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글>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

조창익 l 편집위원장

며칠 전 제주 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 취소에 따른 부당해고 복직자 자율기획연수’ 프로그램 첫 날 대정읍 ‘곶자왈도립공원’ 도처에 분포하는 4.3 항쟁 당시 남로당 대정면당 은거지 등 유적지를 탐방했습니다. 경찰의 검거를 피해 입산하여 무장대로 활동한 참여자의 증언 기록을 함께 살피면서 정확히 1947년 당시로 되돌아가 일촉즉발의 상황과 생사를 다투는 민초들의 절박함에 몸을 떨었습니다. “탄압이면 항쟁이다!” 곶자왈 숲속에서 귓가에 총성이 쟁쟁하게 들려오는 듯 했습니다. 역사진보와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생각하는 여정이 되었습니다.

답사 도중 어쩌면 역사는 현재의 삶을 반추하게 하는 철학적 지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크로체가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갈파한 이유가 박제화된 해석을 경계하고 사회 변화를 향한 치열한 변증법적 재해석과 실천 철학으로서 역사학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 역사는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 나와 공동체를 새롭게 태어나게 만들어야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역사적 의무라는 통찰력을 크로체가 선물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는 시>로 베트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손꼽히는 ‘호찌민’ 주석의 혁명에 앞서 마음을 먼저 고쳐 새로이 하자라는 시를 실었습니다. 호찌민 주석은 혁명의 시작점을 혁명가의 마음가짐, 매일 거듭 태어나야 하는 자신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중시하여 시로 남긴 것 같습니다. 평범한 가르침이지만 참으로 귀중한 교훈인 듯합니다.

<정세>에 세 편의 글을 준비했습니다. 먼저 노동자 계급은 정치질서 개편을 요구해야 한다.’라는 제목으로 신재길 노동전선 정책위원의 글을 싣습니다. 신 동지는 ‘미중 대립은 미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격화될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고립시키는 신냉전을 구축하려 할 것이고, 중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파열구를 내고 다극화 세계질서를 구축하려 할 것’으로 분석하고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계급투쟁은 세계적 차원에서 격화될 것이다. 한국은 강력한 노동자 계급기반이 존재한다. 계급투쟁의 격화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진출을 요구한다. 앞으로 10여 년의 기간 동안 노동자계급은 분명한 전략적 목표를 설정해 이 목표에 투쟁을 집중’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신종 코로나 대유행 시국 감상라는 제하의 채만수 노동사회과학연구소장의 글을 싣습니다. 채 소장은 경제위기, 소위 한국판 뉴딜, 의사 파업, 인권의 전투적 수호자·인권의 천국 미국, 종교 등을 중심으로 시국을 일별하고 정리글 ‘코로나 19,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면?’을 통하여 새로운 사회체제에 대한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상상력을 풍부하게 자극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최근 미국 대선이 끝나고 바이든 후보의 승리로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과정에서 문영찬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장의 정세분석 자료, 미국 대통령 선거와 노동자 계급을 준비했습니다. 문 동지는 미 대선과 미국의 민주주의, 미국의 세계전략의 변화 가능성, 미 대선과 한반도 정세, 세계사적 반동기의 극복 가능성을 논합니다.

<현장>에는 최근 대법 법외노조 취소 판결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전교조 투쟁과 관련하여 헌시(조창익 전 전교조 위원장) 한 편과 전교조의 7년 고통 뒤에 숨은 문재인 정권(이을재 전 전교조 부위원장)을 싣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권의 사법농단, 국정농단의 산물인 전교조 법외노조 사안을 적폐청산의 과제로 인식하고 행정부의 직권취소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법부의 판결 뒤에 몸을 숨김으로써 촛불을 기망하고 탄압을 지속해 온 지점을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어 김수미 전국공무원노조 부위원장의 문재인 정부는 해고자의 원직복직을 이행하라!’를 실었습니다. 전교조와 같은 이유로 법외노조가 되어 고통받고 있는 공무원노조 해고자 원직 복직 문제는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 판결로 전교조 해고자들에 대한 원직복직이 완료된 마당에 한시도 미룰 수 없는 현 정부의 당연한 의무가 되어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입으로 한 약속을 지금 당장 지켜야 마땅한 일입니다.

다음으로 의료연대 서울대병원 분회 간호사 최은영 조합원의 더 늦기 전에 공공의료 확충해야 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싣습니다. 부족한 공공병원, 부족한 중환자실, 부족한 간호인력, 부족한 개인보호구의 실태를 점검하고 공공의료를 확충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학부모회> 사무처장 조이희 님은 암환자의 요양병원 치료는 암 치료의 직접적인 치료다를 통하여 삼성생명의 악행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쟁점>으로 조상수 철도노동조합 위원장의 글, 문재인 정부 철도통합 개혁 중단의 원인과 노동 진영의 과제를 싣습니다. 조 위원장은 글을 통해 철도통합 운동이 국가기간산업 재통합 투쟁의 시작이며 공공철도의 역량 강화야말로 철도산업 민영화 저지 투쟁의 교두보가 될 것임을 강조하고 노동 진영에 몇 가지 주요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집>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에 세 편의 글을 담았습니다. 올해가 한국 전쟁 70주년, 전태일 열사가 분신으로 산화한 지 50주년, 5.18 광주 민중항쟁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국전쟁 70,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을 김동국 전 전교조 부위원장께서, 전태일 동지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김승호 전태일 노동대학 대표께서, ‘5.18 40주년 광주 유감을 최승원 전교조 조합원 동지께서 현재의 시점에서 세 가지 굵직한 한국 현대사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역사적 과제와 통찰력을 제공해주고 계십니다.

<연구> 코너에 두 편의 글을 실었습니다. 홍승용 현대사상연구소장의 풍요로운 평등사회를 위하여사회주의 대중화와 노동자 국가-’를 통해 사회주의가 인류의 유산이기도 하지만 인류의 미래이기도 하다, 자본독재가 초래할 수밖에 없는 범인류적 재앙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국가 건설이 불가피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안상헌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노동자 계급운동과 아나키즘을 싣습니다. 안 교수는 전통적 아나키즘, 국가,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 세계화 자본주의 체제, 세계화 자본주의 시대의 철학담론, 현대 아나키즘의 한계를 분석하고 노동자 계급운동은 자본주의 현실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문제를 실천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마르크스의 ‘실천적 유물론’과 ‘자본의 운동 법칙’을 명료하게 해명해낸 ‘정치경제학 비판’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 출발하는 일이 급선무임을 갈파하고 있습니다.

<과학>에는 지난 호에 이어 과학기술평가예측센터 신명호 소장의 두 번째 글,과학과 기술의 정치화를 위한 이론적 주제들(2)’를 싣습니다. 신 소장은 본 논문에서 제시한 15가지 이론적 주제뿐 아니라 노동계급이 직면해야 하는 더 많은 범주와 개념들을 포함하여 이를 종합하고 체계화하는 집단적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노동계급이 리바이어던을 길들여서 과학과 기술을 전유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기술 파시즘을 분쇄하고 ‘거꾸로 선 세계’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음악>에는 법외노조 탄압 해고 복직자가 되어 교단으로 복귀하신 전교조 전 대변인 송재혁 선생님의 윤리적인 아름다움, 쇼스타코비치를 담았습니다. 2017-18년 전교조 본부에 함께 근무하는 동안 그는 본부 성원들에게 가끔 음악 관련 정보를 제공하곤 하였는데 어느 날 쇼스타코비치 전기 영화‘증언’을 소개한 바 있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DVD를 구입하여 영화를 시청하고 동봉된 쇼스타코비치 음악을 가끔씩 듣곤 하였습니다. 그의 음악 세계에 근접하고 싶은 욕망에 기인하였는데 이번 글을 읽어가면서 모르긴 해도 공감의 영역이 좀 더 확대되지 않았을까 기대해봅니다.

<여성> 코너에는 천연옥 님의 사회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을 실었습니다. 천연옥 님은 글에서 ‘여성해방은 사회주의를 통해서, 사회주의는 여성해방을 통해서 완성될 수 있다.’ 현실 사회주의 실험과 실패 이후 ‘현재의 역사는 반동기를 경과하고 있으며 노동해방, 여성해방, 인간해방의 과제가 결국 하나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조한진희 님의 공동체적으로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질문을 싣습니다. 성폭력이 가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구조의 결과라면, 성폭력을 사건화한 이후의 공동체는 피해자 그리고 가해자와 함께 변화하고 재구성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책 소개>란에는 배달노동자 송서경 님의 자유롭고 의식적인 활동을 위해와 환경 활동가 진진수 님의 기후 위기는 인류위기, 자본주의가 주범이다’, 한성대 김남기 님의 사회주의 국가 소련을 다시보다를 실었습니다.

<독자 후기>에는 허영구 평등노동자회 대표의자본주의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투쟁 과제를 제시한 글들, 전교조 김석현 조합원의 우리들에게 영원한 승리란 무엇일까?’, 사드저지 평화활동가 은영지 님의 희망과 대안을 읽다 등 세 편의 글을 싣습니다.

끝으로 책 표지화의 제목은 ‘혁명의 밤’이고 부제는 ‘평등한 세상을 위하여’입니다. 귀중한 작품을 보내주신 채정균 화가 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20. 11. 14
전태일 열사 50주기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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