 속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내용과 방향에 대해 알리면서, 노동자들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선의의 경쟁’(우리 사회주의자들은 결코 모든 대항이나 모든 ‘경쟁’을 단호히 거부하지는 않는다-레닌, 1902, <무엇을 할 것인가>)을 하는 관계이다. 어떤 사회주의 정당이 혁명을 주도하여, 어떻게 혁명이 성공할지는 오직 역사 속에서 사후적으로 검증될 것이다. 이것은 러시아의 혁명과정 속에서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같은 목적을 위해 활동했지만, 당 강령에 대한 논쟁을 시작으로 결국 당의 분리까지 하게 된 볼세비키와 멘세비키의 평가에서도 알 수 있다.

또한 혁명의 과정, 그리고 혁명 이후에도 여러 사회주의 정당들이 존재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이 불균등하게 발전하기 때문이다. 노동자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은 정치의식이 발전하는데, 각각의 노동자 대중의 정치의식은 각각의 정치, 경제적 조건 속에서 서로 다르게 불균등하게 발전하며, 그러한 이유로 불균등한 정치의식을 반영하는 다양한 정치조직이나 정파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다양한 정치조직이나 정파는 인위적인 노력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혁명 이후에 그 물질적 토대를 제거하는 과정 속에서 ‘소멸’될 수 있을 것이다.

혁명정당의 역할은 불균등한 노동자 정치의식에 기반한 다양한 사회주의 정당과의 ‘경쟁’을 통해 노동자들로부터 지지를 획득하는 것이며, 그러한 지지를 기반으로 혁명에 성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혁명의 성공 이후에는 사회 전반의 불균등한 발전과 격차를 해소하고 계급의 소멸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노동자 대중의 불균등한 정치의식은 본질적으로 불균등한 경제 사회적 토대에서 기인한다. 그렇기에 사회주의 국가는 이러한 불균등한 정치의식이 통일될 수 있도록 균등한 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하며, 불균등한 정치의식은 궁극적으로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갈 때까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갈수록 사회주의 정당의 역할은 줄어들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국가, 정치조직은 소멸하고 계획 경제를 실현하는 생산, 분배 시스템으로의 ‘자유로운 생산자 연합’만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