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계급이 주도하는 민중권력 쟁취하자!
- 소비에트의 현재적 의미
편집자 주 : 변혁운동의 전략과 조직에 관한 논쟁이 왕성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기고자가 미약하나마 이 물음에 대한 단초를 제출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변혁운동을 지향하는 조직과 활동가내에서 이것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게제합니다.
노제혁 ㅣ 자유 기고가
모두들 자본주의의 위기를 외친다. 그러나 한편으로 노동자계급의 혁명, 사회주의 혁명은 몇백 년 후의 일이라고 말하거나, 이제는 의회를 통해서만 그 길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또 어떤 이는 혁명적 상황이 발생해도 ‘혁명정당’이 없기에 ‘혁명의 성공’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과거 역사에 비추어 현시기를 진단해보고, 어떠한 방향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1.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정치권력 장악을 통해 시작된다.
여러 사회주의 정치조직들이 ‘사회주의 정책’에 대하여 논쟁한다. 그러나 그러한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한, 그러한 정책들은 당면 시기의 정치, 경제적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동될 수 있다. 맑스가 『공산당 선언』을 출판할 당시에 ‘가장 선진적인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정치권력을 장악한 이후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 제안한 정책 중에 ‘어린이의 공장노동 폐지’ 등은 현재의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시행되는 정책들이다.
‘사회주의 정책’을 논쟁하고 그것을 알리려고 노력하는 정치조직은 혁명적 방법이 아닌, 자신들의 ‘정책’을 알리는 방식을 통해 ‘표’를 모으고, 그 ‘표’를 바탕으로 현재 의회에 진출하는 것으로 목표로 하나. 물론 그것은 ‘노동자 투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라고 그들은 이야기한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의회가 아닌, 노동자 민중의 직접적인, 그리고 지금의 의회 보다 더욱더 민주적인 소비에트 권력은 혁명적 방식을 통해서 쟁취될 수 있다. 그렇기에 노동자 대중의 투쟁을 조직하고 확산하는 것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임무이다.
“공산주의자의 당면 목적은 다른 모든 프롤레타리아 당들과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트를 하나의 계급으로 형성시키고, 부르조아 지배를 타도하며,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권력을 장악하도록 하는데 있다.”
맑스, 『공산당선언』 1848
“가장 선진적인 나라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매우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1. 토지소유를 폐지하고 모든 지대를 공공의 목적으로 활용한다.
2. 소득에 대해 높은 누진과세를 적용한다.
3. 모든 상속권을 폐지한다.
4. 모든 망명자와 반역자의 재산을 몰수한다.
5. 국가자본과 배타적 독점을 가진 국립은행을 통하여 신용을 국가의 수중으로 집중한다.
6. 전달, 운송수단을 국가의 수중으로 집중한다.
7. 국가소유의 공장과 생산도구를 증대한다. 황무지를 개간하고 공동의 계획에 따라 토질을 개선한다.
8. 모두가 똑같이 노동의 의무를 진다. 특히 농업을 위한 산업군을 편성한다.
9. 농업과 제조업을 결합한다. 인구를 전국적으로보다 균등하게 분배함으로써 도시와 농촌간의 차별을 점차 폐지한다.
10. 공립학교에서 모든 어린이를 위한 무상교육을 실시한다. 현존하는 어린이의 공장노동을 폐지한다. 교육과 산업적 생산을 결합한다, 등등.”
맑스, 『공산당선언』 1848
2. 의회의 의의와 한계
지금의 국회는 지역을 기반으로 지역적 요구가 중심이 된다. 또한, 의원의 선출은 지역 명망가, 또는 전국적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 되는데, 이것은 결국 자본가 및 기득권 세력이 의원에 선출되는 구조이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적으로 ‘전체 국민’을 대표하는 조직이고, 그렇기에 노동자 대중은 ‘의회’를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의회에 대한 환상은 이론적 교육이나 소멸은 교육을 통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대중의 투쟁과 경험을 통해서 노동자 대중 의식이 발전하는 것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 이것이 혁명적 사회주의자, 변증법적 유물론자의 관점이어야한다.
그렇기에 지금의 의회를 무조건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대중이 투쟁의 경험 속에서 의회의 한계를 그들 스스로 인식하고 정치의식이 발전할 수 있도록 세심한 투쟁의 계획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볼세비끼는 가장 반혁명적인 의회들에 참여하였고, 이 참여가 바로 러시아의 제1차 부르조아 혁명(1905년) 이후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당이 제2차 부르조아 혁명(1917년 2월)을, 다음에는 사회주의 혁명(1917년 10월)을 준비하는데 유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필수 불가결하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1920
“부르조아 의회들과 모든 다른 형태의 반동적 제도를 없애버릴 힘이 없는 경우에는, 당신은 그것들 내에서 활동해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바로 당신은 이 성직자와 농촌 생활조건으로 인하여 기만당해온 노동자들을 거기에서 여전히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다름 아닌 허풍선이가 되어버릴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1920
3. 노동자 권력의 새로운 형태-소비에트
러시아 혁명의 경험은 기존 자본가들의 의회가 아닌, 노동자 민중의 이해를 보다 직접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더욱더 민주적인 소비에트 정부 수립의 과정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러시아가 했던’ 특수한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가 필연적으로 해야’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비에트는 각 지역, 부문 단위로 자신들의 요구를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조직이며, 그러한 조직이야말로 자신들의 직접적인 요구들을 가장 잘 제안하고, 투쟁하며,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에트는 투쟁의 과정에서 투쟁을 이끌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1917년 10월 혁명을 통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곧바로 소비에트 정부기구인 인민위원회를 창설하였다.
1905.1. 피의 일요일: 황제 숭배 사상이 무너짐. 소비에트적 조직형태 발생.
1905.10. 10월 선언: 두마(국회) 개설. 헌법 제정. 언론, 출판, 결사, 조합 결성의 자유 보장.
1914~1917 제1차 세계대전
1917.2 노동자, 병사 소비에트 결성. 두마 임시위원회와 소비에트의 협정하에 임시정부 탄생.
1917.4 레닌, 4월 테제 발표(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1917.10 최소한의 무장력으로 임시정부 청사인 겨울궁전 점령, 소비에트 권력 선포. 인민위원회 창설.
1917.11 제헌의회 선거 실시(사회혁명당 40%, 볼셰비키 24%)
1918.1 제헌의회가 ‘피착취 근로인민의 권리선언’ 채택을 거부하자 제헌의회 해산, 소비에트에서 ‘피착취 근로인민의 권리선언’ 승인.
“부르조아 의회, 곧 제헌의회의 보이코트를 선언한 것이 아니라 제헌의회가 있는 부르조아 공화국이 제헌의회가 없는 부르조아 공화국보다 더 낫겠지만 “노동자 농민의” 소비예뜨 공화국이 어떠한 부르조아 민주주의적 의회주의 공화국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1920
“소비예뜨들은 1905년에 러시아에서 출현하였다, 1917년 2월부터 10월까지 소비예뜨는 멘셰비끼에 의해 오용되었으며 이들은 소비예뜨의 역할과 의의를 이해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파산해 버렸다, 그리고 오늘날 소비예뜨 권력이라는 관념은 세계 전체를 통틀어 나타나고 있으며 유례없는 속도로 모든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 퍼져가고 있다, 게다가 우리의 멘셰비끼처럼 제 2인터내셔날의 노영웅들은 소비예뜨들의 역할과 의의를 이해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곳곳에서 파산해가고 있다 등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매우 중요한 몇몇 문제에 대해서 러시아가 했던 일을 모든 나라가 필연적으로 해야 하리라는 것이 경험으로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1920
4. 민주노조 운동의 의의와 한계
87년 6월 항쟁이라는 반독재 민주화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은 민주주의 투쟁에 대한 경험을 하였고,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전국적인 민주노조 건설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를 결성하였으며, 1995년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창립하였다.
1987.4 전두환 특별 담화 발표(대통령 간선제 유지). 야당과 재야 민주화 세력 연합전선으로 직선제 쟁취 국민운동본부 창설
1987.6.9 이한열 열사 최루탄 피격 사망.
1987.6.10 국민운동본부 주관 대규모 시위.
1987.6.29 민주정의당 노태우 대통령 후보의 직선제 수용 선언
1987.7 현대엔진 노동조합 결성대회를 시작으로 노동자 투쟁 확산.
1988. 현대그룹노동조합협의회 결성
1990.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결성
그러나 이제는 ‘민주노조’만으로 노동자들의 요구를 실현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다. 현재 노동자들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서 민주노총 집행부를 장악하는 것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노동자 권력 쟁취 투쟁을 조직하는 수단, 과정이 되어야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본질에서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체제내적 기구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근본적으로 노동자 권력 수립을 통해 해결할 수 있으며, 민주노총은 이러한 노동자 권력 수립을 위한 투쟁에서 활용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민주노총, 지도부의 관료화 등을 이유로 민주노총 자체를 거부하는 오류 또한 피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민주노총이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대중은 민주노총을 전국 노동자 투쟁의 중심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민주노총을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실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들의 일정한 “반동성”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하에서는 불가피하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의 기본조건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뜻한다. 이 “반동성”을 두려워하는 것, 그것을 회피하거나 뛰어넘으려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이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노동계급과 농민의 가장 후진적인 계층과 대중들을 훈련, 교육, 계몽시켜 새로운 삶으로 끌어들이는 프롤레타리아 전위의 기능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편협한 직업 이기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거나 동업 조합적인 또는 노동조합적 편견을 가진 활동가가 한 사람도 없을 때까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성취를 연기하는 것은 더 더욱 중대한 오류일 것이다.”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1920
5. 보편성과 특수성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투쟁은 필연적이다. 또한, 그러한 투쟁의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조직을 만드는 것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과정일 것이다. 그러나 그 조직의 명칭이나 형태는 각 나라, 각 투쟁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것이 러시아에서는 ‘소비에트’라는 이름과 형태로 발생되었고, 레닌은 ‘소비에트’가 새로운 국가권력의 형태임을 인식하고 ‘소비에트 권력’을 수립하고 역사적인 사회주의 혁명의 길을 열었다. 러시아혁명은 노동자 투쟁 속에서 새로운 노동자 권력의 형태가 무엇이고,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역사적으로 보여주었다.
노동자 대중의 계급의식은 노동자 스스로의 집단적 투쟁의 경험과 실천을 통해 발전한다. 1905년 혁명 이후 전제 정치의 대안으로 생각한 자본가들의 임시 정부는 곧 한계를 드러냈고, 1917년 10월 혁명 이후에도 소비에트 정부가 제헌의회를 설립한 것은 제헌의회의 한계에 대해 노동자 대중 스스로가 그것을 인식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자 민중의 분노-그 근본적인 원인은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인한 노동자 민중의 고통일 것이다-가 박근혜 퇴진 투쟁을 이끌었으나 민주당 집권으로 귀결되었다. 노동자 대중은 그들의 문제를 문재인 정부가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했으나, 문재인 정부는 오히려 자본의 편에서 노동개악 등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문재인 정부의 반노동자성 때문에 박근혜 퇴진을 이끈 노동자 투쟁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퇴진운동의 분위기 속에서 많은 비정규직 노조가 설립, 확산되었고 민주노총 조합원이 110만에 이르게 되었다.
오히려 문제는 노동조합의 한계를 벗어나는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는 이른바 ‘좌파’ 정치조직들이라고 본다. ‘좌파’ 정치세력은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가 추진한 ‘노사정 합의’ 반대 투쟁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였으나 그 이상의 진전은 이루지 못하였다.
2016.10.29 민중총궐기 투쟁본부,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개최(5만명 참가)
2016.11.9 ‘박근혜 퇴진 비상 국민행동’ 출범
2016.11.12 민주노총, 6차 민중총궐기(106만명 참가)
2016.11.30 민주노총, 1차 총파업
2016.12.3 6차 촛불집회 232만명 참가(사상 최대규모, 누적인원 659만명)
2016.12.9 박근혜 탄핵소추안 통과
2017.2.25 민주노총 7차 민중 총궐기(108만명 참가, 누적인원 1,450만명)
2017.3.10 헌법재판소, 박근혜 파면 선고
2017.5.9 문재인 대통령 당선
2020.7.24 노사정 합의안 부결,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 사퇴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 민중의 저항을 불러왔고, 노동자 민중은 ‘선거’에서 이명박, 박근혜를 구속시킨 검찰총장 출신의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선택하는 것으로 또다시 허망한 기대를 하였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위기는 채 1년도 되지 않아 다시 윤석열 퇴진 투쟁으로 모아지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윤석열 퇴진 투쟁은 결과적으로 민주당 집권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투쟁의 과정속에서 아직도(!) 민주당에 기대를 거는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조직적 과제는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노동대중이 민주당의 한계를 직접 경험함으로써 노동자 대중의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 즉 ‘노동자 권력 수립’이라는 요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시기 어떠한 투쟁을 준비할 것인가? 새로운 노동자 권력의 맹아는 무엇인가? 현시기 전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이끌고 있는 조직은 무엇인가? 그것은 ‘민주노총’과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전국민중행동’이다!!!
‘전국민중행동’은 2015년 한상균 위원장이 이끌던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노동자, 농민, 빈민 등 주요 단체가 모여 발족한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로 시작을 하였다. 그 이후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에 적극 결합하여 박근혜 퇴진운동을 이끌었고, 2018년에 ‘민중공동행동’ 발족하였으며, 2022년에는 양경수 위원장이 이끄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농민, 빈민 등 주요 단체들이 모여 ‘전국민중행동’을 발족하였다.
2015.9.22 박근혜정권의 퇴진을 위한 민중총궐기 성사를 위해 60여개의 노동자,농민,빈민 주요단체가 모여<민중총궐기투쟁본부> 발족
2015.11.14 2개월여의 준비로 민중총궐기 성사 / 백남기농민이 박근혜정권의 물대포에 맞아 중태
2016.11.12 1년여의 2차 민중총궐기 준비와 백남기농민 국가폭력 규탄 투쟁을 병행하여 2차 민중총궐기 성사. 이후 벌어진 박근혜정권 퇴진 촛불혁명의 도화선이 됨
2016.11~2017.5 민중총궐기투쟁본부의 주요 간부들이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사무처에 적극 결합하여 대 언론 사업부터 현장 자원봉사까지 관리하는 실무주체로 복무하고, 가입단체들은 조직적으로 결합하여 주말마다 100만 촛불집회, 통산 1,700만명이 참여하여 박근혜 살인독재정권을 퇴진시키는 촛불혁명의 성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함
2018.5.10 문재인정부 출범 후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민중공동행동> 발족. 2018 민중대회 ,2019 민중대회 성사
2021.5.12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위해 더욱 강력한 전국조직으로의 변화발전을 위한 <전국민중행동(준)> 발족
2022.1.15 노동자,농민,도시빈민 등 전국 각지 각 계급계층이 모인 2022 민중총궐기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1만명 규모로 성사. <전국민중행동> 발족
출처 : 전국민중행동 홈페이지
이런 주장에 대해 터무니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미약하기 짝이 없고, 더구나 ‘우파’가 주도하고 있는 ‘민주노총’과 ‘전국민중행동’이 노동자 권력의 맹아라고??”
그러나 투쟁의 발전과정에서 노동자들이, 그리고 그들의 지도부가 처음부터 혁명적 사회주의, 노동자 권력을 목표로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투쟁의 발전과정에서, 그리고 노동자들의 의식의 변화에 따라 변화될 수 있다.
러시아혁명의 과정에서도 노동자투쟁의 지도부였던 ‘소비에트’는 1905년에 처음 등장하였지만, 1917년 10월 혁명 직전까지 계속 ‘멘셰비키’가 다수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레닌이 1917년 4월 테제를 발표한 이후에 적극적인 선전선동을 통해 소비에트에서 다수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볼셰비키가 다수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제2차 전 러시아 소비에트 대회 전날 밤에 임시정부 청사인 겨울궁전을 비롯한 주요 기관을 점령하고, 전 러시아 소비에트 대회에서 소비에트가 권력을 장악했음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평화에 대한 포고’, ‘토지에 관한 포고’ 등을 발표하고 최초의 소비에트 정부인 인민위원회를 창설하였다.
“우리 러시아에서 1917년 2월 17일(구력)의 혁명 이후 멘셰비끼와 사회 혁명당원들 (말하자면 러시아의 헨더슨파와 스노우든파)에 맞선 볼셰비끼의 선전은 바로 이와 똑같은 상황에 힘입어 이득을 보았다는 점에 유의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멘셰비끼와 사회혁명당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었다. 당신들이 소비예뜨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므로(1917년 6월, 제 1차 전 러시아 소비예뜨 대회에서 볼셰비끼는 단지 13%의 표를 얻었다), 부르조아지 없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라. 그러나 이 러시아의 헨더슨파와 스노우든파는 부르조아지 없는 권력 장악을 두려워하였고, 또 사회혁명당원들과 멘셰비끼(이 양자는 실제로 똑같이 쁘띠부르조아 민주주의를 대변하였기 때문에 아주 긴밀한 정치적 연합을 구축하였다)가 제헌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리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던 부르조아지가 그 제헌의회 선거를 지연시켰을 때도 사회혁명당원들과 멘셰비끼는 이러한 지연책을 정력적으로 철저하게 막을 수가 없었다.”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1920
일상적 시기에 대중의 의식과 그 의식을 대변하는 지도부는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그러한 대중이 투쟁 속에서 단결하고, 투쟁 속에서 자본주의의 한계를 몸으로 느끼고, 투쟁 속에서 새로운 노동자 권력이 수립되어야하고, 바로 그 힘이 노동자들에게 있음을 깨닫게 해야 한다. 그것은 집단적 힘을 느낄 수 있는 투쟁과 함께, 자본주의의 모순을 ‘객관적 상황을 통해’ 일깨워주는 사회주의적 선전선동을 필요로 한다.
6. 혁명정당 건설없이 혁명의 성공은 없다?
혁명정당 없이 혁명의 성공은 불가능하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혁명적 상황은 특정 조직이 만드는 것이 아니며, 혁명정당은 혁명적 상황속에서 급속한 성장과 발전을 이룬다. 러시아 혁명을 이끈 볼셰비끼는 1916년 약 2만명이던 당원이 1917년에 혁명적 상황속에서 30만명으로 성장하였다. 혁명적 사상은 혁명적 상황속에서,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한’ 사회주의적 선전선동을 통해 급속하게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혁명은 의도적으로, 자의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며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개별적인 정당과 전체 계급의 의지 및 지도와 무관한 정황의 필연적인 결과였음을 잘 알고 있다”
맑스, 『공산당선언』 1848
현재 ‘좌파’ 정치조직들 사이에 정치사상적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권력 수립’이라는 ‘실천적(!) 당면 목표’에 동의가 된다면 ‘사회주의 혁명 정당’ 건설을 위해 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영국 공산주의자들은 제3인터내셔날의 원칙들과 의회 참여의 불가피성을 기반으로 하여 자신들의 네 정당과 집단(모두 매우 취약하고 몇몇은 형편없이 취약한) 모두를 단일한 공산당으로 통합시켜야만 한다. 공산당은 헨더슨파와 스노우든파에게 다음과 같은 “타협”, 곧 선거협약을 제안해야만 한다. 로이드 조지와 보수당원들의 연합에 맞서 함께 나가자, 노동자들에게서 노동당이나 공산당이 얻은 투표수(선거에서의 투표수가 아니라 특별 투표를 통한 투표수)에 따라 의석수를 분배하자, 선전, 선동, 정치활동의 완전한 자유를 갖자. 물론 이 맨 나중의 조건 없이는 우리는 이 연합에 들어갈 수 없는데, 이는 그런 연합은 배신일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볼셰비끼가 (1903~1917년의 15년 동안) 러시아의 헨더슨파와 스노우든파인 멘셰비끼에 대하여 고수해왔고 고수했었던 것처럼, 영국 공산주의자들은 헨더슨파와 스노우든파를 폭로할 완전한 자유를 고수하여야만 하고 앞으로도 고수해야 할 것이다.”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 1920
7. 마무리하며
현재 자본주의 위기는 더욱더 한계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또한, 윤석열 정부의 국정 난맥과 경기 침체, 물가 인상에 따른 노동자·민중의 분노 때문에 윤석열 퇴진 투쟁이 더욱 확산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걸고 윤석열 퇴진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권 교체가 아닌 체제 전환, 즉 노동자·민중의 대표로 구성되는 노동자 권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선전 선동해야 할 것이다.
현재 전국적 투쟁을 이끌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 여러 비판이 있지만 민주노총이 노동자 투쟁을 이끌고 있다. 물론 제대로 못하고 있다면 비판하고 강제해야 한다. 그리고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전국민중행동’이 노동자를 비롯한 농민, 빈민 등 전체 민중의 투쟁을 이끌고 있다. 물론 현재의 지도부가 투쟁의 발전 과정에서 한계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한계 또한 투쟁 속에서 대중들에게 폭로되어야하며, 대중 투쟁의 힘으로 지도부를 견인하도록 해야 한다.
현재 민주노총을 비롯한 각종 단체는 직-간접적으로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들이 직접 국가 정책을 결정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모든 이론은 회색이요, 영원한 것은 오직 저 푸른 생명의 나무이다!”
One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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